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474화 (474/620)

< -- 간웅 22권 -- >3 비누? 비누(妃淚)! 시신은 돌아오고.태자궁 전각 앞.침울한 표정으로 정도전과 북천 그리고 만적이 걸어 나왔다. 그저 한숨이 간간히 꽉 다문 입술에서 흘러나올 뿐이다.

회생의 성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지금 이 상황에서는 위태로울 만큼 앞으로만 달려 나가는 회생이었다.말없이 걷던 정도전이 멈춰 서서 북천을 봤다.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

“북천 공께서는 제게 하실 말씀이 없으시겠습니까? 왜 그리하셨습니까?”

정도전은 북천의 행동에 당황하고 있었다.

“고려의 대신들과 백성들은 그대를 고려의 공명이라고 하고 나를 방통이라고 한다지?”

뜬금없는 소리다.태자인 회생에게 왜 그렇게 말했고 모든 것을 왜 자신이 지고 가는지에 대해 물었는데 북천은 삼국연희 이야기를 하자고 하는 듯 말했다.

“무슨 뜻이옵니까?”

“그리 불린다는 거지. 그러니 그리 움직일 수밖에.”

“예? 그건 그저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지요. 제가 아둔하여 하신 말씀의뜻을 모르겠습니다.”

“그런가? 공명과 방통 그들 중에 방통이 단명을 했지 아마. 유비에게 공명과 방통이 양 옆에 있어 지략을 더했다면 그 시대는 달라졌을 것이야!”

“그것도 결과론적인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그럴 것이다. 그랬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런 것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지. 하지만 분명한 것은 태자마마께서 행하시는 일에는 반드시 그 결과와 책임이 따라올 것이네. 그것을 말하는 것이네. 자네가 하는 것이 좋겠나? 아니면 늙은 내가 하는 것이 좋겠나? 북망산에 아마도 먼저 갈 내가 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나. 훗날 누군가는 이번 일에 책임을 져야하지 않겠나.”

“책임이라고 하시면?”

“태자마마께서는 지금도 백성들에게는 어질고 위대한 태자마마시네. 태자마마께서도 무슨 영문이신지 그렇게 보이기를 그 어떤 분들보다 원하시지. 백성은 천심이다! 그런 말을 신봉하시는 것보다 더 크게 생각하고 계시네. 대단한 분이시지.”

“그렇사옵니다. 참으로 태자마마께서는 고려의 홍복이며 희망이며 미래이옵니다.”

“맞아! 그것은 훗날의 후생들에게도 마찬가지여야 하네. 위대한 정복군주! 고려제국의 위대한 황제! 나는 내 후생들에게 그것을 주고자 하는 것이네. 또한 군주는 절대 흠이 없어야 하고 과오가 없어야 하네. 어떤 이유에서든 또 어떤 경우에서든 그래야 하네. 지금은 죽이고 깨고 부셔야 할 적이지만 언젠가는 태자마마의 백성들이 되겠지. 그들에게 자신들의 조상을 그리 죽인 태자마마라는 사실을 알려줄 수는 없네. 그러니 내가 하는 것이지. 그것이 신하가 있는 일이지.”

“그래서 스스로 방통이라고 생각을 하시는 것이옵니까?”

정도전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어린 공명보다야 늙은 방통이 먼저 죽겠지. 그리고 죽어야 할 일이 생긴다면 죄인으로 죽어야 하고. 그러니 내가 할 일이지. 신하인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네. 그나저나 비유가 좋지 않았군.”

“왜 태자마마께서 촉의 유비처럼 대업을 이루지 못하실 것 같사옵니까?”

“이루지 못한다? 이룬다? 그것을 이 순간 말 할 수 있는 존재는 없네. 공명이 하늘의 이치를 알고도 삼국을 통일하지 못한 것처럼 모든 것은 하늘의 뜻이지.”

“그 하늘도 사람이 여는 것이지요.”

“그리 생각을 하는가?”

“그렇사옵니다.”

“그래야지. 훗날의 내 오명이 백골이 된 내가 부끄럽지 않게 그렇게까지 해서 얻은 것이 부끄럽지 않게 해야 할 것이네.”

“알겠습니다. 북천공!”

“정공!”

“예.”

“좀 이상하지 않나?”

“무엇을 말이옵니까?”

“태자마마께서 이유 없이 하시는 일은 없지.”

“그렇지요. 한 걸음 나가실 때마다 이유 없는 행보는 없었사옵니다.”

“비누라 했네.”

“그게 어떻다는 것이옵니까?”

“비누? 비누? 왕비의 눈물! 왜 그런 이름을 지어주셨을까?”

