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25권 -- >쉬이이잉!다시 한 번 차고 마른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은 경대승에게 매서운 검이 되어 지친 패부를 찌를 것이다. 고려황제의 명에 의해 정도전이 건넨 차의 부작용으로 경대승은 심한 폐병을 앓고 있었다.
“쿨럭! 쿨럭! 으윽!”
“바람이 차군!”
칭기즈칸은 거친 기침을 하는 경대승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경대승을 보는 칭기즈칸의 눈빛은 보기 싫은 것이 아니라 너무도 걱정되어 근심하는 그런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고려 황제 회생처럼 절대자이기에 겉으로 내색하지 않을 뿐이었다.자신은 군주고 경대승은 어찌 되었던 신하이니 말이다.
“송구하옵니다. 칭기즈칸!”
“경대승!”
칭기즈칸이 찬찬히 경대승을 봤다.
“예. 칭기즈칸!”
“저 초원을 봐라!”
칭기즈칸은 황송이 자신의 손을 들어 지평선 저 끝까지 가리켰다.
“소신이 무엇을 봐야 하는 것입니까?”
“저기 동남쪽 끝에서 그대가 내게 왔지.”
칭기즈칸은 거의 횟수로 4년 전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벌써 4년이 지난 것 같습니다.”
“그때의 난 포로의 신분으로 목에 칼을 차고 지금보다 더 거친 바닥에 쓰러져 있었지. 누구하나 내게 손을 내밀어준 자 없었고 동족도 혈족도 나를 모두 버리고 떠났을 때다.”
“끝까지 기억하셔야 할 기억일 것입니다.”
“그래! 뼈에 새겼다. 그날을 칭기즈칸인 나는 뼈에 새기고 마음에 담았다.”
“그러서야 합니다.”
“네가 내게 온 그날 이후 나는 변했고 내 부족은 강성해졌다.”
담담히 말하는 칭기즈칸이지만 그의 눈빛에는 그날의 기억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 같았다.
“모두가 영민하신 칭기즈칸의 영광이옵니다.”
“아니 그대의 공이고 배려다. 그 역시 잊지 않을 것이다. 경대승 그대가 내게 검을 겨눈다고 해도 나는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가 없다면 오늘의 칭기즈칸인 나와 강성한 초원의 부족도 없을 것이니 말이다.”
“듣기 만망하옵니다. 칸!”
“아니 현실이다. 초원의 들개들을 진정한 푸른 늑대의 자손으로 만들어준 것이 그대다.”
“소신은 그저 칸을 보필한 것 때문입니다.”
과거를 회상하고 있는 두 사내의 눈빛에는 서로의 믿음이 가득했다. 그렇게 그런 믿음의 눈빛 속에서 칭기즈칸은 묵묵히 경대승을 봤다.
“내가 지배하는 이 초원에는 거목이 없다.”
칭기즈칸은 뜬금없는 소리를 꺼냈다.
“무슨 말씀이신지,,,,,,,,.”
“예전에는 이 초원을 버티게 할 거목이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초원이 가지지 못한 거목이 있다. 그 거목이 쓰러진다면 나도 크게 흔들릴 것이다. 나는 야망이 크다. 가지고 싶은 것이 많다. 그리고 아직 많은 날들을 살아야 한다. 그러니 경대승 너는 쓰러지지 않는 거목이 되어라.”
“칸,,,,,,,.”
다시 말해 초원의 지배자 칭기즈칸에게 경대승은 쓰러져서는 안 되는 거목이었다.
“아프지 말란 말이네. 내 유일한 걱정은 그대의 병이다.”
자신의 옆에 다른 신하들이 없었다면 칭기즈칸은 경대승에게 형이라고 말했을 거다.
“알겠사옵니다. 각별히 신경을 쓰겠습니다.”
경대승의 말에 칭기즈칸이 고개를 끄덕였다.18살!겨우 18살의 사내가 27살의 경대승을 몇 마디로 충성케 하고 있었다. 그만큼 칭기즈칸은 영웅이 되기 충분한 존재였다.고려 황제 회생이 간사하고 비열한 간웅에서 시작했다면 칭기즈칸은 처음부터 영웅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이 초원이 더 강성해지고 내 전사들이 더욱 강성해지는 방법이 뭘까?”
