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3화>
이호성이 당황한 얼굴로 동공이 흔들리며 헛웃음을 지었다.
“여기서 가까워야 한다면…… 논현역 일레븐 편의점 골목에 있는 ‘바름’이라는 식당이 괜찮지.”
민성은 이미지를 떠올려 보고서 미소 지었다.
“작은 규모겠군.”
“뭐, 그렇지. 하지만 집 밥과도 같은 느낌이라 질리지도 않고…….”
이호성은 이내 자신도 모르게 필요 이상으로 주절거린 것 같아, 황급히 입을 닫고 민성을 긴장한 눈으로 보았다.
“고마워.”
민성은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담아 인사를 전한 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하고 있는 이호성을 뒤로하고 아이템을 처분하기 위해 저벅저벅 걸음을 옮겼다.
트럭 앞에 도착해 ‘아이템 마니아’라는 간판을 보았다. 옆으로 눈을 돌리자 트럭에 아이템이 진열되어 있는 게 보인다.
꽤 값비싸 보이는 것들이다.
그때, 애꾸눈의 덩치 큰 사내 한 명이 차에서 내렸다.
“물건 보러 오셨소?”
사내의 말에 민성은 고개를 저었다.
“아이템을 처분하러 왔다.”
민성이 그를 보며 말했다.
애꾸눈이 턱짓했다.
“어디 봅시다.”
민성은 아이템 창을 열어 트럭 앞에 있는 긴 나무 테이블 위에 아이템을 모두 올렸다.
애꾸눈은 예상했다는 듯이 지갑을 꺼내 지폐를 꺼냈다.
3만 5천원.
민성은 그 돈을 받고서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이것밖에 안 되나?”
“왜? 사기라도 칠까 봐 그러시오?”
“아니, 생각보다 너무 적은 돈이라.”
“우리 헌터님. 아직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시나 본데, 요즘에 시세가 워낙 떨어져서 그레이드 던전 30층 아래 물건으로는 돈이 안 돼요. 여기 이것도 대부분 쓰레기라고. 그나마 쓸 만한 것 몇 개가 있어서 이 돈이라도 받는 거지.”
“그럼 몇 층부터 돈이 되는 거지?”
“뭐…… 그래도 한 50층은 넘어야지.”
민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꾸눈은 시니컬한 표정으로 아이템을 챙겨 구석에 있는 포대 자루 안에 아이템을 던지듯이 넣었다. 그러곤 다시 조수석에 올라탔다.
민성은 손에 쥐여져 있는 3만 5천원을 내려다보았다.
그래도 이 돈이면 꽤 그럴듯한 식사는 할 수 있을 듯했다.
민성은 다이아몬드 클랜장이 말했던 밥집을 떠올리며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 * *
‘저 자식, 진짜 밥 먹으러 가는 건가?’
이호성은 황당한 표정으로 뺨을 북북 긁다가 마른 입술을 핥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놈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 굉장히 큰 압박감을 받았다.
피부로 전해지는 압박감이 아니라 뭔가 본능적으로 몸이 긴장한다고 해야 할까?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레벨 업 속도는 빠르지만 고작해야 레벨 50밖에 되지 않는 녀석이다.
그래, 겨우 50레벨이다.
50레벨부터는 레벨 업 속도가 급격히 더뎌진다.
때문에 50레벨과 101레벨의 차이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
하하!
클랜장씩이나 돼서 저깟 놈에게 긴장하는 꼴이라니.
이호성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창밖으로 버리고 걸어가고 있는 강민성의 뒤를 쫓았다.
놈을 뒤따르면서 식당 위치를 전체 문자로 돌렸다.
잠시 후면, 클랜 최고 레벨 헌터들이 집합한다.
무릇 토끼를 잡더라도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하는 법.
다이아몬드 클랜이 중앙 헌터 기관의 시선을 피해 뒷골목에서 조금이나마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바로 그것이다.
방심하지 않고 최선의 노력을 모토로 삼았기 때문.
이호성이 비열한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대체 어떤 아이템이길래 저렇게 고속 성장을 했던 것일까?
모르긴 몰라도 분명 전설급일 테지.
내 너를 탈탈 털어 주마, 후후후후!
* * *
민성은 경건한 마음으로 음식 가게의 외관을 바라보았다.
아주 작은 가게였지만 고전적인 느낌을 멋스럽게 가지고 있다.
