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615화 (615/620)

< -- 간웅 27권 -- >경대승이 누워 있는 겔.저벅! 저벅!칭기즈칸은 살기를 품은 발걸음으로 경대승의 누워 있는 겔로 들어섰다.

“칭기즈칸을 베옵니다.”

경대승을 간호하던 여인들이 칭기즈칸을 보고 머리를 조아렸다.

“나가 있어라!”

“예.”

여인들도 칭기즈칸의 어투가 예전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칭, 칭기즈칸!”

경대승은 병색이 짖은 얼굴로 칭기즈칸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누워 있게! 그대와 오래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네.”

본능적으로 경대승 역시 칭기즈칸이 예전과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아, 아닙니다.”

“누워 있어. 앉아 있을 힘이 있다고 느껴지면 내가 너를 죽일지도 모른다.”

순간 칭기즈칸의 눈에는 살기가 감돌았다.

“,,,,,,,.”

저벅! 저벅!칭기즈칸은 천천히 침대에 누워 있는 칭기즈칸에게 다가가서 나무 의자에 앉았다. 그의 손에는 이미 검이 뽑혀져 있었고 힘껏 땅에 박혀 있었다.

“내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네. 그러니 거짓 없이 말해 주게.”

“하문 하소서!”

경대승은 이 순간 자신의 마지막이 다가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끝내 고려황제 회생과 약속한 일을 완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나를 서쪽으로 이끌었는가? 지금까지 내게 보였던 그 충성은 모두 거짓이었는가? 처음부터 나를 속인 것인가? 아니면 나를 배신한 것인가?”

“그 답을 말씀드리기 전에 우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가? 그대가 제발 나를 납득시켜 주기 바랄 뿐이다.”

칭기즈칸은 차마 자신으로 죽어가는 경대승을 베고 싶지 않았다.

“제 가슴에 새겨진 말이옵니다.”

“무엇인가?”

“무인본분 위국헌신!”

경대승의 말에 칭기즈칸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처음부터 그대는 나의 신하가 아니었군.”

“쿨럭! 그러니 배신당한 것은 아닐 것이옵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칭기즈칸이 눈을 떴다.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다. 어찌 아무 보잘 것 없는 나를 도와 초원의 주인으로 만들어놓고 내게서 아니 몽골에게서 초원을 빼앗아 간 것인가?

그대가 아니었다면 나는 작은 부족의 족장에 불과했고 내 몽골족은 오랑캐라 치부되는 초원의 한 부족에 불과했다.”

“모두가 제 주인의 뜻이었습니다.”

“내 벗이었던 그대의 주인이 고려의 황제인가?”

“그렇습니다.”

“그럼 몽골족의 칭기즈칸을 만든 것이 고려의 황제란 말인가? 나는 그저 나도 모르게 고려황제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단 말인가?”

순간 칭기즈칸이 언성을 높였다.

“칭기즈칸께서는 그 자체로 칭기즈칸이십니다. 태초부터 오늘까지 영웅은 모래알처럼 많았습니다. 허나 끝내 역사에 진정한 영웅으로 기록되는 자는 몇 되지 않습니다.”

“내 벗이었던 자여! 나를 위로하지 말라!”

“쿨럭! 제 생각대로라면 초원을 잃었을 것입니다. 허나 칭기즈칸께서 초원에 계셨다고 해도 끝내 초원을 잃게 되었을 것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어리신 칭기즈칸을 도우라는 황제폐하의 칙명이 의문이었습니다. 왜 그래야 할까? 왜 내가 역사의 배신자가 되면서까지 그래야 할까? 고민하고 번뇌했습니다. 하지만 칭기즈칸의 옆에서 영웅의 길을 걸으시는 모습을 보고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고려황제의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모르겠다.”

“영웅이 영웅을 베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영웅이,,, 영웅을,,,,,,,.”

“그럴 것입니다. 고려황제께서는 몽골족의 멸족을 원하신 것이 아니라 생존을 원하셨사옵니다. 또한 스스로 칭기즈칸을 베고 싶지 않으신 것이옵니다.”

“허나 종국에는 몽골족은 멸족했다.”

“칭기즈칸이 계십니다. 쿨럭! 7만의 전사들이 있습니다. 또한 제가 드린 서요가 있습니다. 나이만이 있습니다. 칭기즈칸이 계신 곳이 초원이고 칭기즈칸이 군림하는 곳이 고려황제폐하와 다른 천하일 수 있습니다.”

“궤변이다.”

“천하는 넓습니다. 동으로 가지 못한다면 서로 가시면 되옵니다. 현재 초원이 고려의 수중에 떨어졌다고는 하나 초원이 될 곳은 많사옵니다.”

