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582화 (582/620)

< -- 간웅 26권 -- >금나라 황궁 대전 앞 공터.

“어찌 되셨습니까?”

고서기와 함께 온 사신들이 고서기가 대전에서 나서자 달려와 고서기 앞에 섰다.

“어허! 초조한 모습 보이지 말라 그리 일렀는데.”

“송구하옵니다. 영감.”

“어찌 되었습니까?”

“내가 어찌 알까? 점쟁이도 아닌 것을.”

“하오시면 일이 틀어진 것입니까?”

“인간이 작은 것도 끊임없이 최선을 다하면 빛이 나는 법이지. 그 빛이 결국 세상을 바꾸어 놓지.”

고서기는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가시지요. 무슨 영문인지 금나라 것들이 사신 관에 행장을 풀라고 했습니다.”

“사신관에?”

“그렇사옵니다.”

그때 저 멀리서 금나라 환관 하나가 종종 걸음으로 다가왔다.

“고서기 대인 계십니까?”

“무슨 일이요?”

고서기를 호종하는 하급 사신이 환관에게 물었다.

“뵙고자 하십니다.”

“누가?”

“어느 분께서 고서기 대인이시옵니까?”

“나요. 누가 나를 보자는 것이요?”

고서기의 물음에 살짝 고개를 사방으로 둘려 주변을 살폈다. 참으로 어리석은 자가 분명할 것이다. 이 넓은 공터에 이리 두리번거리는 것이 더 의심을 산다는 것을 모르고 있으니 말이다. 이 환관은 정말 그것도 없고 머리도 없는 환관이 분명할 거다.

“태자마마시옵니다.”

“태자?”

이해가 되지 않는 순간이었다.태자는 강경파였다. 또한 고려와의 화친은 치욕이라 생각하며 대전에서 자신을 압박하던 위인이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을 보자는 환관의 말을 듣고 고서기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비상한 고서기는 뭔가 이 황궁에 정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완안보였다.‘옥좌의 주인은 그 자리에 앉기 전에 아무도 정해진 것이 없지. 앉았다고 해도 바뀌는 것은 일도 아니고.’고서기는 그런 생각을 하며 환관을 봤다.

“어디서 뵙자고 하시던가?”

“황궁 뒷문에서 뵙자고 하십니다.”

고려도 황궁의 정문은 벼슬을 가진 자 위엄이 있는 자가 드나들고 뒷문은 하찮은 자리에 있는 자와 환관들이 드나드는 자리다. 또한 죽은 자가 은밀히 물러나는 곳이기도 했다.

“뒷문?”

“그렇사옵니다. 기다리신다고 하셨습니다.”

“알았네.”

“그럼!”

환관은 허리를 굽혀 예를 갖추고 다시 종종걸음을 하고 사라졌다.

“어찌 된 일입니까?”

“이제 빛이 나는 거겠지.”

고서기가 씩 웃었다.

“허나 태자는 고려와 척을 지고 주전론을 펼치는 자이옵니다.”

“알지. 하지만 급변하는 것이 황궁이네. 내 황궁이 얼마나 많은 모사가 꿈틀거리는 곳인지 잘 알지.”

고서기는 그렇게 말하고 회생의 얼굴이 떠올랐다.스스로 간웅의 길을 택한 고려황제의 얼굴이 이 순간 떠오르는 것은 고려황제 회생이 참으로 가여운 분이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가시지요.”

“급할 것이 없지 않나. 태자라고 하니 좀 기다리는 것도 배워야겠지.”

고서기는 배짱을 부렸다.이 순간 칼자루는 자신이 쥐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그때 퉁명스러운 얼굴을 한 금나라 태자가 자신의 당여들과 함께 씩씩거리며 대전을 나섰다.

“참으로 안하무인하지 않습니까? 완안보 황자께서 무슨 흉계를 꾸미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 출생이 비천하니 그럴 수밖에.”

태자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기는 하오나 황제폐하와 독대를 청하다니요. 무슨 말이 오고가는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알 필요 없어.”

