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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9화 (9/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9화>

* * *

“이제 어디로 모실까요?”

이호성이 차 안에서 뒷좌석에 앉은 민성을 돌아보며 물었다.

“은행은 안전한가?”

“안전합니다. 헌터 기관에서도 최소한의 규제는 지키도록 힘쓰고 있습니다. 그래야 본인들이 편하니까요. 어차피 본인들 세상일 테니.”

“그게 무슨 말이야?”

“음…… 그러니까- 수도권을 지키는 중앙 헌터 기관과 지방 기관인 동부, 서부, 남부, 북부. 이렇게 총 다섯 개의 기관이 있습니다. 그 기관에 속해 있는 이들은 대부분 고레벨의 강한 헌터들이죠. 그 기관 위 대가리들이 나라를 독식하고 있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법은?”

“물론 명목상 법은 있습니다. 다만…… 법이 그들을 건드릴 수가 없죠. 하하…… 뭐, 물론 일반 서민들이나 저레벨 헌터들은 법대로 일이 처리되고 있긴 해요. 그래도 저레벨 헌터라고 해도 시민보단 법이 훨씬 좋게 기울죠. 헌터란 존재는 나라를 지킬 수 있는 특별한 전사니까.”

민성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은행 자체는 안전하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그럼 일단 은행부터.”

“알겠습니다.”

이호성은 곧장 차를 출발시켰다.

은행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야외 주차장에 차를 대고, 민성은 이호성의 도움을 받아 편하게 통장을 만들고 체크 카드까지 발급 받았다.

“다음으로는 어디로 모실까요?”

“휴대폰.”

“옙!”

이호성은 빠릿빠릿했다.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이동하며 최대한 빨리 일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의 도움을 받으면서 민성은 그가 여러모로 쓸모가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휴대폰을 개통하자마자 그의 휴대폰 번호를 저장했다.

“끝 번호가 뭐라고?”

“5312입니다.”

민성은 개통한 휴대폰을 챙겨 다시 이호성의 차에 탔다.

“이번엔 어디로…….”

“공과금 납부.”

속전속결.

모든 문제는 이호성의 도움으로 막힘없이 해결됐다.

꽤 답답하게 느껴졌던 일들이 이호성의 도움을 받자 어렵지 않게 단시간 안에 끝낼 수 있었다.

민성은 이호성이 눈치와 행동력이 빨라 마음에 들었다.

* * *

“헌터님. 집으로 모시기 전에 저 담배 한 대 태워도 될까요?”

“그렇게 해.”

“감사합니다.”

이호성이 깍듯이 머리를 숙여 인사한 뒤, 차에서 내려 담배를 꺼내 물었다.

라이터로 황급히 불을 붙이고 연기를 뿜으며 이호성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발…….’

이호성의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욕이 나왔다.

클랜장이라는 인간이 휴대폰 개통이니, 공과금이니 하는 문제나 떠맡고 앉아 있으니 속이 터질 수밖에.

“후우…….”

이호성은 한숨이 섞인 담배 연기를 뿜으며 민성이 앉아 있는 자신의 차량을 슬쩍 돌아보았다.

전화번호까지 저장을 한 걸 보면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부려 먹을 것 같은데, 어쩌지?

제대로 코 꿴 것 같은데……

이러다 노예로 생 마감하는 거 아니야?

이호성은 스트레스가 가득한 얼굴로 담배를 뻑뻑 피웠다.

그나저나 떨거지들이 찾아왔다더니, 그림자 길드 놈들과 마찰이 있었던 건가?

‘담배만 마저 피고 제대로 한번 물어봐야겠어.’

이호성은 담배를 필터까지 빨아 핀 다음 연기를 길게 뱉어 내면서, 쿵쾅거리는 심장을 견디며 차 안으로 들어갔다.

“저 헌터님.”

민성의 시선이 이호성에게로 돌아갔다.

“그 떨거지들 있지 않습니까? 헌터님을 찾아갔다는…… 어떤 놈들이었습니까?”

“그건 왜?”

“제가 아는 녀석들이라면 정보를 드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이름은 기억이 안 나고. 아마 철혈의 마체테. 그런 호칭을 달고 있었던 것 같은데. 부하들 한 10명 데려와선 날 어디로 데려가려고 하더라고. 뭐 하는 놈들이야?”

