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0화>
나무로 된 두꺼운 목재 그릇 위로 초밥이 아름다운 자태로 정갈하게 나열되어 있다.
밥알과 회에서 투명하고 밝은 윤기가 짜르르 흘렀다.
민성은 들뜸과 흥분이 섞인 눈으로 초밥을 내려다보았다.
마계에서 늘 시체의 날것을 먹어 왔던 자신이다.
초밥도 사실상 날것.
그 때문에 날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아 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걱정이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보고 있는 동안 역하다는 느낌은 없으니, 그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선 직접 먹어 보는 수밖에.
민성은 천천히 젓가락을 집어 들어 올렸다.
여러 종류의 초밥 중 첫 번째로 무엇을 먹어 볼까?
그래, 키조개 관자 초밥부터 먹어 보자.
민성이 결정을 내렸을 때였다.
드르륵!
갑작스레 초밥 가게 문이 열렸다.
민성은 시선을 돌려 가게 안으로 들어선 남자를 보았다.
그림자 길드 본부 팀장
Lv412 오경태
그림자 길드라면 목욕탕에서 자신을 데려가기 위해 찾아왔던 놈들이다.
같은 길드원인 그가 이 가게를 찾은 이유는 오직 자신밖에 없었다.
지겹군, 정말.
그사이 오경태는 홀로 앉아 있는 민성을 발견하고서 조금은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무겁고 날카로운 기운이 초밥 가게 안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민성은 생각했다.
당장 이 자리에서 베어 버릴까?
아니다.
밥 먹기 전에 피를 보는 건 좋지 않다.
그렇게 생각할 때, 오경태가 잇몸이 보이는 웃음을 활짝 지으며 다가왔다.
* * *
다이아몬드 클랜의 클랜장 이호성은 초조한 얼굴로 줄담배를 뻑뻑 피웠다.
노란색 포르쉐를 타고 나타난 오경태는 강민성의 위치를 자신에게 물어 확인한 뒤, 거침없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오경태는 서포터다.
즉, 그의 레벨이 높다고는 해도 전투에 있어서는 취약하다는 이야기다.
그런 그가 조직원도 없이 혼자 나타났다는 것은 분명 강민성을 포섭하려는 이유에서일 것이다.
이호성은 담배를 피면서 다리를 달달 떨며 생각했다.
강민성이 오경태의 제안을 받아들일까?
보통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조건이 너무 좋으니까.
하지만 강민성은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다.
좋게 말하면 뭐가 달라도 다른 사람.
나쁘게 말하면 또라이에 가깝다.
그렇기에 이호성은 초조하고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강민성이 오경태에게 해코지라도 한다면 그때부터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리고 만다.
자신 역시 원치 않게 강민성의 지시를 받고 있는 입장이기에, 만약 강민성이 그림자 길드와 대치 상황에 접어든다면…….
그건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그림자 길드에서 강민성을 칠 때 강민성의 옆에 붙어 있는 자신 또한 곱게 보일 리 만무하니까.
이호성은 마음속으로 깊이 기도했다.
제발 제안을 받아들이거나, 거절을 하더라도 신사답게 조용히 해결되기를……!
* * *
“안녕하십니까. 그림자 길드에서 본부 업무를 보고 있는 오경태라고 합니다.”
오경태가 민성의 초밥 그릇 옆으로 명함을 내밀며 민성의 옆자리에 착석했다.
민성은 멋대로 자신의 옆에 앉아 미소를 짓는 오경태를 무시했다.
와사비 그릇에 간장을 붓고, 와사비를 젓가락으로 헤쳐 풀었다.
대꾸가 없는 민성의 태도에 오경태의 눈썹과 뺨이 씰룩거렸다.
그는 안경을 고쳐 쓰며 표정을 서둘러 관리했다.
“제가 강민성 님을 찾아온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하나의 제안을 하고자 함입니다.”
민성은 키조개 관자 초밥을 집어 와사비가 잔뜩 풀어져 있는 간장에 찍어서 입에 쏙 넣었다.
우물우물.
밥알이 입안에서 흩어지고, 키조개 관자의 푹신하면서도 쫄깃한 식감이 어금니를 타고 뇌리를 찔렀다.
“아……!”
민성은 작게 감탄사를 입 밖으로 뱉었다.
마계에서 생고기를 씹어 먹던 때가 생각이 나, 횟감이 되는 날것도 입맛에 안 맞지 않을까? 했던 생각은 어리석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비린 맛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입안에서는 신선하고 상쾌함마저 감돌며, 혀끝을 적시는 짜릿한 맛은 그야말로 천상(天上)이었다.
잠시 인지하지 못했다.
마계의 생고기와 인간 세계의 음식은 그 차원이 도를 달리한다는 것을.
“가, 강민성 님? 민성 님.”
오경태가 민성을 부를 때, 민성은 다음으로 어떤 초밥을 먹을지 고민했다.
“제가 이렇게 민성 님을 찾아온 건, 저희 그림자 길드에 강민성 님을 스카웃하고자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일전에 무례하게 민성 님을 모시려고 했던 점은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민성 님의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소…….”
말을 잇던 오경태는 민성이 두 번째로 장어 초밥을 입에 넣자 말을 멈췄다.
그사이 민성은 장어 초밥에 대한 격한 반응을 경험했다.
살짝 몸이 떨렸다.
장어의 중후하면서도 깊은 향이 입안을 맴도는 건 물론, 코를 훅 찌른다.
민물 장어의 남다른 힘이 코끝에서 느껴졌다.
힘찬 장어 꼬리의 움직임이 생생히 살아 있다.
장어의 간 자체도 짜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으며 비리지 않다.
기본을 충실히 지키는 초밥이 가진 힘은 그야말로 강했다.
