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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2화 (2/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2화>

“여기서 가장 가까운 던전이 어디지?”

민성이 물었다.

빨간 머리 헌터가 민성을 보며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너 그거, 지금 나한테 물은 거냐?”

“여기 너 말고 다른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민성이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에 빨간 머리가 헛웃음을 흘렸다.

“요즘 이런 노숙자도 각성을 하나? 하아…… 어이가 없네?”

빨간 머리 헌터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서슬 퍼런 눈빛과 함께 허리춤에서 기다란 검을 꺼내 들었다.

스르릉!

검신이 햇빛을 받아 번쩍였다.

민성은 그가 이런 공격 태세를 갖추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 의아한 눈으로 보았다.

빨간 머리 헌터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야, 이 노숙자야. 너 내 레벨 안 보여? 뉴비 주제에 감히 어디 선배 헌터한테 반말을 찍찍하고…… 너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지? 그렇지?”

민성은 그제야 그의 머리 위에 적힌 글자를 보았다.

불꽃 축제를 즐긴

Lv39 윤태용

“던전 위치를 알고 있다면 좀 알려 줬으면 좋겠는데.”

빨간 머리가 눈에 살기를 담았다.

“좋겠는데? 좋겠는데? 군기가 빡 들어도 모자랄 뉴비 새끼가 설명을 해 줘도 말귀를 못 알아먹네. 이 자식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

민성은 그를 한심하다는 듯 보며 웃었다.

“이 새끼, 표정 봐라? 칼이 들어가고도 웃을 수 있는지 한번 보자. 응?”

빨간 머리가 검을 들어 올렸다.

그의 살기를 포착한 순간, 민성이 주먹을 휘둘렀다.

퍼억!

민성의 주먹이 빨간 머리의 이빨을 깨부쉈다.

바닥으로 피 묻은 이빨 8개가 후두둑 떨어져 내렸고, 빨간 머리는 충격에 휘청거리며 중심을 못 잡고 뒷걸음질 쳤다.

가능한 최대한 힘을 빼고 한 공격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빨간 머리는 정신을 못 차렸다.

입이 거의 무너지다시피 한 채, 이내 그는 엉덩방아를 털썩 찧었다.

나라에서도 헌터들을 어찌하지 못하는 무법천지라더니 쓰레기들이 넘쳐나는 세상인 모양이다.

고작 길 좀 물었다고 칼질이라…….

민성은 황당함에 헛웃음을 지으며 피를 질질 흘리고 있는 빨간 머리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파들파들 떨면서 공포에 질린 눈으로 민성을 올려다보았다.

민성은 땅에 떨어진 놈의 칼을 주워 들고서 그의 어깨를 콱 밟았다.

“크윽! 데, 데벨 부턱입, 니드어. 샐려 드데요!”

빨간 머리가 울먹이면서 애원했다.

이빨이 숭숭 빠진 채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모습으로 눈물 콧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니, 복잡 미묘한 심정이 되었다.

못 볼 것을 본 기분이다.

정신도, 몸도 나약한 인간.

죽이고 싶은 마음이 치솟았지만, 겨우 가라앉혔다.

민성은 어깨를 밟고 있던 발을 치우며 천천히 턱짓했다.

“던전으로 안내해.”

빨간 머리가 바들바들 떨면서 일어나 절뚝거리며 앞장섰다.

* * *

던전은 마치 UFO가 세로로 세워진 듯한 구조물 같았다. 바닥과는 약 50여 미터 정도 떨어져, 간격을 두고 부양(浮揚)되어 있다.

‘저곳이 던전이란 곳이군.’

실제로 보니 꽤 웅장하다.

민성은 빨간 머리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던전 주위를 흥미로운 눈으로 둘러보았다.

주변은 꽤 험악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당장이라도 싸움이 일어나도 될 만큼, 냉랭하고 전투적인 분위기의 공기가 여기저기 섞여 들어 있다.

호전적인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마치 오랜 기억 속에 있는 불량 조직 폭력배들과 비슷한 느낌이다.

