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469화 (469/620)

< -- 간웅 22권 -- >푸른 사슴부족의 토굴 안둥둥~ 둥둥~점점 북소리가 가까워지고 그 북소리와 함께 오들오들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아이들의 겁먹은 모습들 속에서 족장의 아들만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어두운 토굴 안 입구를 노려보고 있었다.그 노려봄 속에서는 두려움이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표현하기에는 자신을 바라보며 떨고 있는 아이들이 있기에 두려움을 표출할 수도 없는 족장의 아들이었다.

“제,,, 제,,, 제발!”

족장의 아들은 간절히 기도했다.자신들을 도륙하기 위해 달려온 자들이 이 토굴을 발견하지 못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이 순간 족장의 아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런 기도뿐이다.이미 싸늘한 시체가 된 어미에 대한 통곡도 이제 곧 죽을 아비의 걱정도 소년은 할 겨를이 없었다.

그저 이곳이 발견되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다.하지만 이곳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래서 살아남는다고 해도 이 거친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그래도 이 순간만큼은 저 아이들을 데리고 살아야 했다.

그것이 푸른 사슴 부족의 족장의 아들의 운명이었다.

“제, 제발!”

손에는 작은 단도를 쥐고 그 쥐어진 단도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한 자신의 힘이 무엇 하나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족장의 아들은 지금 떨고 있는 아이들을 지키겠다는 다짐으로 그렇게 웅크리고 있었다.

“흑흑흑!”

어디선가 절망처럼 흐느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하나의 울음이 모든 울음이 되듯 토굴 안에는 미세하게 숨죽인 울음소리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하나 크게 울지는 못했다.

“울지 마!”

족장의 아들의 목소리도 한없이 작기만 했다. 하지만 숨겨진 근엄함과 위엄이 있었다. 이제는 자신이 바로 푸른 사슴부족의 족장이니 저 아이들에게 근엄함을 보여야 했다.

“형,,,,,,.”

“울지 마! 울면 안 돼!”

“하, 하지만,,,,,,,.”

“울지 마! 절대 울면 안 돼. 울면,,, 우리가 울면 끝까지 모든 것을 들을 수 없어.”

역시 다르다.족장의 아들이라서 다르다.그래서 다른 것이다. 이래서 태생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형,,,,,,,.”

“난 이제 족장이야! 그러니 내가 울지 말라면 울지 않는 거다.”

족장의 아들의 말에 울던 아이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것을 듣는다. 다 듣고 꼭 여기서 살아남을 거다.”

족장의 아들 탕개 그는 그렇게 살아남겠다고 다짐했다.

“난애신각라(愛新覺羅) 탕개다.”

애신각라(愛新覺羅)라고 했다. 어린 탕개가 애신각라라고 했다.

애신각라는 여진말로 김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 이곳에서 겨우 오랑캐로 취급받는 푸른 사슴부족 사람들이 그 뿌리를 신라에 두고 있다는 의미였다.

신라는 천년의 역사를 이뤘던 천년제국을 말한다. 하지만 흥망성쇠가 있듯 신라는 그렇게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고 지금 이 압수의 끝에 옛 신라의 유민들이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오랑캐라는 이름으로 그 명명을 이어왔다.역시 다르다.

오랑캐와는 역시 달랐다.애신각라의 성을 쓰는 자들은 어른부터 그 아이까지 이렇게 달랐다.

애신각라는 참으로 많은 것을 의미하고 있다. 또한 그들이 신라의 유민이라고 속이며 자신들의 본래의 신분을 숨기고 사는 것까지 참으로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애신각라라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애신각라!그 성씨는 훗날 또 하나의 영웅이 쓰는 성씨이니 말이다.

푸른 사슴부족의 푸름은 훗날 청이라는 의미로 변할지도 모른다. 또한 그 변한 의미가 조상들의 원한을 갚기 위해 자신들의 군마를 고려의 땅을 달릴지도 모른다.어쩌면 여기서부터 시작 된지 모른다.

푸른 사슴부족이 훗날 누구도 감히 대적하지 못하는 강한 존재로 변한 것이 바로 여기가 시발점인지 모른다.역사는 추론에서 시작되고 미래는 추측에서 발생한다.

비록 푸른 사슴부족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청의 뿌리가 될지. 또한 자신을 애신각라 탕개라고 한 저 아이가 훗날 애신각라라는 성을 쓰며 거대한 제국을 만든 자의 조상이 될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하지만 이곳이 분명 시발점일 것이다.

그런 역사의 시발점에 고려 갑산군이 그 모든 것을 파괴하기 위해 와 있는 거다.둥둥~ 둥둥~북소리가 점점 더 요란해졌다.

두두두~ 두두두~말발굽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이제 곧 비명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 비명과 함께 밖에 그리고 목책 위에 버티고 서 있는 강성하고 강인한 푸른 사슴부족은 모두 죽게 될 것이다.그 죽음과 함께 회생의 북변장악은 어쩌면 끝이 날 것이다.

하지만 이 작은 끝은 또 하나의 시작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있었다.두두두~ 두두두~

“말, 말 발굽소리다.”

