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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1화 (프롤로그) (1/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1화>

프롤로그

서풍이 불었다.

어두운 밤.

달빛이 어슴푸레 사위를 밝힌다.

꽈르릉!

천둥소리가 울렸고, 얕은 비가 내렸다.

아득한 절벽 앞에 내몰린 한 사내.

그의 붉은 시야에, 시커먼 잿빛의 몸과 새빨간 눈을 가진 수백의 마인(魔人)들이 가득 들어찼다.

바스락!

사내의 발치 뒤로, 흙이 절벽 아래 깊이를 알 수 없는 무저갱과도 같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수백의 어두운 감정이 한 사내를 향해 휘몰아친다.

마인들의 시선을 받고 있는 사내는 위태로워 보였고, 또한 무력해 보였다.

온몸은 마인들의 피를 덮어쓰고 독에 중독되어 눈빛은 초점을 반쯤 잃은 채 지쳐 있었으며, 전신을 뒤덮고 있는 상처는 지독하리만큼 깊었다.

서 있는 것조차 기적일 수준.

죽음을 코앞에 앞두고 있었지만, 사내가 검을 살짝 들어 올리자 수백의 마인들은 본능적으로 움찔 몸을 떨었다.

두려움에서 기인된 잠깐의 침묵이 일었다.

하지만 그 짧은 침묵을 끝으로.

수백의 포식자들은 마치 두려움을 이겨 내기 위한 듯 이를 악물고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세상의 끝에 선 이 순간.

지난 삶이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매일을 굶주림과 갈증으로, 풀 한 포기 없는 지옥 같은 삶을 살아왔던 시간들.

끝없이 이어진 전쟁.

그 짧고도 강렬한 기억을 끝으로.

사내는 검을 아래로 축 늘어트렸다.

푸부북!

사내의 몸에 수십 개의 갖가지 무기가 살을 헤집고 들어갔다.

가벼운 저항조차 할 수 없었던 마지막.

사내의 몸이 그 힘에 밀려 절벽 뒤로, 허공에 떠올랐다.

그리고.

사내는 빛을 잃은 시선으로 검은 하늘을 보며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심해와도 같은 벼랑의 어둠 속.

희미한 의식 안에서.

사내의 몸이 마치 불꽃처럼 흩어졌다.

1장

천천히 눈을 떴다.

밝은 빛에 눈이 부셨지만 점차 시야는 적응되었다.

가장 먼저 하얀 천장이 보였고, 뒤이어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의문이 머릿속을 서서히 지배하기 시작했다.

방이다.

마계로 넘어가기 전, 현대식 인테리어를 갖춘 대한민국 국적으로 살던 그때의 그 방.

잊고 있었던, 언제인지조차 기억이 희미한 그때의 그 공간이 보인다.

동공이 잠시 흔들리다가 이내 의식이 또렷하게 자리를 잡았다.

벌떡!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거친 호흡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이름…….

자신의 이름조차 희미하다.

강민성?

그래.

자신의 이름은 강민성이었다.

오래된 기억이 송곳처럼 뇌리를 파고들었다.

점차 잠들어 있던 기억이 솟아났다.

벽에 붙어 있는 정체불명 괴생명체에 대한 포스터 자료들을 보자 그 기억은 더 선명해졌다.

마계로 소환되기 전 자신은 뉴스에서 연일 보도하기 시작했던 괴물들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미스터리한 괴물의 등장은 충격적이고 놀라웠다.

호기심에 불이 붙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놈들의 존재는 자신의 모든 관심을 독차지하기에 충분히 자극적인 소재였으니까.

여느 평상시와 다를 것 없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괴물에 대해 검색하고 괴물에 대한 책을 읽고.

그때 읽은 정보가 생존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뒤로 차치하고서라도…… 어쨌든 당시엔 늘 그랬듯이 그런 평범하면서도 반복적인 일과를 지나 잠이 들었다.

정말 평범한 하루의 끝.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동굴 속이었다.

거기서부터 평소 관심을 가졌던 괴물이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허공에서 무기가 나타났고, 그 무기를 들고서 살아남기 위해 괴물을 죽여야만 했다.

몬스터의 특성 정보를 떠올리며, 죽이고 또 죽였고, 살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층의 던전을 지나 던전 밖 세상에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곳은 지구가 아니었다.

마계(魔界).

지독한 어둠의 세상.

그곳에 적응해 나가면서 생존했다.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땅에 살아 있는 이는 자신과 흉측한 몬스터들뿐이었다.

탈출할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늘 죽음이라는 글자 앞에서 생존을 위해 살았을 뿐이다.

