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488화 (488/620)

< -- 간웅 22권 -- >의종황제의 말처럼 굳센 황실을 만들고 황권을 바로 새우는 것이 그의 첫 꿈이었을 것이다. 그저 의종황제께서는 광인이며 폭군만은 아니었다.

그 어느 군주처럼 그 역시 자신의 치세에 개혁하려고 했고 충신을 옆에 두려고 했다. 하지만 황제보다 더 높이 자리 앉은 신하들의 저항에 끝내 무너지고 말했다. 그것이 무신정변을 낳았고 또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만든 것이다.

승냥이 같은 권문세가들!그들의 뿌리를 뽑지 않는다면 고려에는 내일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몸에 뼈를 주시고 살을 주신 분이다.

비록 내 영혼이 내 육신의 그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기 까지는 참으로 오래 걸렸지만 분명 그는 내 부친이며 내게는 가장 근엄하고 자애로운 황제였다. 이 세상에 아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들을 살리기 위해 옥좌를 버린 황제가 있을까?권력은 비정하다.

부모와 자식이 옥좌를 놓고 싸우고 피를 나눠가진 형제들이 옥좌 때문에 죽고 죽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장자를 살리기 위해 하찮은 건룡군 위장에게도 머리를 숙였다.그 어찌 자애롭다 아니 할 수 있겠는가?그 자애로움이 만백성에게 향했다면 그는 어진 군주요 왕권을 바로 새운 황제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고려는 나 같은 존재가 권력을 쥐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의 좌절과 황제의 눈과 귀를 막은 총신의 벽에 막혀 그렇게 의종황제는 폭군으로 광인으로 기록될 뻔 했다. 허나 그에게 내가 있다.

나로 인해 그는 위대한 군주로 거듭날 것이다. 나를 과감히 태자로 책봉했으니 그는 고려에 큰 은혜를 내린 것이다."그리고?"의종황제가 나직이 다시 물었다.

그의 눈빛은 애잔 한다. 서러움이 많았고 그리움이 많으며 또 후회와 번민이 많은 그런 눈빛이었다.'부국강병을 이루고 백성을 살찌우며 잃어버린 북변을 수복하는 것이 다음 대망이옵니다."

"짐이 그것은 보았다."의종황제가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하지만 그의 미소가 서글픔이 담겨 있는 것은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아바마마의 치세이시고 공적이시옵니다."

"그리 기록되겠지. 그러니 짐은 네게 고마울 것이다. 또 무엇이 있느냐? 짐이 또 무엇을 기다리면 되는 것이냐?"마치 임종을 앞두고 내게 당부하는 것처럼 다시 물었다."강병을 이끌고 총신들을 이끌어 잃어버린 요동을 회복하여 진정한 고려로 거듭나는 것이옵니다."

"요동이라,,, 짐도 가슴이 뜨겁구나. 요동이다. 고려의 웅지가 요동이라면 다시 피어 날 수 있을 것이다. 요동이라면!"

"끝내 그것을 보시게 될 것이옵니다."

"짐이? 허허허! 짐에게 남은 생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것을 볼 수 있을까?"

"꼭 그리 되실 것입니다.

꼭 그리 되실 수 있습니다."난 의종황제의 손을 나도 모르게 잡았다.그의 손이 차갑다.

숨소리도 미약하다. 정말 그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을 것이다.

그를 어찌 보낼까? 그를 어찌 보낼 수 있을까?온전히 진심으로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못했다. 항상 나를 위해 이용하고 또 나를 위해 도모했다.

그것을 다 알면서도 묵묵히 나를 봐 주셨다. 한 없이 미울 나일 것인데 그저 인내하시고 참아내셨다.

그런 거가 지금 생을 마감하려고 내게 이렇게 당부하고 있었다."요동은 멀고 대타발은 강성하다. 짐은 그것을 안다."

"요동은 풍전등화에 놓여 있사옵니다. 이미 전 갑산부사인 조충이 아바마마를 위해 압수를 넘어 진격하고 있사옵니다. 그러니 곧 요동에 고려의 깃발이 꽂히는 것을 보시게 될 것이옵니다. 요동 백성 모두가 아바마마의 치세를 칭송하게 될 것이옵니다. 소자가 꼭 그렇게 만들겠나이다."

