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616화 (616/620)

< -- 간웅 27권 -- >

“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황제폐하께서 장안에게 광영을 내리시어 새로운 지명을 하사하시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요즘 들어 요동왕인 이의방은 내가 아부를 자주 했다. 물론 그 아부가 간신의 아부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전쟁이 끝난 지금 무장인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것 밖에 없을 것이다.

“짐이 장안에 광영을 내린다? 참으로 장인께서는 많이 변하셨소.”

“간신을 멀리하시라고 제가 간신이 된 것이옵니다.”

“하하하! 그런 궤변도 다 있구려!”

“하사를 하시지요.”

“좋소이다. 서울이라 하겠소이다.”

답은 간단했다. 내 기억이 있던 곳!그곳이면 충분했다.

“서울이라면?”

백제가 수도인 부여를 ‘소부리’라고 불렀으며, 신라 시조 혁거세가 건국 후에 국호를 서나벌 또는 서벌이라 하였고 수도였던 경주를 서라벌, 서나벌, 서벌, 서야벌 등으로 불렀던 데서 서울이라는 말이 비롯되었다.

“서울의 ‘서’는 수리, 솔, 솟의 음과 통하는 말로서 높다, 신령스럽다는 뜻을 지니고 있소이다.”

내 말에 대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울은 벌, 부리에서 변음된 것이다. 즉, 서울은 높고 너른 벌판, 큰 마을, 큰 도시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니 고려의 황도의 이름으로는 충분할 것이오.”

“옳으신 작명인 것 같사옵니다.”

대신들이 모두 내 말에 옳다고 했다.저들도 이제는 간신놀음을 하고 싶은 모양이다.

‘잠시는 두고 봐 줄 것이다.’아주 잠시 말이다.그때 내전대신이 된 최준이 들어섰다.

내전대신이라는 직함은 내가 만든 것으로 이 황성과 황궁의 내무를 관장하는 직책으로 쉽게 말해 시장과 같은 역할이었다. 또한 외국에서 고려로 보내는 각국의 사신들을 미리 접견하는 중임을 담당했다. 한 마디로 내전대신은 재상의 반열이기에 내가 최준에게 내리는 보은의 성격이 강했다.

‘명재상이 되시고 싶은 그 마음을 제가 이뤄드렸소이다.’난 조심이 들어서는 최준을 봤다.

“황제폐하! 왜에서 사신이 도착하여 간절히 황제폐하를 알현하기를 청하옵니다.”

“왜?”

왜가 사신을 보낸 것은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왜도 내가 내리는 황명만 떨어지면 내게 복속된 류큐국과 제주에서 수군을 보내 정벌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난번에 큐슈총독에게 명해서 무엄하게 스스로 천왕이라 칭한 자를 입조하라고 명을 내렸는데 입조를 했나?”

“아직 이옵니다.”

“그런데 무엄하게 사신만 보냈다는 것인가?”

“망극하옵니다.”

“좋다. 다시 한 번 꾸짖을 것이니 왜의 사신을 볼 것이다.”

“왜의 사신은 들라 하라!”

그 외침과 함께 조심이 왜의 사신이 머리를 조아리며 들어섰다.

“천하의 주인이신 천하고려의 황제폐하를 뵈옵니다.”

“꿇리라!”

내 명에 무장들이 왜의 사신을 무릎을 꿇렸다.

“황, 황제폐하!”

“어찌 왜주는 아직도 입조를 하지 않는 것인가?”

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천, 아니 왜주는 아직 어려 먼 뱃길이 불가하옵니다.”

“그것을 변명이라고 하는 것인가? 왜주가 열도가 불바다가 되고 왜족이 송족처럼 짐에 의해 멸족의 길로 걸어야 눈물을 흘린단 말이지? 류큐국 총독과 제주목사에게 전하라! 당장 수군을 왜로 출군시켜 무엄한 왜주를 생포해 오라고 하라!”

“예. 황제페하!”

대신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고, 고정하시옵소서! 황제폐하!”

“고정? 짐이 고정할 것 같은가?”

“신들이 급히 온 것은 황제폐하께 보은을 하고자 온 것이옵니다.”

“보은?”

그냥 올 왜족들은 아닐 것이다.

“무엇인가?”

“3개월 전에 거친 풍랑에 색목인의 배가 왜에 좌초가 되었사옵니다.”

“그런데?”

“그 색목인의 배는 라이언폴로라는 자의 것인데 그 배에 자신이 천하고려제국의 별초라고 칭하는 자가 있기에 그를 귀환시키기 위해 험한 뱃길을 열어 왔나이다. 저희 왜국은 황제폐하께 항상 보은하고자 노심초사하고 있사옵니다.”