“예?”

“내 준비한 수가 있지. 적을 치기 전에 적을 먼저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라면 방법이지.”

“예?”

“내 책략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시면 될 것이네.”

금나라 태자는 대전 앞 공터를 거닐고 있는 고서기를 보며 씩 웃었다.

“절대 내 제안을 뿌리치지 못할 것이야! 이것이야 말로 이이제이이지.”

금나라 태자는 그렇게 말하고 고서기를 한 번 의도적으로 노려보고 사라졌다.

“조용히 보자고 청한 자의 얼굴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신 하나가 고서기에게 말했다.

“보는 눈이 많으니까.”

“하지만 눈에 살기가 담겼사옵니다.”

“저 정도의 살기도 숨기지 못하는 태자라면 어려울 것이 없지.”

그때 금나라 세종으로 독대를 하기 위해 대전을 나서던 완안보를 봤다.완안보를 보자 고서기는 고개를 숙여 예를 갖췄다.

“고려사신은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계신가? 황궁이 넓어 길을 나설 엄두가 나지 않는가?”

약간의 조롱이었다. 하지만 그 조롱에는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황궁이 참으로 넓사옵니다.”

“그렇지. 넓지. 이곳이야 말로 천하의 중심이지 않겠는가?”

의도적인 과시였다.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허나 사방이 막혀 있으니 어찌 뚫고 나가실지 모르겠사옵니다.”

국제정세를 비유해 야유를 하는 고서기였다.

“그렇지. 그렇기도 하지. 길을 나설 엄두가 나지 않으면 나와 같이 가세. 내 길을 열어주지.”

“스스로의 길도 여시지 못하시는데 어찌 제 길을 열어주신다는 말씀이십니까?”

“내 길이야 내가 열지 하지만 자네 길도 내가 열어 줄 것이네.”

“그렇사옵니까?”

“걸으세. 황궁이 아주 넓어. 해가 지면 황궁의 문이 닫히지 그럼 나가지도 못해.”

완안보가 걷기 시작했다.

“예. 황자저하!”

완안보와 고서기는 걷기 시작했다.

“그 말이 사실인가?”

“무엇이 말입니까?”

“그대가 황제께 고한 것 말이네.”

“제 말을 믿기는 하시옵니까? 제가 그렇다면 그렇다고 믿으시겠습니까?”

“내게 이익이 된다면.”

완안보는 자신의 속내를 드러냈다.

“이익이라 하셨습니까?”

“그렇지. 이익이지. 이익은 여러 가지겠지. 그러니 그대의 말을 아니 고려황제폐하의 말을 믿으면 내게 무슨 이익이 될까?”

고서기는 완안보를 봤다. 누구도 고려황제 회생을 이곳에서는 황제라 부르지 않고 왕이라 불렀다.그것이 자존심인 거다. 그런데 금나라 황자인 완안보는 고려황제라 말했다.

‘명분보다는 실리를 중시하는 자다.’이런 자는 고려에 많은 해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고서기였다.

“사실이옵니다. 고려가 송과 야합하여 고육계를 꾸민다고 여기실 것입니다. 고육계를 쓰고자 했다면 소에 있는 고려 유민 5만은 죽였고 도 조연 마마를 베었을 것입니다. 또한 고려에서도 송나라 백성을 모두 도륙한 후에 그 소문이 여기까지 온 후에 소신이 왔을 것입니다.”

“그렇지. 그럼 그대가 내게 줄 것이 무엇인가?”

“무엇을 드리면 되겠습니까?”

“양국은 서로를 끝내 믿지 못할 것이네. 믿기에는 너무 위험부담이 크지.”

“혼맹이라도 맺자는 것입니까?”

“지금이 명분과 체면을 중시하는 진말한초도 아닌데 혼맹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금방 깨어지는 혼맹은 필요가 없지.”

“하오시면?”

“국본을 교환하는 것이 어떤가?”

완안보의 말에 숨이 턱하고 막히는 고서기였다.‘참으로 뱀처럼 무섭고 범처럼 거침이 없는 자다.’고서기는 완안보를 그리 생각했다.

