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25권 -- >
“으음!”
난 바로 고서기의 모습을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황제폐하를 뵈옵니다.”
“무슨 일인가?”
“급한 일이옵니다.”
“무엇이 그리 급하기에 짐의 산책을 훼방 놓는 것이냐?”
정말 모처럼의 산책이었다. 그것도 내가 가장 아끼는 목련 공주와의 산책이었다. 그런데 그걸 지금 방해 받고 있는 거였다.
중대한 일이 아니라면 내 고서기를 심히 질책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진정 급한 일이겠지. 그렇지 않고서는,,,,,,,.’이 요동성에 있는 신하들은 내 어심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모두 안다.
그것이 권력의 속성이다.비록 백화황후가 나를 위해 황자를 생산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내 어심이 그녀를 향해 있고 내 의중에 백화황후가 있다는 것을 다 안다.
또 어떤 말하기 좋아하는 아첨꾼들은 훗날 고려에 최초로 여황이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한다. 물론 은밀히 이뤄지는 이야기지만 내가 돌아 들을 수 있게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건 내 어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주절거리는 소리다. 우리의 역사 중에 여왕이 등극한 경우가 몇 번 있다. 하지만 태평성대를 이루고 시대를 발전시킨 여왕은 극히 드물다.
신라의 선덕여왕을 떠올리겠지만 그녀 역시 크게 번성한 신라를 만든 여왕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여왕은 실패를 했다.마음이 여려서 실패를 하고 또 독해서 실패를 했다. 그러니 고려에 여황의 등극은 있을 수 없다.
그걸 모르는 아첨 배들인 거다.난 그런 생각을 하며 고서기를 째려봤다.
아마 고서기도 내 용안이 어둡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니 바짝 저리 긴장한 듯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제주목사 조동희가 상소를 올렸나이다.”
“상소? 조동희 목사에게서 연락이 왔다는 건가?”
순간 귀가 번쩍 뜨이는 것 같았다. 제주목사면 내가 많은 밀명을 내린 자였다.또한 고려 수군의 9할 이상이 제주에 있다.
그리고 그 수군의 임무는 고려 발전을 위해 반드시 이뤄야 하는 일이었다.
“그렇사옵니다. 황제폐하!”
“내용이 무엇이냐? 멀리 나간 거함들이 돌아왔다더냐?”
제주목사 조동희에게서 내가 보고 싶은 상소는 신대륙을 찾아 나선 원정 거함들이 돌아왔다는 상소였다. ‘그래! 벌써 3년이 지났어. 돌아오고도 남을 시간이다.’난 잔뜩 기대를 하며 고서기를 봤다. 하지만 내 눈빛을 피하는 것이 원정 거함이 돌아온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제주수군이 류큐국을 완벽하게 점령했다고 하옵니다.”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겨우 3년 만에 그 작은 섬을 이제야 점령하고 장악했단 말이야? 그럼 언제 왜구가 들끓는 열도를 점령한단 말이야! 제주 수군의 남벌의 목표는 왜고 왜의 조정을 완벽히 무력화시켜서 유황과 철을 조공케 하는 것이다.”
내가 여전히 현대인이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일본이라는 열도에 악감정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강성해지는 것을 막고자 했다. 또한 왜를 점령한다면 그것을 발판으로 고려로 향하는 왜구를 송의 근해로 보낼 수 있다.지금 제주수군이 왜군으로 위장에 송의 연안을 교란하고 있지만 그것은 송을 겨우 괴롭히는 일에 불과하다. 그러니 본격적으로 왜의 주력 수군이 왜구가 되어 송을 압박해야 했다.
그런 후에 제주수군을 주축으로 하는 고왜 연합군이 대단위 수군 군단을 편성하여 먼 바다로 나가 현대의 베트남과 필리핀을 점령하는 것이 내 남벌의 정점이었다. 그래야 지금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곡물 수입의 단가를 낮출 수 있고 또 한 번 송을 압박 할 수가 있다.
결국 금과는 전쟁으로 좌웅을 가려야겠지만 송은 외교와 이이제이로 압박을 해서 굴복시킬 참이었다.그렇기 때문에 고려수군의 남벌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남벌로 수군의 전투력을 향상시키고 끝내 마지막으로 송을 칠 때 전 방위 적으로 압박을 하는 것이야!’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고려 수군의 남벌은 많은 의미를 담고 많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그 엄청난 계획의 시작이 류큐국의 병합이었다.
그것을 이제야 겨우 이뤄낸 거였다. 3년 만이다.거대한 요동을 점령하고 나서도 3년이 지나서야 끝내 정복한 거였다.
이 정도의 시간이 걸린 것은 공이라고 할 수 없다.‘조동희가 어리석은 자는 아닐 것인데,,,,,,,.’난 조동희의 능력을 높게 평가한다. 그러니 3년의 시간이 걸린 이유는 충분히 있을 것이다. 그래도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송구하옵니다. 황제폐하!”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공주 목련이 조양의 뒤에 숨었다. 아마 공주 목련에게는 조양이 든든한 버팀목이 분명할 것이다.