아무튼 그런 헌터들은 대부분 무리를 이루고 있었는데, 일종의 모임과도 같은 것이 ‘클랜’이라고 민성은 신문을 통해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각 헌터 클랜원들은 던전 주변에서 대기하며 대화를 나누거나 무기를 사고 팔았으며, 정보를 주고받기도 하고, 던전으로 입장하기도 했다.

정보는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앞으로 이 세상에 대해 익숙해지려면 조금은 시간이 걸릴 듯했다.

민성은 던전 주변의 구경을 마치고 던전에 입장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던전 쪽으로 걸어가면서 민성은 자신을 여기까지 안내해 준 빨간 머리가 있는 곳을 흘깃 쳐다보았다.

빨간 머리는 자신이 속해 있는 클랜원들 사이에서 이쪽을 가리키며 부산스럽게 떠들고 있었다.

민성은 관심을 지우고, 던전 입장 라인이 표시된 마법진처럼 생긴 구역에 두 발을 딛고 섰다.

그냥 이렇게 서 있으면 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할 때 음성이 들려왔다.

[던전 최초 입장입니다.]

[스테이지 1]

기계음과도 같은 여자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들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주변에서 웃음소리도 들려왔다.

“막 각성했나 보네.”

“머리랑 수염 좀 봐. 노숙잔데 각성했나 봐, 하하하하.”

“스테이지 1이라니. 와, 난 언제 적이냐. 아득하다, 아득해.”

“귀엽다.”

“요즘에도 뉴비가 나오긴 하는구나.”

“옷은 또 왜 저래?”

그들의 비웃음은 무시했다.

무시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단 몇 초가 지나기도 전에 모두 죽어 버릴 테니까.

민성은 조용히 던전에 입장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자신의 머리 위로 보이는 던전 게이트 하단부가 개방되었다.

[던전에 입장합니다.]

그리고 이내 놀랍게도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민성은 그렇게 던전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방금 들어간 그 산발에 수염 난 뉴비한테 얻어맞은 거라고?”

뒤늦게 던전 앞에 도착한 30대 초반의 남자가 얼굴이 반쯤 함몰된 빨간 머리를 보고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제법 매력적으로 생긴 남자.

클랜장 이호성이다.

“그, 그게요. 더 다식이 한 봥에 데 얼구룰…….”

“이 병신이 뭐래는 거야. 야, 뭐 해? 얘 빨리 치료 좀 해 줘라. 뭔 소리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잖아.”

클랜장 이호성의 말에 근처에 있던 치료사 능력을 가진 힐러 한 명이 빨간 머리에게 치유의 힘을 불어 넣었다.

상처가 아물긴 했지만 이빨은 절반 정도밖에 나지 않았다.

겨우 급히 상처를 치료한 빨간 머리가 억울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으로 턱을 문지르며 이호성을 보았다.

“보통 뉴비가 아니었다니까요! 무슨 레벨 1짜리 뉴비가 주먹 한 방에 저를 쓰러트려요. 뭐 저런 게 다 있어, 진짜.”

이호성이 던전 쪽을 돌아보며 생각에 잠긴 표정이 됐다.

“대장, 중앙 헌터 기관에서 밀어주는 놈 아닐까요? 전설급 템 떡칠 시켜서 레벨 올리려고?”

이호성은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빨간 머리를 보았다.

“그놈들이 레벨 1짜리 개를 왜 키워? 어느 세월에 키우게?”

“그럼 그 자식은 도대체 정체가 뭘까요?”

빨간 머리가 스트레스와 의문이 섞인 얼굴로 말했다.

반면 던전 쪽을 보고 있는 이호성의 눈은 욕심으로 서서히 물들어 갔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래도 템빨이 좋은 것만큼은 확실하겠지. 하지만 템이 아무리 좋아도 다구리에 장사 있나.”

이호성이 비열한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애들 전부 소집해. 던전에서 나오면 놈의 뒤를 밟는다.”