“스스로 별초라 했나?”

“그렇사옵니다. 황제폐하!”

난 빤히 왜국의 사신을 봤다. 그가 하는 말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

이 자리에서 함부로 거짓을 말했다가는 열도가 불바다가 되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라이언폴로?’난 왜의 사신이 말한 색목인의 이름에 주목했다.

‘혹시 마르크폴로와 연관이 있을까?’마르크폴로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상인으로 동방여행을 떠나 중국 각지를 여행하고 원나라에서 관직에 올라 17년을 살았다. 동방견문록을 집필했다.

그가 17년 동안 원의 관직에 있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나는 그것을 생각해 봤다. 아마도 그는 초원의 전사들을 서방으로 이끈 길잡이의 역할도 했기에 원의 관직을 얻게 되었을 거다.

‘내게도 그런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자가 있다면 좋겠지.’난 나도 모르게 씩 웃었고 그 웃음에 왜의 사신이 안도했다.

“알았다. 이번 일은 가상히 여길 것이다. 허나 왜주의 입조는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다.”

“하오나,,,,,,,.”

“이역만리에서 목에 베이고 싶은 것이냐? 왜주가 입조할 수 없다면 실질적인 막후의 통치자인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라도 스스로 무사라면 당당히 입조하라고 하라.”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3년 후에 열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게 될 가마쿠라 막부의 수장이 될 자다. 하지만 이미 열도의 동족을 지배하고 있는 자이기도 했다.

“허나 그 자는 왜주의 통제권에서 벗어난 자이옵니다.”

“왜주가 통제할 수 없는 열도라면 짐이 친히 보은을 내려 파병하여 무뢰한 자를 처단해 주는 것은 어떤가?”

좋게 말해 파병이지 그것은 무혈입성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을 왜의 사신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폐, 폐하!”

“모든 것을 쉽게 해결하고자 한다면 왜주는 스스로 짐에게 공주를 받치며 입조하라고 하라. 그것을 또 다시 거부한다면 10만 수군이 열도로 향할 것이다. 물러가라!”

“폐하! 왜주는,,,,,,,,.”

“짐은 그대들도 알다시피 그렇게 자비로운 황제가 아니다.”

온 천하에 내가 사악할 만큼 잔인한 황제라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

옛 송족들은 고대 예맥의 군주인 치우천왕을 뿔 달린 악마라 칭했다. 그러면서 나를 생존해 있는 흑치우라 칭한다고 한다.나는 이렇게 살아 그들에게 악신이 되어 있는 것이다.

“반드시 왜주를 입조시키겠나이다.”

내 압박에 드디어 왜의 사신이 굴복했다. 물론 지금 그가 한 말이 거짓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거짓으로 밝혀지는 순간 열도는 불바다가 되고 왜족은 멸족하게 될 것이다. ‘후대에 화근이 될 것들은 모두 이 흑치우가 제거할 것이다.’나는 왜인에게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내가 가진 현대의 기억 말이다.

그러니 왜족들이 내게 당장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해도 쉽게 멸족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직 그들이 멸족을 면할 방법은 영원한 노예가 되는 것뿐일 것이다. ‘나는 열도를 영원한 기미주로 만들 것이다.’내 현대의 기억 속에 있는 36년간의 치욕을 나는 수천 년으로 되갚아 줄 참이다.

“그 맹세가 거짓이 될 때에는 짐의 모든 역량이 열도로 향할 것이다. 망각하지 마라! 송족이 짐을 배반하고 어떻게 되었는지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명심하겠나이다. 황제폐하!”

“물러가라! 6개월 안에 왜주의 입조를 짐은 기다릴 것이다.”

나는 날짜까지 목을 박았다.

“명심 또 명심하겠나이다.”

“6개월 후에 왜주가 이 대전에 짐의 앞에 엎드려 입조하지 않는다면 류큐총독과 제주 총수군 사령관은 짐의 명령 없이 열도정벌을 시작하라고 전하라!”

“알겠나이다. 황제폐하!”

고려 대신들이 모두 보복하며 대답했고 왜의 사신은 이마에 식은땀을 흘렸다.

“왜의 사신은 더 할 말이 있는가? 없다면 속히 귀국하라!”

“예. 황제폐하!”

내 명령에 왜의 사신은 더는 말하지 못하고 대전을 나섰다.

“짐이 라이언폴로를 볼 것이다. 또한 별초라고 스스로 말한 자를 만날 것이다.”

“라이언폴로를 들라고 하라!”

