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25권 -- >
“그렇습니다. 이제는 예전과는 다릅니다. 송구하옵니다.”
효종은 예전이라는 말을 했다가 바로 머리를 숙였다. 지금 자신이 말한 썩은 그 예전은 상황이 다스리던 그때의 송이었으니 말이다.
“아닙니다. 현실이지요. 황상!”
“예. 상황!”
“꼭 하여야겠습니까?”
“예. 상황폐하! 폐하께서 내리신 옥좌입니다. 저는 이 옥좌를 지킬 것입니다. 상황께서 다시 가져가시겠다면 기꺼이 내놓겠지만 다른 이가 가지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사옵니다.”
“다른 이라?”
“그렇습니다. 송은 조 씨의 나라입니다. 왕 씨가 넘볼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는 겁니다.”
“아셨습니까? 조연의 음모를?”
“물론이옵니다. 상황폐하! 또한 송이 이리 위태로운 것은 모두 고려 때문일 것입니다.”
“고려 때문이라?”
“그렇사옵니다. 백성들이 혼이 나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배탈약일 줄 알고 먹었을 겁니다. 그게 미혼약인 줄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효종은 고려에서 아편이 넘어 오고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아편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상황!”
“맞습니다. 고려가 그런 짓을 하고 있지요.”
“또한 북부에서 퍼지고 있는 그 혹독한 전염병도 아마 고려의 짓이 분명할 것입니다.”
“혹독한 전염병이라?”
“그렇습니다. 요동부터 시작을 해서 금의 대도까지 퍼지고 이제는 북쪽 영토까지 퍼지고 있는 그 고칠 수 없는 전염병 말이옵니다.”
“그건 좀 어패가 있군요. 물증이 있소이까?”
“심증만 있습니다. 왜 모든 곳에서 그 병이 돌고 있는데 고려에는 돌지 않는 것이겠습니까? 아마도 저의 생각이 맞을 겁니다.”
“전염병도 고려라?”
상황도 인상을 찡그렸다.
“그 전염병 때문에 요동이 무너졌습니다. 또한 금이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아편도 마찬가지고요. 폐하! 이제는 양단의 결정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조연공주를 칭기즈칸에게 보내는 겁니까?”
“송의 결단을 보여주는 겁니다.”
“모든 일이 굳건한 의지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지요. 공주 조연은 5만 이상의 가솔들과 사병들이 있습니다. 그건 아시지요.”
상황의 말에 효종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역시 고려에서 건너온 자들로 파악되었습니다.”
“정확하게 아시는군요.”
“그렇습니다. 이건 결코 혼맹을 맺은 우방이 할 짓은 아니라고 봅니다.”
“고려의 목적은 송을 피 흘리지 않고 차지하는 거겠지요.”
상황도 이 부분에서 표정을 찡그렸다.
“그렇습니다. 상황!”
“짐이 눈을 뜨고 그 일을 보고 싶지는 않소이다.”
“그런데 어찌 막으시는 겁니까?”
“고려를 막을 수 있겠소? 아니 고려의 암캐인 조연을 막을 수 있겠소?”
“막을 수 있습니다. 상황!”
“신라방이 대대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첩보가 있소이다.”
“예?”
효종이 놀라 되물었다.
“신라방의 짐꾼들의 수가 15만이요. 등주로 모두 모이고 있소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소이까?”
“언제부터 입니까?”
“내 들은 지 일주일도 더 되었소이다.”
“고려가 내란을 조장하기 위해 움직였다는 겁니까?”
“내란이라?”
전중감이 키예프 공국을 원정하기 위해 자신들의 사병들을 등주로 모으고 있는 것이 이렇게 보일 수도 있었다.
“딱히 이번 일을 움직이고 있는 자를 지목하라면 그건 공주 조연일 겁니다.”
“왜?”
여기서 풀리지 않는 것은 왜였다.벌써 일주일 전부터 대대적인 움직임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 공주 조연을 초원으로 보내면 어떻겠냐고 신하들에게 물었다.그것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비이락일 수도 있습니다.”
