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27권 -- >
칭기즈칸은 그렇게 조양에게 경대승의 유골항아리를 건네고 내게 목례를 하고 돌아서서 대전을 나섰다.
“이 항아리는 어찌 하옵니까?”
조양이 나를 보며 물었다.
“짐이 훗날 붕어한 후에 짐의 능에 같이 매장하라!”
내 말에 고려의 대신들이 놀라 모두 유골항아리를 봤다.
하지만 그 유골의 주인이 누구인지 그 누구도 내게 묻지 못했다. 황궁 앞 광장.내가 칭기즈칸을 만난 지도 5년의 세월이 다시 흘렀다.
칭기즈칸은 나와 약속한대로 어리석은 해거 운의 수급을 베어 보냈고 초원의 초원에 망종을 경계하라는 의미로 세우라고 했던 300만 개나 되는 여진잔당의 코를 베어 땅에 묻고 그 위에 거대한 탑을 세웠다.
그리고 그 탑의 비문을 위해 고려에서 가장 학식이 높은 북천이 초원으로 가 거대한 원석의 탑에 나의 업적을 담은 비문을 기록했다.광개토왕비보다 더욱 웅장한 비석이 될 것이다.
내가 이룬 것이 그 위대하신 그가 이룬 것보다 더 많으니 말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천하고려의 황제로 제국의 국본을 정하고 태자 책봉식을 거행하고 있었다. 이 순간에도 나는 황궁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했다.
오늘 이후로 내가 건축한 저 황궁은 태자궁이 될 것이다. 난 황궁 남문 중앙 광장에 단상을 설치하고 옥좌에 올랐다. 그리고 내 옆으로 세 명의 황후가 각각 다른 표정으로 태자책봉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장 서글픈 표정인 것은 마지막으로 황후가 된 백설황후일 것이다. 비록 그녀가 나의 장자인 왕이를 낳았으나 왕이는 고려의 황제가 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가장 담담한 것이 백화였다.
그녀는 그저 단상 아래에 당당히 서 있는 자신의 사위를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할미가 된 후로 저런 미소를 자주 보이는군.’
물론 나 역시 할아버지가 됐다.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내 손녀가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영화황후가 태자의 면류관을 쓰고 당당히 들어서는 왕도를 차분히 보고 있었다. 어떤 기쁜 일이 있어도 또 어떤 슬픈 일이 있어도 감정의 기복을 보이지 않는 그녀였다.
그저 그녀는 서글픈 표정을 하고 있는 백설의 손을 아무런 사심 없이 꼭 잡아 주고 있었다.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황후들에 의한 후계암투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장자인 왕도가 저리 당당히 황금갑주를 차려입고 서 있는 걸 거다.
‘오늘이 바로 출정이지.’
난 왕도와 조양을 봤다. 조양 역시 은빛 갑주를 입고 서 있었다.
오늘이 바로 왕이의 또 하나의 뿌리인 키예프 공국을 수복하는 원정의 첫날인 것이다.
“백설황후!”
“예. 황제폐하!”
“왕이가 고려의 황제는 될 수 없으나 고려만큼 드넓은 땅의 차르는 될 것이오.”
“황공하옵니다.”
“키예프 공국이 수복이 되는 날 그곳으로 가고 싶다면 가도 좋소이다.”
“저는 황제폐하의 비입니다. 장성한 아들을 따라 가는 어리석은 어미는 아니옵니다.”
“고맙소. 나는 그대가 나를 떠나서 가겠다고 할까 두려웠소이다.”
“많이 약해지셨습니다. 폐하!”
나도 늙었다. 이제는 50이 다 되었고 흰머리가 여기저기 성성하게 나기 시작했다. 그날 그렇게 왕도는 고려의 국본인 태자가 되었다는 것을 온 천하에 공표가 됐고 키예프공국에 대한 선전포고도 공표됐다.
“태자!”
“예. 아바마마!”
“비록 네가 고려의 국본이기는 하나 형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명심하겠사옵니다.”
“형제가 반목하는 황실은 오래 갈 수가 없다.”
“명심 또 명심하겠사옵니다.”
난 내 앞에 선 태자에게 당부를 하고 단상 아래에 있는 왕이를 봤다.
“왕이야! 아비와 가자! 아비가 네게 새로운 세상을 내어줄 것이다.”
“예. 아바마마!”
푸른 눈의 왕이는 어떤 원망도 없이 나를 따랐다. 그리고 우리 부자가 향한 곳은 키예프 원정을 시작할 20만 대군들이 집결해 있는 벌판이었다.