경대승의 건강을 걱정하던 칭기즈칸은 이제는 자신의 군사들을 강하게 만들 방법을 경대승에게 물었다.
“지휘체계를 명확하게 하고 신상필벌을 확실하게 하면 강한 전사들이 모일 것입니다.”
“초원에는 내가 바라는 중원에 비해 사람의 수가 없다. 그건 다시 말해 전사가 될 존재도 부족하다는 거다.”
칭기즈칸의 걱정은 가뭄 때문에 불어나지 않는 인구수였다.
“갑자기 인구를 늘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
“허나 유입시키는 방법은 있을 것입니다.”
“유입을 시켜?”
“그렇습니다. 이칸국의 색목인들을 받아드리시고 또 칸께서 원수로 여기시는 타타르를 칸의 백성으로 흡수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칭기즈칸인 나를 위해 화살을 맞고 목숨을 내놓을까?”
“그에 합당한 보상이 있다면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노획물을 말하는 건가?”
“그 이상입니다.”
“그 이상이다?”
“그렇습니다.”
“고려해 보지.”
칭기즈칸은 항상 즉답을 내리지 않았다. 그래도 되는 것은 당장 시행할 일을 묻는 경우는 없었다. 자신이 질문을 하고 경대승이 답을 줄 때 충분히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의 여유를 두고 묻는 그였다. 그리고 또 하나 있사옵니다.”
“뭔가?”
“초원의 부족 간의 약탈과 침략을 금지하여야 하옵니다.”
“약탈과 침략을?”
“그렇사옵니다. 혹독한 겨울이 되면 강한 부족이 약한 부족을 공격하여 죽이고 빼앗습니다. 초원에는 법이 없습니다. 그건 다시 말해 칸께서 보시지 않고 들리시지 않는 곳에서는 칭기즈칸의 근엄은 없다는 것입니다.”
경대승의 말에 칭기즈칸이 인상을 찡그렸다.칭기즈칸은 과거 떠오르는 것 같았다.
칭기즈칸은 몽고 초원 오논 강 유역 숲에서 보르지긴 씨족 예수게이와 올크누트 부족 출신 후엘룬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다. 그의 탄생부터 약탈과 납치 그리고 침략이 존재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칭기즈칸의 모후인 후엘룬은 메르키트 부족 전사의 아내였으나 예수게이에게 납치당해 아내가 됐다.예수게이에게는 이미 첫 부인 소치겔과의 사이에 아들 벡테르를 두고 있었다.
새로 태어난 아이의 이름은 테무친이라고 지었다.테무친은 예수게이가 죽인 타타르족 전사의 이름이었다.
왜 그렇게 이름을 지었을까? 자신이 죽인 자의 이름을 아들에게 줬을까?그것이 바로 거칠고 힘이 지배하는 초원의 현실이었다. 강하지 않으면 죽임을 당한다. 그러니 강해야 한다.
예수게이는 아마도 자신이 죽인 타타르족 전사의 이름을 기억하며 강해지려 노력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게이는 테무친을 부르테와 약혼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타타르족 야영지를 방문했다가 독살당하고 말았다.
두 아내와 10살이 안 된 자식 일곱 명이 남겨졌다. 아마도 빼앗기고 침략당하고 위협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게 12세기 당시 초원 지대에는 수십 개 부족과 씨족들이 전투, 사냥, 유목, 약탈, 납치, 교역 등으로 생존을 이어가고 골 깊은 원한으로 하나의 몽고족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금할 것이다.”
“그리 하셔야 할 것입니다.”
“또?”
“몽고족을 노예로 삼지 못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왜지?”
“국가를 이루는 요소에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있사옵니다. 소수의 핵심이 다수의 우매한 자들을 지배하며 그들에게 한없는 복종심을 불러내는 것이 바로 정치입니다.”
“그런가?”
“그렇사옵니다.”
“몽고인이 노예가 된다면 그들은 절대 칸의 위해 목숨을 내놓지 않을 것입니다.”
“알았다.”
18살의 칭기즈칸이 환하게 웃었다.
“또한 금을 항상 경계하셔야 할 것입니다.”
“알고 있다. 금은 초원의 전사들을 두려워한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서로 원수처럼 지내게 만들고 이 초원에 전운을 불러 몰고 온다.”
“그렇습니다. 명확하게 보셨습니다.”