이호성의 말에 빨간 머리는 자신을 때려눕힌 그를 떠올리고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마음을 먹은 듯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최초로 던전에 입장하였습니다.]

[스테이지 1]

[몬스터를 잡아 경험치를 쌓아 레벨을 올리고 보상을 획득하세요.]

울림소리가 쨍쨍 잘도 들렸다.

별 희한한 게 다 되는군.

그런 생각을 하는 중, 공중으로 부양되던 몸이 멈추고 발이 지면에 닿는 게 느껴졌다.

그 순간 컴컴한 주변이 확 밝아졌다.

회색 대리석으로 된 방 안이었다.

잠시 사각형의 방을 훑어본 뒤 투명한 유리로 된 자동문 앞에 서자, 문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열렸다.

마계와는 달리 지구의 던전은 최첨단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는 것에 감탄하며, 민성은 호기심이 어린 표정으로 앞을 향해 나아갔다.

회색 방을 나오자 좌우 폭 30미터 정도의 어두운 좁은 복도가 나타났다.

천장에는 띄엄띄엄 달린 힘없는 붉은 전등이 컴컴한 공간을 어슴푸레 밝혔다.

민성은 그 복도를 망설임 없이 빠르게 걸어 나갔고, 이내 몬스터 한 마리를 만날 수 있었다.

지구의 던전에서 만난 첫 번째 몬스터.

Lv1 작은 슬라임

바닥에 껌 딱지처럼 붙어서 엉금엉금 기어 오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귀여워서 민성은 이걸 죽여도 되나 심히 고민스러울 지경이었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끝에 민성은 슬라임을 발로 밟았다.

퍽!

슬라임이 그대로 풍선 터지듯이 폭발하며 흩어졌다.

[작은 슬라임 처치!]

[경험치를 230 회득했습니다.]

민성은 바닥에 발을 질질 문질러 슬라임의 사체를 떼어 낸 뒤,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몇 걸음 떼기도 전에 두 번째 몬스터를 볼 수 있었다.

Lv2 새끼 고블린

“뀌륵, 뀌륵.”

고블린이라는 이름의 몬스터는 앙증맞게 고개를 좌우로 갸웃거리며, 위협하려는 듯 손에 들고 있는 도끼를 흔들어 보였다.

민성은 그런 고블린을 지켜보았다.

고블린이 다가오자 민성은 고블린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고블린이 ‘뀌엑!’ 하고 기합과도 같은 외침을 터트리면서 손에 들고 있던 도끼를 휘둘렀다.

터엉!

“……뀌익?”

고블린은 자신이 휘두른 도끼가 민성의 허벅지에 맞고 튕겨져 나오는 것을 보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고블린이 재차 도끼를 휘둘렀다.

터엉! 텅! 텅! 태앵!

도끼날이 깨지면서 날이 순식간에 무뎌졌다.

고블린은 충격에 빠진 표정으로 도끼와 민성을 번갈아보았다. 고블린의 몸이 미약하게 떨리기 시작할 때, 민성이 고블린을 발로 걷어찼다.

퍼어억!

민성의 발에 맞은 고블린이 마치 축구공처럼 날아가 벽에 처박히면서 피를 쫙 뿌렸다.

[새끼 고블린 처치!]

[경험치를 320 회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뭘 했다고 레벨 업인 건지…….

민성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앞으로 걸어 나갔다. 던전에는 몬스터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전부 하나같이 벌레와도 같은 것들투성이다.

몬스터 몇 마리를 잡아 집어 던지다 보니,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회의감이 들 정도다.

아무리 저렙 구간이라고는 해도,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살아남았던 마계와는 한심하리만큼 비교되는 세계였다.

속도를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 낭비할 것 없이 단숨에 쓸어버린다.

* * *

“새끼, 더럽게 안 나오네.”

클랜장 이호성은 미국 브랜드의 커다란 외제차 안에서 창문 밖으로 던전을 내다보며 침을 탁 뱉었다.