“음이 같다고 해서 뜻이 다 같은 것은 아니지 않사옵니까? 뜻이 다른 것도 여럿 있사옵니다.”

정도전은 혹여 자신과 회생이 저지른 일을 북천이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그렇지. 하지만 지금 이 황궁에 비누가 흐르지 않나? 그리고 그도 곧 돌아오고.”

북천이 말하는 비누라는 것은 태자비 백화의 눈물일 것이다. 또한 곧 돌아온다는 것은 참지정사 강일천의 시신일 것이고.

“비누라,,, 비누!”

북천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신의 전각으로 돌아갔고 멀어지는 북천의 뒷모습을 정도전이 물끄러미 봤다.

“그럼 저도 신하가 되어야 할 운명인가 보옵니다. 북천 공! 비누의 짐은 제가 지고 가지요.”

그저 이 순간 영문을 모르는 만적만이 멀뚱멀뚱 멀어지는 북천과 정도전을 볼 뿐이다.

“만적아!”

“예. 책사님!”

“많이 만들어! 아주 많이!”

“무엇을 말이옵니까?”

그 아편이라는 것.”

“비누는 금방금방 만들 수 있으나 아편이라고 명해 주신 것은 그 양을 늘리기 쉽지 않사옵니다.”

“그런가?”

“예. 꽃에 상처를 내서 얻어지는 즙으로 만드는 것이라 한계가 있습니다.”

“하여튼 만들 수 있는 만큼 만들어.”

“예. 책사님!”

“그리고 처음에는 아주 헐값에 팔아.”

“헐값이요? 크게 이문을 남길 수 있는 상품이옵니다.”

“알아. 죄가 많아질 것인데 이문까지 남겨서야 되겠나.”

“무슨 이야기를 그리 심각하게 하십니까? 책사님!”

이의민이 다가와 정도전에게 물었다.

“견룡대의 수가 늘어난 것 같습니다.”

“예. 잘 보셨습니다. 3배로 늘렸습니다. 안에는 무천이 태자마마를 지근에서 호위를 하고 밖에서는 견룡행수 금강야차 이의민이 지킵니다. 그러니 무력으로는 그 어떤 일도 이 황궁에서는 일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믿음이 갑니다.”

“허나,,,,,,.”

“허나 무엇입니까?”

“불충한 말이라 입에 담기 두렵지만 무력이 아닌 것으로 혹여 불충한 것이 태자마마를 노린다면 내 부월도 어찌 할 수가 없소이다.”

“무력이 아닌 것으로?”

“그렇소이다.”

“독을 말하는 것이요.”

정도전의 말에 만적이 기겁했다. 이 황궁에서 함부로 할 수 있는 말은 분명 아닐 것이다.그저 이의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자비와 영화공주께서 철저하게 대비를 하시고 기미상궁의 수도 몇 배 늘렸으니 염려할 것이 못 됩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것은 기우입니다.”

“그렇지요. 허나 만사 불여튼튼이라고 했습니다.”

“암요. 만적!”

“예. 책사님! 가자! 네가 가지고 온 유황을 다시 살펴봐야겠다.”

유황을 살핀다는 것은 화약을 제조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다시 말해 홍의포의 개발이 거의 끝났다는 의미였다. 그 엄청난 홍의포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고려의 승려들이었다.

대대로 고려는 불교를 숭상하는 국가였다. 그리고 때때로 그것이 해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은 그것이 참으로 득이 되는 일이었다.거대한 종을 만드는 주물기술로 끝내 정도전은 북천과 함께 홍의포를 만들어냈다.

물론 훗날 개발될 홍의포 보다는 그 성능이 떨어지지만 지금도 2킬로미터의 사거리를 가졌다. 그거면 충분했다.

말이 달리고 화살이 쏘아지는 전장에서 하늘의 우레처럼 떨어지는 포타는 회생의 군대를 천군이라고 불리게 하기 충분할 것이니 말이다.

“예. 책사님!”

“견룡행수! 그럼 난 이만 가보겠습니다.”

정도전은 이의민에게 하대도 존대도 하지 않고 태자궁을 떠났다.서경 황도 이규철의 저택.이곳은 개경에서 이주한 개경출신 귀족들이 모여 있었다.

개경귀족들의 거두는 둘이었다. 그 한분은 이제 시신이 되어 돌아오는 참지정사 강일천이고 또 한분은 김돈중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김돈중이야 말로 개경귀족 일파의 거두 일 것이다. 허나 그는 그 자리를 내려놓고 오직 태자인 회생을 위해서 또 고려를 위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그 내심에는 태자 회생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가 혈통적으로도 고려의 태자라는 것을 아는 몇 되지 않는 귀족이었다. 그들을 제외하고 한 마디로 떨거지들이 저택에 모여 세상을 한탄하고 시기하며 원망하고 있었다.