“푸른 늑대가 목을 놓아 죽을 곳은 초원이다.”

“쿨럭!”

거친 기침에 경대승의 입안에는 피가 고였다.

“초원으로 돌아가시고 싶으시다면 고려황제를 능가하셔야 할 것입니다. 허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옵니다.

송이 멸망되었습니다. 금도 망했습니다. 초원도 멸망한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송과 금은 완전히 사라졌으나 칭기즈칸은 일어서실 여력이 있으십니다. 제가 아는 고려황제폐하께서는 자비심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칭기즈칸을 저로 하여금 서로 향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고려황제폐하께서 칭기즈칸을 영웅으로 보시는 이유십니다.”

“내 모든 것을 빼앗아가고 나를 영웅으로 본다고 너의 군주는 망상에 빠진 광인이다.”

“제 군주는 이제는 칭기즈칸입니다.”

“그런 그대가 어찌 나를 서요로 이끌었는가? 내가 볼 수도 없는 곳에서 내 부족이 멸족하는 것을 들어야 하는 것인가?”

“칭기즈칸은 절대 고려황제폐하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옵니다.”

“절대? 절대라는 것은 없다.”

“아닙니다. 존재합니다. 이 세상 누구도 고려황제폐하를 대적할 수는 없습니다. 이곳에서 지켜보십시오. 스스로 왕이라는 칭하는 모두가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황제라고 칭하는 모두가 황제의 관을 내려놓을 것입니다. 이제는 고려의 세상이며 예맥의 천하입니다.”

“그대는 아직 나의 신하인가?”

“역신이 어찌 신하라 불릴 수 있겠습니까?”

경대승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아직 나의 벗인가?”

“망극하옵니다.”

“그대가 나를 살렸다는 것인가? 믿어지지 않지만 그대가 몽골족의 완벽한 멸족을 막았다는 것인가?

그 말을 믿고 싶은 나는 그대가 황제라고 부르는 자와 같이 광인이란 말인가?”

“초원을 다시 찾고 싶다면 힘을 키우소서! 아마도 고려가 직접 경영하지 않을 초원이 될 것입니다.”

병석에 누워 있지만 현 상황을 정확하게 보는 경대승을 느끼며 칭기즈칸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해거 씨의 초원이 됐지.”

왕의 관을 씌운다고 해서 왕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언젠가는 다시 초원을 찾으실 것입니다. 그때까지 이 망한 서요에서 힘을 키우십시오.”

“몽골족은 망했다. 어찌 해야 할까?”

“나라를 만드십시오.”

“나라?”

“그렇습니다. 서원이라 하시고 농사를 짓는 법을 배우게 하시고 부국을 이루십시오.”

“전사는,,,,,,,.”

“하셔야 합니다. 유목부족은 바람처럼 일어날 수는 있지만 바람처럼 살아지는 법입니다. 초원을 다시 찾고 싶으시다면 저의 말을 들으셔야 할 것입니다. 분명 해거 씨는 분에 넘치는 짓을 하려고 할 것입니다. 고려황제의 비호가 없다면 해거 씨들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경대승의 말이 틀린 것이 하나도 없었다.

“더 할 말이 없는가?”

“자결을 허락하신다면 자결하겠습니다.”

“아니 그대는 내 벗으로 죽게 될 것이다. 허나 이 겔에서 쓸쓸히 죽게 될 것이다. 고려의 역사에서도 초원의 역사에서도 기록되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이제 내 벗 말고는 아무 것도 아니게 될 것이다.”

“칭, 칭기즈칸!”

경대승이 나직이 칭기즈칸을 불렀고 그때 칭기즈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가 죽어도 나는 울지 않을 것이다.”

칭기즈칸은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울지 않겠다고 말한 칭기즈칸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이 순간 미묘한 감정이 흘렀다. 머리로는 모든 것이 이해가 되는 그였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여전히 의문투성이였다.

고려황제가 자신을 어찌 알고 영웅으로 여겼는지부터 모든 것이 의문이었다.이 순간 분명한 것은 경대승이야 말로 불행한 무장이라는 거였다.

“그대는 그대의 삶에 후회 없는가?”

이것이 마지막 칭기즈칸의 질문이었다.

“칭기즈칸께서는 후회 없으십니까?”

“그대에게는 이제 미래가 없지만 나에게는 아직 많은 미래가 남아 있다. 후회? 이젠 내게는 그따위를 할 여력이 없다. 쓸쓸히 죽어지시게. 내 벗이었던 자여!”

칭기즈칸은 그 말을 남기고 겔에서 나왔다.

“그 누구도 안으로 들어서지 말라! 내가 아는 초원의 스승인 경대승은 이제 없다.”

