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553화 (553/620)

< -- 간웅 25권 -- >10년 전만 해도 고려는 금이 소리만 질러도 벌벌 떠는 소국으로 전락했었다. 그걸 바로 잡은 것이 고려황제 회생이었다.

그 사실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자들은 모두 알고 있었고 누구보다 경대승은 그런 고려가 대제국으로 거듭나는 길에 일조한 자였다. 그래서 더 고려황제 회생이 가식적이고 사악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적이 있었지. 그런 적이,,,,,,,.”

잠시 경대승은 회상에 빠진 듯 중얼거렸다.

“살, 살려주십시오. 대인! 살려주십시오. 살려만 주신다면 뭐든 다 하겠사옵니다. 무엇을 시키시든 다 하겠습니다.”

환관은 목소리가 떨렸지만 그의 눈빛은 두려움 따위는 없는 듯 고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경대승이었다. 그리고 바지에 오줌을 싼 것도 의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 자가 이자뿐인가?”

경대승은 다른 전사들에게 물었다.

“밖에 아직 사신 몇이 있습니다. 바로 처단하겠습니다.”

그 말에 경대승은 환관을 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내 오늘 금에게 좋은 일을 하나 해 주는군.”

“예?”

초원의 전사들은 경대승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되물었다.

“그런 것이 있네.”

경대승은 금의 환관을 보며 사악하게 웃었다.

“너는 금의 환관이기 전에 아마도 고려의 간자일 것이다. 아니 그런가?”

경대승의 뜬금없는 말에 초원의 전사들과 칭기즈칸은 잠시 놀라 경대승과 금의 환관을 다시 봤다.

“어, 어찌 그런 말,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살, 살려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저는 그저 하찮은 환관에 불과하옵니다. 대인! 살려주십시오.”

환관은 바로 무릎을 꿇었다.

“왜 그러는가? 경대승!”

칭기즈칸이 물었다.

“고려의 간자입니다. 금의 황실에 침투한 고려의 간자가 분명할 것입니다.”

“저자가? 죽는 것이 두려워 바지에 오줌을 싸는 저 어리석어 보이는 환관이 말인가?”

“그렇습니다. 칭기즈칸!”

경대승이 다시 말하지 칭기즈칸이 고개를 끄덕였다.경대승이 그렇다면 그렇게 되어 초원인 것이다. 그만큼 경대승의 입지는 대단했다.

“재미있군. 고려라는 나라는 참 재미있어. 아니 대단하다고 해야겠어. 역시 고려에는 인재가 많은 모양이군.”

칭기즈칸은 진심으로 고려가 부러운 듯 말했다.

“고려황제가 치밀한 자이기 때문이옵니다.”

“간웅인 모양이군.”

“그저 간사할 뿐입니다.”

경대승은 싸늘하게 말했다.

“그런가? 그럼 나는?”

“영웅이 되실 겁니다.”

“경대승이 이제는 아부도 할 줄 아는군. 하하하! 계속 하시게. 금의 잡종들은 그 시체도 냄새가 고약하구나. 시체를 치우고 초원에 버려라. 이리의 밤이 되게 해 주거라.”

“예. 칭기즈칸!”

대망을 가진 칭기즈칸에게 복종을 요구했으니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또한 초원에서 몽고족을 협박하며 위협했으니 죽을 수밖에 없었다. 허나 너무나 어리석은 행동이 분명했다.그렇게 금 사신들과 금의 호위무장들의 시체가 질질 끌려 나갔다.이제 남은 것은 환관뿐이었다.

“너는 나를 알 것이다.”

“소인이 어찌 알겠습니까? 소인은 하찮은 환관에 불과하옵니다.”

턱!그때 경대승이 환관의 손을 잡아 손바닥을 봤다.

“이 손이 증거다.”

“예? 왜 이러십니까? 제 손이 무엇이 문제라는 겁니까?”

“너는 죽을 것이다. 이유가 있든 없든 내게 죽을 것이다. 그것이 내 실수라도 죽게 될 것이다. 그러니 더는 비굴해지지 마라! 별초라면 더는 목숨을 구걸하지 마라. 이런 손을 가진 자는 별초 밖에 없다.”

경대승의 말에 환관이 경대승을 노려봤다. 그리고 그의 표정은 빠르게 담담해지면서 밝아졌다.

“하하하! 경대승 장군! 소장을 알아봐주시니 감사하오. 옳소이다. 나는 별초이오. 오직 검과 같이 살고 충과 같이 산 별초만이 이런 손을 가질 수 있지요.”

“금 황실에 너와 같은 자들이 얼마나 있나?”

“소장이 그것을 말할 것 같소이까?”

“말해라.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따르기 전에. 편히 죽게 해 줄 것이다. 말을 한다면.”

“경대승 장군께서는 거짓말을 안 하시는구려.”