키예프 원정군의 군진 안의 군막.키예프공국 원정군의 총군단장은 왕이다. 그리고 그를 보좌할 부군단장은 내 사위 조양과 정도전이다.
내가 정도전까지 키예프 공국 원정에 동참을 시킨 것은 나도 어쩔 수 없는 아비이기 때문일 것이다.
“증원군은”
내가 말하는 증원군은 칭기즈칸의 초원의 기마대다.
칭기즈칸은 나와 한 맹약을 철저하게 지켰다. 그러면서도 힘을 키우고 있었다.
“키예프공국 초입에 5만 기병이 대기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사옵니다.”
훌쩍 커서 이제는 자성한 청년처럼 보이는 정도전이 나를 보며 말했다. 그도 이제는 아비가 됐다.
“초원의 전사들을 이끌 장수는 누구인가?”
“오고타이라고 칭기즈칸의 셋째 아들이옵니다.”
“그럼 믿을만하겠군.”
“그렇사옵니다. 지략과 용맹을 겸비하였다고 하옵니다.”
공국 원정군의 규모는 순수고려군이 20만이고 그 중에 3만이 후장식 소총으로 무장한 소총부대다.내가 최초 개발한 것은 심지에 불을 붙이는 발화식 소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후장식 소총으로 개량을 했고 발사속도가 몇 배나 빨라졌고 고려군은 또 그만큼 몇 배나 강해졌다.
또 소형화시킨 고려 대포 300문이 배속됐다. 또한 더욱 신식으로 개량된 대형 일화봉전도 200기나 배속되었다.
고려군 전력의 2할이 지금 내 아들 왕이를 위한 키예프 공국의 점령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순간이었다.또한 1만이나 되는 흑인으로 구성된 외인부대도 배속되었으니 최고의 군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왕이야!”
“예. 아바마마!”
“짐의 장자로써 태자가 되지 못한 것이 서운하냐?”
난 왕이의 눈을 똑바로 보며 물었다.
“아바마마의 결정은 항상 옳으셨사옵니다.”
“아비의 고충을 이해한다는 것이냐?”
“소자였어도 똑같은 결정을 했을 것입니다.”
역시 내 아들답다.
“소자가 걱정이 되는 것은 제가 떠난 후에 어마마마께서 저 때문에 걱정을 하실 것이 염려가 되옵니다.”
“이 아비도 항상 너를 걱정할 것이다.”
“아바마마!”
촉촉한 눈으로 왕이가 나를 봤다.
“이야!”
“예. 아바마마!”
“영웅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군주는 대물림이 될 수 있으나 영웅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아바마마처럼 말이옵니까?”
“아비는 한 번도 스스로 영웅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비는 간사하고 사악한 군주일 뿐이다.”
“허나 고려의 만백성에게는 아바마마는 영웅이시고 소자에게도 영웅이옵니다.”
“고맙구나!”
난 장성한 왕이를 보며 미소를 보였다.
“조양!”
“예. 황제폐하!”
“내 부마로 자네의 매제를 잘 부탁하네.”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간자의 보고에 의하면 키예프공국과 그 주변은 고려만큼이나 드넓은 땅이라고 하옵니다. 그곳을 복속하여 왕이 황자께 받치겠나이다.”
“조심하시게. 그대는 짐의 첫사위라는 것을 잊지 마시게. 그대에게 무슨 일이 있다면 짐이 공주와 황후의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네. 또한 외손자의 그렇고.”
“심려하지 않으셔도 되옵니다. 항상 조심 또 조심하겠사옵니다.”
“그래! 정도전!”
난 정도전을 봤다.
“예. 황제폐하!”
“이번 원정길에서 돌아오시지 않아도 됩니다. 가시는 곳은 아주 넓은 곳입니다.”
“내치시는 것입니까?”
“황제가 되시지는 못하였으니 그곳에서 차르가 되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소이다.”
“차르는 왕이 황자전하의 자리옵니다. 폐하! 소신은 영원히 황제폐하의 어린 동생 이옵고 가신이옵니다.”
“그대의 충정을 짐이 어찌 모르겠소이까?”
“폐하의 옆에서 대망을 꿈꾸어서 행복했사옵니다. 그러니 소신을 멀리 보내지 마소서!”
“알겠습니다. 그럼 짐이 그대의 무사귀한을 바라겠소이다.”
“황공하옵니다. 폐하!”
“이야!”
“예. 아바마마!”
“이제는 네가 이들의 주인이다. 네가 생각하고 판단해라! 너의 생각과 판단의 옳고 그름에 따라 20만의 군사들의 운명이 움직인다.”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사실 자질적인 측면에서는 왕도보다는 왕이가 더 뛰어났다. 왕이가 난세의 영웅의 풍모라면 왕도는 태평성대의 옳은 군주의 풍모를 가졌다. 그래서 나는 끝내 왕도를 선택했다.