나무로 지어진 가게인 것도 그렇고, 잘 키워진 화분들이 놓여 있는 것도 그렇고, 외관이 가진 느낌이 너무나도 좋다.
[바름]
가게의 상호 역시 좋다.
오랜 전통이 느껴지는 그런 밥집이다.
‘식사를 하기 전부터 마음이 푸근해지는 기분이야.’
어쩐지 나이가 지긋하고 인심 좋은 주인장이 있을 것만 같은 가게다.
‘잘 찾아왔군.’
민성은 긴장된 숨을 가다듬으며 문을 열었다.
드르륵!
나무로 된 출입문을 열자, 한국적인 분위기의 실내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벽에는 야한 달력이 걸려 있고, 나무 테이블은 총 여섯 석.
주방은 공개되어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위생을 위해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주방 안에서는 하얀 모자를 쓴 마른 체구의 활력 있어 보이는 노인이 야채를 다듬는 중이었다.
“어서 옵쇼!”
야채를 다듬던, 하얀 콧수염이 인상적인 노(老) 사장이 홀로 들어온 민성을 돌아보며 밝은 얼굴로 손님을 맞았다.
사장이 손을 씻는 사이, 민성은 테이블 앞에 앉아 벽에 걸려 있는 천막을 보았다.
천막에 메뉴들이 나열되어 있다.
[된장찌개] [김치찌개] [순두부찌개] [제육볶음] [고등어구이] [뚝배기 불고기]
아……!
메뉴를 보는 순간 감동이 파도처럼 가슴을 휩쓸었다.
분명 예상했던 것이다.
한식 밥집이라면, 그것도 집 밥 스타일이라면 이런 메뉴들일 거라고 분명히 예상했었다.
하지만 막상 눈으로 실제 메뉴들을 보게 되자, 그 감동이 예상을 뛰어넘는 힘으로 해일이 되어 가슴을 덮쳤다.
꿀꺽-
메뉴를 보는 것만으로도 목울대가 꿀렁였다.
뭘 먹을까……?
메뉴를 보자 가뜩이나 고팠던 배가 요동을 쳤다.
침샘이 고이고, 허리가 절로 일자로 세워졌다.
찌개도 좋고, 제육도 좋고, 고등어도 좋고, 불고기도 좋다.
민성이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 주방에서 사장이 나와 물통과 물컵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아이고, 헤어스타일과 수염 좀 보게. 스타일이 아주, 하하핫! 개성이 넘치는구만. 난 웬 나 같은 노인네인 줄 알았다고!? 하하핫!”
민성은 거의 듣지도 못하고 메뉴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껄껄. 배가 아주 많이 고프셨나 봐?”
민성은 메뉴들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배가 아주 많이 고픕니다.”
“그래그래. 식사하셔야지. 어떤 걸로 드실랑가?”
“모두 하나같이 너무 맛있어 보여서 고르기가 힘들군요.”
“그래, 그 심정 나도 잘 알지. 천천히 보고 주문하시게. 참, 돈은 있지……?”
사장이 살짝 경계심을 담은 표정으로 물었다.
민성이 꼬깃꼬깃한 돈을 꺼내서 보여 주었다.
“하하하! 그래그래. 천천히 보고 고르시게.”
사장이 호탕한 웃음과 함께 콧노래를 부르며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
메뉴를 보고 있던 민성은 팔짱을 끼고서 미간을 찡그렸다.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하지만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민성은 이내 결단을 내린 듯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
민성이 주방을 보며 사장을 불렀다.
“그래. 어려운 결정 하셨어. 뭘로 드릴까? 응?”
사장이 손을 탈탈 털면서 홀로 나와, 민성을 보며 미소 지은 채 대답을 기다렸다.
“된장찌개와 제육볶음으로 주문하겠습니다.”
“밥 사 먹는데 뭘 그렇게 진지해, 이 사람. 하하핫. 음? 근데 잠깐, 두 개씩이나? 제육볶음을 주문하면 성게 미역국이 나오는데, 그래도 두 개를 시키겠어?”
성게 미역국!
침샘이 마치 곤장처럼 목을 치는 기분이다.
“다 먹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부탁드립니다.”
“식성이 아주 좋구먼그래! 하하하하! 알았어, 조금만 기다리게. 밥도 한 지 얼마 안 돼서 아주 달달할 거야. 웃차!”
