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23권 - 천하를 놓고 펼치는 대전투! -- >뒤로 물러난 요동군의 병졸 야영지.야영지라고 하기에도 볼품이 없는 진형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해 1만 5천의 패잔병이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는 상태였고 그것을 느끼고 있는 요동군 무장들이었다.
이길 줄 알았던 전투에 패한 것은 치명적이었다. 5천의 기마대로 5천의 보병들을 상대할 때 적의 목은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는 것처럼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되고 있었다.갑작스럽게 나타난 고려의 기마대만 아니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유인책에 당한 거야!”
기마대 병사 하나가 주변을 살피며 짜증스럽게 말했고 그런 기마대 병사를 십 부장이 보고 피식 웃고 등을 돌려 누웠다. 보통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십 부장 정도면 병사들이 잡소리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보통이나 그냥 넘겨버리는 십 부장이었다.
“그걸 누가 모르나?”
다른 병사가 십 부장이 돌아누운 것을 보고 조용히 말했다.
“기마대가 아무리 강하면 뭘 하나 지휘를 하는 발해 놈들이 멍청한데!”
발해인 들은 지배세력이었고 그들을 따르는 기마대는 말갈부터 돌궐까지 오랑캐라 불리는 부족들이 많았다.
“쉬! 이 사람 큰일 날 소리를!”
병사가 누워 있는 십 부장을 봤다. 하지만 십 부장은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십 부장 나리! 말고기를 좀 드십시오.”
병사를 질책하던 다른 병사가 눈치를 보며 말고기를 내밀었다.
“투정을 부릴 거면 조용히 부려!”
“예. 알겠습니다.”
십 부장은 그렇게 말하고 말고기를 받고 다시 돌아누웠다.
“내가 틀린 말을 했어? 안 그럽니까? 십 부장님!”
“난 네놈들의 작당에 빼줘! 난 목이 하나거든. 그래도 적의 목을 베다가 죽어야지.”
“아휴 그렇습니까? 젠장! 하여튼 발해 놈들이 멍청해서 이 꼴을 당하는 거야!”
“발해인이 어디에 있고 여진족이 어디에 있나? 다 같은 발해국 사람이지.”
“웃기고 자빠져 있네.”
“이 사람이 정말!”
“내 말이 틀린지 보게. 죽어나는 것은 그냥 우리 여진족하고 돌궐 놈들일 거니까.”
“자네 못 봤나? 서돈 장군이 장렬하게 자결을 한 것을!”
“따지고 보면 서돈 장군도 발해인은 아니지.”
“뭐?”
“이봐! 이번 전쟁에서 발해가 이길 것 같아!”
패배의식이 팽배해져가고 있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우린 말이야 아무런 준비도 없이 왔어. 그래서 며칠 전에도 그렇게 손 한 번 못 쓰고 당한 거야!”
“이 사람이 점점 더 큰일 날 소리만 하네!”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고 했어.”
“닥치고 그냥 말고기나 씹어! 언제 또 먹을지 모르니까.”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십 부장이 너는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예. 알겠습니다.”
“한 번만 더 그런 소리를 했다가는 인정사정없이 목을 자를 줄 알아!”
“예. 알겠습니다. 십 부장 나리!”
“네놈들 말처럼 내일은 단단히 준비를 해야 할 거다. 절대 고려 놈들은 약하지 않아. 그러니 단단히 준비를 해야 해! 전쟁에 지면 우린 노예가 되고 네놈들의 계집들은 고려 놈들에게 능욕을 당할 거다. 애새끼들은 모두 굶어죽겠지. 그러니 푹 자둬! 내일 반드시 이겨야 하니까.”
십 부장의 말에 병사들의 표정이 모두 굳어졌다.
“이제 왜 우리가 싸워야하는지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병법이라는 것에서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 상책이라고 했다. 하지만 싸울 수밖에 없다면 반드시 이기라고 했다. 그럼 이겨야지. 고려 놈 마누라를 빼앗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네놈들 마누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싸우는 거다.”
“알, 알겠습니다.”
“잠이나 자둬! 이기지 못하면 다 망한다. 젠장! 왜 이런 전쟁을 하는 거지? 같은 뿌리들이 말이야!”
“같은 뿌리라니요?”
“멍청한 놈! 발해나 여진이나 고려 놈들이나 다 같은 예맥이다. 이리 서로 싸울 힘이 있다면 힘을 합쳐서 중원으로 말을 달려야지! 중원으로!”
“중원에는 금이 있잖습니까?”
“그래! 금이 있지. 그 금도 따지고 보면 예맥이지.”