“왜 내가 뱀 같은가?”

“아니옵니다.”

“나도 나 살고자 이러는 것이네. 태자와 척을 지게 되었으니 내 살 길은 찾아야하네. 황자가 목숨을 이어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

완안보는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돌려 대전 쪽 하늘을 봤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사옵니다.”

“알아들어 주니 마음이 놓이는군.”

“허나 고려에는 아직 국본이 정해지지 않았사옵니다.”

“국본이야 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 다시 돌아가는 것이 어려울 것이네.”

엄청난 거래를 요구하고 있는 고서기였다.‘고려에 해가 될 인물이다. 황제폐하 같다.’고서기는 완안보를 보며 고려황제를 떠올렸다.

“소신이 정할 일은 아니옵니다.”

“나는 지금 황제폐하와 독대를 할 것이네. 목을 걸고 건곤일척의 마음으로 패를 던져 볼 것이네. 훗날 목이 베이나 지금 베이나 베이는 것은 같은 것이니 말이네.”

추진력까지 있는 완안보였다.

“가능하시겠사옵니까?”

“고려는 송을 쳐서 좋고 금은 초원을 정벌하여 땅에 떨어진 권위를 찾아서 좋고 나쁠 것이 없지 않나? 나야 몇 가지 더 좋은 것이 있어서 좋고.”

“그렇지요.”

“내 알기로는 고려에서도 국본을 놓고 암투가 있을 조짐이 있다고 하던데.”

“그런 일은 없사옵니다. 겨우 황자님들께서는 춘춘 4살이시옵니다.”

“그 어미와 외척들은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지.”

더는 할 말이 없는 고서기다.

“마음을 정했다면 움직이시게. 나는 내가 정한 마음대로 행할 것이니. 저기 황궁의 정문이 보이네. 아하! 자네는 뒷문으로 가야하지.”

이미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는 완안보였다.

“놀랄 것 없네. 어디 황궁에서 비밀이 있던가? 고려도 아니 그런가?”

“그렇사옵니다.”

“가 보시게. 나도 해야 할 일이 많네.”

완안보가 살짝 미소를 보이고 등을 돌려 금 세종이 있는 황궁으로 향했다.

“그릇은 작은데 간계가 넘치는 자군. 일국을 망하게 할 자로세.”

고서기는 완안보를 그렇게 평했다.그리고 이 순간 고서기는 고민이 됐다. 완안보의 제안을 받아 국본을 교환하여 고려의 송 정벌의 길을 열 것인가? 그게 아니면 훗날의 화근이 될 완안보를 정리할 것인가? 그것이 고민스러운 고서기였다.

“스스로 양날의 검을 내게 쥐어준 것이라는 것을 알기나 할 것인가? 간계는 있으나 그릇이 작구나!”

이것이 고려황제 회생과 다른 점일 것이다.고서기는 그런 생각을 하며 금나라 태자가 기다리는 황궁 뒷문으로 향했다.금세종의 내실.

“뭐라 했느냐?”

“소자를 국본으로 세우고 고려로 보내라 했나이다.”

“너를 국본으로? 짐은 이미 국본을 세웠다.”

“허나 국본을 보낼 수는 없지 않사옵니까?”

완안보는 금 세종에게 가서는 딴 소리를 하고 있었다.

“고려에서도 너와 같은 간계를 쓸 것이다.”

“그럴 것이옵니다. 허나 고려 왕자는 겨우 4살 코 흘리게 이옵니다.”

“그래서?”

“서로에게 검을 쥐어주면 함부로 공격하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그리고 초원을 정벌하소서. 초원을 정벌하시면 초원이 열리고 막혀 버린 비단길이 열리옵니다. 부국을 이뤄야 훗날 강병까지 도모할 수 있나이다.

또한 몽골족을 멸망시키면 초원의 그 어떤 부족들도 금에 또 폐하께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덕으로 다스릴 수 없다면 무력으로 벌하는 것이 가한 줄 아옵니다.”

