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581화 (581/620)

< -- 간웅 26권 -- >4. 고서기 금 세종을 만나다.고서기는 고려황제 회생의 명을 받고 금나라의 대전을 들어서고 있었다.

거의 압송의 수준이라 할 만 했다. 오라만 차지 않았을 뿐이다.

고서기의 좌우측으로는 금나라 무장들이 서슬 퍼런 검을 차고 서 있었다.‘분위기가 차갑군.’그도 그럴 것이다.

4년 전 고려는 요동을 급습했다. 물론 고려가 요동을 급습한 명분은 있었다.

금의 번국인 대타발이 고려로 남진을 시작했기에 북진을 해서 막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명분이라면 명분이었다.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일이지만 그렇게 주장했던 고려였다.

지금 이 순간 금나라의 사신들의 노려봄으로도 죽을 수 있을 정도로 중압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 여기서 죽어 원혼이 된다고 해도 후회할 것이 없다.

’고서기는 고구려의 왕족의 후손이다. 하지만 고구려가 망한지 수백 년이 지나고 겨우 병졸이었던 자신을 발탁한 것이 회생이다.그를 위해서라면 이 자리에서 혀를 깨물고 죽을 수도 있는 그였다.

‘저자가 금왕이군.’

황금 옥좌에 근엄하게 앉아 있는 금세종을 봤다. 눈동자가 빛나고 꼭 다문 입술이 근엄해 보이는 그였다. 저런 관상은 야망이 충실한 자가 분명할 거다.그리고 고서기는 좌우측을 봤다.모두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칼을 뽑지 못해 안달이 나 있는 눈빛이었다.

‘나처럼 저들도 긴장을 하고 있군.’고서기는 고려의 위상이 이렇게 높아졌다는 것이 만족했다.

“황제폐하! 고려 사신 고서기를 압송해 왔사옵니다.”

자신과 같이 온 무장이 당당히 말했다.

“압송?”

고서기는 나직이 말하며 피식 웃었다.

“저 죄인을 당장 오라로 묶고 무릎을 꿇리라.”

금세종이 격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가식이 있군.’고서기는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죄인은 무릎을 꿇어라!”

자신과 같이 왔던 무장이 고서기를 힘으로 눌렀다.

“어서 무릎을 꿇지 못할까?”

다시 무장이 소리쳤다.

“그러지 마시고 목을 베시지요.”

고서기는 무릎을 꿇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금왕 세종을 올려보며 소리쳤다.

“무엄하다. 어느 안전이라고 소리를 치는 것이냐?”

금나라의 태자가 분개해 검을 뽑아들고 앞으로 나섰다. 그 모습을 보고 완안보가 인상을 찡그렸다.마치 저런 형에게 어찌 금의 옥좌를 맡길 수 있을까 걱정하는 눈빛이었다.그리고 그런 눈빛은 금왕 세종도 찰나지만 보였다.

“태자마마께서 저를 베시겠습니까?”

고서기는 금나라 태자를 자극했다.

“내 너를 베지 못할 것 같으냐?”

금 태자가 씩씩거리며 뽑아든 칼을 들어 올렸다. 이제 내려치기만 하면 고서기는 이역만리에서 죽어 원혼이 될 것 같았다.

“베십시오. 저를 벤다면 몽골의 칭기즈칸이 한 그 금수보다 못한 짓을 다시 하시는 것입니다. 천하의 주인을 두고 고려황제폐하와 자웅을 가리시고 계신 분께서 금수보다 못하다면 소신 목을 거북처럼 내놓고 죽겠사옵니다.”

“뭐라? 네 놈의 입을 찢어 버릴 것이다.”

“그냥 베시라니까요. 태자마마!”

고서기를 금나라 태자를 조롱하듯 말하며 씩 웃었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면 이곳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 이놈이!”

금나라 태자는 당장이라도 검을 내려칠 것 같았고 순간 대전의 분위기는 차갑게 식었다. 만약 고서기의 말대로 금나라 태자가 고려 사신으로 온 고서기를 죽이면 자신들은 오랑캐라 여기며 금수보다 못한 짓을 한 몽골족과 다를 것이 없으니 말이다.

“멈추라!”

“황제폐하!”

금나라 태자가 고개를 돌려 금왕 세종을 봤다.

“짐이 멈추라 했다. 태자는 짐을 금수로 만들 참인가?”

금왕의 말에 금나라 태자는 기겁해 당황한 눈빛을 보였다.

“어, 어찌,,,,,,,,.”

그 순간 완안보는 씩 웃었다. 점점 자신의 형인 태자에게 옥좌가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완안보였다.

“태자라면 태자다운 품격을 보여라.”

금왕 세종의 질책을 들은 금나라 태자가 지그시 입술을 깨물며 완안보를 봤다. 금나라 태자 역시 완안보를 정적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그것을 고서기는 바로 알아차렸다.‘분열의 씨앗이 있군.’고서기는 그런 생각을 하며 금왕 세종을 봤다.

