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1화>
생각날 듯 생각나지 않는 무언가.
대체 뭘까?
할머니?
왜 할머니가 해 준 밥이 떠오르는 거지?
할머니와 함께 초밥을 먹은 기억은 없다.
늘 한식을 먹었으니까.
민성은 의문을 품은 채, 입안을 행구기 위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식사 맛있게 하셨습니까?”
민성은 그제야 오경태를 돌아보았다.
“강민성 님. 저는 그림자 길드로의 입사를 권유합니다. 최고의 대우를 약속합니다.”
“거절이란 걸 알고 있을 텐데.”
“굳이 솔로 플레이를 고집하시는 이유를 들어 볼 수 있을까요?”
“난 누구 밑에 있을 생각이 없거든.”
“강민성 님…… 이런 식의 태도는 결국 위험한 상황을 불러일으키고 말 겁니다.”
민성이 작게 헛웃음을 흘렸다.
“협박?”
오경태가 미소 지었다.
“그럴 리가요. 민성 님을 위해 조언을 드리는 겁니다. 본래 나무란 단단할수록 부러지기 쉬운 법이죠. 이런 식의 행보는 오래 걸리지 않아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세상은 그런 세계니까요. 저희와 함께하시죠. 민성 님의 힘을 키워 드리겠습니다.”
“타깃……?”
민성이 웃음을 흘렸다.
“날 그렇게 네 수준으로 엮어선 곤란하지. 범죄가 범람하는 세상. 그 세상의 중심에 있는 게 너희 같은 양아치들이잖아. 그런 양아치들과 어울리라니, 말이 안 되지 않나?”
오경태의 얼굴에 분노가 서렸다.
“말씀이 심하시군요. 지금 저희 그림자 길드를 모욕하신 겁니까?”
민성이 검은 눈으로 오경태를 보았다.
“그림자 길드 본부 팀장 오경태.”
“…….”
“모욕이란 건, 지금 너 같은 쓰레기가 나랑 겸상을 하고 있는 걸 말하는 거다.”
오경태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민성이 물 한 모금을 더 마시고 잔을 탁 내려놓고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림자 길드라고 했나? 앞으로 내 눈앞에 그림자도 보이지 마라. 줘 터지기 전에.”
민성이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나갔다.
다찌 석에 홀로 남아 민성이 먹어 치운 목재 초밥 그릇을 보며, 본부 팀장 오경태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는 민성이 나간 방향을 돌아보며 주먹을 콰드득 말아 쥐었다.
“……저 개자식이.”
오경태는 표독스러워진 얼굴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어린 시절.
자신은 한낱 뒷골목 파락호에 불과한 다이아몬드 클랜의 클랜장 이호성의 셔틀 인생이었다.
하지만 능력을 각성한 뒤 삶은 180도 변화했다.
그림자 길드에 입사해 인턴 시절부터 엘리트 평가를 놓치지 않았다.
치욕스럽고 수치스러웠던 과거의 나약한 모습을 지우기 위해서,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뭐?
모욕이란 건 지금 너 같은 쓰레기가 나랑 겸상을 하고 있는 걸 말하는 거라고?
고작 150레벨밖에 되지 않는 자식이, 감히 누가 누굴 보고……!
게다가 거절할 거면 빨리 하지, 밥 다 처먹고 하는 건 도대체 무슨 짓거리야!?
똥강아지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오경태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털을 쭈뼛 세웠다.
“네놈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놈인지, 내가 느끼게 해 주마.”
오경태는 바로 전화기를 꺼내 어디론가 통화를 걸었다.
잠시 후.
- 네, 팀장님.
“이벤트다. 성공 보수 다이아 1킬로.”
- 바로 찾아뵐까요?
“30분 후에 본부실로 찾아와.”
- 알겠습니다.
오경태는 전화를 끊은 뒤 거칠어지는 자신의 숨을 가다듬으며 입을 고집스럽게 다물곤, 천천히 일어나 상의 재킷 단추를 잠갔다.
* * *
민성이 차 뒷좌석에 올라타는 걸 보고 이호성이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얘기는 잘 나누셨습니까? 보려고 본 건 아니고요. 얼핏 대화하시는 걸 본 것 같아서요.”
이호성이 물었다.
“대화는 무슨. 귀찮게 하길래 꺼지라고 했다.”
민성이 그렇게 말하곤 창밖으로 시선을 두었다.
이호성은 해쓱해진 얼굴이 되었다.
“집으로 출발해.”
“아, ……예.”
이호성은 내비게이션으로 민성의 주소를 찍고 차를 출발시켰다.
액셀을 밟으면서 가슴이 서서히 크게 방망이질하는 걸 느꼈다.
이호성이 얼굴을 콰득 구겼다.
결국 그림자 길드 간부를 상대로 막말을 지껄인 건가?
이호성은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그러다 이내 머리를 휘휘 저었다.
‘당장 뚜드려 팬 건 아니니까, 그림자 길드가 전체적으로 움직이기엔 명분이 부족해.’
하지만 오경태의 개인적 앙금이 남아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꽤 골치 아파질 수 있다.
속 좁기로 유명한 새끼니까.
‘당분간은 손해가 좀 있더라도 클랜 문을 닫고 잠적해야겠어.’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 * *
민성은 집으로 돌아왔다.
거실 소파에 앉자 고요한 정적이 공간을 휘감았다.
민성이 액자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할머니의 사진을 응시했다.
백 년의 세월이 지나서일까.
할머니의 사진을 이렇게 보고 있어도 감정은 잔잔하기만 하다.
약간의 헛헛함만이 명치를 찌를 뿐.
민성은 숨을 길게 내쉬고 주변을 살폈다.
청소를 하지 않아 먼지가 잔뜩 내려앉아 있다.