“무슨 소리인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네놈들이 그걸 알면 이런 곳에서 말고삐나 잡고 있지 않겠지. 하여튼 그냥 편이 쉬자! 쉴 수 있을 때 쉬는 거다. 젠장! 말고기나 씹어!”
십 부장이 그렇게 말하고 돌아누웠다.
“그런데 십 부장님 이름이 뭐요?”
병졸 하나가 물었다.
“왜?”
“알아두면 나중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헤헤헤! 제가 보기에는 아주 똑똑한 분 같아서요.”
“머리는 있는 놈이구나! 잘 들어라! 내 이름은 고서기다. 고서기!”
“고 씨요?”
“왜 내가 고 씨면 안 되는 거냐?”
“그건 아니지만 우리 아부지가 고 씨를 보면 머리를 숙이라고 했습니다.”
“네놈의 아비는 참으로 아들 교육 한 번 잘 시켰구나! 네 이름은 뭐냐?”
“저는 의거운이라고 합니다.”
“의거?”
십 부장이 피식 웃었다.
“왜 웃으시오?”
자신을 의거운이라고 밝힌 사내가 인상을 찡그렸다.
“고 씨도 흔한 성은 아닌데 의거 씨도 참으로 귀한 성이지.”
“그런 겁니까? 의거 씨가 그리 좋은 성입니까?”
“암 그렇지. 하하하! 지금이 난세는 난세인 모양이군! 고 씨와 의거 씨가 겨우 십 부장에 장졸이니 말이야! 난세야 난세! 하하하! 이 난세를 누가 평정을 할지 궁금해지는군.”
“난세는 뭡니까?”
“험한 세상이지. 하하하! 난세야! 하하하!”
십 부장인 고서기는 예사롭지 않은 인물은 분명할 것 같았다.또한 그가 자신을 고 씨라고 밝혔다. 고 씨!그 성은 고구려의 왕의 성이다. 또한 겨우 병졸에 불과한 의거운 역시 초원에서 수천 년 전에 왕으로 군림했던 나라 의거의 왕의 성이기도 했다. 그러니 분명 이 시대가 난세가 분명할 거다.
“의거운!”
“예. 십 부장!”
“네놈은 말은 참으로 잘 타겠구나!”
“여부가 있겠습니까? 의거 씨들은 모두 말을 잘 탑니다.”
"의거 씨들이 부락을 이루고 사느냐?"
"예. 요동성에서 북서쪽 끝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네놈은 왜 군졸이 되었느냐?"
"출세를 하려고요. 말을 잘 타면 출세를 할 수 있다고 해서요."
“내일은 가장 말을 잘 타는 놈부터 죽을 거다.”
십 부장이 목소리를 아주 작게 의거운만 들을 수 있게 속삭였다.
“예?”
“조심해! 내일 정말 조심해야 할 거다.”
고서기가 나직이 말했다.
“왜요?”
의거운이 고서기에게 바짝 다가와 앉았다.
“우린 절대 못 이겨!”
고서기의 말에 의거운이 인상을 찡그렸다.서준경은 부장들과 순시를 하고 있었다. 역시 그의 표정도 어둡기만 했다. 여기저기 패색이 드리워져 있으니 말이다.
“내일 전투에서 완벽한 승리를 이루지 못한다면 요동은 망한다.”
부장과 같이 야영지를 순시하고 있던 서준경은 절망을 느끼기 시작했다.
“반드시 이길 것이옵니다. 남은 병력이 1만 5천이옵니다. 전멸을 하는 상태에서도 황현 장군의 기마대는 급습한 적 기마대 1천과 보병 4천을 전사시켰사옵니다.”
“그래! 반드시 이겨야 한다.”
“그렇사옵니다. 반드시 이길 것이옵니다. 대기마전에서 요동군은 밀릴 것이 없다.”
“그렇사옵니다.”
히이잉!그때 급히 달려온 전마에서 정찰 기병이 뛰어내려 서준경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뢰오! 적이 군막을 설치하고 쉬고 있사옵니다.”
“그래? 승리를 자축할 모양이군!”
“그런 듯 하옵니다.”
“군세는 어떻게 되더냐?”
“기병이 1만 가까이 되옵니다. 허나 소장이 보기에는 기병들의 실력이 그리 높지 않은 것 같사옵니다.”
“급조된 모양이군!”
“그렇사옵니다. 아무리 봐도 서우치 총군사령과 대치하고 있는 부대가 고려의 주력 같사옵니다.”
정찰무장의 말에 서준경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것은 없더냐?”
“고려왕의 깃발이 보였사옵니다.”
“고려왕?”
요동군은 고려의 황제를 왕이라 폄하했다.
“그렇사옵니다. 분명 고려왕의 깃발이옵니다.”