1179년 어느 가을 서요의 왕성 앞에서 경대승이 26살의 쓸쓸히 죽었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을 죽음이지만 이제는 천하의 주인인 고려황제만이 그의 죽음을 기억하고자 했다.

바뀌지 않은 역사대로라면 경대승은 고려의 무신으로 1179년 정중부를 제거하고 실권을 장악하였다. 역사에 등장한 그 년도에 죽게 된 것이다.

또한 도방을 설치하고 문관과 무관을 고루 등용하여 무신정변으로 와해된 조정의 질서를 회복하려 했으나 1183년 30살의 나이로 병사하였다.그리고 그 다음해 1180년 초원을 잃은 칭기즈칸은 망한 서요의 자리에 서원을 건국하고 스스로 왕이라 칭하며 다시 초원을 차지하기 위해 절치부심했다.

멀리서 돌아온 별초! 그리고 서방으로 이끌 길잡이.천하고려의 황도 장안의 임시 황궁.장안은 주나라 문왕부터 한나라, 당나라까지 13개의 왕조를 거친 역사적인 도시이다. 진시황릉, 병마용갱 등의 문화유적이 자리하고 있으며 실크로드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당나라의 쇠락으로 장안도 쇠퇴했으나 이제는 천하고려 황제인 회생에 의해 고려의 황성이 되었다. 천하쟁패를 두고 펼친 거대한 두 전쟁이 끝이 난지도 6개월이 지났고 비록 고려의 황성이 된 장안이지만 그 웅장함은 옛 송나라의 황성과 비교한다면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황궁 축조는 어떻게 되고 있나?”

난 고서기에게 고려황실의 중심이 될 황성축조를 명했다. 물론 노예가 된 송족과 금족이 노동력을 제공할 것이고 황성축조에 들어설 재물은 천하 상단이라고 이제는 자타가 공인하는 만적상단이 부담했다.

“낮밤을 구별하지 않고 축조를 진행하고 있사옵니다. 허나 천하의 주인이 계실 곳이라 공사의 진척은 더디기만 합니다.”

“그 어떤 황제도 군주도 누려보지 못할 만큼 웅장하게 지어야 할 것이다. 내 아들이 황제가 되어 지낼 곳이니 그리 지어야 할 것이다.”

내 치세에는 건축되고 있는 황궁으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황궁에서 안락한 생활을 누리기에는 내게는 아직 할 일이 아주 많았다.

“알겠사옵니다.

황제폐하!”

“박위!”

“예. 황제폐하!”

“아직인가?”

“망극하옵니다. 광주에서 변란을 일으킨 송족들은 무엄하게도 서진이라고 스스로 국호를 정하고 항거를 하고 있고 남령에서 일어난 송족들은 그곳의 12개 원주민과 합심하여 서송이라 국호를 정하고 항거하고 있사옵니다. 당장 군사를 보내 변란을 진압하겠사옵니다.”

나의 고려는 빠르게 천하를 통일했기에 내 영토 전역에서 크고 작은 변란이 이어졌다. 그리고 대부분의 변란은 송족에 의해서 일어났다.이것이 바로 한족의 저력일 것이다.

“당분간 지켜보라!”

“크게 번질 수 있사옵니다.

황제폐하! 들판에 불이 붙으면 진압하기에 힘이 드옵니다.”

“남령과 광주는 지척이다. 서로 같은 송족인데 힘을 합치지 못하는데 어찌 천하라는 들판에 불을 붙일 수 있겠나?”

“하오시면?”

“전토에 숨어 지내는 송족이 서진이라는 곳과 서송에 모이면 그때 친다.”

난 차갑게 말했고 박위는 또 한 번 송족 말살 계획이라는 생각을 했다.

“알겠나이다.”

“본토인의 이주 대책은 어떤가?”

“경상도와 전라도의 백성들을 장안으로 이주시키고 있사옵니다.”

“장안! 장안? 이곳이 장안이라고 불리는 곳이지?”

“그렇사옵니다. 그런데 왜 그러시옵니까? 황제폐하!”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북천이 내게 물었다.

“천하의 주인인 예맥이 터를 잡은 곳이 어찌 여전히 송족이 지은 지명을 유지할까?”

내 말에 대신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이미 송족과 여진족의 흔적을 지우는 정책을 쓰시고 있으시니 황성의 이름도 바꾸시는 것이 가한 줄 아옵니다.”

“요동왕의 생각은 어떠시오?”

개경후가 큰 공적을 쌓았기에 나는 천하를 통일하고 개경후를 요동을 다스리는 요동 왕으로 임명했다. 또한 정도전을 하남 왕으로 조충을 북왕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또 여러 명의 가신들이 왕이 됐고 마지막 대전투에서 죽은 박현준은 충왕으로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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