상황이 효종을 보며 말했다.
“맞습니다. 그건 오비이락일 겁니다. 허나 항상 심장 옆에 비수를 둔다면 섬뜩해서 잠을 청할 수가 없습니다.”
효종의 말에 상황이 효종을 빤히 봤다.
“신라방을 치겠다는 말씀이시오?”
“모든 것을 하기 전에 조연부터 처리를 할 것입니다.”
효종의 말에 상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주십시오.”
“어찌 도우면 되겠소?”
처음으로 두 황제가 의기투합하는 순간이었다.
“공주 조연을 황궁에 감금해야겠습니다.”
“조연이 입궁을 하겠소? 조연은 결코 어리석지 않소이다.”
“양부의 탄생일이 금방이지 않습니까?”
“그렇기도 하군. 기억하고 계시었소이까?”
상황이 효종을 보며 웃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허나 내 생일이라고 해도 이 급변하는 순간에는 몸을 사릴 수 있소이다.”
“제가 했던 말을 없던 말로 하면 되옵니다.”
“그걸로 여우처럼 영악한 조연이 속겠소이까?”
“초원으로 보낼 공주를 정하고 사신들과 보내면 됩니다. 그럼 안심을 할 겁니다. 그리고 조연의 오라비들에게 관직을 높여 주면 될 것입니다. 탐욕만큼 눈과 귀를 어둡게 하는 것은 없사옵니다.”
“결단을 하신 것이요?”
조연을 처리하기로 했으니 남은 것은 고려와의 국교 단절이며 더 나가서는 대대적인 전쟁이었다.
“고려와의 전쟁 말이옵니까?”
“그렇소. 조연은 그래도 고려황실의 어른이요. 현 고려왕의 숙모가 되지요.”
“전쟁은 없을 겁니다.”
“어찌 그리 장담을 하시오?”
“고려는 작금 금과 군사적으로 대립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조연을 초원으로 보내지 않고 처단을 한다고 해도 군사적 행동은 할 수가 없습니다. 고려가 군사를 일으키면 금왕이 바로 동진을 할 것이니 말입니다.”
효종은 이렇게 정세를 보는 눈이 있었다.아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그는 아직 고려황제 회생을 너무나 모르는 인물이었다.어쩔 수 없이 참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참지 않고 분연히 일어나는 것이 고려황제 생이니 말이다.
“그렇소이다. 그런 것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조연만 역류하면 송의 내분은 끝이 나는 겁니다.”
“그럼 조연의 아이를 잡는 것이 좋겠소이다.”
“그럼 더 좋지요. 조연의 아이인 왕현을 황실에서 인질로 잡고 조연은 초원으로 보내는 겁니다. 밀서와 함께.”
“밀서?”
“꼭 군사적으로만 이이제이를 쓰는 것은 아니지요.”
효종의 말에 상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초원이 송에서 머니 향수병이 생기겠구려.”
“그렇습니다. 조연만 역류를 하면 송군을 움직여 등주로 이동하는 신라방을 모두 척살할 것입니다.”
이것은 전중감에게는 엄청난 위기였다.
“신라방을?”
“송의 국부가 신라방으로 들어가 모두 고려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그냥 좌시할 일이 아닙니다. 또한 15만 이상의 사병들이 있는 신라방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고려의 군사들이나 다름이 없으니까요.”
“옳소이다. 짐이 돕겠소.”
“감사하옵니다.”
“그 대신!”
이제야 본색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하명하실 것이 있사옵니까?”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누구도 믿지 마세요. 송에는 고려의 간자가 충신보다 더 차고 넘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상황!”
그렇게 두 황제의 독대는 끝이 났다. 허나 그들이 의기투합한 것은 송의 불행이라면 불행일 것이다. 하지만 송황제 효종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고 했다.아니 고려의 책략은 가랑비 이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송의 내부에 신라방을 두고 있었고 그들을 적절히 이용하고 있었으며 아편을 통해 백성들을 썩게 하고 있었다. 또한 송의 해안에 출몰하는 수적들 역시 효종은 고려의 짓이라는 의심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연이다.조연을 통해 시간을 두고 송을 병합하려는 생각이 드는 효종이었다.
