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25권 -- >
“황제폐하!”
정도전이 나를 나직이 불렀다.
“참으라는 건가?”
“3년을 버텼사옵니다. 아직은 전쟁을 할 때가 아니옵니다. 금은 강성하옵니다.”
“절대 금과 전쟁을 할 수는 없다.”
나 역시 금과의 일전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당장의 고통 때문에 금과 전면전을 한다면 국운을 걸어야 한다.
물론 금을 점령할 자신은 있다. 하지만 고려 또한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그리 된다면 송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외교와 우방은 힘이 있을 때 관계를 유지하는 거다. 또한 초원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 금은 아니어야 한다.하지만 이 고려의 국란을 당분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른 곳으로 팽창해야 했다.
‘1년을 버티기 너무나 버겁구나! 그리고 만약 2년이라면,,,,,,,.’절로 인상이 찡그려지는 순간이었다.‘어디로 향해야 한단 말인가?’난 이미 전쟁을 결심했다.
정복하고 약탈할 곳이 어딘지 정하지 못한 거였다.고려의 주력군을 그대로 남겨두고 일부만 빼내서 공격해야 한다.
그에 합당한 곳을 아직 나는 찾지 못하고 있었다.저벅! 저벅!그때 내 내실로 향하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누굴까?’깊은 밤이다. 이 밤에 누군가 나를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밤에 나를 찾아 올 수 있는 자는 몇 되지 않는다.
“황제폐하! 개경공이 황제폐하를 뵙고자 들었나이다.”
내 내실 앞을 지키는 별초가 고했다.
“개경공이?”
개경공은 이의방이다.그는 개경공이 된 후로 개경에서 왕 노릇을 하며 서경에는 오지 않았다. 내 의중을 정확하게 파악한 그였다.
“그렇사옵니다.”
“뫼시어라!”
“뒤로 가 있게.”
“예.”
박위와 정도전이 급히 내실 뒤에 마련된 쪽방으로 향했다.
“신! 이의방 황제폐하를 뵈옵니다.”
내 장인 이의방이 내 앞에 머리를 조아렸고 난 그가 머리를 조아리기도 전에 뛰어 나가 그를 말렸다.
“장인 왜 이러십니까?”
내가 살갑게 그를 맞이하자 이의방이 나를 빤히 봤다.
“이 살가운 반김은 황제폐하의 마음과는 다르시지요.”
말에 뼈가 있다.
“예?”
“개경에서 웅크리고 있었나이다. 황제폐하의 뜻이 무엇인지 잘 알기에 뜻을 받잡았사옵니다.”
뭔가 결심을 하고 온 그가 분명했다.
“아시면서 어찌 말씀에 뼈를 담으셨습니까?”
난 차분하지만 차갑게 되물었다.내 말은 검이 되어 돌아갈 것이다.
“황제폐하! 진정 이연황후와 도를 죽이시려는 것이옵니까?”
“무슨 말이요?”
“쥐죽은 듯 있겠나이다. 다시는 이 요동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시면 바로 보지도 않겠사옵니다. 그러니 제발 도를 죽이지 마시옵소서!”
“무슨 말씀이십니까?”
“소신은 황제폐하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사옵니다. 강한 외척을 싫어하시는 마음도 너무나 잘 알고 있나이다.”
“그래서요?”
“그래서 그저 개경에서 왕 노릇을 하며 사옵니다.”
“그렇게 계속하시지 왜 오셨습니까?”
난 이의방을 노려봤다.그는 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개경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의 손자 왕도를 위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였다.
“이 노신! 황제폐하와 모든 것을 함께 했나이다. 또한 황제폐하의 구명지인이기도 하옵니다.”
구구절절하다.그것은 죽음을 각오하고 왔다는 말이다. 또한 이 모든 말을 상쇄시킬 뭔가를 가지고 왔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무엇이 있습니까?”
“이 노신은 이제부터 사병을 양성할 것이옵니다.”
이의방의 말에 난 인상을 찡그렸다.
“5만으로 부족합니까?”
이의방은 5만의 군사를 가지고 있다. 물론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은 1만도 되지 않지만 말이다.
“그 5만이 이노신의 병력이옵니까?”
작심을 한 것이 분명했다.
“무엇을 원합니까?”
