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27권 -- >10. 경대승이 서요에서 병사하다.초원의 북쪽 끝 울란곰 일대.초원에서 서북쪽 끝으로 가면 울란곰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우부스 염호(鹽湖)의 서안에 위치하며 건조지대인 몽골 내에서 비교적 물길이 발달되어 염분이 없는 습지도 있어서 예로부터 농업이 발달하였다. 그곳까지 칭기즈칸의 모후이며 모든 몽골족의 어머니인 호엘룬이 몽골부락민을 이끌고 이동했다.
그들이야 말로 이제 마지막 남은 몽골족일 것이다.
이미 장서충과 해거왕에 의해 초원에 흩어져 있던 몽골족들은 멸족의 길로 향하고 있었고 그 사악한 만행이 이제는 초원의 서북쪽 끝인 울란곰까지 뻗어지고 있었다.
“이랴! 이랴! 모두 베어라!”
고려황제 회생에 의해 왕인 해거 운은 초원의 광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수천 년을 이어온 부족의 원한과 울분이 주인 없는 몽골족에게 쏟아졌고 고려황제 회생의 사악한 계략과 맞물려 집요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나치에 의한 유태인과 집시의 학살과도 비교가 될 것이고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의 인디언 말살 정책과도 비견될 만큼의 참혹한 민족 대청소가 분명했다. 회생은 그렇게 초원을 주인 없는 땅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그 주인 없는 땅에 중원에서 살던 모든 종족들을 강제이주를 시키고자 했다.
초원은 척박한 땅이다.그곳에서는 더는 민족의 번영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회생이었다. 그렇게 초원으로 한족이라 불리는 자들을 몰아붙인다면 회생의 미래 기억에 있는 13억 한족은 결국 소수민족으로 전락할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아아악!”
“모두 죽여라! 몽골족의 씨를 말려라!”
해거 운은 왕의 광기를 뿜어냈다. 스스로 왕이 되지 못한 자는 광기로 자신이 초원의 왕이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칭기즈칸의 어미를 찾아라!”
해거 운은 호엘룬이 어떤 위치에 있는 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호엘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초원에 펼쳐진 수많은 겔에서 늙은 호엘룬을 찾기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 말이다.
“죽여라! 베어라! 초원은 이제 다시 우리 해거 씨의 것이다.”
참혹한 살육이 분명했고 그렇게 해거 씨의 창검에 의해 강성했던 몽골족은 소멸해 갔다.울란곰 북쪽 끝 둔덕.겨우 20여명의 초원의 전사들이 호엘룬을 비롯한 수백 명의 여자들을 호위하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서요 정벌을 떠난 칭기즈칸에게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대장정을 향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 역시 결코 서요 정벌을 떠난 칭기즈칸을 만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멈춰라!”
호엘룬이 소리쳤고 초원의 어머니의 말이기에 선두에 선 몽골족 전사가 발걸음을 멈추며 호엘룬을 봤다.
“급히 이동하셔야 하옵니다.”
“늙은 걸음으로 가면 더 얼마나 갈까?”
“제가 모시겠습니다. 업이시면 됩니다.”
“됐다. 나는 칭기즈칸의 모후다. 구차하고 싶지 않다. 우린 여기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도망치는 것은 무의미 하다는 것을 안 호엘룬이었다.
“호엘룬님!”
“전사들은 들어라! 이 참혹한 현실을 내 아들이며 푸른 늑대의 적통인 칭기즈칸에게 알려라!”
“저희가 모시겠사옵니다.”
“되었다고 했다. 나는 칭기즈칸의 모후로 당당히 죽을 것이다.”
역시 호엘룬은 여장부였다.
“똑똑히 전하라! 너희들이 본 것을 해거 놈들이 우리에게 저지른 짓을 똑똑히 내 아들에게 전하라! 은혜는 열 배로 갚으라고 하고 원수는 백배로 갚으라고 해라. 이것이 내 유언이라고 전하라!”
은혜는 열배! 원한은 백배라는 몽골족의 속담이 여기서 나왔다.
“예. 호엘룬님!”
“모닥불을 피워라!”
“하오나 발각이 되옵니다.”
“우리가 죽어 너희들이 내 아들 푸른 늑대의 적통에게 가는 길을 열어 줄 것이다.”
호엘룬은 광기 어린 해거 운이 보낸 추격대에게 스스로 미끼가 되고자 했다.
“호엘룬님,,,,,,,,.”
“내 아들에게 전해라! 푸른 늑대처럼 냉정해지라고 해라. 광분하여 초원을 함부로 넘지 말라고 하라.
복수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참고 힘을 키우라고 해라. 그래야 복수를 이룰 것이다.
어미의 죽음과 부족의 복수를 위해 급히 초원으로 돌아온다면 푸른 늑대가 아니라 승냥이에 불과하다고 전하라! 이 어미는 푸른 늑대를 낳았지 승냥이를 낳은 것이 아니라고 전하라!”