항상 원망의 끝에는 불만이 나오는 법이고 그 불만의 끝에는 음모가 샘솟는 법일 것이다.

“이리 되어서는 우리 모두가 끝장이 날 것입니다. 천대받고 무시당하던 불학무식한 무부들이 정권을 잡은 후에 문신귀족들은 다들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또 지방 토호들이 진짜 고려의 귀족인양 이리 설치고 있습니다. 고려는 개경출신 귀족들이 세운 나라입니다. 이대로 우리가 이렇게 무시를 당할 수는 없습니다.”

눈매가 매섭고 그 매서운 눈매에 분노와 원망만 가득한 귀족 하나가 피를 토하듯 열변을 토했다. 그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지만 명확한 답도 길도 보이지 않는 이 시점에서 그저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의 주절거림에 지나지 않다고 스스로도 생각하고 있었다.

용기가 없는 것이다.태자인 회생이 두려운 것이다.그리고 태자인 회생의 발아래 똘똘 뭉친 자들의 응집력이 두려운 그들이었다.

그에 반해 개경출신 귀족들은 땅을 잃고 세력을 잃고 사병을 잃었다. 그렇기에 힘을 잃은 상태였다.

“그걸 누가 모릅니까? 하도 태자마마께서 우리를 괄시하니 어쩔 방법이 없지요. 또한 참지정사께서도 저리 비명횡사를 하셨는데 어쩝니까? 우리가 무슨 힘이 있다고.”

또한 불만 섞인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이 자리에 모인 자들은 대략 10여명 그래도 이들은 개경 귀족 출신들 중에서도 아직까지 힘이 있고 반격할 여력의 의지가 존재하는 자들이었다.

“김대부가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시오. 개경 귀족들 중에 유일하게 떵떵 거리며 사는 자이니 말을 해서 무엇을 하겠소. 지하에 계신 검교태보 수태위 문하시중 판이부사께서 통곡을 하실 일이요.”

역정을 내며 소리치던 귀족이 화를 삭이지 못하고 술잔을 들이켰다. 그저 아마 말도 없는 사람은 이 저택의 주인인 이규철이었다.이규철은 이규보의 형이 되는 자였다.

“한탄만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은 두 가지입니다.”

드디어 이 자리의 우두머리 격인 이규철이 입을 열었다.

“두 가지요?”

“그렇소. 우공.”

우공이라 불린 자는 우승경의 숙부이다. 이름은 우승현이었다. 역사상으로 우승경은 희종 때 참정으로 희종의 밀명을 받아 왕준명과 함께 최충헌을 암살을 기도한 인물로 암살에 실패를 하고 귀양을 간 인물이었다. 역사적으로는 그랬다. 그리고 이제는 그들의 역사는 사라진 상태지만 말이다.

“무엇입니까?”

“하나는!”

이규철이 모인 자들의 얼굴을 다시 봤다.

“하나는 태자비 마마를 도우며 후일을 도모하는 일이고,,,,,,.”

이규철의 말에 모인 개경출신 귀족들이 인상을 찡그렸다. 얼마 전에 자신들을 거둬달라고 찾아 갔을 때 단번에 백화에게 내쳐진 자들이 바로 이들이었다.

“태자비께서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우승현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때와는 지금은 태자마마의 입지가 다르지요.”

이규철이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다르다?”

그 말에 모인 귀족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탁!우승현이 자신의 무릎을 치며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지요. 다르지요.”

“그러니 손을 잡아야 할 것이요. 그렇게 된다면 태자마마께 잃었던 신임도 다시 찾을 수 있고 과거의 권세도 다시 찾을 수가 있을 것이요. 허나 시일이 많이 걸리는 일이기도 하지요.”

이규철의 말에 다시 귀족들은 인상을 찡그렸다.처음부터 가지지 못한 자들은 권력의 단맛을 모른다. 그리고 그 단맛이 끊어지면 입가에는 쓴맛만 남는다는 것도 모른다. 하지만 권력과 권세의 옆에 비루먹은 강아지처럼 굴러먹던 것들은 그 단맛을 너무나 잘 알고 그것을 잃었을 때의 그 비참함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잃어버린 자들은 어떻게든 다시 찾으려하고 또 그 시일을 단축시키려 한다.

“그 안에 우리가 다 말라 죽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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