“매번 송구하기만 해서 되겠는가?”
내 말에 고서기는 다시 머리를 조아렸다.
“송구하옵니다. 황제폐하! 그리고,,,,,,,.”
“그리고 뭐?”
“조동희 제주 목사가 대전으로 와 있사옵니다.”
저 멀리 제주에서 고려 모든 수군을 통제하고 있는 조동희가 이 요동까지 왔다고 했다. 그건 뭔가 엄청난 것이 있다는 반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먼저 요동으로 왔다는 보고를 했다면 이리 화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
“왜?”
“상세한 내용은 모르겠사옵니다. 제주목사 조동희가 황제폐하의 독대를 청하고 있사옵니다.”
“알았다.”
난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3년이 지났다. 그 세월이면 신대륙을 찾아 나선 선단이 돌아오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원정 거함대가 돌아왔다는 보고라면 좋을 것을!’다시 한 번 그 생각이 간절했다. 그 간절함 때문인지 마음이 급해졌다.
그때 저 멀리서 박위가 달려왔다.박위가 뛴다는 것은 민란을 의미한다.
박위는 고려에서 나의 부름을 받고 와 이 요동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었다. 나는 철저하게 내정과 국방을 분리했다.
한마디로 현대적으로 경찰과 군대를 따로 둔 거였다. 금강야차 이의민과 무제 그리고 조양이 고려 북군을 각각 10만씩 나눠서 지휘하고 있었다.
남군은 이의방이 5만을 거느리고 있었고 이고 외숙이 5만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가신인 왕준명과 박현준이 10만의 별초를 강원도에서 거느리고 있었다. 예비군이라고 할 것이다.
물론 왕준명과 박현준은 이미 이 요동으로 와 있지만 말이다.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친위대인 소포와 대포로 무장한 고려 화포군이 있다.
그 수 역시 10만이었다. 마지막으로 경찰청장이나 다름이 없는 박위가 5만의 경찰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어떤 어리석은 신하들은 그들 때문에 백성들이 굶주린다고 말한다. 그들이 먹는 군량이면 굶주린 백성을 충분히 먹일 수 있다고 소리친다.
하지만 그들이 없다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금이 이 고려를 공격할 것이라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이 고려가 강성한 금과 풍족한 송 그리고 초원을 통일한 테무친의 위협에서 버틸 수 있는 것은 바로 70만의 군사들 때문이었다. 물론 남벌을 진행하고 있는 고려수군을 제외한 육군이 70만에 육박하는 거였다.
“뒤에 박위 청장이옵니다.”
조양도 걱정스러운지 내 어심을 살피며 나직이 말했다.박위가 뛰면 민란이 일어났다는 거다. 그가 저리 황급히 뛰는 일은 굶주린 백성들에 의해 일어난 민란 때문이니 말이다.
“젠장!”
“황제폐하를 뵈옵니다.”
박위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뭔가?”
박위가 내 눈치를 봤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말을 더듬지 않는다.
“신성에 민란이 일어났사옵니다.”
“신성에?”
이번에는 신성이란다. 저번에는 개모성이었는데 지금은 신성이라니 답답한 노릇이다.
“그렇사옵니다. 황제폐하!”
“굶주린 백성들이겠지. 또 그런 것이지?”
“그렇사옵니다.”
이렇게 고려를 위태롭게 하는 적은 외부의 강성한 적이 아니라 부족한 식량이었다. 그리고 굶주린 백성들의 불만일 것이다. 또한 3년 동안 이어진 흉년 때문일 것이다. 그 흉년 때문에 막대한 자금이 곡물을 드려오기 위해 참파와 대월국에 흘러가고 있었다. 국부의 유출 때문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이번에는 신성이란 말이지?”
“그렇사옵니다. 황제폐하!”
“신성으로 이주한 백성들의 출신이 어디지?”
“전라도 이옵니다.”
“전라도 백성들이라고?”
나는 절로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고 보니 매번 민란을 일으키는 곳에는 전라도에서 이주한 백성들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다. 그들은 풍요한 옥토에서 배불리 먹던 고려의 백성들이니 말이다.
“대전으로 가자!”
난 그렇게 백화황후와 공주 목련에게 간다는 말도 없이 급히 대전으로 향했다.고려 황제 회생이 멀리 대전으로 향하고 있었고 그 모습을 백화황후가 차분히 보고 있었다.
“부마!”
“예. 황후마마!”
“그대가 황제폐하를 성심으로 도우세요.”
“알겠사옵니다.”
“이 황후가 믿는 것은 부마 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예전 공예태후가 부마였던 회생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리고 지금 조양에게 고려의 황후가 되어 있는 백화가 부탁을 하고 있었다.어쩌면 고려는 부마의 나라일 것이다. 회생이 황제가 되고 또 상당한 권력을 새로운 부마인 조양이 쥐고 있으니 말이다.