벽 구석구석에는 거미줄이 쳐져 있었다.
이호성을 불러도 될 만한 일이지만, 잡생각을 지우기 위해 직접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바닥을 쓸고 거미줄을 빗자루로 지워 냈다.
이후 걸레를 빨아 집을 닦기 시작했다.
청소를 한다는 것 그 자체에서 기쁨이 느껴졌다.
놀라운 일이다.
이런 소소한 행위가 이토록 즐거울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민성은 청소를 하면서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좀처럼 지우지 못했다.
거실과 방, 그리고 주방과 욕실까지 청소를 말끔하게 마친 후, 베란다 쪽을 보았다.
이제 베란다만 청소하면 끝이다.
민성은 깨끗이 빨아 온 걸레를 들고 베란다 문을 열었다.
민성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다.
항아리.
무릎 높이만 한 크기의 항아리다.
민성은 의아한 표정으로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
항아리 안에 들어 있는 건 간장이었다.
아마 오래전 할머니가 담가 놓은 간장인 듯했다.
그렇다면 족히 십 년은 묵은 간장일 것이다.
오래된 간장은 약으로 써도 좋다는 말이 있다.
그래. 맞아.
할머니는 간장을 묵히는 걸 좋아하셨다.
민성은 오랜 추억을 떠올리며 새끼 손가락으로 간장을 콕 찍어 맛을 보았다.
짭조름한 맛이 혀끝을 찌르고, 깊은 맛이 콧속으로 삭 퍼졌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하나의 깨달음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초밥을 먹으면서 할머니의 맛이 났던 이유.
그래. 그 이유는 바로 간장에 있었다.
공장에서 양산된 것이 아닌, 직접 만들어진 간장의 특별한 맛 때문이다.
그래서, 그래서 할머니의 맛이 났던 거였구나.
민성은 항아리에 들어 있는 간장을 빤히 보다가 뚜껑을 닫고, 걸레로 항아리부터 정성스럽게 닦았다.
항아리는 정성 들여 닦은 만큼 이내 반짝반짝 윤이 났다.
집에서 간단히 밥을 해 먹을 때 유용하게 쓰이겠어.
민성은 간장 항아리를 기분 좋게 응시하다가 곧 베란다 청소를 시작했다.
* * *
똑똑!
“들어와.”
그림자 길드 본부 팀장 오경태의 허락에,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들어섰다.
마치 백옥과도 같이 새하얀 피부의 마른 사내였다.
오경태는 집무 서류를 닫고서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이제 갓 20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앳된 외모.
하지만 눈빛은 음습하고 어둡기 그지없다.
그림자 길드의 검은 제복이 어린 나이임에도 매우 잘 어울렸다.
음험해 보인다는 게 흠이긴 하지만.
불멸의 화염
Lv369 이정희
이름도 그렇고 갸름한 얼굴도 그렇고 긴 눈매도 그렇고, 여자라고 한다면 수긍할지도 모를 그런 외모의 사내 이정희.
그는 계열 특성이 살수(殺手)였다.
즉 암살자.
쥐도 새도 모르게 소리 없이 대상을 제거하는 데 타고 난 녀석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을 실망시킨 적이 없었던 녀석. 그렇기에 아끼는 자신의 필살 카드였고, 그런 카드를 꺼낸 만큼 강민성은 이번 기회에 황천길에 오르게 될 거라고 오경태는 확신했다.
강민성은 이제 막 성장이 시작되고 있는 녀석이기에 다소 아까운 점이 있긴 하지만, 너무 제 주제를 모르고 날뛰고 있었다.
자질을 타고나도 운이 나쁘거나 시류를 타지 못하면 앞길이 썩어 문드러지는 것이 세상의 순리다.
그림자 길드 본부 팀장 오경태는 불멸의 화염 이정희를 보며 미소 지었다.
“휴가를 다녀왔다고 들었는데.”
“하와이의 여자들이 예쁘더군요.”
이정희가 그렇게 말하며 혀로 입술을 뱀처럼 요사스럽게 핥았다.
놈에겐 악취미가 있다.
차마 말하기조차 힘든 악취미.
하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그런 건 흠도 되지 않는다.
세상은 이미 썩을 대로 썩은 헌터 제일의 시대니까.
오경태는 이정희에게 서류 하나를 던졌다.
그가 허공에 떠올라 날아온 서류를 낚아채고선 펼쳤다. 그리고 내용을 확인한 뒤,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이정희에게서 보기 드문 얼굴이었다.
이정희는 고개를 모로 꺾으며 ‘흐음…….’ 하고 애매한 신음을 흘렸다.
오경태는 다소 초조함이 묻어난 눈으로 이정희를 지켜보았다.
“보고서 내용을 보니 레벨은 150인데 철혈의 마체테 구양봉이 당했고, 인턴들은 병풍에 불과했네요. 잠재 능력은 마스터급?”
“부담스럽나?”
오경태가 물었다.
이정희가 서류를 탁 덮었다.
“그럴 리가요. 마스터급 성장 능력을 가진 이들을 암살해 본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다만 최상급 마스터 잠재성이라면 레벨이 낮아도 확실히 처리해야겠죠.”
“그 말은?”
“암살만 시도하겠습니다. 근접 암살이나 시체 확인은 불가합니다.”
오경태가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 정도면 충분해.”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만족스러운 대답에 오경태는 시원한 웃음기를 입가에 머금었다.
“그럼.”
불멸의 화염 이정희가 꾸벅 머리를 숙이고 본부실을 나갔다.
그가 떠난 뒤, 오경태는 의자에 깊숙이 등을 묻으며 천장을 보고서 히쭉 웃었다.
“건방진 새끼. 네놈의 싸가지가 네놈을 단명하게 만들었음을 지옥에서 원망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