"진, 진정이냐? 쿨럭! 쿨럭!"내 말에 놀라 감격해 격양되었는지 거친 기침을 토해냈다."아바마마!"

"괜찮다.

아니 이제는 괜찮을 수 있다. 역시 네가 고려의 대안이다. 내 선택이 옳았다."

"아니옵니다. 이 모든 것이 아바마마의,,,,,,,."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회생아!"참으로 너그러운 눈으로 의종황제가 나를 봤다. 아비의 눈빛은 저럴 것이다. 아들을 보는 눈빛은 저렇게 한 없이 너그러울 것이다."예. 아바마마!"

"너의 삶은 참으로 모질다."의종황제의 말에 나도 모르게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그리고 내가 했던 모든 악행들이 떠올랐다. 죽이려고 마음먹은 자는 죽였고 후회하지 않았다. 죽이지 않으려고 했던 자도 어쩔 수 없이 죽여야 했다.

명분이라는 미명아래! 또한 자신들이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은 자들도 또 누가 죽였는지도 모르고 죽은 자들도 많다. 그래서 내 삶은 모질다. 아니 모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땅에 나를 이름 새기지 못했을 것이다."너의 그 모짐이 지금의 너를 만든 것을 다 안다.

허나 그것은 오래 갈 수 없다. 너와 나는 다를 것이 없다.

아비는 실패했다. 너도 알듯 실패하고 말했다. 비록 네가 지금은 모든 것을 이루고 있으나 그 모짐을 계속 이어간다면 너는 끝내 이 아비처럼 폭군이 되고 광인이 될 것이다."

"송, 송구하옵니다. 아바마마!"

"한 없이 관대해져라. 한 없이 인자한 군주가 되어라. 그리고 백성을 아끼고 신하를 아끼는 군주가 되어라."

"명심하겠사옵니다. 꼭 명심하겠사옵니다."

"그리고 네가 꿈꾸는 대망을 모두 이루어 보아라. 너는 그리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아비의 마지막 선택만은 옳았다는 것을 꼭 증명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이 아비도 편히 눈을 감을 것이다."

"그런 말씀 마시옵소서."

"죽음을 누가 막겠느냐? 짐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 너의 대망에 요동이 있다면 다 가지 거라. 그리고 그 대망을 이루 거라."

"그리하겠나이다. 꼭 그리 해 보이겠나이다. 그러니 제발 옥체 보존하소서! 제발,,,,,,."나도 모르게 울먹였다. 내게 이런 감정이 남아 있다는 것이 놀랍다. 불효자가 더 많이 운다고 했을까?그런 면에서 나는 불효자일 것이다. 아비에게 아무 것도 해 주지 못한 불효자가 바로 나 일 것이다.

"짐은 내 아들을 믿을 것이다. 고려는 태자를 믿을 것이다."의종황제가 떨리는 손을 내게 내밀었고 난 조심이 잡았다.

여전히 차갑다. 정말 그의 삶이 오래 남지 않은 것이다."가거라! 가서 해야 할 일이 많을 것이다.

네가 있을 곳은 이곳이 아니다."의종황제가 돌아가라고 말했다."더 머물겠나이다. 옆에 있고 싶사옵니다.

아바마마의 옆에 머물고 싶사옵니다."

"네가 말한 것처럼 지금 너의 총신이 요동으로 진격을 하고 있다. 그는 위태로울 것이다. 절대 요동을 그리고 발해의 후예인 대타발을 하찮게 보지 마라."

"아바마마!"

"어서 가서 네가 해야 할 일을 해라."

"아바마마! 소자는,,,,,,,."

"일어나야 한다. 가서 이 아비에게 요동을 가져다 다오. 어서!"나도 모르게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어서!"일어날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그때 의종황제의 눈빛이 떨렸다. 저 떨리는 눈빛은 육신에서 혼백이 빠져나가기 전의 그런 현상 같았다."아바마마!"난 급히 다시 앉았다."짐, 짐은 괜찮다.

짐이 만약 붕어한다고 해도 너의 행보를 멈추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눈빛은 떨렸고 말소리는 더욱 작아졌다.