사장이 소매를 걷어붙이며 주방으로 들어가 음식을 시작했다.
그사이 민성은 감동스러운 눈길로 물통에 담긴 물을 바라보았다.
마계에서 이토록 투명한 맑은 빛의 물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누런 흙탕물과도 같은 물밖에 없었고 그런 물조차 귀해서 아껴 먹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토록 영롱하게 빛나는 맑은 물이라니!
민성은 떨리는 손으로 알록달록한 물컵에 물을 따랐다.
쪼로로-!
물이 채워지는 소리는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 못지않은 즐거움을 선사했다.
“감사히.”
민성은 소중함이 담긴 마음으로 물컵을 들어 입에 가져다 댔다.
맑은 물이 입술을 건드리며 입안으로 들어왔다.
시원한 냉기가 가뭄처럼 쩍쩍 갈라져 있던 민성의 입천장과 혀를 휘어 감았다.
‘……시원해!’
물을 마시자 갈라질 듯 메마른 입안에 순식간에 수분이 흡수되었다.
꿀꺽- 꿀꺽- 꿀꺽-
단숨에 한 컵을 비운 민성은 다시 물컵에 물을 따랐다.
이번엔 조금 거칠게, 그리고 빠르게.
콸콸콸콸!
가득 채워진 물을 원 샷으로 들이켰다.
꿀꺽- 꿀꺽!
두 잔을 깔끔히 비운 뒤, 민성은 조심히 물컵을 내려놓고 긴 숨을 들이마시다 내뱉었다.
머리까지 맑아지는 듯했다.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시원한 물이다.
물 한 잔만으로도 이토록 행복해질 수 있다니.
그동안 그 지옥에서 어떻게 그런 고통스러운 긴 시간들을 보냈는지, 그곳을 경험한 스스로조차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바로 그때.
치이이익!
민성의 시선이 주방으로 홱 돌아갔다.
마치 매의 그것과도 같은 민성의 시선이 주방으로 확 꽂혀 들어갔다.
제육볶음이 시작되고 있었다.
거칠고 강한 불 위로, 프라이팬에 고기가 양념과 함께 볶아지고 있다.
힘줄이 돋아난 사장의 왼팔이 프라이팬을 단단히 붙잡고, 뒤집개를 쥔 오른손이 제육볶음을 화려하게 휘저었다.
고소한 향이 벌써부터 주방에서 홀로 흘러나와 민성의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식욕을 대폭 증진시키는 엄청난 냄새.
잊고 살았던 냄새가 난다.
민성은 신음을 흘리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건 완전히 냄새만으로 항복 수준이다!
도저히 저항할 수 없어.
이건 마인들의 공격보다도 위험해.
민성은 식욕을 견디기 위해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이성적으로 버텨 본다.
1분 1초가 고통스러운 순간을 지나, 이내 사장의 기척이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번쩍!
민성은 눈을 떴다.
사장이 음식이 담긴 밥상을 들고서 주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쿵쾅 뛰었고, 민성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었다.
툭!
민성의 식사 테이블 위에 밥상이 놓였다.
윤기가 좔좔 흐르는 새하얀 쌀밥이 가장 먼저 시선을 빼앗았다.
그다음으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된장찌개의 구수한 비주얼.
그다음으로 새빨간 양념의 옷을 입은 제육볶음이.
그 옆으로 화룡정점을 찍는 성게 미역국까지!
꾸울- 꺽!
전에 없던 침샘이 목을 넘어갔다.
“안색이 안 좋은데, 어디 아픈가?”
사장이 걱정이 담긴 눈길로 민성을 살피며 물었다.
“아닙니다. 너무나 맛있어서 보여서…….”
호흡마저 거칠어져 입 밖으로 숨이 훅훅 나왔다.
“하하! 거 며칠 굶은 사람처럼…… 아니, 설마 자네, 혹시 정말 며칠 굶은 겐가?”
굶었다?
단순히 그렇게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그마치 100년이 넘는 세월이었어.
벅차오르는 감동은 목을 매게 할 정도로 압도적인 임팩트를 선사했다.
“하하, 어서 드시게. 급하게 먹다가 채하지 말고, 응?”
사장이 인심 좋은 미소를 지으며 주방으로 돌아갔다.
민성은 수저통에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꺼냈다.
귀환 후, 첫 식사를 앞둔 그 순간.
드르륵, 쾅!
가게 문이 거칠게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