“고려가 너의 계략에 넘어갈까?”

“고려 역시 송을 칠 것입니다.”

“고려가 송을 얻게 된다면 그것은 금의 큰 위기다.”

“세월이 흐른 후에 송이 완벽하게 평정된다면 위기겠으나 상당한 시일 동안은 군력을 잡아먹는 골칫덩이가 될 것이옵니다.”

“어찌 그리 생각을 하는가?”

“아무리 송이 썩었다고 해도 한림학사가 있고 충정 깊은 무신들이 아예 없다고 할 수 없사옵니다. 북송이 망한 후에 남송을 세운 그들입니다. 충분히 부흥을 위해 군대를 일으킬 것입니다.”

완안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금 세종이었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그렇사옵니다. 차근차근 고려는 국력이 쇠하게 될 것입니다.”

“옳은 말이다.”

“황공하옵니다. 그러니 소자의 간청을 가납해 주시옵소서!”

“짐이 깊이 생각하겠노라. 물러가라!”

“예. 황제폐하!”

그렇게 완안보는 내전에서 나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완안보의 외척들이 기겁해 완안보를 봤다.

“어찌 그런 간청을 하셨사옵니까?

고려로 가신다면 황망한 일을 당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하찮은 목숨을 걸지 않고 어찌 고귀한 옥좌를 얻을까?”

“예?”

“두고 보시오. 장인! 고려로 가는 것은 내가 아닐 것이니 말이요.”

완안보는 씩 웃었다.금나라 황궁 뒷문.

“내 말이 무엇인지 아시겠소?”

금나라 태자가 고서기에게 하대를 하지 않고 말했다.

“무슨 말인지 잘 알겠사옵니다.”

“적도 이용하다보면 신의가 생기는 법이지.”

“그럴 것도 같사옵니다.”

“그렇게만 해주면 훗날 요동을 완벽하게 할애하고 화북 일부를 고려에 내어줄 것이네.”

“훗날이라 하셨습니까?”

“왜 그런가?”

“훗날을 기약하기에는 너무 멀지 않사옵니까?”

“그럼 내가 고려의 말을 믿고 초원으로 진격을 하란 말인가?”

“두렵사옵니까?”

“무엇이?”

“초원이옵니다.”

“나는 대국 금의 태자네! 무엇이 두려울까? 내 걱정되는 것은,,,,,,,,.”

“고려가 배덕하게 금의 후방을 치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네.”

“그런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기회이지 않습니까? 고려가 송을 칠 때 태자마마께서 몽골족을 쳐서 대승을 거두신다면 옥좌가 바로 앞에 놓인 격이 될 것입니다.”

“허면 내가 말한 것은?”

“향수병에 급사를 하는 경우도 많지요.”

“그렇지. 고려에서 올 태자는 어찌해 줄까?”

“무탈하게 보내주셔야 하옵니다.”

“알았네. 어린 것을 사하는 것도 마음에 걸리는 일이지. 대국의 태자가 어찌 일국의 코 흘리게 왕자를 사할까. 되었는가?”

“그렇사옵니다. 그런데 황제폐하는 어찌 설득을 하시겠사옵니까?”

“이미 황제께서는 자네에게 설득이 되신 것 같네.”

태자도 다혈질이지만 아예 머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완안보처럼 그릇이 작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알겠사옵니다. 사신 관으로 물러나 칙령을 기다리겠나이다.”

“그렇게 하시게.”

태자는 씩 웃었다.하지만 내심 웃고 있는 것은 고서기였다.'누가 오고 남든 고려에는 나쁠 것이 없겠군.'고서기는 멀어지는 태자를 봤다.

“태자가 초원으로 간다면 백전백패일 것이다.”

고서기는 조용히 뇌까렸다. 고서기는 마음이 정해졌다. 하지만 이 순간 과연 누구를 금으로 데리고 와야 할지가 걱정이었다.‘어찌 할꼬? 황제폐하께서는 어찌 정하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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