그의 대답에 따라 난 또 한 번 위화도의 참혹한 짓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송의 신라방 본진에는 5만의 장정이 있고 각 분주마다 많게는 몇 천이 또 작게는 몇 백이 있사옵니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은 이 말인 거다.
“그 말씀을 하시고 싶은 겁니까?”
“이 노신의 목을 걸고 말씀 올렸나이다.”
이의방이 내가 잊고 아니 파악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그 목 자주 걸지는 마세요. 장인!”
난 무섭게 이의방을 노려봤다.
“한 번 이상은 아니 된다는 것을 이노신도 아옵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짐은 불쾌합니다. 이제 겨우 코 흘리게 아이들로 정쟁을 하시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망극하옵니다. 허나 소장은 숨기는 것이 없사옵니다. 허나 전중감은 숨기는 것이 너무 많사옵니다.”
옳은 말이다.이미 전중감은 신라방에서 나오는 막대한 자금을 이용해서 고려의 신하들을 포섭하고 있었다.
그저 이의방은 내 성정을 알기에 웅크리고 있는 거였다. “가까이 오세요.” 내가 고려의 견룡행수고 또 고려의 부마일 때 그리고 고려의 태자일 때 황실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환관과 궁녀들을 장악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지금 전중감이 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 황궁에도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자는 몇 되지 않았다. 황제가 되니 모두를 믿을 수 없는 내가 된 것이다. 그래서 내 내실이 있는 전각에는 환관과 궁녀가 없다.
“예. 황제폐하!”
이의방이 가까이 다가와 내게 머리를 조아렸다.
“나는 도입니다.”
난 아주 나직이 속삭였다.이 순간 이의방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 내려가세요.”
“예. 황제폐하!”
“아마 이 밤에 저를 찾으신 것 때문에 매섭게 한 번 혼이 나실 겁니다.”
내 말에 지그시 이의방이 입술을 깨물었다.
“예. 견딜 것입니다.”
“파락호가 되세요. 그럼 됩니다. 아시는 것처럼 제가 아무리 백화황후를 마음에 두고 있어도 제 마음에는 도입니다. 태후는 이연황후가 될 것입니다.”
더욱 나직이 말했다.이미 반쯤은 파락호가 되어 있는 개경공 이의방이었다.
“예.”
“하여튼 아주 좋은 정보를 알려주셨습니다.”
“황공하옵니다.”
“물러가세요. 전중감이 장인이 오신 것을 알 것입니다.”
“그럴 것입니다. 이 황궁에 그에게 뇌물을 받지 않은 자가 없사옵니다.”
“그런데 왜 이리 움직이셨습니까?”
“송구하옵니다.”
“물러가세요. 이게 마지막입니다. 저를 더는 의심하지 마세요.”
“알겠사옵니다.”
그렇게 이의방은 목숨을 걸고 내게 말하고 돌아갔다.그리고 정도전과 박위가 나왔다.
“개경공의 말도 깊게 생각하셔야 하옵니다.”
“뭐를?”
“고려에는 그의 사병이 기천에 불과하지만 송나라에 또한 금에 있는 자들까지 하면 15만은 족히 될 것이옵니다. 그들의 무예가 상당할 것이옵니다.”
“그 사실을 왜 보고하지 않았지?”
난 정도전을 노려봤다.
“망극하옵니다.”
“빠르게 그 수가 늘어나고 있었사옵니다. 3년 전만 해도 신라방 장정들이 2만이 넘지 않았사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15만 이상이 되었사옵니다.”
“이가 태어난 후부터이겠지.”
난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 생각을 해 보니 그렇사옵니다.”
“정했다.”
난 인상을 찡그렸다.
“무엇을 말이옵니까?”
“군사가 그리 많다면 뻗어나가야겠지.”
“예?”
정도전은 무슨 말인지 몰라 되물었다.
“전귀비의 조부의 공국을 찾아줄 때다.”
이것은 이이제이가 될 것이며 또한 외척의 힘을 꺾을 일이 될 것이다. 또한 막대한 식량을 약탈할 약탈 전쟁이 될 것이다.
“황, 황제폐하!”
“이런 것을 일석삼조라 하는 것이다. 또한 그 전에 파락호 개경공을 후로 강등하라.”
내 말에 정도전은 고개를 끄덕였다.이렇게 해야 전중감은 더욱 내게 충심을 보일 것이다.
“하오나 황제폐하!”
“또 뭐가 있지?”