벌써 놈이 들어간 지도 다섯 시간이 훌쩍 지났다.

밝았던 하늘은 컴컴해졌고, 달은 휘영청 떠올랐다.

“던전 안에서 죽은 거 아닐까?”

조수석에 앉은 미녀가 이호성의 팔에 매달리며 애교를 부렸다.

이호성은 귀찮다는 듯 자신의 여자를 옆으로 신경질적으로 밀어 냈다.

여자는 삐친 표정으로 인상을 쓰며 차에서 내려 담배를 뻑뻑 피웠다.

그사이 이호성은 던전을 보며 머리를 긁적이다가 차 문을 열고 내렸다.

바로 그때, 던전에서 놈이 나타났다.

분명 그놈이다.

그런데…… 그놈 맞는데, 그놈 맞나?

어라……?

빛의 속도로 레벨 업 중인

Lv50 강민성

이호성은 눈을 끔뻑이면서 자신이 잘못 봤나 싶어 눈을 몇 번이나 문질렀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씻고 다시 봐도 놈의 레벨은 50이었다.

다섯 시간 만에 1레벨의 뉴비가 50레벨이 되었다?

아무리 50레벨까지는 초기 레벨 업이 빠르다고는 해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속도다.

이호성은 당혹감에 물든 표정으로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놈의 정체에 대해 살짝 불안감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클랜원들 평균 레벨은 100에 근접한 수준.

전설급 아이템을 무장했다고 하더라도 최소 100레벨 서넛 명만 모아도 놈을 손쉽게 털어 버릴 수 있으리라.

다섯 시간 만에 50레벨이라…….

대체 얼마나 좋은 아이템으로 무장한 거야?

이호성의 눈이 훨씬 더 깊어지는 욕심으로 서서히 물들어 갔다.

* * *

던전에서 나온 민성은 아이템 창을 보며 미소 지었다.

지구의 던전 시스템이라는 것이 참 재밌다.

게임처럼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아이템 창도 사용할 수 있다.

민성은 아이템 창을 흐뭇하게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이걸 어디다 팔아야 하는 거지?

아이템 창 안에 들어 있는 아이템은 다양했다.

매 던전 한 층을 클리어 할 때마다 아이템을 꽤 모을 수 있었기 때문에 여러 종류의 아이템을 만나 볼 수 있었다.

‘영혼이 담긴 고블린의 이빨’ 같은 꽤 고급져 보이는 것들부터 ‘가시넝쿨’ 같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아이템까지.

그러고 보면 정말 꼭 게임 같은 시스템이다.

시시하긴 해도 생존의 문제로 싸워 왔던 마계에서와는 달리, 여유로운 라이프를 즐길 수 있다는 건 나름 행복했다.

민성은 아이템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이템을 처분하는 방법은 결국 헌터들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을 듯했다.

민성은 커다란 외제차 앞에서 자신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는 한 놈을 보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코앞에 다다르자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이 녀석 꽤 긴장한 얼굴이다.

다이아몬드 클랜의 클랜장

Lv101 이호성

클랜장이라면 하나의 모임에 대장이라는 걸 의미하는 것일 테지.

“던전에서 구한 아이템을 화폐로 처분하는 방법을 알고 싶은데. 알려 줄 수 있을까?”

클랜장 이호성은 경계가 가득한 눈으로 민성을 위아래로 훑더니, 이내 살가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던전 옆에 보면 노점 하나 있잖아. 저곳에서 팔면 돼.”

그의 말대로 던전 근처에 ‘아이템 마니아’라는 상호를 달고 있는 가게 하나가 보였다.

트럭이어서 가게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과연 저곳이 아이템을 처분할 수 있는 가게인 모양이다.

“고마워. 아, 그리고-”

민성의 시선에 이호성이 여전히 긴장한 표정으로 민성을 주시했다.

“이 근처의 맛집을 알고 있다면 알려 줄 수 있을까?”

민성의 진지한 질문에 이호성은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맛집?”

“그래, 맛집. 되도록 한식이었으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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