최준의 외침에 푸른 눈으로 대전을 두리번거리며 실망 아닌 실망한 눈빛을 한 라이언폴로와 들것에 실린 남자가 들어섰다.

“신! 최담이 황제폐하를 뵈옵니다.”

들것에 실려 들어선 사내는 그 상태에서 내게 경의를 표했다.

“별초가 맞군. 별초가 아니면 저런 지경에서 짐에게 경의를 표할 수 없지. 최담이라고 했나?”

난 옥좌에서 내려 천천히 그에게 걸어가면서 물었다.

“망극하옵니다. 소신이 몸이 이리되어 무뢰를 범하고 있나이다.”

사지의 힘줄이 절단 것이 분명했다.

“아니다. 그대의 몸이 그리 된 것은 모두 충정 때문일 것이다. 짐은 그대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망극하옵니다. 폐하!”

“북천!”

“예. 황제폐하!”

“짐이 고맙게 이리 귀환을 해준 최담을 남작에 봉하고자 하는데 그대의 고견으로 불가한가?”

“어찌 불가하겠나이까?

국가를 위해 헌신한 자에게 당연한 일이옵니다.”

“좋다. 나는 최담을 남작의 작위를 내리고 서울 인근에 있는 성을 내려 평생을 편히 살 수 있게 할 것이다. 최담! 너는 이제부터 충무남작이다.”

“성,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렇게 최담의 일은 마무리가 됐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그대의 이름이 라이언폴로라고 했나?”

상인출신이기에 이제 이 대륙의 중심인 고려 말 정도는 할 줄 알 것 같았다.

“그렇사옵니다. 황제폐하! 저는 라이언폴로라고 하옵니다.”

자신을 다시 밝히 라이언폴로는 서방식 예의를 갖췄고 대신들은 그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우리는 지존에게 엎드리는 것이 예의나 서방은 모자를 벗고 허리를 숙이는 것이 예의였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에 내가 표정이 변하지 않을 것을 보고 라이언폴로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왜 짐의 별궁이 누추해 보이는가?”

속내를 들켜서 그런지 라이언폴로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소인은 상인이옵니다. 최담이 말하기를 자신을 귀환시켜준다면 자신의 몸무게보다 더 많은 황금이 하사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최담이 한 약조라면 이행될 것이다. 아니 그 열배를 주지.”

“진, 진정이시옵니까?”

“그대가 타고 온 범선의 이름이 무엇인가?”

내가 범선이라고 말하자 다시 놀라 나를 봤다.

“승리호입니다.”

“그렇다면 짐과 같이 승리해 보지 않겠나? 짐은 곧 서방 원정을 떠날 것이다.”

내 말에 표정이 굳어지는 라이언폴로였다.

“서, 서방원정이라 하셨사옵니까?”

“짐의 첫 원정지로 짐은 베네치아에서 시작해 볼 참인데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

“베네치아라고 하셨습니까?”

“왜 그렇게 놀라는가?”

아마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마르크폴로와 연관이 있다면 베네치아는 그의 고향이 될 것이다.

“베네치아는 작은 섬에 불과하옵니다. 정복을 해도 득이 될 것은 없사옵니다.”

“그럼 그대가 짐이 서방원정지를 정해주겠는가?”

역시 표정이 떨리는 것을 봐서 그는 마르크폴로의 조상이 분명했다.

“어디를 원하시옵니까?”

“그대가 짐의 원정에 동참을 해 준다면 그대의 고향인 베네치아는 짐의 창검에 무사할 것이다.

어떤가?”

“어, 어찌,,,,,,,.”

사실 내가 진정 원하는 땅은 프랑스다.아마 지금 시대에는 카페왕조가 다스리는 시대일 것이다.

내 역사적 상식이 틀리지 않다면 필리프 2세가 지금 프랑스를 다스리고 있을 것이다. 그는 프랑스 카페왕조의 제7대 왕으로 약화된 프랑스 왕권의 권위를 높였으며 영국의 왕자 존과 결탁하여 영국왕 리처드1세를 패사시켜서 영국의 왕위계승에 깊게 개입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존이 영국의 왕이 되자 그 역시 적대한 것을 봐서 오직 프랑스의 부국에 힘 쓴 왕이 분명할 것이다. 또한 존이 플랑드르백작 및 신성로마황제 오토 4세와 동맹하여 공격해 온 부빈의 싸움에서 영국의 동맹국을 격파하고 프랑스를 강성하게 만든 존재기도 했다.

‘필리프 2세를 내가 굴복시킨다면 유럽도 내 영향권에 들게 될 것이다.’적을 치려면 가장 강한 적을 베어야 한다.

그것이 내 신념이며 전략이다.금적금왕의 전략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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