“그러기 위해서는 신라방의 사병들이 고려로 집결해야 하옵니다.”
“요동으로 집결하는 것이다.”
“그리 되면 전중감의 세를 보여주는 꼴이 되옵니다.”
“반도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내 말에 정도전이 고개를 끄덕였다.
“왕이에게 나라를 이리 빨리 만들어 줄 주는 몰랐어.”
난 인상을 찡그렸다.전중감은 모를 것이다. 내가 그를 토사구팽 하고자 한다는 것을.
“그러고 보니 딱딱 맞아 떨어지는군.”
내가 이 정도로 말하면 정도전은 다 알아 들을 것이다.
“소신이 특히 금에 민란을 들끓게 하겠나이다.”
난 정도전을 보며 웃었다.
“그렇지. 그 정도로 머리가 돌아가야 내 책사 정도전이지. 하하하!”
몽고족이 고려를 흔들기 위해 민란을 조장했다.하지만 난 금이 오판을 하지 못하게 민란을 만들 것이다.
‘금에 숨어든 도천밀군을 사용하면 되겠어.’난 송나라 공주 조연과 함께 도천밀군을 몇 년 전에 중원으로 보냈다. 도천밀군의 주력은 송에 있지만 도천을 따르는 신도들은 금에도 있고 송에도 있고 먼 몽고에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내가 깔아놓은 포석이 하나하나 내게 힘이 되어 갔다.
“날이 밝는 대로 전중감을 대전으로 들라 하라.”
“어떤 벼슬을 내리고자 하시옵니까?”
역시 눈치가 빠른 정도전이다. 그저 박위는 입만 쩍 벌리고 있었다.
“어디가 좋을까?”
“개경공을 능가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개경후지.”
내 말에 두 신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사옵니다.”
“욕심이 생기게 하려면 아주 파격적이어야겠지.”
“파격이라 하셨습니까?”
놀란 정도전이 나를 봤다.
“귀비를 황후로 봉하면 될 것이네.”
“그리 되면 동등한 입장이 될 것입니다.”
“욕심이 생기면 눈이 멀지.”
이 순간 난 전중감을 토사구팽 시킬 초석을 깔고 있었다.5. 결코 황제들은 어리석지 않다.
(2)깊은 밤.경대승의 겔.겔 중앙에 피워놓은 화로가 거의 꺼지려하는지 마지막 불꽃을 활활 피우고 있었고 하염없이 그 불꽃을 보고 있는 경대승의 눈빛은 사납기만 했다. 하지만 그 사납기만 한 눈빛에는 108번뇌 이상의 번뇌가 춤추고 있는 듯 했다.그리고 그 화로 앞에는 며칠 전 피가 흐르는 고려출신 환관을 물어뜯던 사냥개 두 마리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깃덩이를 돌처럼 보며 웅크리고 있었다.
훈련이 된 사냥개다.피가 흐르는 고기 덩이는 절대 물어뜯지 못하도록 훈련이 된 사냥개였다.
“너희들은 나로 인해 야성을 잃었고 나는 그분 때문에 고국을 잃었다.”
그렇게 경대승은 마지막을 태우고 있는 화로에 뛰어들고 싶을 정도로 뚫어지게 지켜보고 있었고 침대에는 눈이 먼 홍련이 잠들어 있었다.
“너는 어디까지 타오를 것이냐?”
경대승은 화로를 보며 넋두리를 하듯 중얼거렸다.-스스로를 완전히 속이지 못하면 아무도 속일 수 없다네!마지막을 불태우듯 이글거리는 화로 속에서 환청처럼 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와 함께 경대승은 회상에 빠져 들었다.
“태자마마를 뵈옵니다.”
경대승이 초원으로 떠나는 날 밤에 고려의 태자였던 회생이 마지막으로 그를 은밀히 다시 찾았다.고려태자 회생의 등장에 경대승을 비롯한 길잡이까지 놀라 머리를 조아렸다.
“물러가 있으라.”
회생은 경대승과 같이 초원으로 떠날 자들을 물러가라 명했다.
“예.”
그렇게 경대승만 남기고 모두 마구간에서 물러났다. 그러고 보니 고려태자 회생도 혼자 이곳까지 왔다는 것에 경대승은 놀랍기만 했다.
“어찌 홀로 이리 행차를 하셨사옵니까?”
“차에는 독에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