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26권 -- >두두두! 두두두!
“예. 저기입니다.”
솨아아악!칼날보다 더 차가운 바람이 분다. 등주 바닷바람이다. 이 바람을 맞는 순간 이들은 오늘이 자신들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하하하! 이 바람이 시원하구나!”
바람이 질주하는 300기의 도천군 기병의 뺨을 베고 지나간다. 그 바람은 검이 되고 활촉이 되어 적을, 때로는 자신을 죽인다는 것을 이 질주하는 도천군 기병은 알았다.
허나 교주의 지시이며 고려황제폐하의 지시이기도 했다. 그러니 목을 내놓고 달려야 했다. 그것이 충정이요 그것이 교심이었다.
바람이 휘몰아치듯 그들의 굳센 두려움도 휘몰아친다. 허나 달려야 했다.
스스로의 죽음이 도천의 새 세상을 열 것이라 그들은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저기 떠오르는 태양을 보라. 우리에게 내일의 태양이 있을 리 없다. 오늘의 태양이 마지막이다. 우리가 사라져도 고려는 우리는 기억될 거다!”
“도천교 만세! 교주만세! 황제폐하 만세!”
도천교 지부장의 우레 같은 외침이 거친 말발굽 속에서도 크게 울려 퍼졌다.두두두! 두두두!
“우리가 도천의 참세상을 열 것이다.”
그들의 허리에는 기름 항아리가 하나씩 묶여 있었다. 또한 말의 옆구리에는 큰 항아리가 각각 양 옆으로 4개가 달렸다.
“불꽃이 되리라. 교주님의 명이시다.”
참으로 비정한 것이 황제일 것이다. 지금 이들에게 회생은 죽음으로 투석기를 불태우라고 명을 내린 것이다. 항쟁이다.이들은 이렇게 쓰이려고 만들어진 것이다. 5년 전의 포석이 이렇게 빛을 바라고 또 5만의 도천군의 목숨을 요구하고 있었다.
“도천의 세상이 열립니다.”
우렁찬 함성이 들판에 울렸고 그 울림을 들은 학준은 오싹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돌렸다.
“뭐야?”
“저, 적 기병입니다.”
“젠장! 저것들이 노리는 것은…….”
“투석기입니다. 대인!”
“으음! 방비는 해 뒀겠지?”
“창병들이 배치되어 있고 궁병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조금 전 찡그린 인상은 어디에 가고 학준은 미소가 번졌다. 그는 모를 것이다. 지금 달려오는 도천군이 스스로 불꽃이 되어 활활 탈 것이라는 것을.
“그럼 불나방이군, 불나방. 참으로 독한 놈들이다.”
학준은 고려의 간자들이 독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습니다.”
“그래도 모른다. 군사들을 보내라. 그대가 직접 지휘하라.”
“예, 대인.”
악현우가 짧게 목례를 하고 망루에서 뛰어 내려갔다.두두두! 두두두!도천교의 지부장이 든 검이 떠오르는 동녘에 비춰 번쩍였다.
“전군!”
노한 맹수의 포효가 들판을 향해 울렸다.
“전속으로!”
두두두! 두두두!300의 기마들이 속도를 올렸다.
“돌진하라.”
“도천의 세상을 열자.”
이것이야 말로 종교의 무서움 일 것이다. 또한 고려인이라는 긍지의 끝일 것이다.와아아아!
“이랴!”
히히히힝!
“하야!”
300기가 돌진해 왔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건 그들이 파괴할 투석기가 장창을 든 송나라 병사들이었다. 족히 5천은 될 것이다. 이미 악현우는 투석기가 배치된 곳으로 도착해 있었다. 그 역시 수평선에서 떠오르는 동녘을 보며 다짐했다. 자신의 조국 송을 지키겠노라고.
“온다. 불나방 같은 것들.”
악현우는 돌진하는 도천군으로 편성한 기병을 보며 피식 웃었다.
“궁수 준비.”
악현우의 명령에 일제히 궁수들이 일제히 활의 시위를 당겼다. 그 모습을 도천교 지부장도 봤다.
“아직 화살의 사거리가 아니다.”