"어찌 소자를 불효자로 만들려 하십니까? 흑흑흑!"내 눈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짐이 끝내 붕어한다면 그 붕어를,,, 쿨럭! 쿨럭!"거친 기침이 다시 폐부가 찢어진 듯 토해졌다."태의! 태의!"내가 급히 태의를 부르자 의종황제는 그냥 두라는 듯 손을 올려 겨우 흔들었다."아바마마!"입가에 피가 고여 있다. 폐부가 찢어진 것이 분명할 거다."붕어를 만천하에 알려 대타발을 방심케 하라. 그리고 태자 너는 북으로 진격해라."

"그럴 수는 없사옵니다."

"그래야 한다. 회생아!"

"어서 가라! 어서!"일어설 수도 그대로 있을 수도 없는 순간이다."절대 짐이 붕어했다고 해도 말머리를 돌려서는 아니 될 것이다."의종황제는 마지막 생의 불꽃을 태우듯 또렷하고 근엄하게 말했다."명심하라! 태자 네가 끝내 짐처럼 좌절한다면 짐의 마지막 선택까지 모두 과오가 될 것이다. 그리 된다면 짐이 어지 죽어 열성조를 뵐 수 있겠느냐!"

"예. 알겠사옵니다. 아바마마!"

"네가 곧 고려고 고려가 곧 너다. 그것만 명심하면 되는 것이다."이 자리를 일어서면 생전에 의종황제를 뵙지는 못할 것이다.

그의 삶은 꺼져가고 있으니 말이다.허나 그의 의지 역시 이 고려가 강성한 제국으로 남기를 원하고 있다.

따라야 한다.내가 그의 마지막 선택이라고 했다.그 선택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만들어 내야 한다."아바마마! 이 소자의 불효 불충을 용서하소서.

"난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과감하게 돌아섰다. 내 앞에는 내 눈치를 보고 있는 태의들이 서 있다."아바마마를 부탁하네."난 그 말만 남기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내 옆에 선 무장을 봤다. 난 바로 허리에 차고 있는 그의 검을 뽑았고 그는 놀라 나를 봤다."태자마마,,,,,,."

“벤다!”

이 순간 오직 한 사람 그의 얼굴만 보였다.태자궁 전각 앞 공터.내리던 눈은 이제 소복하게 쌓였고 마른 가지에는 눈꽃을 피우고 있었다.

여전히 눈은 서글프게 내리고 있고 그 서글픔 속에 나만큼 모진 나만의 총신인 정도전이 죄인처럼 산발을 하고 석고대죄를 올리고 있었다.그의 어깨 위에는 그가 저질렀던 과오만큼의 눈이 또 후회와 미련 딱 그만큼의 눈이 쌓여 있는 듯 했다.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왜 그런 모진 선택을 내 허락도 없이 했을까? 하는 생각을 이곳으로 향할 때부터 했다.

그것이 언젠가는 자신에게 화가 되어 돌아올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인데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을 해야 했다. 나를 위함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그동안 자신을 황자로 받아드려 주지 않은 것에 대한 원망 때문일까?그것도 아니면 겨우 황자의 자리를 차지한 이 씨의 한계를 가신 된 자로 극복하기 위함이었을까?아무리 그를 위해 변명해주려고 해도 벤다는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

내가 검을 들고 들어서자 석고대죄를 올리고 있는 정도전의 옆에 서 있던 북천이 놀랐고 무제는 내 모습을 반기는 듯 나만 보고 있었다.저벅! 저벅!'벨 것이다.'내 걸음 한 걸음 마다 눈길에 자국이 남고 그 걸음이 더해질 때마다 지금 석고대죄를 올리고 있는 정도전을 베고자 하는 마음이 커져만 갔다.

그리고 끝내 난 그의 뒤에 섰다. 아니 그의 앞에 설 수가 없었다.

그를 볼 자신이 없다. 처음 이 고려에 왔을 때 정을 줬던 아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가 내 숙부라는 것을 알고 연면을 느꼈다. 그가 있기에 내가 있는 것이고 내가 있기에 정도전 이름 석 자가 있는 것이다.진정 따지고 본다면 내가 지시한 일일지도 모른다.내가 대스승 연우를 그리 보내려고 했던 것이 이런 결과를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정도전!"난 무겁게 정도전을 불렀다. 하지만 정도전은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대답도 없이 굳어 있었다.

"정도전!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느냐?"내가 대스승 연우를 그리 보내려고 했던 것이 이런 결과를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정도전!"난 무겁게 정도전을 불렀다. 하지만 정도전은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대답도 없이 굳어 있었다.

"정도전!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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