“뭐?”

“살려준다는 비열한 거짓말을 안 하셔서 하는 말씀입니다.”

“다시 묻는다. 금에 고려의 간자들이 얼마나 있느냐?”

“경장군이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많소이다. 경장군! 어찌 조국을 버리고 이곳에 계시오리까? 어찌 초원의 오랑캐에 의탁하여 계시오리까? 고려의 무장으로 부끄럽지 않소이까?”

환관은 경대승을 꾸짖듯 소리쳤다. 환관 역시 경대승이 이곳에 온 이유를 모르니 이러는 걸 거다. 경대승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오직 경대승과 고려황제 회생만이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 경대승은 조국 고려를 배신한 자에 불과한 거였다.환관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닥쳐라!”

“베시오. 나를 반드시 죽여야 할 이유가 있을 것이니 베시오. 이 초원민들은 오늘을 기억할 것이요. 고려인이 고려인을 죽였다고 그렇게 기억할 것이요.”

“네 뭐라 했느냐?”

“아무리 경장군이 초원을 위해 싸운다고 해도 결국 그대는 고려인이라 기억될 것이요.”

“뭐라? 네놈이 지금 위대한 전사들과 나를 이간질하려는 것이냐?”

“아무리 이곳에서 신임을 받는다고 해도 그대는 고려 사람이오. 그대의 부친이 공의작위를 받고 왕처럼 살고 있는데 어찌 이리 배신을 하신단 말이요. 황제폐하께서는 매년 그대의 부친의 생일날 친히 사가로 행차하시여 연회를 베풀고 계시오.

하늘과 같은 은혜를 이리 저버리는 것이요? 그러고도 그대가 인두겁을 쓴 사람이라 할 수 있소? 금수보다 못한 그대가 말이요.”

“닥치라고 했다.”

“베시오.”

“내가 너를 편히 죽일 것 같으냐?”

“한 번 죽는 목숨! 어찌 죽든 상관이 없소이다. 고려 무장의 삶이 이런 것이라도 나쁘지는 않소이다. 하하하!”

“네가 이리 죽는 것을 고려가 알까?”

“몰라도 상관이 없소이다. 나는 고려 무장으로 죽소이다.”

“그래 어디 보자.”

경대승이 환관을 노려봤다.

“칭기즈칸!”

“나를 부른 것이냐?”

“그렇습니다.”

“할 말이 있느냐?”

“내 주인께 마지막 절을 올리게 해주시오.”

순간 칭기즈칸은 충격을 받았다. 고려 무장의 기개가 이 정도라는 것에 놀란 것이다.

“뭐라 했느냐?”

“신하된 자로 예를 드릴 수 있게 해 달라고 했소.”

“으음,,,,,,.”

칭기즈칸은 신음소리를 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로 환관은 몸을 고려 쪽으로 돌려 마치 자신의 앞에 고려 황제 회생이 있다는 듯 크게 삼배를 올렸다.

“황제폐하! 고려를 위해 천수를 누리소서!”

그렇게 삼배를 올리고 당당히 다시 경대승을 노려봤다.

“이제 마음대로 하시오. 경장군.”

“여봐라!”

“예.”

“끌고 가서 말뚝에 묶어라.”

“예. 알겠사옵니다.”

칭기즈칸도 경대승이 흥분해 이성을 잃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말리지 않는 칭기즈칸이었다.그렇게 환관은 밖으로 끌려 나갔다.

“경대승!”

“예. 칸!”

“그대가 흥분하는 것은 처음 본다.”

“송구하옵니다.”

“그건 그렇고 고려가 난 무서워졌다.”

칭기즈칸은 솔직하게 말했다.

“충분히 경계를 하셔야 하옵니다.”

“고려에 저런 충성스러운 무장들만 있다면 쉽게 정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사옵니다. 어쩌면 금보다 고려가 더 벅찬 상대가 될 것이옵니다.”

“옳다. 그래서 나는 그대의 간언대로 나이만으로 말머리를 돌릴 것이다. 그리고 금을 칠 것이다.”

“예. 알겠사옵니다.”

“송과 외교라는 것을 해야겠다.”

“누가 좋겠나?”

“중원인인 진문관이 어떻사옵니까?”

“진문관?”

“그렇사옵니다.”

“그렇게 하지. 우선 송과 화친을 하고 고려와는 혼맹을 더욱 돈독하게 하는 모양새를 취해야겠다.”

“잘 생각하셨사옵니다.”

“적을 속이지 않고 이길 수 없다.”

칭기즈칸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3. 조동희가 가지고 온 것.황궁 황제의 내실.내 앞에 제주목사이며 수군 총사령관인 조동희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짧은 순간이지만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나는 쉽게 조동희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물을 수가 없었다.

