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22권 -- >
“쉴 여유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는가?”
“하오나 어쩔 수 없사옵니다. 여기서 쉬시나 압수를 넘어가실 때 배를 구할 때 쉬시나 쉬는 시간은 비슷할 것이옵니다.”
정도전도 내게 쉬라고 했다. 그리고 정도전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렇사옵니다. 정청장의 말이 옳사옵니다. 배를 구할 때 쉴 수밖에 없사옵니다.”
“하지만 마음이 급하다.”
“소장이 먼저 가서 배를 구하겠나이다. 그러니 이제는 쉬셔야 하옵니다.”
무제가 내게 간곡하게 청했다.
“옥체를 보존하소서!”
모든 무장들이 내게 소리쳤다. 그들의 모습에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입고 있는 갑주에는 온통 흙먼지가 묻어 있었고 얼굴에는 땀이 잔뜩 흐르고 있었다. 물론 내가 타고 있는 말의 갈기로 땀에 젖어 있었다.
“알았네!”
내 명이 떨어지자 말자 포병 소포군을 지휘하는 포병 장수가 돌아섰다.
“이곳에 군막을 설치하라!”
“그럴 필요 없다. 군막을 설치하면 병사들이 쉴 틈이 없다.”
“하오나,,,,,,,.”
“되었다고 했다. 그냥 모닥불이나 크게 피워라!”
난 그렇게 말하고 백화를 봤다.백화만 옆에 있어준다면 추울 것이 없다.
“알겠사옵니다.”
“모두 모닥불을 피워라! 황제폐하께서 이렇게 병사들을 걱정하시고 계신다.”
포병 장수의 외침에 지친 기색이 역력해서인지 불만이 가득했던 눈동자에는 다시 나에 대한 충성심이 타올랐다.
“아니옵니다. 소인들이 황제폐하의 군막을 세우겠습니다.”
장졸들이 내게 소리쳤다.
“짐이 되었다고 했다. 어서 모닥불이나 피워라!”
“알겠사옵니다.”
그렇게 모닥불이 피워졌다. 여기저기 수백 개가 넘는 모닥불이 피워졌고 그리고 나서 말에게 물을 먹이고 건초를 먹이기 시작했다.난 모닥불 앞에 앉았고 백화도 내 옆에 공손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내 주위를 50인의 여무사들이 지켰다.
“참 오랜 만이야!”
“예?”
백화가 내게 물었다.
“이렇게 그대와 모닥불에 나란히 앉은 것도 말이야!”
예전 송악산에 숨어 있던 김돈중의 가병들을 내 수중에 넣기 위해 움직일 때 이렇게 백화와 모닥불 앞에 앉은 적이 있었다. 그때도 몇 명의 별초가 나를 여무사처럼 호위했다.
“그때가 기억이 나십니까?”
백화가 내게 공손히 물었다.
“왜 기억이 나지 않겠소. 그때 황후가 결단을 내려주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갑산군 아니 용맹하고 충성스러운 3군단은 없었을 것이요.”
“저도 그때를 잊을 수가 없사옵니다. 황제폐하!”
“왜 그러시오?”
“전장에 나가셔도 옥체 보존하셔야 하옵니다. 그때와는 다르옵니다.”
“다르다?”
“그렇지 않사옵니까? 그때는 일개 개인이었으나 지금은 황제폐하께서 곧 고려이옵니다.”
백화의 말에 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만약 사라진다면 이 고려의 웅대한 웅지도 사라질 것이다. 또한 고토회복과 대제국의 대망도 물거품이 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절대 죽어서는 안 된다.
“알고 있소.”
그때 정도전이 조심히 작은 소반을 내게 들고 왔다.
“황제폐하!”
“왜 그러시오?”
“송구하게도 드실 것이 이것뿐이옵니다.”
정도전이 들고 있는 소반에는 주먹밥이 놓여 있었다.
“주먹밥?”
“그렇사옵니다. 너무 급히 움직였기에,,,,,,,.”
내가 증원군을 이끌고 갈 때 나를 위해 수라간도 따라왔다. 물론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말을 했지만 북천이 끝까지 다라 보냈다. 하지만 증원군을 둘러 나눌 때 수라간 데리고 오지 않았다. 그러니 저 주먹밥도 가분한 걸 거다.
“장졸들이 먹는 것이지.”
“그렇사옵니다. 황제폐하!”
정도전은 마치 죄를 지은 것처럼 내게 머리를 조아렸다.
“이것이면 충분하다.”
난 웃으며 주먹밥을 받았다.
“짐은 이 전장에서는 병사들과 같이 먹을 것이다.”