칭기즈칸은 왕칸을 제거하기 전 왕칸과 함께 한 타타르 원정에서 대승을 거둔 후에 그 일을 배후에서 조종한 것이 금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금나라가 타타르, 케레이트, 몽골 등 여러 부족들을 서로 싸우게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며 그 전쟁들에 의해 초원의 부족들이 하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자신만 해도 해묵은 원한으로 타타르를 원수처럼 여기고 있었으니 말이다.
“고려는 어떤가?”
칭기즈칸은 경대승이 고려에서 왔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색목인이라 하기에는 머리가 너무 검고 중화인 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영민했다. 그러니 남은 것은 고려인뿐이었다.
“고려 말이옵니까?”
“동북의 강자가 고려다. 고려는 이제 옛 대국의 위엄을 되찾았다.”
칭기즈칸이 말한 대국은 바로 고구려를 의미할 거다.
“그렇습니다. 고려는 강합니다. 또한 강군정책으로 더욱 강해졌습니다.”
“약점이 없을까? 송은 풍요하나 비겁하고 금은 군사들은 많으나 장수들이 썩었고 병사들은 허벅지에 살이 붙어 송인과 다름없어졌다. 고려는 어떤가?”
칭기즈칸은 은연중에 고려를 적으로 여기고 있었다. 이것이 몽고와 고려의 숙명일 것이다. 그리고 역사라는 괴물은 변해버린 현실과 미래를 제자리로 돌려놓으려는 회귀 본능이 있는 것 같다.
“고려는 오랜 가뭄으로 지치고 갑작스럽게 영토가 늘어 백성의 수가 증가하여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딱 지금 공격하기 좋다는 거군.”
“몽골의 전사 한 명이 고려병사 몇을 상대 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일당백은 아니겠지만 현실적으로 전사 하나당 고려병사 다섯은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칸의 전사를 너무 과대평가 하시고 계십니다.”
“고려의 병사가 그리 강하다는 건가?”
“초원의 전사들이 강한 이유는 오랜 약탈과 전쟁에 단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고려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오랜 대전투에 의해 강해졌습니다. 또한 각종 신무기가 있다는 첩보이옵니다.”
“고려를 아직 도모하기 어렵다는 건가?”
“국운을 걸고 싸울 때는 아니라는 사료되옵니다.”
“국운을 걸고?”
칭기즈칸은 순간 가슴에서 뜨거운 무엇인가가 요동치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이 거대한 초원에 누구하나 국가를 세운 자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신하가 국운이라고 말했다. 그건 다시 말해 자신 스스로 이제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있는 거였다.
“그렇습니다.”
“내 전사의 수가 10만이다.”
“고려의 병사의 수가 족히 적게 잡아도 50만은 될 것입니다.”
“다섯 배이군.”
“그렇습니다. 또한 고려황제는 뛰어난 책략가입니다. 소수의 병력으로도 수배나 많은 적을 상대할 수 있는 지략이 있사옵니다.”
“내게는 그대가 있다.”
“황공하옵니다.”
“초원의 주인인 내가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이 없다. 색목인을 받아드리고 색목인의 기술을 받아드릴 것이다. 그리한다면 고려든 금이든 두려워 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렇사옵니다. 칭기즈칸!”
거친 바람이 부는 이 초원에서 칭기즈칸과 경대승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것은 이제는 몽고족이 오랜 가뭄에 더는 버티지 못한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어디든 나가야 했고 그것이 칭기즈칸의 대망의 시작일 것 같았다.
“그럼 어디가 좋겠나?”
“어디로 생각하십니까?”
“초원의 10만 전사들이 어디로 향할까?”
칭기즈칸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거친 가뭄이 잠자고 있는 초원을 깨우고 있는 거였다. 아니 깨어나야 했다. 깨어나지 않는다면 하나로 통합된 이 초원이 언제 다시 분열할지 몰랐다. 그것을 너무도 잘 아는 칭기즈칸이었다.그리고 벌써 하나로 통합된 초원을 금나라는 와해시키기 위해 많은 공작들을 해오고 있었다.
“금일까? 아니면 고려일까?”
그 어떤 곳을 선택해도 대담한 결정이 분명할 것이다.
“금도 고려도 아직은 아니옵니다.”
“그럼 어딘가?”
“나이만입니다.”
“나이만?”
칭기즈칸은 경대승의 말이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