“알겠사옵니다.”
호엘룬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20명의 전사들이 무겁게 대답을 했다.
“잊지 말라고 하라! 몽골과 해거는 같은 초원의 풀을 밟고 살 수 없다고 전해라! 이제 떠나라! 어서 떠나!”
“예. 호엘룬님!”
그렇게 20여명의 몽골족 전사가 서요를 점령하기 위해 서진을 계속한 칭기즈칸의 주력을 찾기 위해 말을 달렸다.
“홍련아! 이리 오너라!”
홍련은 고려인이다. 또한 경대승의 아내이기도 했다.
이 자리에 남은 수백 명의 몽골족 여인들이 모두 홍련에게 살기를 뿜어내고 있지만 호엘룬만은 홍련에게 곁을 내줬다.
“호, 호엘룬님!”
“네가 무엇을 잘못했겠느냐? 너 역시 이리 죽게 될 것을.”
“송구하옵니다. 호엘룬님!”
“아녀자들은 모두 야망에 불타는 사내들의 희생물이다.
너도 나도 다를 것이 없다.”
호엘룬은 그렇게 말하며 장님이 된 홍련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두두두! 두두두!초원의 끝에서 모닥불 불빛을 보고 해거 운이 보낸 추격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추, 추격대예요. 호엘룬님!”
몽골족 여인 하나가 소리쳤다.
“호들갑 떨지 마라! 우린 초원의 주인인 강한 전사를 낳은 몽골족의 어미들이다. 당당히 죽자.”
호엘룬의 말에 홍련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호엘룬님!”
“왜 할 말이 있느냐?”
“제가 검이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해거 씨에게 욕을 보이지 않게 해 드리겠습니다.”
홍련의 말에 호엘룬이 홍련을 빤히 봤다.
“그것도 방법이겠구나! 그렇게 하자.”
“다음 생에는 호엘룬님의 딸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홍련이 그렇게 말하고 천천히 호엘룬의 목을 예리한 단검으로 그었고 그 순간 호엘룬의 입에서는 붉은 피가 역류했다.
“크윽!”
그리고 홍련 역시 자신이 들고 있는 단검으로 자신의 목을 찔렀다.수욱!기구한 운명이 분명할 것이다.어쩌면 고려황제 회생이 만들어내 또 하나의 피해자 일 것이다.두두두! 두두두!
“저기 몽골족의 계집들이 있다. 베라!”
빠르게 달려온 해거운의 추격대가 그렇게 끝내 수백 명의 몰골족 아녀자들을 도륙하고 말았다.
초원의 주인인 강한 몽골족 전사를 낳았던 어미들이 처참히 죽었기에 이제 순혈의 몽골족은 서요로 향한 7만이 전부일 것이고 그것은 진정한 초원의 주인이 사라졌다는 의미일 것이다.서요의 왕성.성벽에는 칭기즈칸의 깃발이 걸렸다.
여기저기 황성이 불탔고 약탈이 이어졌다. 왕성 성문 앞에는 서요의 왕족과 고관대작들이 밧줄에 묶인 상태로 참수형을 당하기 위해 꿀려 있었다.
“거행하라!”
칭기즈칸의 군대에게 대항하는 자들에 대한 자비 따위는 없었다.
“예. 칭기즈칸!”
이 순간 이상한 것은 무릎이 꿇려 있는 서요의 살아남은 왕족과 고관대작들의 입에는 재갈이 묶여 있다는 것이다. 죽음 앞에서 거친 비명도 허락되지 못했고 그것은 왕성 성문 앞에 홀로 덩그러니 설치되어 있는 겔에 경대승이 지병이 악화되어 죽음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경대승을 위한 칭기즈칸의 배려였다.그렇게 칭기즈칸은 경대승을 의심하면서도 배려했다.
오늘날의 자신이 있기까지 경대승이 없었다면 이 모든 것을 이루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칭기즈칸이었다.
“베라!”
칭기즈칸의 명에 의해 무릎이 꿇린 자들의 뒤에 서 있는 초원의 전사들이 검을 뽑았고 강렬한 태양에 의해 번뜩였다.쉬우웅!
“큭!”
그렇게 수십 인의 목이 피를 뿌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칭기즈칸에 의해 서요가 멸망한 것이다.서요는 흑거란(黑契丹)이라는 뜻으로 카라 키타이라고 불렸다.
참으로 거란족의 역사도 기구할 것이다.1125년 금나라에 의해 만주지방을 근거로 했던 요나라가 망했다.
그때 요나라의 왕족인 야율대석은 몽골로 탈출하였다가 무리를 거느리고 중앙아시아에 진출했다.그리고 1132년 위구르족의 지원을 받아 카라칸 왕조를 멸망시키고 제위에 올라 구르칸이라 불렀다.