고려와 이렇게 척을 지고 위기를 자초하는 한이 있다고 해도 고려의 기운을 송에서 몰아내야 내일이 있다고 생각을 하는 그였다.
‘당이 수에게 썼던 것처럼 당할 수 있음이야!’그러고 보니 당을 선비족 계열 출신 귀족인 이연이 세운 대제국이었다. 선비족 역시 따지고 본다면 예맥의 한 갈래가 분명했다.
효종은 작금의 송이 수와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위태로움을 느끼는 효종이었다.
사실 수가 멸망한 것은 당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여 궁전을 짓고 운하(運河)를 열고, 세 차례나 고구려(高句麗) 정벌에 나섰다가 실패하면서 각지에서 농민반란이 일어났다.
그것이 근본적인 이유였다.
하지만 효종은 수가 멸망한 궁국적인 이유가 당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수가 멸망한 것은 각지에서 일어난 민란 때문이다. 또한 618년 장군 사마덕감과 우문화급이 쿠데타를 일으켜 양제를 목 졸라 죽임으로써 수나라의 짧은 역사는 끝이 났다.
그 후에 수와 당은 악연을 이어갔다. 그 후 양제의 손자인 양정도가 동돌궐의 지원을 받아 후수를 건립했으나, 630년에 당나라 군대에 의해 멸망했다.
그게 당이 수를 멸망시킨 거였다. ‘결국 제국을 망하게 하는 것은 내분이지. 고려가 조장하는 것이기도 하고.’효종은 그런 생각을 하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짐이 역신들을 처단해도 결코 고려는 그 어떤 군사적인 행동을 할 수가 없어. 금이 있으니 결코 움직일 수가 없어.’효종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판일 수도 있었다.그 어떤 국제정세도 급변할 수 있으니 말이다.
고려에게 금이 영원한 적일 수는 없다. 또한 금도 고려와 영원한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누가 뭐라고 해도 금의 뿌리인 여진 말갈족은 예맥의 또 한 뿌리이니 말이다.사신관 내부의 진문관의 내실.진문관은 초원의 전사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이것이 뭔가?”
“아편입니다.”
진문관의 지시를 받은 초원의 전사가 송의 백성들이 병자 같은 이유를 근방 찾아 올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송에 아편이 널리 퍼져 있다는 반증일 거다.
“이것이 독약이라는 건가?”
“독약 그 이상입니다.”
전사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 이상이라고?”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 겁니다. 이것 태워서 마시면 극락이 따로 없다고 합니다.”
“미혼약이라는 거군.”
“그렇습니다. 송의 백성들 중 상당수가 이것에 취해 있습니다.”
전사의 보고에 전문관이 미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왜 그러십니까?”
“나 역시 송인이네.”
“그렇지요.”
“허나 주군께는 잘된 일이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금을 치고 고려를 견제하면 송은 단번에 무너트릴 수 있다는 거지.”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백성이 썩어 있는 나라는 뿌리가 썩은 나무와 다를 것이 없지. 아무리 거목이라고 해도 뿌리가 썩어 있으면 약한 바람에도 쓰러지게 되어 있네.”
진문관의 말에 전사도 고개를 끄덕였다.
“잘된 일이군요.”
“금이 문제지. 아니 고려가 문제야!”
진문관도 금보다는 고려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어디서 흘러나오고 있는지는 알아봤는가?”
진문관의 지시를 받은 전사는 다른 전사 중에서도 아주 총명한 자였다. 또한 그는 송어도 쓸 수 있고 금어도 쓸 수 있는 초원의 석학이라 할 만 한 인물이었다. 또한 진문관의 제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진문관이 속내를 숨김없이 말하고 있는 거였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어딘가?”
“비밀아닌 비밀이었습니다.”
“비밀아닌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