몬스터를 죽이고 먹는 그런 반복적인 생활을 이어 가던 중에 놈들이 나타났다.

마인(魔人).

머리에는 굵은 뿔이 달려 있으며, 피를 머금은 듯한 눈을 가졌고, 시커먼 잿빛의 몸에선 진득한 기운을 풍겨내는-

악마보다 강한, 피와 전쟁에 미친 존재들.

처음 한둘을 죽이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놈들이 군대를 이루자 그것은 버거운 전력이 되었다.

그런 녀석들과 싸우며 살아남은 긴 세월은 몸도 정신도 너무나 힘들었던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벼랑 끝에서 죽음을 맞이한 지금.

오래전에 존재했었던 본래의 세계가 보이고 있었다.

어째서?

설마…….

돌아온 것이라고?

민성은 스스로의 몸을 돌아보았다.

마계에서의 신체 그대로다.

마인들에 의해 피가 덕지덕지 묻은 옷 역시 그대로.

하지만 그들에게 당한 상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말끔히 회복되어 있다.

민성은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와 손으로 벽을 쓰다듬듯 만졌다.

환각이 아닐까 했지만 감촉은 너무나 생생했다.

포스터를 만져 보고 책상을 손바닥으로 쓸어 보았다.

이건 환각이 아니다.

진짜다.

현세로 돌아온 것이다…….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거렸다.

믿겨지지 않는 현실의 시간이 째깍째깍 흘러갔다.

* * *

거실로 나온 민성의 시선이 한곳에서 멈췄다.

거실 벽 쪽에 걸린 액자 사진이 있는 곳이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할머니의 영정 사진이 민성의 시야에 들어왔다.

사진 속에서 할머니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민성은 그 사진을 응시하다가 TV 받침대로 시선을 내렸다.

찢어진 연습장 종이 하나가 보였다.

민성은 종이를 들어 먼지를 털어 내고 그것을 펼쳐 보았다.

할머니의 유서다.

유서 내용은 민성이 살아 있을 거라고 믿는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민성은 고개를 들어 할머니의 영정 사진을 오랫동안 응시했다.

유서 내용 중 한 글귀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밥 굶지 말고 다녀.

민성은 편지를 다시금 힐끗 내려다보았다.

* * *

쩍!

냉장고 문이 열리고 내부가 드러났다.

쉰내가 훅 하고 코를 찔러 왔다.

하지만 그 냄새라고 해 봐야 마계에서 몬스터의 사체를 뜯어먹을 때의 비린내와 비교하면 외려 달콤한 수준이다.

냉장고 안에 들어 있는 음식 품목을 살펴보던 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것은…….”

스팸.

그래, 스팸이다.

훈연한 햄을 깡통에 담은 제품.

민성은 스팸을 꺼내 젓가락을 챙기고 식탁 앞에 앉아 그것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처음 마계에 가게 되었을 때부터 음식에 대한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죽은 사체만을 먹는 생활을 계속해서 이어 나가는 것은 정말 미쳐 버릴 것 같은 고통이었다.

그것이 습관이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긴 시간을 지나 현세로 귀환한 지금, 민성은 스팸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게 진짜 현실인가?

민성은 천천히 스팸의 뚜껑을 따 보았다.

딸칵-

고소하고 기름진 햄 냄새가 달달하게 콧속으로 들어와 유영했다.

아름답다.

민성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기름기를 머금은 훈제 햄의 각진 면의 모습은 그 자체로 목울대를 움직이게 할 만큼 먹음직스러웠다.

민성은 젓가락을 들어 햄의 일부를 떠서 입에 넣었다.

어금니로 짝짝 씹히는 햄의 맛이 입안에 향긋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아……!”

민성은 그만 감탄사를 터트리고 말았다.

짭조름한 스팸의 기름기가 혀를 휘감고 입천장을 치는 느낌은 가히 일품!

굽지도 않은 생 스팸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몬스터 사체만 먹어 오던 민성에게 있어서는 천상의 맛이나 다름없었다.

심장이 뛴다.

앞으로 이런 단순한 제품을 넘어서는, 진짜 음식.

요리를 먹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흥분감이 가시질 않았다.

* * *

목욕을 하기 위해 욕실에 들어왔다.

쿵쾅쿵쾅.

심장이 뛰었다.

마계에서 지구로 돌아왔다는 것도 기적 같았으나, 무엇보다 목욕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기대감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일이다.

마계에 있을 때는 피로 물들어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곳은 다르다.

현세였고, 자신은 귀환했다.

이제 짐승이 아닌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덜걱! 덜걱!