그것이 바로 서요의 시작이었다.그리고 1137년 투르키스탄을 공략한 서요는 1141년 사마르칸트 부근에서 셀주크 제후의 대군과 싸워 승리를 거둠으로써 동서 투르키스탄의 전역이 서요의 영토에 편입시켰다. 그렇게 서요는 3대에 걸쳐 존속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1179년 회생이 미래의 기억을 가지고 고려로 온 9년 후에 어린 칭기즈칸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말았다.
원래의 역사대로라면 칭기즈칸에게 밀려 중앙아시아에 진출한 터키계 유목민인 나이만 부족의 쿠츨루크에게 점령되었다가, 1218년 칭기즈칸의 몽골에 복속되어 멸망하게 되지만 회생의 등장으로 그 멸망이 9년이나 앞당겨 진 것이다.
“칭기즈칸! 전승축제는 어찌 하옵니까?”
만인장 하나가 칭기즈칸에게 물었다.
“없다. 지금 초원의 벗이며 나 칭기즈칸의 스승인 경대승이 홀로 저 겔에서 죽어가고 오늘밤에는 그 어떤 가락도 미소도 초원의 전사라면 보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칭기즈칸의 말에 만인장이 알았다는 듯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소장이 어리석었습니다.”
“오늘만은 더 이상의 죽음은 없다. 오직 이 밤에 편히 죽을 수 있는 자는 나의 벗인 경대승 뿐이다.”
“알겠사옵니다.”
두두두! 두두두!그때 동쪽 끝에서 한 무리의 전사들이 마치 자신들이 흙먼지인 듯 달려오고 있었다.
“칭기즈칸!”
저들은 호엘룬이 보낸 울란곰에서 떠난 20인의 전사들 중 생존한 자들이었다.
“칭기즈칸!”
그들의 외침이 절망처럼 들리는 칭기즈칸이었다. 아마도 저들은 망한 서요의 왕성 성곽에 걸린 몽골족의 깃발을 보고 달려왔을 것이다.두두두! 두두두!
“워워워!”
풀썩!말에서 급히 뛰어내린 전사들은 바닥에 쓰러졌다.얼마나 쉬지 않고 오래 달렸으면 말에서 태어나 말에서 죽는다는 초원의 전사가 낙마를 할까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그들은 지쳐 있었다.
헝겊으로 가리지 못한 얼굴과 피부는 온통 흙먼지로 덮여 있었고 갈라져 있었다. 입술은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듯 터져 있었다.
“칭, 칭기즈칸!”
“무슨 일이냐?”
말에서 떨어진 전사들은 기어기어 칭기즈칸에게 향해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드는 칭기즈칸이었다.
“호엘룬님의 유언을 전하고자 왔습니다.”
“어머니의 유언?”
칭기즈칸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렇사옵니다.”
“도대체 초원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초원이 멸망했사옵니다. 금나라 놈들이 쳐들어 와서 초원이 망했나이다.”
“뭐라? 제베는 무엇을 했고 무카리는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이냐?”
“금도 멸망했사옵니다.”
“뭐라?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란 말이다.”
“고려군이 초원을 점령했사옵니다. 해거 씨를 앞세워서 몽골족을 멸족시켰사옵니다. 이제 드넓은 초원에는 몽골족은 없사옵니다.”
바드득!순간 칭기즈칸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회군 준비를 하겠나이다.”
칭기즈칸의 옆에 있던 만인장이 무겁게 말했다.
“소장이 선봉으로 가서 고려 놈들을 쓸어버리고 주제도 모르는 해거 씨들을 멸족 시키겠습니다.”
“닥치라! 내 아직 어머니의 유언을 듣지 못했다.”
역시 칭기즈칸은 냉철한 푸른 늑대의 자손이 분명했다.
“광분하여 초원을 함부로 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복수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참고 힘을 키우라고 하셨습니다. 호엘룬님의 죽음과 부족의 복수를 위해 급히 초원으로 돌아온다면 푸른 늑대가 아니라 승냥이에 불과할 뿐이라고 하셨고 호엘룬님은 푸른 늑대를 낳았지 승냥이를 낳은 것이 아니라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마도,,,,,,,.”
전사가 대답을 회피했지만 칭기즈칸은 이미 호엘룬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으윽!”
칭기즈칸은 분노를 참아내기 위해 자신의 혀를 힘껏 씹었고 입 안 가득 피가 머금어졌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초원을 비웠기 때문일 것이다.”
이 순간 떠오르는 것은 죽어가고 있는 경대승이었다.자신을 서쪽으로 이끈 것은 경대승이었고 경대승 역시 고려인이라는 것이 떠오르는 칭기즈칸이었다.
“으으윽!”
분노를 억누르려고 다시 한 번 어금니를 꽉 깨무는 칭기즈칸이었다. 그리고 경대승이 누워 있는 겔을 노려봤다.
“모든 전사들에게 휴식을 명한다. 오늘밤까지만 이 겔에서 지낼 것이다. 내일 부터는 저 성이 우리의 초원이 될 것이다.”
칭기즈칸은 그렇게 말하고 홀로 겔에서 죽어가고 있는 경대승에게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