“예. 황제폐하!”

금나라 태자는 분을 참으로 뒤로 물러났다.

“그대는 고려의 사신인가?”

“그렇사옵니다. 황제폐하!”

“고려의 사신이라면 이 조정에서는 죄인일 것인데 어찌 두려움 없이 이리 온 것인가? 짐이 덕이 하늘에 닿아 있다고 백성들이 칭송을 하고 있으나 짐의 등에 비수를 꽂은 고려를 용서할 만큼 관대하지 않다.”

“황제폐하! 언제까지 과거에 연연하실 참이시옵니까?”

“짐에게 잊히지 않는 과거이지 않겠나? 금에게 고려는 형제의 맹약을 맺은 제후국이었다.

아우에게 크게 맞았으니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

“고려는 황제국이옵니다. 금과 다름이 없는 황제 국이옵니다.”

고서기가 당당히 말했다.

“모든 제후국들이 때로는 힘을 가지기도 하지. 허나 그 힘이 오래 가는 곳은 극히 드물다.”

“힘을 가진 곳은 천하를 가지는 중심이 되지요.”

“뭐라? 지금 고려가 천하의 중심이라는 것인가?”

금세종이 고서기를 노려봤다.

“금과 고려 두 나라 중 하나가 그리 되지 않겠습니까?”

“세치의 혀가 뱀처럼 간사하구나.”

“칭찬으로 듣겠나이다. 황제폐하! 소신이 다시 한 번 여쭈겠사옵니다. 과거에 연연하여 천하를 쟁패할 기회를 놓치시겠습니까?”

“뭐라? 그대가 짐과 지금 천하를 논하자는 것인가?”

“어찌 감히 소신이 황제폐하와 천하를 논하겠사옵니까? 황제폐하와 천하를 논하실 분은 고려황제폐하이십니다.”

“무슨 말을 짐에게 하고 싶은 것인가?”

“고려황제폐하께서는 금나라 황제폐하를 뵙고자 하십니다.”

“짐을 보고 싶다?”

“그럼 입조를 하면 되지 않소이까?”

완안보가 나섰다.

“입조라 하셨소?”

“그렇소이다.”

“오! 그 방법이 있군. 고려왕이 짐을 보고 싶다면 입조를 하면 되겠어.”

“감당하실 수 있겠나이까?”

“뭐라? 감당! 짐이 곧 천하다. 어찌 그런 망발을 하는가?”

“소신은 솔직한 자이옵니다. 금이 힘이 충분하다면 고려로 말머리를 돌렸을 것입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짐이 지금 못할 것 같은가?”

금세종이 고서기를 노려봤다.

“하실 수는 있으시겠지요. 그럼 송은 어찌 하겠사옵니까? 또 초원은 어찌 감당을 하시겠습니까? 아둔한 소신도 아는 것을 천하라 하시는 폐하께서 모르시옵니까?”

“으응,,,,,,,.”

틀린 말을 하나도 하지 않고 있는 고서기였다.

“좋다. 고려왕이 무엇 때문에 짐을 보고자 하는 것이냐?”

“고려황제폐하께서는 폐하와 천하를 논하시겠다고 하시옵니다.”

“천하를? 구름이 하늘에 많다고 고려왕이 그 구름을 잡으려 하는군.”

“폐하께서는 몽골족을 정벌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마음 같아서는 당장 초원으로 100만 대군을 몰고 가고 싶은 금세종이었다.

몽골의 칭기즈칸이 그렇게 무도한 짓을 한 후로 주변의 제후국이나 대부족들이 자신을 우습게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금왕이었다. 입조를 하라고 해도 핑계를 대고 조공을 받치라고 해도 거부하는 부족들이 많았다.특히 송의 매년 보내오는 재물의 양도 줄었다.

“그것을 못하는 것이 고려 때문이라는 것은 잘 알 것인데?”

“고려황제폐하께서는 금의 원정에 대해 논하자고 하십니다.”

“뭐라? 고려왕이 초원의 정벌에 대해 논하자고 했다고?”

“그렇사옵니다.”

“그런 하수로 짐이 준동할 것 같은가? 어찌 짐이 고려를 믿고 병력을 일으킬 것 같은가?”

“고려황제폐하께서 황제폐하께서 정중히 알리라 하셨사옵니다. 고려는 송을 치겠다고 하셨사옵니다.”

“지, 지금 뭐라고 했나?”

“이 사실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고려는 위기가 될 것이라 전하라 하셨사옵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금이 고려를 치지 못하는 것은 고려가 송과 혈맹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짐이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건가?”

“이리 금이 고려에 의해 발이 묶이고 고려가 금 때문에 발이 묶인다면 천하는 누가 평정하겠사옵니까?”

“천하의 평정?”

“그렇사옵니다. 칭기즈칸은 야심이 큰 자입니다. 초원의 부족들은 분열할 때에는 엎드리고 강성해지면 만리장성을 넘습니다.