그런데 욕실에 들어가 아무리 손잡이를 위로 올려도 물이 나오지 않았다.

아, 관리비……!

물세를 내지 않아 물이 나오지 않는 듯했다.

너무 긴 시간 끝에 돌아온 집이라 그런지, 미처 현시대의 문물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당장 샤워는 할 수가 없었다.

샤워를 포기하고 욕실을 나가려던 민성은 거울을 보고 깜짝 놀라 우뚝 멈췄다.

거울을 보자 다시금 현실감이 깨어난다.

마계에서 돌아온 것이 실감 나는 비주얼이 거울에 비췄다.

여자처럼 치렁치렁하게 긴 머리.

덥수룩하게 난 수염.

가히 유인원인지,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외양이다.

자신의 외모를 이렇게 지구로 귀환해, 욕실에서 거울을 통해 보고 있자니 새삼스럽다.

몰골이 말이 아니지만 그래도 샤워를 하고 면도도 한다면 꽤 사람처럼 변할 테지.

그나저나…… 대체 뭐냐, 이건?

뉴비

Lv1 강민성

머리 위에 웬 글자가 홀로그램처럼 떠 있다.

손으로 휘휘 휘저어 봤지만 그 글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민성은 바로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마당이 보였다.

마당을 지나 집 밖으로 나선 민성은 주변을 살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텔레비전도 볼 수 없으니, 버려진 신문이라도 보자는 생각에서다.

다행히 집 밖으로 나가자마자 근처의 이웃집 문 아래에 신문이 놓여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민성은 그 자리에서 신문을 집어 정신없이 읽어 나갔다. 그리고 민성은 미간을 구겼다.

마인에게 쫓긴 것만 족히 100년이 넘는 세월이다. 그런데 지금 시간으로 고작 10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충격적인 사실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 세상은 자신의 기억과는 완전히 상이한, 새로운 세상으로 변해 있었다.

마계처럼 이곳에도 던전이 존재했다.

던전 안에는 몬스터가 있었고, 몬스터는 때때로 규칙 없이 던전을 나와 시민들을 공격하기도 했다.

그런 몬스터를 상대하며 세상의 균형을 지키는 이들이 바로 몬스터 브레이크와 함께 초인적인 힘을 부여받게 된 ‘헌터’들.

만약 몬스터와 헌터가 공존하는 그런 세상이라면 민성은 꽤 규칙적인 사회가 생성되었을 거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신문을 통해 이 세상에 대해 조금씩 알아갈수록, 민성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현재의 이 세상은 헌터의 시대였다.

국가는 헌터를 통제하지 못했다.

말 그대로 헌터들이 절대 갑(甲)인 세상.

그로 인해 세상의 균형이 뒤틀리는 것은 당연했다.

민성은 무법의 시대를 거치고 있는 지구로 귀환한 것이다.

신문을 통해 세상을 보면서 민성은 생각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자신에게 힘이 있다고 해서 몬스터로부터 세상을 구원할 생각은, 헌터들 위로 군림할 생각 같은 건 눈곱만큼도 없다.

오직…… 원초적 본능만이 꿈틀거릴 뿐이었다.

민성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던전에 들어가 돈을 벌자.

돈이 없으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생각해 보면 정말 잘된 일이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은 몬스터를 죽이는 거니까.

그걸로 돈을 벌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것은 없겠지.

민성은 다시 집 안으로 돌아왔다.

혹시나 해서 집 곳곳을 뒤져 봐도 돈은 나오지 않았다.

쓸 만한 것은 그나마 먼지 가득한 자신의 신분증뿐이다.

민성은 마계에서 입었던 피로 물든 옷을 벗어 빨래 통에 넣고 옷장을 열었다.

옷은 비교적 깨끗했다.

사이즈가 꽉 끼긴 했지만 당분간 옷을 사 입을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을 듯했다.

민성은 곧장 집을 나섰다.

* * *

거리는 한산했다.

가끔 나다니는 차량을 제외하고는 인적을 찾기가 힘들었다.

가끔 보이는 사람들이 병장기로 무장한 것을 보면, 그들이 신문에서 본 헌터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인 것 같았다.

민성은 걸음을 멈추고 고민에 빠졌다.

휴대폰도 없고 인터넷도 없는 상황이라, 던전이라는 목적지를 찾아나서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민성은 헌터로 보이는 한 젊은 남자가 지나가는 걸 보고 그에게 도움을 받기로 했다.

“어이, 거기.”

민성의 부름에 빨간 머리에 빨간색 스키니진을 입고 코에 피어싱을 한 젊은 사내가 구부정하게 걸어가다가 민성을 느릿하게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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