그건 도천군 지부장의 착각이었고 악현우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지금 송군들이 쏘고 있는 활은 남만지방에서 자란 흑소의 뿔로 만든 활이었다. 이것이 바로 송의 풍요였고 송의 경제력이었다.
“쏴라!”
악현우는 어금니를 깨물었다.슈슈슈슈! 슈슈슈!일제히 화살이 날았다. 퍽!퍼퍼퍽!
“아아악!”
히이이잉!한 번의 공격으로 20기 이상이 고꾸라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화살 공격으로 다시 30여 기의 도천군 기병들이 고꾸라졌다. 이제 남은 것은 200기가 조금 넘었다. 그리고 장창의 숲이 자신들을 막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합니까, 지부장님?”
도천군은 다급했다. 죽는 것이 두려운 도천군은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저건 정말 개죽음이었다.
“젠장! 젠장!”
지부장은 욕을 계속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허리에 찬 기름 항아리를 만지작거렸다.‘이왕 죽기로 했으니.’도천군 지부장은 그 생각과 함께 들고 있던 검을 버렸다.
“전군 정지.”
도천군 지부장의 명령에 살아남은 200여기의 도천군으로 구성된 기병이 순간 멈춰 섰다.
“무슨 일입니까? 설마 후퇴하는 겁니까?”
“후퇴 같은 건 없다.”
“그럼 무엇입니까?”
“저들이 우릴 그렇게 불나방으로 보고 있다.”
“그럼?”
“1열 횡대 대형으로.”
지부장의 명령에 200여기의 도천군 기병이 일제히 길게 늘어졌다.
“이제 우린 불나방이 된다.”
세상이 열릴 것입니다.”
멀리서 악현우가 멈춰선 도천군으로 구성된 기병을 보고 이죽거렸다. 도천군 기병이 정지하는 순간이 도천군 기병에게는 최대한 불리한 상황이고 송군에게는 유리한 상황이 된다.
달리는 표적보다 멈춰선 표적이 활로 공격하기 쉬우니 말이다. 하지만 악현우는 강한 자신감에 허세를 부렸다. 허세를 부리는 모든 것들은 위험할 것이다.
“저것들 뭐하는 거야?”
“기병이 멈췄습니다. 공격할까요?”
“기다려라! 시간을 벌었으니 장창병들의 대형을 더욱 견고하게 정비 하라.”
“그러다가 도망치면 어떻게 합니까?”
“여기까지 와서 도망칠 놈들이 아니다. 고려 잡종들은 다 독하다.”
악현우도 고려군이 독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쨍그랑! 찡그랑!좌아아악!200여기의 도천군으로 구성된 기병은 일제히 자신의 몸에 기름을 부었다. 그리고 스스로 불나방이 됐다.
그들이 이곳으로 달려 올 때 먼 거리에서도 식별이 가능했던 것은 저들이 횃불을 들고 달렸기 때문이었다.지부장은 그런 모습들을 보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도천군 기병은 스스로 불나방이 되고 자신의 몸은 활활 탈 횃불의 심지가 되려 했다.
“돌진해서 활활 온몸을 불사른다.”
도천군 지부장이 다시 우렁차게 소리를 질렀다.히이잉!두두! 두두!천천히 200여기의 전마가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투석기를 향해 앞으로 나갔다.
“황제 폐하 만세!”
“도천이 열릴 것이다!”
“전속!”
“이랴아!”
두두두두두두!기마들이 질주해 오는 모습을 보고 여전히 악현우는 비웃었다.
“준비해! 그리고 화살도 쏴라.”
“궁수 앞으로!”
그 명령과 함께 일제히 궁수가 앞으로 나썼다.
“시위 당겨!”
쩌어억! 500명의 송나라 궁수들이 일제히 시위를 당겼다.
“쏴라!”
그렇게 다시 화살이 하늘을 날았다. 퍼퍼퍽! 퍼퍼퍽!히이잉!도천군 기병은 피해가 적었으나 전마들은 화살을 맞고 고꾸라졌다.히이잉!
“돌격해라!”