애신각라 탕개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나직이 말했다.

“아버지! 아니 족장님! 제가 이제 우리 부족을 지킵니다. 애신각라 탕개가 푸른 사슴부족을 지킵니다.”

천신이 끝내 계신다면 푸른 사슴 부족의 완전한 소멸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푸른사슴부족의 무너진 목책.

“이야! 이얍!”

한 번의 전마들의 질주와 갈고리의 투척으로 푸른 사슴부족의 목책은 무너졌다. 또한 그 목책 위에 버티고 섰던 50여명의 전사들은 속절없이 솔방울이 떨어지듯 우수수 떨어졌다.그 다음은 처절한 살육과 투쟁이었다.

죽음으로 향하는 투쟁일 것이다. 죽음 앞에 당당한 이들에게 대항이나 저항 따위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투쟁이다. 푸른 사슴 부족은 그렇게 처절하게 투쟁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랴! 단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말을 달리며 무너진 목책을 넘어선 전마들을 이끄는 조장들은 모두를 소멸하라고 명했다. 이것이 바로 조양의 명령이었다.

압수의 끝자락!이곳을 끝으로 고려는 모든 북변을 통일했다. 이제 끝이 보였다.

자신들이 스스로 오랑캐라고 여기지기까지 한 정도의 처절한 토벌이 끝이 나고 있었다. 그리고 얻은 것은 위태로운 북변이었다.아직까지 요동이 아무런 반응이 없고 또 어떠한 군사적 행동도 없었다.

하지만 만약 요동의 대타발이 움직인다면 이 위태로운 점령도 물거품이 될 수 있었다. 그것을 모두 알기에 고려의 갑산군은 빠른 전격적을 감행했다.

오직 명령으로 움직였다.점령하고 처단하고 정복하라는 명령만을 따랐다.

그 다음에 있을 거대한 전쟁이 뇌리에 떠올라도 애써 외면하고 그렇게 질주해 왔다.그리고 이제 끝이 보인다.

지금까지는 토벌이었다. 하지만 이 마지막 순간 고려 갑산군 제 19제대는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50인의 전사들을 상대로.쉬웅!마상에서 휘둘러지는 검은 당당히 기마대를 맞이해 당당히 싸우고 있는 푸른 사슴부족의 전사의 목을 베었다.

“으악!”

비명과 함께 대지에 피가 뿌려지고 그 뿌려진 피에 말의 발굽을 물들이고 있었다.서걱!하지만 참혹한 죽음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죽음 속에서도 대항이 있었고 항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푸른 사슴부족의 족장이 있었다.그는 야차 같다.

아니 그는 뛰어난 무장 같이 싸웠다. 녹슨 검 한 자루를 들고 자신을 포위한 자들을 향해 겨누고 있는 모습이 군장이며 무사며 족장이었다.

“와! 오란 말이야!”

거친 외침에 충혈 된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피눈물을 흘릴 듯 날카로웠고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모습은 그 자체로 위엄이 가득했다.

“와라! 이 야차들아! 와라! 내 저승길에 동무로 삶을 것이다.”

“죽어라!”

갑산군 하나가 족장을 향해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서걱!하지만 검을 맞고 쓰러지는 자는 푸른 사슴 부족의 족장이 아닌 갑산군 무장이었다.

“커억!”

수욱!검을 맞고 쓰러진 자를 향해 푸른 사슴 부족의 족장은 그의 목 깊이 검을 다시 한 번 쑤셔 넣었다.쫘악!피가 분수처럼 뿌려진다.그리고 이 참혹한 대지를 적신다.허나 그를 포위한 자들의 수는 너무나 많았다.절망 앞에 선 항쟁!죽음 앞에 선 투쟁!지금 그는 그렇게 마지막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와라! 와 보란 말이다아아아다!”

하지만 짧은 시간이 지나고 그의 앞에 서 있는 동족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이 전투에 기마대가 20이나 상했군!”

조양은 인상을 찡그리며 애써 두려움을 숨겼다. 적들은 50인이 전부였다. 그리고 부락 안으로 질주한 기마대는 족히 100이 넘었다.

그런데 당한 자들의 수가 20이나 되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아니 두려웠다.

만약 저들의 수가 500명 정도였다면 이 전투의 승패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조양이었다.

“야차 같사옵니다.”

부장도 놀라 조양에게 말했다.

“야차는 우리겠지.”

회의가 느껴지는 조양이었다. 하지만 그 개인적인 회의는 고려의 번영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조양은 잘 알았다. ‘대정벌에 가엽지 않은 희생은 없는 법이다.’조양은 푸른 사슴부족의 족장을 보며 뇌까렸다.

“생포해라!”

“예?”

“생포해라!”

“예. 알겠습니다.”

조양의 명을 받은 부장이 급히 몸을 돌렸다.

“저자를 생포해라! 갈고리를 던져라! 밧줄을 던져라!”