먹는 것 따위가 중요하지 않다. 물론 난 이 고려에 와서는 주먹밥을 먹어본 적이 없다. 아니 그렇게까지 위태로웠던 적이 없었다.
“어디 맛을 볼까? 하하하!”
난 환하게 웃으며 주먹밥을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으윽! 젠장! 뭔 맛이야?’궁중의 음식에 입맛이 길들려 졌기 때문일까? 난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지금 내가 주먹밥을 먹는 것을 병사들이 보고 있다. 그러니 맛있게 먹어야 했다.
“맛은 없군!”
“송구하옵니다. 황제폐하!”
“이번 전쟁이 끝이 나면 내 전장에 나가서도 이런 맛없는 주먹밥을 먹지 않게 만들어주지.”
“예?”
“무엇보다 장졸들이 잘 먹어야지.”
“그렇기는 하옵니다. 황제폐하!”
“그래도 이거라도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군.”
난 모닥불에 모여 있는 장졸들을 봤다. 맛은 없지만 넉넉하게 준비된 것 같다.그때 어디서 연락을 받았는지 마차 한 대가 급히 달려와 섰다.
“누군가?”
“갑산군의 관리인 것 같사옵니다.”
포병 장수가 내게 말했다.
“갑산군 관리?”
“그렇사옵니다. 황제폐하!”
“어찌 저자가 짐이 이곳에 있는 것을 알고 왔다는 건가?”
난 인상을 찡그렸다.그리고 마차에서 급하게 관복을 입은 관리 셋과 잘 차려 입은 무희들이 내렸다. 그리고 꽤나 성대하게 차린 수라상이 장정들의 손에 들려 내려졌다.
“저건 또 뭔가?”
다시 한 번 인상을 찡그렸고 그때 갑산군 관리들이 급히 내게로 달려와 바로 엎드렸다.
“갑산군 초개현 현감이 황제폐하를 뵈옵니다.”
“이곳이 초개현인가?”
“그렇사옵니다.”
“어찌 알고 이리 왔는가?”
“소장이 알렸나이다.”
포병 장수 하나가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대가?”
“그렇사옵니다. 어찌 황제폐하께서 주먹밥을 올리겠나이까.”
포병장수의 말에 정도전도 인상을 찡그렸다.
“함부로 황제폐하의 움직임을 알렸단 말인가?”
정도전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소, 소장은?”
“만약 저 마차에서 요동의 세작들이 내렸다면 어찌 할 것인가?”
다시 한 번 정도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소, 소장은 충, 충심에서,,,,,,,.”
물론 나를 향한 충심에서 할 일이 분명할 거다.
“정도전!”
“예. 황제폐하!”
“너무 몰아붙이지 말게.”
“하오나,,,,,,,.”
“충심에서 한 일이라고 하지 않나?”
“예. 황제폐하!”
“이봐!”
난 포병장수를 봤다.
“예. 황제폐하!”
이미 포병장수는 내 앞에 죄인처럼 무릎을 꿇고 있었다.
“평상시 같았으면 목을 쳤을 것이야!”
내 말에 포병장수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자결하오리까?”
“하하하! 참 그대도 성질이 급하군. 왜 자결하라고 하면 할 것인가?”
내 질문에 포병장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장은 아니 모든 장졸들은 전장에서 죽어야 해! 그러니 앞으로 함부로 움직이지 말게.”
“성은,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제폐하!”
장수의 입에서 자결이라는 말까지 나오자 그의 지시를 받고 온 초개현 현감은 잔뜩 겁에 질린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초개현 현감!”
“예, 예! 황, 황제폐하!”
“수라상을 참 거하게도 차렸군.”
“소, 소신은 그저,,,,,,,.”
“그래! 황제가 온다니 이 정도는 차려야했겠지.”
“황, 황공하옵니다.”
원래 신하들이 뭐라고 할 말이 없을 때는 황공하옵니다. 라고 보통 말한다.
“짐이 무척이나 잘 먹겠네.”
“황공하옵니다.”
그제야 초개현 현감의 표정이 밝아졌다.
“가서 초개 현에 있는 닭이란 닭은 다 잡아와서 삶아오시게.”
내 말에 초개현 현감의 눈이 반짝였다.
“예. 황제폐하!”
“짐의 장졸들이 편히 먹을 수 있게 준비를 해 주시게.”
“알겠사옵니다.”
오늘 초개 현에 닭의 씨가 마르는 날이다.
“정도전!”
“예. 황제폐하!”
“가지고 온 재물이 없으니 어찌 하지?”
황제라고 해도 그냥 달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냥 달라고 하면 저 현감은 백성의 것을 빼앗아 가지고 올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정도전은 내 말뜻을 잘 이해하는 것 같았다.