이호성은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철혈의 마체테, 구양봉.

놈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이호성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용병 출신으로서 지금도 기관에 용병으로 캐스팅되어 활동하고 있는 플레이어였다.

“그가 찾아온 거라면 아마 그림자 길드일 겁니다. 혹…… 죽이셨습니까?”

“아니. 계란 두 개에 사이다 하나로 목숨값 쳐서 살려 줬지.”

“……!?”

“왜?”

“아, 아닙니다.”

기관에 입성하지 못한 일반 플레이어들의 목표이자 희망과도 같았던 철혈의 마체테 구양봉.

300레벨이 넘는 그 역시도 결국은 150레벨의 강민성에게 계란과 사이다를 갖다 바치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렇다는 건 대체 강민성의 숨겨진 힘은 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가?

하긴, 생각해 보면 강민성은 자신의 클랜원들을 단 한 칼에 베어 죽인 남자다.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남자.

그런 만큼 불안감은 더 크게 솟구쳤다.

이호성은 민성을 훔쳐보았다.

“출발해.”

민성이 출발을 명령했다.

“어디로 모실까요?”

“집에 가기 전에 점심을 좀 먹어야겠어.”

“음, 지금 시간대에 이 근처라면 괜찮은 곳을 몇 군데 알고 있긴 합니다. 가셔서 혹시나 마음에 안 드시면 말씀 주십시오. 제가 바로 가까운 곳으로 다시 모시겠습니다.”

민성이 좌석 시트에 몸을 깊숙이 기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하겠습니다!”

이호성은 씩씩한 목소리와는 달리 힘이 하나도 없는 새하얀 얼굴로 차를 부르릉 출발시켰다.

* * *

그림자 길드의 본부 팀장 오경태가 보고서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그런 그의 앞에는 철혈의 마체테 구양봉이 다소 그늘진 얼굴로 서 있었다.

오경태는 구양봉을 보며 검지로 보고서를 쿡쿡 두드렸다.

“여기에는 강민성이라는 남자가 150레벨로 표기되어 있는데. 300레벨이 넘는 우리 구양봉 씨가 인턴들까지 데리고 가서 깨지셨다는 건…… 좀 이해가 안 되는데요.”

“그자가 오러를 품은 제 마체테를 맨손으로 부러트렸습니다.”

구양봉의 말에 오경태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봐요, 구양봉 씨. 창피하다고 그런 거짓말을…….”

“……거짓말이 아닙니다.”

웃고 있던 오경태가 구양봉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굳어졌다.

“보고서 이외의 내용은?”

“그게 전부입니다.”

오경태는 딱딱해진 얼굴로 잠시 생각하다가 부채질하듯 손짓했다.

“알았어요. 나가 봐요.”

구양봉이 꾸벅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

오경태는 의자에 등을 깊숙이 기대며 복잡한 표정으로 보고서를 빤히 보았다.

“마스터급의 성장력을 가진 헌터가 이 정도로 강했던가? 단순한 성장력일 뿐일 텐데. 이건 뭔가 세간에 알려진 정보와는 다소 상이한데……?”

오경태가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혼잣말을 이었다.

“쉽게 포섭될 놈 같지도 않고, 정보도 부족하고, 여러모로 애매한 상황인데…….”

오경태는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가장 최선의 수를 읽어 나갔다.

만약 그가 최상급 마스터라면 그를 그림자 길드로 흡수하는 게 가장 큰 공을 세울 수 있는 일이다.

그 공로는 상당할 거다.

특별 기밀 정보 팀으로 전격 승진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림자 길드 자체가 정보력으로 살아남는 집단이긴 하지만, 만약 그를 캐스팅할 수만 있다면 그림자 길드의 지반 또한 더 단단해지리라.

오경태가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타앙! 내리쳤다.

“내 밥줄은 내가 챙겨 먹어야지.”

오경태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쩍였다.

* * *

이호성이 차를 주차시켰다.

민성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가게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서민 초밥]

민성은 간판을 응시하며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미소를 지었다.

이호성은 역시 쓸 만하다.

전에 알려 준 식당과 마찬가지로 입구부터 느낌이 좋았다.

화려하지 않고 수수하면서도 깔끔하다. 밝은 톤의 나무로 된 미닫이 출입문은 식욕을 돋웠다.