거기에 최고의 신선도를 자랑하기에 민성의 입안은 황홀함에 적셔질 수밖에 없었다.
“강민성 님? 최고 조건으로 모시겠습니다. 솔로 플레이보다 훨씬 편하게, 더 많은 돈을 벌게 되실 겁니다. 그에 걸맞은 명성과 위치를 마련해 드릴 수 있음은 물론…….”
순식간에 두 개의 초밥을 먹었다.
재미있고 기쁘다.
맛있는 음식을 맛보는 것은 그런 것이다.
설렘과 만족이 바로바로 그 순간에 가슴속에 채워진다.
민성이 작은 우동 그릇을 한 손으로 받쳐 들고 젓가락질을 했다.
후루룩!
우동 면발이 세차게 민성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오경태는 면발을 빨아들이고 있는 민성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민성은 우동을 절반 정도 비우고 국물까지 화라락 마신 후, 세 번째 초밥을 향해 젓가락을 뻗었다.
오경태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광어 지느러미 초밥이 민성의 입안으로 삭 들어갔다.
지느러미를 씹자마자 민성은 눈을 질끈 감으며 콧김을 훅 내뿜었다.
맛있다.
지느러미의 고급스러운 향이 마치 꽃향기처럼 코를 스치고, 지느러미 특유의 질끈질끈한 식감이 사치스럽게 이빨과 혀에 자극을 전했다.
꿀꺽.
순식간에 지느러미 초밥을 해치운 다음, 민성은 곧바로 쉬지 않고 다음 광어 초밥을 입에 넣었다.
초밥을 씹어 먹자마자 민성은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판단 미스다.
후회가 마음속에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광어 초밥을 먹고, 그다음에 광어 지느러미 초밥을 먹었어야 했다.
강한 맛을 가진 지느러미를 먼저 먹었더니 광어 초밥이 다소 밋밋하게 느껴졌다.
광어 초밥 역시 쫄깃하고 신선한 맛을 전해 주긴 하지만, 식감의 차이 때문에 다소 심플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순서가 잘못됐어.
광어 초밥을 먹으면서 다음 초밥 선택에 대해 자연히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강민성 님.”
참돔.
붉은빛을 머금은 참돔이 민성의 입으로 직행했다.
광어 초밥 이후에 먹는 참돔 초밥이었기에 그 식감은 자연히 큰 차이를 줄 것이리라.
그리고 예상대로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광어에 이은 참돔의 선택은 놀라운 결과를 선사했다.
달달하면서도 탱탱하다.
참돔이 고급이라는 이유를 충분히 증명할 만한 그 증거가 입안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자, 다음으로는 어떤 코스를 노릴까?
바로 선택지가 눈앞에서 펼쳐졌다.
민성은 고민 없이 단새우를 집었다.
쫄깃하면서도 푸근하고 오통통한 맛이 너무나 달콤하다.
이어 생연어 뱃살을 선택했다.
양파와 하얀 소스가 어우러진 생연어 뱃살은 식감이 도톰하면서도 부들부들했고, 또한 신선한 연어 향을 가득 만끽할 수 있었다.
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달달하고 부드러운 생연어 뱃살을 마저 삼키고, 대게 살이 올라가 있는 초밥을 먹었다.
대게의 향이 생각보다 훨씬 강렬한데?
아마도 대게 내장의 양념이 아주 살짝 더해져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과연 고급 모둠 초밥이라 할 만한 품목들이다.
이제 남은 것은 참다랑어와 새우장, 그리고 고등어다.
먼저 간이 강한 새우장을 먹었다.
간장으로 검게 배어든 새우장 초밥은 온전히 새우의 살아 있는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간장 베이스는 간을 더하는 최고의 배경이 된다는 생각에 동의할 수밖에 없어지는 순간이다.
민성은 바로 다음 차례로 넘어갔다.
고등어 초밥.
검은 피부 아래 분홍빛이 맴도는 살빛이 매우 아름다워 보인다.
하지만 고등어 초밥은 다소 호불호를 타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고등어 특유의 향이 존재하니까.
한 번도 먹어 본 적은 없지만, 할머니가 고등어 회를 좋아해서 고등어 회에 대한 이야기를 어렸을 적 줄곧 하던 게 기억났다.
민성은 할머니를 추억하며 고등어 초밥을 입에 넣어 씹어 보았다.
어……!?
뭐야.
고급스럽다.
분명 어린 시절의 자신이었으면 싫어했을 법한 맛과 향이지만, 글쎄- 나이를 먹어서일까?
숙성된 고등어의 맛은 지난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기에 더없이 좋은 고급스러운 향으로써, 민성의 오래된 기억과 합쳐졌다.
예상 밖이었던 만큼 충격적이며, 또한 새롭다고 느낄만한 맛이다.
민성은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마지막 초밥을 내려다보았다.
민성은 남아 있는 미니 우동을 마저 후루룩 먹고, 촉촉한 입맛을 다시며 마지막 초밥인 참다랑어 초밥을 젓가락으로 집었다.
이제 마무리.
육질이 고운 최고급 어종, 참다랑어.
두툼한 살이 입안에서 말 그대로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 씹지 않아도 녹는다는 건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너무나 부드러워서 혀를 타고 그대로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모두 녹아내려 없어진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지만 씹어 보면 그 두툼하면서도 한없이 부드러운 식감이 입안을 간지럽힌다.
너무나 달달한 맛이 혀끝과 혀 안을 완전히 장악했다.
향은 그렇게 길지 않지만 부드러움만큼은 가히 최고였다.
“후우…….”
민성은 뜨거운 입김을 뿜으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한 끼 식사로 그 무엇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깔끔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단 하나가 의문이 되어 민성의 머릿속에 남았다.
이 친숙한 느낌은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