“고려왕이 친정을 했단 말이지?”
“그렇사옵니다.”
“그럼 내일 고려왕의 목을 베는 큰 공을 세우겠군.”
서준경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고려왕의 목을 베는 자는 태왕폐하께서 큰 상을 내릴 것이다.”
“예. 장군!”
“고려왕의 목이야 말로 대반전의 기회다.”
“그렇사옵니다.”
"꼭 내일 고려왕의 목을 내 장창에 꽂을 것이다.고려대포가 배치된 후방.100문의 고려대포가 모든 준비를 끝내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내 발포명령만 기다리고 있을 거다.내 옆에는 포병장군과 이의민 그리고 무제가 고려대포의 위용을 보며 다시 한 번 놀라고 있었다.
“이의민 군단장!”
“예. 황제폐하!”
“단 한 놈도 살려서 보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저들을 살려 보내면 더 많은 요동군을 죽여야 합니다.”
“패잔병들은 소장이 모두 목을 베겠사옵니다. 포로로 잡는 자들은 어떻게 합니까?”
이의민이 내게 물었다.
“포로?”
따지고 보면 요동군도 조선의 후예일 거다. 또한 고구려의 백성들이었던 존재였다. “저항하지 않는 자는 생포한다. 하지만 도망치려는 자는 무조건 끝까지 추격해서 벤다.” 이 순간 고려대포의 힘을 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1만 5천의 적을 죽이기 위해 고려대포를 만든 것은 아니니 말이다.
“알겠사옵니다. 포로로 잡은 요동군들은 훗날 황제폐하의 충실한 기마대가 될 것이옵니다.”
“그랬으면 아주 좋겠지.”
“꼭 그리 될 것입니다.” 요동이 내 대망의 끝은 분명 아닐 것이다. 요동을 점령하면 금이 있고 금을 점령하면 후르초프의 나라 키예프 공국이 있다. 또 서쪽으로 계속 달려가면 술탄이 지배하는 나라들이 있다. 어디든 달려만 간다면 내 땅이 될 것이다. 그러니 많은 병사가 필요했다.
“그랬으면 좋겠군. 그리고 전마들의 귀는 다 막았나?”
“예. 지시하신대로 귀를 다 틀어막았사옵니다.” 전마를 관리하는 무장이 내게 대답했다.
“고려대포가 불을 뿜으면 제일 먼저 말이 놀라 요동을 칠 것이다.”
“그럴 것이옵니다.” 포병장군이 웃으며 대답했다.난 그의 대답을 들으며 100문의 고려대포를 봤다. 고래대포의 최대 사거리는 3킬로미터다. 지금 요동군과 우리의 거리는 1.5킬로미터 정도가 된다. 완벽하게 사거리 안에 들어와 있다. 그러니 지옥이 열리는 거다.요동군을 위한 불바다가 열리는 거다.
“준비하라!”
“예. 황제폐하!” 포병장군이 짧게 대답하고 돌아섰다.
“고려대포군은 포격 준비를 하라!” 우렁찬 외침이 들판에 울렸다.
“예. 장군!”
그와 동시에 각각 고려대포를 조작하는 조장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포격준비!”
조장들의 외침에 포병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이미 화약을 넣고 장전을 한 상태다. 한 마디로 쏘기만 하면 된다.
“고려 대포까지 왔으니 요동은 이제 내 것이나 다름이 없다.”
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인가!
“발포하라!”
드디어 내 명령이 떨어졌다.
“전포 발포하라!”
우렁찬 발포명령이 떨어졌다.일제히 고려대포 후미에 있는 심지에 불을 붙었다.
고려대포 안에는 흑색 화약이 가득 들어 있다. 심지에 의해 화약에 불이 붙으면 화약이 폭발하고 그 폭발력에 의해 포탄이 날아간다.
물론 포탄 역시 폭발이 가능한 포탄이다. 이 폭탄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조의들이 죽어갔다. 그리고 끝내 만들어냈다.
이 포탄만으로도 고려는 세계 최강의 군대다.
“발포하라!”
우렁찬 함성이 다시 울렸다. 여기저기 발포하라는 외침이 이어졌다.쾅!콰콰쾅!번쩍!콰콰쾅! 화화화!일제히 100문의 고려 대포에서 우레와 같은 소리가 터지더니 포구에서 불을 뿜었다.히이잉!이이이잉!전마의 귀를 천으로 막았지만 우레와 같은 굉음에 전마들이 놀라 요동쳤다. 내 전마들이 놀라 요동치고 있다.
하지만 요동군의 전마는 이제 말고기가 될 것이다.
난 하늘을 날고 있는 포탄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