간판에 걸린 가게의 상호 이름 역시 이번에도 마음에 든다.

무언가 장인의 느낌이 난다.

“화려하거나 고급스러운 곳은 아니지만, 초밥 맛이 정말 일품인 곳입니다. 분위기를 중요시 여기신다면 근처에 고급스럽고 화려한…….”

“아니. 여기에서 점심을 하겠어.”

이호성이 내시처럼 머리를 조아렸다.

“예.”

민성이 차 문을 닫고 걸음을 옮겼다.

“편히 식사하고 나오십시오. 밖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민성은 대답 없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가게 안으로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이호성은 얼굴을 들었다.

이호성은 멍한 눈으로 가게 입구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영혼을 다른 것에 비유한다면, 지독한 가뭄에 생기를 완연히 잃은 죽어 가는 풀떼기와 같겠지.

이호성은 피식 웃으며 체념한 채 담배를 입에 물었다.

불을 붙여 담배 연기를 품을 때, 멀지 않은 곳에서 와르릉거리는 강력한 엔진 소리가 들렸다.

이호성은 소리가 나는 곳을 보았다.

노란색 포르쉐가 가게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 * *

“이랏샤이마세(いらっしゃいませ)!”

머리에 새하얀 두건을 쓴 남자가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민성을 보며 시원하게 외쳤다.

이랏샤이마세는 한국어로 ‘어서 오십시오.’를 뜻하는 말.

민성은 혼자 온 만큼 바(Bar)의 형태를 하고 있는 ‘다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찌 너머에 있는 남자가 주인이자 초밥을 만드는 유일한 요리사인 듯했다.

외관만 봤을 때는 나이가 꽤 지긋한 초밥 장인이 있을 줄 알았는데, 눈앞에 보이는 요리사는 상당히 젊은 남자였다.

시선을 위로 들어 보자 액자 사진이 천장 부근에 꽤 크게 붙어 있다.

눈앞의 이를 포함해 총 세 명의 사진이 있었는데, 그들 모두 요리사의 복장을 하고 있는 걸로 봐서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초밥 가문인 듯했다.

이 젊은 남자가 아마도 3대째 초밥 가문의 주인이겠지.

‘진짜’ 초밥 가문의 집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에 고양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민성은 기대감이 배어든 얼굴로 메뉴판을 확인했다.

메뉴판 역시 밝은 톤의 나무 재질로 되어 있다.

천천히 메뉴판을 열자 읽기 편한 선명한 글씨로 메뉴의 목록이 나타나 있었다.

글씨체가 매우 정갈하며 섬세했다.

규격이 일정하지 않는 걸로 보아 누군가 직접 글씨를 새긴 것 같았다.

“메뉴 천천히 보시고 주문해 주세요.”

160cm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작은 키의 젊은 여성이 다가와 물병과 물컵을 놓아 주고선, 예의 있게 인사하고 물러갔다.

투명하고 맑은 물을 따라 마시던 중, 민성의 시야에 스탠딩 게시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의 고급 모둠 초밥]

· 광어 · 단새우

· 참돔 · 참다랑어

· 생연어 뱃살 · 광어 지느러미

· 대게 살 · 키조개 관자

· 새우장 · 고등어

저 메뉴가 고급 모둠 초밥에 들어가는 품목인 듯했다.

민성은 이내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손을 들었다.

아주 작은 키의 단발머리 여성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네. 주문 도와 드릴게요.”

새하얀 얼굴의 종업원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주 정중한 태도였다.

“고급 모둠 초밥 하나. 계절 우동 하나.”

“고급 모둠 초밥을 시키시면 미니 우동이 나오는데, 그래도 계절 우동을 시키시겠어요?”

“그럼 고급 모둠 초밥 하나만.”

민성의 말에 종업원이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정중히 머리를 숙여 보이곤 메뉴판을 가져갔다.

민성은 물을 한 모금 마시며 초밥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가게 인테리어를 보다가 초밥 장인이 초밥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장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마치 잘 갈아 놓은 칼날처럼 예리하다.

또한 흐트러지지 않는다.

집중력을 잃지 않기에 정교한 예술과도 같은 초밥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민성은 초밥을 만드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고, 잠시 후 종업원이 그가 만든 초밥과 미니 우동을 가지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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