그가 실패를 했다고 말하는 것을 내가 듣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그에게 물어야 했다. 이 기나긴 가뭄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원정 거함에서 가지고 올 감자와 옥수수이니 말이다.

“으음,,,,,,,.”

난 조동희에게 묻기 전에 다시 한 번 길게 신음소리를 냈다. 그가 실패를 했다면 고려는 아주 오래 가뭄과 기아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가뭄과 기아를 이겨내기 위해 다른 제국의 정복자들처럼 나는 극단적인 정복전쟁을 일으켜야 했다.

그렇게 된다면 승리할 가망이 그리 크지 않다. 이길 수는 있으나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게 고려의 현실이었다.

“폐하!”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옆에 있던 정도전이 조심히 나를 불렀다.

“으음,,,,,,,.”

“하문하시오소서!”

먼저 조동희가 입을 열었다.

“어찌 되었나?”

난 조심히 조동희에게 물었다.

“겨우 3년 만에 점령했사옵니다.”

“그런 거 말고.”

열도를 정벌하기 위한 기초를 닦는 것은 지금 이 순간 고려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는 일이었다.

“원정 거함은 어찌 되었냐고 물었다.”

중요한 순간이었다.

“돌아 왔나이다.”

“돌아 왔다고?”

난 순간 표정이 밝아졌다. 드디어 3년 만에 원정 거함이 돌아왔다. 된 것이다. 그럼 된 것이다.

“그렇사옵니다.”

“무엇을 가지고 왔는가?”

내가 그려준 그림대로만 가지고 왔다면 고려는 오랜 가뭄을 이겨낼 수가 있을 것이다. 당장은 아니라고 해도 그리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옵니다.”

그러고 보니 조동희의 옆에 작은 목함이 놓여 있었다.

내 조급한 마음이 목함을 보지 못한 거였다.조동희는 조심히 내게 목함을 내밀었다.

“무, 무엇이 들어 있나?”

“보시옵소서.”

제발 이 순간 내가 원하는 것이 간절히 들어 있기를 바란다.그리고 난 천천히 목함을 열렸다.

“으음,,,,,,,,.”

내 신음소리에 정도전과 조동희는 숨을 죽였다.

“수고했네!”

드디어 온 것이다. 드디어 이 고려에 배곯는 자들을 배불리 먹일 것이 온 것이다.

“그것이옵니까?”

“그래! 수고했어. 이것이야! 이것이면 고려는 이제 배곯는 백성은 없을 것이야!”

물론 이것으로 당장 기아에 허덕이는 백성들을 배불리 먹일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몇 년은 걸릴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되나?”

“거함 화물칸에 한 가득이옵니다.”

놀라운 일이다.

“한 가득?”

“그렇사옵니다. 황제폐하께서 그려준 그림 그대로 가지고 왔나이다.”

“어디에 있나?”

역시 조동희는 남다른 무장이었다.

“제주에서 재배를 하고 있나이다.”

귀가 번쩍 열리는 순간이었다.

“제주에서?”

“그렇사옵니다. 올 가을이면 추수를 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얼마나 먹일 수 있을 것 같은가?”

“아마도 족히 50만은 먹일 수 있을 것이옵니다.”

이제 1년이면 되는 것이다. 그 50만을 먹일 수 있는 감자와 옥수수가 종자가 되어 고려의 백성들을 배 불리 먹이게 될 것이다.

“참고 이겨내는 시간이 이제 1년이면 되는 것이군.”

“그렇사옵니다. 황제폐하!”

“수고 했다. 다른 것은?”

간절히 바라는 것이 내 수중에 들어왔으니 이제는 원정거함의 성과를 알고 싶었다.조동희의 원정 거함은 아마도 신대륙에 도착했다가 귀한 한 것이 분명할 거다. 옥수수와 감자는 그 신대륙에만 있으니 말이다.역시 내가 원하는 것이 다 이뤄진 거다.

“그곳에는 땅이 아주 넓었다고 했사옵니다.”

“그래?”

미소가 절로 머금어지는 순간이다.

“그렇사옵니다. 머리에 새의 깃을 꽂은 자들도 있고 사나운 야만인 같은 자들도 있었사옵니다.

” 역시 신대륙에 가서 그곳의 원주민인 인디언들을 만난 모양이다.

“그런가?”

“그렇사옵니다. 거친 자들도 있었다고 하옵고 군사들에게 호의적인 자들도 있었다고 하옵니다.”

“그럴 것이다.”

“오래 머물지는 못했사오나 천지에 황금이 가득했다고 하옵니다.”

“황금이?”

“그렇사옵니다.”

신대륙에서 황금이 떠오르는 것은 잉카제국이다.황금의 제국 잉카!

“그렇사옵니다.”

신대륙에서 황금이 떠오르는 것은 잉카제국이다.황금의 제국 잉카!조동희의 원정거함이 황금의 제국 잉카인들을 만난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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