“알겠사옵니다.”
정도전이 품에서 만적상단의 어음 한 장을 꺼내서 초개현 현감에게 내밀었다.
“이 정도면 부족하지 않을 것이네.”
“무엇이옵니까?”
“만적상단의 어음이네!”
이 고려에서 만적상단의 어음으로 따진다면 황명과 비슷할 정도로 신용이 있었다. 그만큼 만적상단은 고려에서 아니 중원까지 신라방과 어깨를 견주는 상단으로 거듭나 있었다.
“받으시게.”
“소신이 어찌 그 어음을 받겠사옵니까?”
초개현 현리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받아! 저 많은 병사를 먹이려면 엄청난 닭이 필요할 것인데 어찌 감당을 하려고?”
“소신이 다 알아서 하겠사옵니다.”
“황제폐하께서는 백성의 것을 빼앗는 자를 제일 싫어하시네. 그때는 목이 열 개라도 남아나지 않을 것이야!”
딸꾹!목이 날아간다는 말에 초개현 현감이 놀라 딸꾹질까지 했다.
“그, 그런 일은 없사옵니다.”
“알았어. 그러니 받아! 이 시간에 가서 닭을 잡겠어. 나 같으면.”
정도전의 말에 초개현 현감이 만적상단의 어음을 받았다. 그리고 그 어음의 액수를 보고 다시 한 번 놀랐다.
“어, 어음이,,,,,,,.”
“놀라기는 황제폐하께서 내리시는 어음이 적을 줄 알았나?”
“아, 아니옵니다.”
“어서 가서 닭을 잡아! 어서!”
“예. 알겠사옵니다.”
초개현 현감은 불이 나게 다시 마차로 뛰어갔다.
“황제폐하! 무희들은 어찌 하오리까?”
정도전이 내게 물었다.
“장졸들을 위무하기 위해 온 무희들이니 춤을 추게 하면 좋겠지만 다 모이라고 하면 장졸들이 피곤할 것이야!”
“알겠사옵니다.”
정도전은 잔뜩 겁에 질린 무희들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자네가 무엇을 해야 할지 이제 알겠지?”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는 포병 장수가 정도전을 올려봤다.
“돌려보내겠사옵니다.”
“요동으로 데리고 갈 것이네. 가는 길에 주먹밥을 지을 군솔로 쓰면 되겠군.”
정도전의 말에 무희들이 기겁했다.
“하하하! 그 방법이 있었군. 하하하!”
난 호탕하게 웃었다.그리고 아주 옛날이 떠올랐다.
“홍련아!”
“예. 황제폐하!”
“너는 아직 밥을 못하는 것이냐?”
옛날 열 명의 여 무사가 내 첫 부하일 때 밥을 하게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밥 하나 하지 못하던 홍련이 떠올랐다.
“그, 그것이,,,,,,,,.”
“하하하! 너도 변한 것이 없구나!”
“망극하옵니다. 황제폐하!”
“하하하! 뭐 밥 좀 못한다고 망극할 일은 아니다.”
난 모처럼 아주 크게 웃었다.하지만 정도전의 말에 무희들은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이런 모닥불에는 고구마를 구워 먹어야 제격인 것을!”
내 말에 정도전이 나를 빤히 봤다.
“고구마가 무엇이옵니까?”
감자도 없는 이 고려다. 그런데 고구마가 있을 턱이 없고 알 턱이 없었다.
“하하하! 그런 것이 있다.”
난 문뜩 대양으로 보내졌을 항해선이 떠올랐다.‘어디로 가고 있을까?’난 제주목사 조동희에게 신대륙으로 갈 것을 명했다. 그곳에서 감자와 고구마를 구해오라고 했다. 또 옥수수도 구해오라고 했다. 그것만 구해지면 고려에서 더는 배를 곯아 죽는 자는 없을 것이다.
“그런 것이 있어.”
내 말에 정도전은 나를 물끄러미 봤고 모닥불은 활활 잘도 타고 있었다.
“며칠이면 합류를 할까?”
내 잠시의 여흥이 끝이 났다. 이제 다시 난 고려를 걱정해야 했다.
“갑주군의 끝이옵니다. 내일 말을 달리면 곧 압수이옵니다. 무제가 먼저 가서 배를 구한다고 했으니 늦어도 4일이면 3군단과 합류하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정도전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든 그때까지 버텨야 할 것인데,,,,,,,.”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내가 조충에게 요동의 기마군단을 옥쇄로 막으라고 한 것은 이 고려군대 중에 대 기마전술을 가장 잘 쓰는 군단이 바로 조충의 3군단이기 때문이다. 조충의 3군단이 무너지면 고려가 무너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