예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예전의 고려 황실은 나약했지만 지금의 고려 황실은 그 어떤 제국의 황실보다 강건하다는 거였다.
“조양공.”
조양은 공이라고 불렸다.어린 목련 공주가 조양을 불렀다.
“예. 공주마마!”
“아바마마께서 화나지 않게 해 줘요.”
이제 겨우 3살인 목련공주도 회생이 화를 내는 것을 걱정하듯 말했다.
“알겠사옵니다.”
“난 아바마마가 화를 내면 무서워요.”
“소신도 그렇사옵니다.”
“정말?”
“예. 공주마마!”
조양의 말에 목련공주가 환하게 웃었다.
“소신 물러가겠사옵니다. 황후마마!”
“그렇게 하세요.”
조양이 목례를 하고 회생이 향한 대전으로 달려갔다.울란바타르 근방의 대초원.쉬이잉~초원에 바람이 분다. 봄이지만 찬바람은 여전했고 풀들은 바짝 말라 있었다.
초원도 3년째 가뭄에 허덕이고 있었다.
“바람이 말라 있다.”
방년 18세가 되는 테무친이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고 한줌의 흙을 들어 부는 바람에 날리며 말했다.
“칭기즈칸! 가축들도 바짝 말라 있습니다.”
겨우 18살 되는 테무친은 이미 자신의 신하들에게 칭기즈칸이라고 불렸다.그렇게 초원은 변해 있었다.
그렇게 고서기가 다녀가고 홍련이 고려의 공주가 되어 그 곳에 남은 지 3년이 지났고 많은 것이 또 변했다. 홍련은 경대승과 혼례를 치뤘지만 경대승이 테무친과 같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탈출을 시도하다 잡혀 두 눈에 멀게 만드는 약초를 강제로 먹게 만들어 장님이 되어 있었다."저를 그냥 죽이세요."홍련은 두 눈이 멀게 되었을 때 경대승에게 죽여달라 말했었다."난 고려가 싫다.
황제폐하가 싫다.
"경대승은 고려황제 회생을 증오하고 있었다."저에 대해 아시면서 저를 왜 죽이지 않죠?"
"내 향수병을 달래 줄 수 있는 존재가 너이니까. 너는 나의 앵무가 되어라."
"뭐, 뭐라고요?"그날 이후 홍련은 장님이 된 상태로 경대승의 겔에 갇혀 지내야 했다. 그러니 고려에서는 경대승이 테무친과 같이 있다는 것을 알 턱이 없었다.또 테무친의 유일한 맞수라고 할 수 있는 왕칸은 금제국의 보낸 황금과 미녀에 취해 금의 개가 되어 고려를 급습했고 그것을 계기로 극렬하게 대항을 하던 오녀산성의 성주 배극염이 고려군에 향했던 검을 꺾고 나와 오녀산성을 공격했던 조양과 합심하여 왕칸의 초원의 전사 군대를 물리쳤다.
그것이 고려군과 후발해 부흥군의 첫 화합이었다.그 일로 군사적 피해는 상당했으나 같이 외세를 몰아냈다는 합심이 생겼다.
그리고 왕칸은 4만 초원의 기병을 모두 잃고 초원으로 패퇴하였고 끝내 웅크리고 있던 테무친의 군사들에 의해 부족이 멸망하게 되었다.결국은 테무친이 초원을 통일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칭기즈칸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고려와 금의 외교 전쟁이 있었고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고려의 지원이 있었다. 고서기가 가지고 간 엄청난 양의 식량과 기름이 있었으니 그 혹한에도 테무친의 군대는 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렇게 테무친은 경대승과 함께 초원을 일통했다.그때 테무친의 나이 겨우 15살이었으니 이제는 18살의 테무친일 것이다. 또한 경대승의 나이가 28살이다.
사실 바뀌지 않은 역사에 의하면 테무친이 27살 되던 해에 옹 칸의 승인 아래 전통적인 씨족, 부족 회의인 쿠릴타이를 소집하여 칸의 칭호를 차지했다.하지만 역사는 바뀌었고 겨우 18살짜리 소년이 몽고의 주인이 된 것이다.
그를 초원의 주인으로 만든 자는 경대승일 것이다. 또한 왕칸을 제거할 역사적 배경을 만든 것은 회생일 것이다. 그렇게 테무친은 장성하기도 전에 초원의 지배자가 되어 있었다.
“어찌해야 할까? 경대승!”
칭기즈칸은 이제는 경대승을 형님이라 부르지 않았다.
초원의 지배자 칭기즈칸이 되었으니 함부로 누군가를 높여 부를 수가 없었다.
“버텨낼 수 없다면 뻗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칭기즈칸!”
“우리는 이제 버틸 수 없다.”
툭툭!칭기즈칸이 손을 툭툭 털며 꿇고 있던 바닥에서 일어나 경대승을 봤다.
“어디로 향하실 참이십니까? 결정은 칸이 하시는 것입니다.”
경대승은 칭기즈칸을 보며 담담히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