지부장이 소리쳤다. 화화화! 화화화!사방이 불바다로 변했다.여기저기 투석기가 불탔다.
“저 미친 것들이,,,,,,,.”
순간 기고만장하던 악현우는 더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몸, 몸에 스스로 불을 붙였습니다.”
불타는 전마가 고통에 겨우 미친 듯 질주했다. 그리고 장창병들을 향해 돌진했고 또 투석기를 향해 돌진했다.화화화! 화화화!
“아아악!”
여기저기서 온몸이 불타는 비명소리가 울렸다. 몸에 기름을 부은 도천군의 비명은 분명 아닐 것이다.
말의 옆구리에는 4개의 항아리가 달려 있었고 그 항아리 안에는 온통 기름뿐이었다.콰콰쾅! 콰콰쾅!기름 항아리가 열기에 가열되어 터졌다.
쾅! 쾅!그리고 그 폭발과 함께 불타는 전마에 의해 송군의 장창밀집 대형이 무너졌다. 이 무모한 돌격은 요동군 결사대가 고려군에게 보였던 결전이었다.
그것을 그대로 따라한 고려황제 회생이다.
“어, 어떻게?”
“또 투석기로 돌진합니다.”
부관이 절규를 하듯 소리쳤다.
“안 돼! 막아라! 더는 투석기에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미 장창밀집 대형은 무너진 지 오래였다.콰콰왕! 콰쾅!삽시간에 300기나 되는 투석에 불이 붙었다. 그리고 그 불을 끌 틈도 없이 활활 타오르고 이었다.
동녘이 뜨는 아침은 온통 붉다.불타는 투석기 때문에 붉고 고려를 위해 죽어간 영웅들 때문에 붉다. 그리고 훗날 그들을 위해 울어줄 고려황제의 눈물 때문에 붉을 것이다.
“지, 지금 내,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을 내가 진정 믿어야 한단 말인가?”
악현우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학준은 저 아수라장을 보며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결코 고려군을 상륙시켜서는 안 된다. 첫 전투부터 예봉이 꺾였어.”
학준은 이 도천군 결사대를 고려군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첫 전투에서 패했다고 생각했다.
“대, 대인!”
“첫 전투에서 졌군.”
“송, 송구하옵니다.”
“이제 아셨소? 왜 고려군의 상륙을 막아야 하는지?”
“예. 대인!”
“경계에 만전을 기하시오. 토성 건설은 계속 될 것이오. 불에 탄 투석기는 더 충원하면 그만이오.”
재화가 넘치는 불탄 투석기에 크게 마음을 쓰고 싶지 않은 학준이었다. 하지만 고려군이 이렇게 두려운 존재라는 것을 세삼 다시 알게 된 학준이었다.
“황제폐하께는,,,,,,,.”
“알려야지요.”
“하오나,,,,,,,,.”
“패전을 숨기면 불충이오.”
“알겠나이다.”
그렇게 학준에 의해 첫 패전이라고 할 수 있는 전투가 송황실에 보고가 됐다. 그리고 송황제는 바로 등주로 내려와 직접 방어군을 지휘하게 됐다.
“황제폐하를 뵈옵니다.”
등주로 내려온 송황제는 황금갑주를 입고 있었다. 보기는 좋으나 표적이 되기도 좋을 것이다.
“짐이 들었네.”
“망극하옵니다.”
“죽자고 덤비는 것들을 어찌 막겠나? 학준 그대가 보고한 것처럼 고려군의 상륙을 막아야 하네. 송의 국운이 첫 해전에 달렸음이야!”
“그렇사옵니다. 폐하!”
“짐은 그대가 보고한 반포를 보고 더 없이 기뻤네. 해전에 새로운 무기가 생긴 것이야. 반포라면 충분히 고려수군을 무찌를 수 있을 것 같네.”
“그렇사옵니다. 고려는 고작 1천의 전함입니다. 또한 그들에게는 반포 같은 무기는 없을 것이옵니다.
여기서 이 등주에서 고려해군을 모두 전멸시키겠나이다.”
“짐은 그대가 있어서 기쁘다.”
이 순간에도 송황제는 학준을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