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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12화 (12/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12화>

* * *

달빛이 휘영청 밝은 날이다.

달을 올려다보던 불멸의 화염 이정희는 민성이 살고 있는 주택을 바라보며 눈을 요사스럽게 빛냈다.

이정희는 손목시계를 통해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1시.

놈이 집 안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했고 불은 이미 2시간 전에 꺼졌다.

살해하기엔 지금이 가장 적기다.

이정희는 눈을 번쩍이며 등에 메고 있던 활을 빼 들었다.

허리춤에 차고 있던 화살 통에서 화살을 천천히 꺼냈다.

숨을 고르고, 시선을 들어 타깃 지점에 시선을 고정 시켰다.

발의 위치는 비정비팔(非丁非八).

이정희는 손끝으로 화살촉을 확 긁었다.

그 순간 평범하던 화살촉 끝에 작은 불씨가 붙더니 이내 불길이 되어 활활 타올랐다.

이정희는 민성이 자고 있는 집을 향해 화살촉 부분만 남겨 놓고 끝까지 당겼다.

만작의 시위.

조준이 완료되고 남은 숨을 한 모금 살짝 들이마셨다.

그리고.

발시(發矢)!

불길을 머금은 화살이 타깃 지점을 향해 날아갔다.

쇄애애애애애애액!

바람을 가르는 파공음.

이내 화살이 창문을 꿰뚫고, 집 안 거실 벽에 꽂혀 드는 순간.

화아아아아아아아악!

마치 기름 바다에 불을 던진 것처럼 순식간에 불길이 사방으로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집 전체에 불이 붙어 타오르기 시작하는 풍경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자신이 그림자 길드 내에서 최고의 암살자 중 한 명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단연 불을 다루는 능력에 있었다.

일반적인 불의 온도에 비해 수배가 넘는 고온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무엇보다 가장 큰 강점은 꺼지지 않는 불이라는 점이다.

일반적인 물로는 절대 자신의 불길을 꺼트릴 수 없다.

던전에서 구할 수 있는 ‘정화의 액체’가 없는 한, 저 불길은 꺼트릴 수 없다.

즉, 정화의 액체를 손에 얻기 전까지는 자신의 몸에 옮겨 붙은 불을 꺼트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앙 헌터 기관에서 말이 나오긴 하겠지만, 어차피 그건 오경태가 커버 쳐 줄 수 있으니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불길에 장악당해 검은 연기가 무럭무럭 올라오고 있는 장관을 바라보며, 이정희는 음흉하게 웃었다.

* * *

눈을 뜨자마자 매캐한 냄새가 났다.

시커먼 연기가 허공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내 엄청난 불길이 순식간에 벽과 바닥에 번져 나갔다.

이내 자신의 몸에도 그 불길이 맞닿았다.

엄청난 속도로 뜨겁게 치솟는 불길.

민성은 미간을 구기며 천천히 일어났다.

시뻘건 불길을 뚫고 거실로 나왔다.

불길이 너무 강해서 앞이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개의치 않고 곧바로 베란다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감각에 의존해 베란다로 이동한 민성은 간장이 들어 있는 항아리를 움켜쥐었다.

항아리가 불에 타고 있다.

어째서일까.

이 순간-

어린 시절 할머니가 웃으며 밥을 해 주던 모습.

함께 자전거를 탔던 순간.

자신의 친구이자 어머니이자 아버지였던 할머니의 모습이 온통 불길 속인 공간 안에서 비춰졌다.

민성은 뜨겁게 불타고 있는 항아리를 품에 안은 채로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느릿하게 불길을 뚫고 걸음을 옮겨 집 밖으로 나왔다.

집 밖에도 시커먼 연기가 자욱했다.

민성은 연기 밖으로 나가 시야가 잡히는 곳에서 불에 타고 있는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

간장은 이미 뜨거운 온도를 이기지 못하고 시커먼 잿더미가 된 채 여전히 불에 타오르고 있었다.

민성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감각이 극대화된다.

불길을 만들어 낸 장본인을 찾기 위해 자신의 감각을 사방으로 퍼트렸다.

민성의 감각은 마치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뻗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감각의 거미줄에 화염 속성의 존재가 걸려들었다.

감각이 전해 준 신호대로 민성은 먹이를 감지한 거미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아니, 그것은 거미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속도였다.

* * *

“낄낄!”

불멸의 화염 이정희는 도로가에 세워 둔 자신의 차량을 향해 걸어가며 웃었다.

제 놈이 아무리 보고서대로 강하다고 해도, 무방비 상태에서 자신의 암살 공격을 당한 이상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임무 보상으로 받게 될 다이아 1킬로로 뭘 할까나?

희희낙락하며 차문 손잡이를 향해 손을 뻗던 이정희의 움직임이 순간 굳었다.

쐐애애애액!

바람을 가르는 파공성이 들렸기 때문이다.

……?

이정희가 옆으로 천천히 의문의 시선을 돌렸을 때.

온몸에 시커먼 재를 묻힌 사내가 두 눈을 하얗게 번쩍이며 달려오고 있는 게 보였다.

아니, 달리는 게 아니다.

그는 마치 화살처럼 날아오고 있었다.

게다가 손에는 뭔가를 들고 있다.

불타는 항아리……?

이정희가 놀람으로 눈을 커다랗게 뜨던 그 순간.

불타는 항아리가 이정희의 머리를 후려쳤다.

* * *

그림자 길드 본부 팀장 오경태는 책상 위에 놓인 휴대폰을 보며 검지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연락이 올 때가 됐는데…… 왜 이렇게 늦는 거지?”