그의 명령과 동시에 그를 포위하고 있던 기마대에서 갈고리와 밧줄이 던져졌다.쉬웅!쉬쉬쉿척척!기마대의 대부분은 속말말갈족 전사 출신이다. 그렇기에 마상에서 던지는 밧줄 솜씨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쉬웅!처억!그렇게 던져진 밧줄이 몇 번 실패를 하고 나서 끝내 푸른 사슴의 부족장은 팔과 몸에 밧줄이 묶이게 됐다.

“아아악!”

비명과 같은 절규가 울려 퍼졌다. 그 절규 속에서도 끝내 검을 놓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대단한 자다!”

조양은 마음 같아서는 푸른 사슴 부족의 족장을 부하로 삼고 싶었다.허나 이미 자신과 푸른 사슴 부족의 족장은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린 상태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까운 존재다! 그래서 죽여야 한다.”

“생포하는 것이 아니옵니까?”

“저자를 죽이기 위해 더 이상의 희생을 볼 수는 없다. 우린 해야 할 일이 많다.”

“예.”

“활!”

조양이 다시 부장에게 활을 요구했다.

“여기 있사옵니다.”

부장에게 활을 건네받은 조양은 밧줄에 묶인 상태로 사방에서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는 상태에서도 버티고 있는 푸른 사슴부족의 족장을 노려봤다.

“희생 없는 정복은 없다.”

그와 동시에 조양이 활의 시위를 당겼다. 그리고 바로 푸른 사슴 부족 족장의 허벅지를 겨냥했다.틱!순간 시위를 놨고 화살은 빠르게 푸른 사슴 부족의 족장을 향해 날아갔다.퍽억!편전이다.화살은 그의 허벅지를 관통했다.

“으윽!”

그 순간 힘이 빠진 푸른 사슴부족의 족장의 몸이 한쪽으로 휘청거렸다.

“밧줄을 던져라!”

조양은 푸른 사슴부족의 족장이 가엽기는 했으나 편히 죽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도 그가 두렵기에 어떻게든 그를 처절하게 죽여야 했다.

“예.”

그렇게 다시 밧줄이 던져졌다. 그리고 끝내 푸른 사슴 부족의 족장은 움직이지 못하게 됐다.

“저놈을 잡았습니다.”

부장의 말에 조양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천천히 말을 몰아 앞으로 나가 푸른 사슴 부족의 족장 앞에 섰다.

“왜 도망치지 않았나?”

이 물음 그가 가엽기 때문에 또 위대하기 때문에 묻는 말이었다.

“이 들판에 약한 부족이 몸을 숨길 곳은 없다.”

“그래서 소멸을 택한 것인가?”

“도망치다가 죽는 것보다 싸우다 죽는 것이 덜 비참할 것이다.”

“그렇지. 그대의 대단함이 그대를 편히 죽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알고 있소.”

“또한 그대는 내게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조양의 말에 푸른 사슴 부족 족장이 조양을 뚫어지게 봤다. 그리고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으음,,,,,,.”

“이 부락의 죽음 중에서 그대의 죽음이 마지막이다.”

“고, 고맙소.”

“힘없는 자는 그 자체가 죄다. 그게 죄가 되는 세상이 이제 열렸다.”

“그건 아주 오래 전부터 그랬소. 내 당신의 은혜는 잊지 않겠소.”

“은혜,,,,,,.”

“,,,,,,,.”

“당신 부족은 운이 없었다. 내가 먼저 왔다면 살아남았을 것을,,,,,,,.”

“우린 살아남았소.”

“그렇지. 그런 것이지.”

조양은 그 말을 남기고 말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자신의 옆에 호위를 하고 있는 부관을 봤다.

“저자의 발목 힘줄을 잘라라!”

“예. 알겠습니다.”

“주둔하고 있는 곳까지 말에 묶고 끌고 갈 것이다.”

조양의 말에 부장이 기겁했다.제 19제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은 이곳에서도 100리가 넘는 거리다. 그 거리에 말에 묶여 끌려간다면 사람의 가죽이 다 닳아 죽게 될 것이다.

“내 명령을 듣지 못했나?”

“들었사옵니다.”

“이 곳에 오래 있고 싶지 않다. 어서 철수한다.”

“예. 장군!”

“총사령에게 파발을 띄워라! 북변이 정리되었다고.”

“예. 장군!”

조양의 말처럼 그렇게 북변은 갑산군에 의해 정리가 됐다. 회생의 꿈 중 가장 작은 것 하나가 끝내 수많은 부족들의 고통과 눈물 죽음 위에 이뤄지게 된 것이다.

“철수다! 이랴!”

조양이 선두를 서고 그의 말에 푸른 사슴 부족의 족장이 묶여 고깃덩이처럼 질질 바닥에 끌리고 있었다.

“전군! 철수한다!”

“철수다!”

그렇게 푸른 사슴부족은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이 이 절망적인 순간에 원했던 그 하나는 이뤄졌다.

“말을 달려라!”

조양은 그렇게 외치며 급히 말을 몰았다.그리고 그 달리는 말 등에서 고개를 돌려 불타고 있는 부락을 봤다.‘그는 내 손에 죽지만 그대들의 아이들은 살려 주겠소.’조양은 그렇게 아이들이 숨겨진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랴! 오늘 술이 많이 필요 할 것 같다. 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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