난세의 간웅은 나 하나면 족하니 말이다.
“떠나라! 이제 너의 운명은 네가 개척하라!”
난 그렇게 왕이에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공하옵니다. 아바마마!”
“짐이 다시 너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차르가 된 후에도 매년 입조하여 아바마마와 어마마마를 뵙겠사옵니다.”
“그럼 짐은 고맙고.”
난 그렇게 말하고 여전히 내 호위무장인 박위를 봤다.
“가세!”
“예. 황제폐하!”
그렇게 내 장자 왕이는 자신의 또 다른 뿌리인 키예프공국을 되찾기 위해 머나먼 동토로 원정을 떠났다.
왕이가 이끌고 간 20만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 동토에 남아 왕이의 든든한 힘이 될 것이다.난 그렇게 마지막까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모든 것을 이끌어냈다. 아마도 나만큼 성공한 인생도 없을 것이다.
“참으로 꿈같이 지나간 세월이구나!”
난 흙먼지를 일으키며 드디어 키예프공국으로 원정을 떠나는 원정군을 보며 나도 모르게 뇌까렸다.
13. 간웅 회생이 죽다.
내 장자 왕이가 고려군 20만을 이끌고 키예프공국을 점령하기 위해 떠난 지도 20년이 지났고 뇌성을 맞고 죽다가 살아났던 어린 병졸은 이제 70의 노인이 되어 병색이 깊은 상태로 누워야 했다.
흑치우라고 불리는 나도 세월을 이길 수는 없는 모양이다.
내 장자가 떠난 그 20년의 세월동안 또 참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 신식 교육과 군사훈련을 받은 고려의 젊은 무장들이 내게 중원만큼 넓은 인도를 복속시켜 받쳤다.
사실 무주공산이나 다름이 없는 땅을 점령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인도는 여러 왕조의 흥망성쇠를 거듭하다가 굽타 왕조에 의해 다시 통일되었다.
하지만 굽타 왕조가 북쪽에서 침입한 유목 민족에 의해 분열된 후 1200년경까지 인도에는 크고 작은 왕국들이 전국에서 출몰하여 각기 독자적인 지방문화를 발전시켰다.
이틈을 고려가 노렸다. 그리고 완벽하게 인도를 복속시켜버렸다. 또한 나의 군대는 끝내 내가 갈망한 프랑스를 점령하여 막대한 밀과 철을 조공하게 하였고 영국으로 몰아쳐서 그 인구의 수를 1/5로 줄였다.
또한 신주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강화했고 북신주의 인디언들과도 우호를 극대화했다.
사실 영국의 인구수를 1/5로 줄인 것은 훗날 발생할 영국의 청교도들이 내가 경영하는 북신주로 향하게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포석도 존재했다. 아마 내가 흑치우라 그런 잔인한 일도 가능할 것이다.
“황, 황상!”
나는 병을 얻은 후 태자인 왕도에게 황위를 양위하고 내 아바마마처럼 상황이 됐다. 아마 나는 오늘밤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고려의 대신들도 그것을 직감했는지 모두 이곳에 모여 엎드려 있었다. 그리고 보니 나와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몇몇의 신하들이 없다.
자신의 신분을 끝내 밝히지 못한 정도전은 벌써 10년 전에 죽었다.
또한 고려의 명재상이었던 북천 역시 유명을 달리했고 나와 운명을 같이 했던 내 장인이면서 동지였던 요동왕 이의방도 죽었다.이고 외숙도 내 만류를 뿌리치고 서방정벌을 나갔다가 컬트족의 화살에 생을 마감했고 그에 대한 복수로 컬트족의 씨를 내가 거의 말려 버렸다.
이 순간 여전히 백발의 무장이 된 이의민과 무제만이 저 노구에도 당당히 검을 차고 내 옆에 서서 나의 죽음을 호위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조정도 젊은 인재로 많이도 변했구나.’
내 의지에 의해 조정의 젊은 신하들은 신식교육이라는 것을 받았다.
거의 대부분은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을 바탕으로 시작을 했고 학자들이 더욱 연구를 해서 발전시켰다. 그리고 나와 고려가 다스리는 땅에는 한글이 배포되어 한자문명을 씻어내고 있었다.
‘10년만 더 살수만 있다면,,,,,,,.’
더 많은 것을 바꿔놓았을 것이다.
허나 그 욕심은 참으로 허망하다는 것을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이제 내 시대가 가고 있다. 그리고 새 시대가 열렸다. 그러니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놔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