오경태는 휴대폰을 보면서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때, 기다리던 전화가 울렸다.

오경태는 눈을 반짝이며 바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발신자를 본 오경태는 미간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불멸의 화염 이정희가 아니라 그림자 길드에서 온 전화였다.

오경태는 잠시 머릿속을 정리한 뒤, 전화를 받았다.

“예. 본부 팀장 오경태입니다.”

- 지금 즉시 중앙 본부실로 올라와 주십시오.

“누구 호출입니까?”

- 4성 정보 단장님 호출입니다.

오경태는 벌떡 일어섰다.

1성 군단장만 해도 자신과의 레벨 차이가 하늘과 땅이다.

그런데 특수 팀 최고 정보 지휘자인 4성 정보 단장이라니!?

스치듯 만나기조차 힘든 남자.

그게 4성 정보 단장이다.

그런 그가 자신을 이렇게 직접적으로 호출했다는 건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다.

그리고 오경태는 이 순간 일이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아, 알겠습니다. 바로 올라가겠다고 전해 주십시오.”

- 네.

전화가 끊어지고 나서 오경태는 머릿속이 멍해졌다.

이정희를 강민성에게 보낸 일이 잘못됐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오경태는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훅 닦아 냈다.

아닐 수도 있어.

별일 아닐 수도 있다. 희소식일 수도 있고.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했지만 자꾸만 얼굴이 흐려졌다.

특별히 공을 세운 것도 없는데 정보 단장이 자신을 직접 호출했다는 건 문제를 제기할 이유밖에 없으니까.

오경태는 굳은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뭐가 됐든…… 일단 가 봐야 그 이유라도 알 수 있는 거겠지.

오경태는 무거운 마음으로 옷매무새를 다듬고, 특수 팀으로 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긴 복도를 지나 정보 단장실 앞에 도착했다.

비서가 오경태를 보고 전화를 연결했다.

잠시 후, 승인을 받은 비서가 문을 열어 주었다.

고급스러운 블랙 스트라이프 슈트를 입은 중년인이 오경태를 굳은 얼굴로 쏘아보았다.

오경태는 굵은 침을 꿀꺽 삼키며 서둘러 들어가 90도로 머리를 숙였다.

“정보 단장님을 뵙습니다!”

정보 단장이 자신의 등 뒤로 수많은 모니터가 떠 있는 화면을 검지로 쿡쿡 가리켰다.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은데.”

오경태는 땀이 가득한 얼굴로 수많은 모니터를 보았다.

모니터에는 강민성의 신원과 보고서 내용, 그리고 불멸의 화염 이정희가 강민성의 집을 불태운 것까지 면밀히 나와 있었다.

“그, 그것이 괜찮은 재목인 것 같아 스카웃을 하려고 했는데, 놈이 저희 그림자 길드를 모욕한 탓에…….”

정보 단장이 헛웃음을 흘리며 오경태에게 다가갔다.

오경태는 입안이 가뭄처럼 바짝 말랐다.

긴장감에 숨을 쉬는 것조차 어려웠다.

“이봐.”

“네, 넷!”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정식 절차를 밟지 않은 너를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정보 단장이 표정이 없는 차가운 얼굴로 오경태의 양 어깨를 잡았다.

“채, 책임지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책임? 무슨 책임?”

“제가 너무 주제를 모르고 함부로 사안을 결정하고 행동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떻게든 마무리하겠습니다.”

정보 단장이 오경태의 얼굴에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오 팀장.”

“네!”

“난 말이야. 실수는 용서해도, 실수인 줄 알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건 절대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콰드득!

정보 단장이 오경태의 어깨를 강하게 움켜잡았다.

“크, 크윽!”

엄청난 악력이다.

어깨가 곧 산산조각이 날 것만 같은 통증이 솟구쳤다.

“시, 시정하겠습니다!”

“시간 오래 주지 않을 거다.”

“예, 예! 크흑!”

정보 단장이 손을 풀었다.

“헉! 허억! 허어억!”

오경태가 비틀거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정보 단장이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는 뿌연 연기를 뿜으며 고민에 빠진 표정으로 이마를 긁적였다.

그리고 이내 결정을 내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책임감이 있어야겠지?”

“물론입니다!”

“저놈 하나 죽이는 거야 아무 일도 아니지만, 업계 이미지라는 게 있잖나. 우리 길드의 얼굴에 먹칠을 해서는 안 되지. 어차피 캐스팅은 물 건너 간 상황이고. 누구 덕분에 말이야.”

오경태가 초조함에 눈알을 굴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 말씀은…….”

“명분을 만들어.”

“명분을…… 말씀이십니까?”

“네가 해야 할 일은 거기까지야. 잠재 능력을 가진 유망주를 살해할 수밖에 없었다는 명분. 그래야 중앙 기관에서 이 문제를 갖고 골치 아프게 걸고넘어질 일이 없어질 거 아니야?”

“아, 알겠습니다.”

“이 일이 바깥으로 새어 나가기 전에 정리해야 돼. 네놈 실수에 대한 처분은 그 책임감의 무게에 따라 결정 될 거라는 걸 명심하고.”

“예!”

정보 단장이 턱짓했다.

“그럼 나가서 머리 좀 쥐어짜 보고, 서둘러 그 명분이라는 두 글자 만들어 와.”

“알겠습니다!”

오경태가 정중히 인사를 올리고 허겁지겁 튀어 나갔다.

정보 단장은 다 태운 담배를 재떨이에 끈 뒤,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모니터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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