또한 칭기즈칸의 사신이 송으로 가 송왕을 만나고 혼맹을 맺었다는 정보가 있사옵니다.”

“뭐라? 송과 초원이 화친을 했단 말이냐?”

“화친이 아닙니다. 혈맹입니다.”

“혈맹이라?”

“그렇사옵니다. 그들이 하나가 되면 제일 먼저 어디를 노릴 것 같습니까? 바다가 막고 있고 금나라가 막고 있는 고려겠습니까? 아니면 항상 위협이 되고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신경이 쓰이는 금이겠습니까?”

“그래서?”

“황제폐하께서는 폐하를 뵙고자 하십니다.”

“짐이 초원을 칠 때 병력을 일으키지 않으면 고려에는 이득이 없을 것인데?”

“있사옵니다. 무도한 송을 정벌할 것입니다.”

“무도하다? 고려와 송이 그런 관계가 되었나?”

살짝 미소를 보이는 금세종이었다.

“천금 같은 신의를 먼저 저버린 것은 송이옵니다. 송왕은 고려 황제폐하의 숙모가 되시는 조연공주를 무모하게 칭기즈칸의 계비로 보내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사옵니다. 그로 인해 황제폐하께서는 진노를 하셨고 송을 친다고 공포를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버티고 있는데 군사를 일으킬 수 있겠나?”

“고려가 버티고 있으니 초원을 치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옵니까? 소신은 이제 모든 것을 전했나이다.”

고서기가 머리를 조아렸다.

“으음,,,,,,,.”

잠시 신음소리를 토해내는 금세종이었다.

“고려 사신은 물러가 있으라. 짐이 대신들과 상론할 것이다.”

“예. 황제폐하!”

그렇게 고려 사신으로 온 고서기는 금나라 대전에서 물러났다.

“그대들은 어찌 생각을 하는가?”

금세종은 대신들에게 물었다.

“암계가 분명하옵니다. 황제폐하!”

금날 태자가 금세종에게 말했다.

“암계?”

“그렇사옵니다. 사특한 암계가 분명하옵니다. 고려와 송은 수백 년을 이어온 관계입니다.

하루아침에 돌아설 관계가 아니옵니다. 아마도 송과 고려가 공모를 해서 움직이는 계략 같습니다.”

“고육계란 말인가? 태자의 생각은?”

“그렇사옵니다. 고려왕은 간사하고 사특한 자라 들었습니다. 목표를 위해서는 어떤 짓도 망설임 없이 한다고 들었사옵니다. 이번에도 그럴 것입니다.”

“그런 자지. 간웅이라 불리는 자이니 말이야!”

금왕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니 사특한 간계에 현혹되시면 아니되시옵니다.”

“그런가? 그럼 완안보 너는 어찌 생각을 하느냐?”

“사특한 계략일 수도 있습니다. 황제폐하!”

“너도 그리 생각을 하는가?”

“허나!”

완안보가 금세종을 빤히 보며 말을 끊었다.

“허나?”

“허나 고려왕의 말이 진심이라면 초원을 칠 좋은 기회라고 여겨집니다.”

“너는 지금 황제폐하를 위급으로 몰고자 하는 것이냐? 고려왕은 분명 매복을 하고 기다릴 것이다.”

“그럴 가능성도 있사옵니다. 태자마마!”

“그런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회라는 것이냐?”

“그럼 어찌 이 막막한 형국을 풀겠사옵니까? 우리도 그렇지만 고려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 상황으로는 그 누구도 군사를 일으키지 못합니다.

만약 송과 초원이 결탁을 해서 남북으로 공격해 오면 어찌 하시겠습니까? 그때가 되면 고려는 어부지리를 얻으려 할 것입니다. 화북을 내어주는 꼴이 되옵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

금세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고려를 짐은 온전히 믿을 수가 없다.”

“그렇사옵니다. 하지만 온전히 믿게 할 방법은 있사옵니다.”

“방법이 있다?”

“그렇사옵니다.”

완안보가 금나라 태자의 눈치를 봤다.

“말하라!”

“신 완안보! 황제폐하께 독대를 청하옵니다.”

완안보의 말에 태자가 인상을 찡그렸다.

“독대?”

“그렇사옵니다. 소신의 올리는 주청이 소신에게 독이 될 수도 있사오니 헤아려 주시옵소서.”

“알았다. 그렇게 하마! 짐은 오늘 대전회의를 마친다.”

“망극하옵니다. 황제폐하!”

“쯔쯔쯔! 오늘도 그대들은 그저 망극할 뿐이군.”

금세종이 인상을 찡그리며 일어나 퇴청을 했고 그 순간 금나라 태자가 완안보를 노려봤다.

“무엇을 꾸미는 것이냐?”

“제가 무엇을 꾸밀 수 있겠사옵니까? 그저 나라를 위함입니다.”

완안보는 살짝 미소를 보이며 금세종이 떠난 옥좌를 힐끗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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