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21권 -- >북변 개마고원 일대의 오랑캐 대부락개마고원은 백산과 연화산을 시작으로 북수백산과 대암산 그리고 두운봉들 2000미터 이상의 높은 산들이 많기에 하늘을 떠받드는 지붕이라고 불렸다. 또한 높은 산들이 너무나 많기에 그렇게 높은 봉우리도 높게 보이지 않아 완만한 구릉처럼 보이기에 하늘에서 사람이 뚝 떨어진다면 평야처럼 느껴질 것이다.여름에도 시원하다 못해 몸이 서리고 겨울에는 한기가 뼈까지 느껴지는 지역으로 그곳에 터를 잡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곡물로 배를 불리기에는 부족하나 험준한 지역이기에 누군가의 창끝으로도 죽기 쉽지 않은 곳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평화로운 곳이고 또 그렇게 외부의 침입이 거의 없는 지역이기도 했다.고려가 의주와 길주를 연하는 선으로 여진과 국경선을 정한 후부터는 여진인 금의 간섭도 예맥인 고려의 간섭도 받지 않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잠시간의 평화를 누리던 곳이 바로 개마고원일 것이다.
그런 곳에 삭풍보다 더 거칠고 매서운 죽음의 질주가 시작되고 있었다.회생이 만든 정벌이면서 징벌이 이곳까지 향한 거였다.
허나 이곳을 통제하는 자들은 정벌 이상의 징벌을 시작으로 징벌 이상의 약탈을 자행하고 있었다.모두가 회생의 큰 대의를 따르는 것을 큰 획으로 하고 있으나 본시 인간이기에 이 기회를 이용해 한 몫 단단해 챙기려는 자들도 부지기수였다.
이것을 정복 약탈이라고 할 것이다.전쟁에 죽음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 죽음 뒤에는 죽은 자들의 시체와 재물과 계집이 남을 것이고 그 남은 것들은 죽인 자들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존재했으니 이 개마고원은 하늘아래 지옥이며 지옥 위에 지옥이었다.
산새가 울고 짐승이 한가히 거친 풀을 뜯던 평화로운 이 고원에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울려 지축을 흔들 때부터 죽음 새는 검은 두 날개를 힘껏 펴서 누구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던 오랑캐라 매도되던 힘없는 부락에 내려앉았다.히히 히힝!두두두! 두두두!
“히야! 히야!”
거친 질주가 울려 퍼진다. 지축이 울린다. 마상에 오른 무사들은 전장으로 향하는 용자 같으나 그들은 고려 대충신의 죽음에 대한 복수의 응징이라는 미명을 둘러쓴 약탈자에 불과했다.
지금 질주하는 자들은 갑산군 19제대의 정찰기마대로 오랑캐들이 부락을 형성한 곳을 찾고 있었다.허나 그들은 지금 본래의 목적을 잃은 지 오래였다.
정찰을 이미 끝이 났고 지금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은 약탈이었다.
“히야! 하야!”
두두두! 두두두!속말말갈족 전사 하나가 거대한 대도를 고쳐지고 말에 박차를 가하며 부락으로 화살처럼 쏘아갔고 그 뒤를 20여기의 기마병들이 바짝 뒤를 쫒았다.허름한 목책을 넘어서는 순간 그들은 지옥의 야차가 되어 약탈과 살육을 이어갔다.
베고 죽이고, 죽이고 베고 쓰러지는 죽음과 주검들이 난무하고 울부짖는 아낙들과 영문도 모르고 겁에 질린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죽은 자의 비명보다 더 커지고 있을 때 그들은 이 작은 부락을 점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제일 선두에 섰던 자가 전투가 종료되었다는 생각에 마상에서 내려와 여전히 떨고 있는 자들을 거만하고 추악하게 내려 봤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쓰러진 놈은 멱을 따고 정신을 잃은 놈들은 다시 죽여! 계집들은 상처를 내지 말고 아이들은 밧줄에 묶어라!”
제일 먼저 마상에서 내린 놈이 조장일 것이다.그의 지시에 일사분란하게 20여기의 기마병들은 양을 모는 목동처럼 넋이 나간 계집들과 아이들을 이곳저곳 몰아 작은 공터에 모았다.
“까아악!”
그렇지 않아도 엉성한 작은 오랑캐 촌락이 불에 타오르고 있었고, 여자들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역시 전쟁은 그리고 징벌은 잔인한 법일 것이다.
그것을 증명하듯 늙은이들이 농기구와 같은 것을 들고 자신들의 계집과 아이들을 지키려 했으나 그것은 부질없는 짓이 분명할 것이다. 지금 그리 덤벼든 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으니 말이다.
잘려나간 목이 돼지 오줌보처럼 약탈을 일삼는 기마병들의 발에 차이고 떨어져나간 팔과 다리에는 퍽퍽하게 마른 고원을 적시기에 충분한 절망의 핏물이 흘렀고 죽은 자들의 핏물과 함께 산자들의 피눈물과 아우성이 요동치고 있었다.강하지 못한 것은 죄다.
지키지 못하는 것 역시 죄다.그들은 지키지 못했기에 죄인 것이고 강하지 못했기에 죄인이었다.
죽음 이상의 약탈이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물론 이들의 행동은 갑작스러운 돌발 행동은 아니었다.
19제대 아니 갑산군 전체가 오랑캐에 대한 참살과 약탈을 용인하고 있는 지금 이렇게 참담한 약탈은 끝이 날 수가 없었다.반감에 반감을 사고 있는 고려군이었다.
허나 그들의 반감은 그들의 죽음을 통해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살아남은 자들이 없으니 또한 살아남은 계집과 아이들의 한스러운 절규를 귀를 열고 들어줄 자는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갑산군 대부분의 정찰대는 약탈을 위해 더욱 오랑캐 부족을 찾지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어느 순간부터 이곳에 발을 서서 약탈 있는 자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강간과 윤관이었다.
계집들을 보면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들어서 옷을 찢고 머리채를 잡고 개돼지처럼 채찍으로 후려치며 자신의 욕망을 채웠다.그러니 인간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겁탈의 시작은 계집의 비명이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그것마저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너나 할 것 없이 속말말갈족으로 구성된 정찰 기병들은 주머니에는 알량한 재물을 채웠고 온몸으로는 자신의 욕정을 풀었다.
“계집들을 그만 덮치고 어서 정리해라! 본대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시간이 많다.”
속말말갈족 조장이 소리쳤다. 거의 대부분 이미 아랫도리를 벗고 있는 상태에서 왠지 모를 불안감이 밀려들었는지 그게 아니라면 너무나 난잡한 광경이 보기 흉했는지 그렇게 조장은 소리쳤다.
“뭐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조금 전까지 욕정을 풀던 부하 놈 하나가 바지춤을 올리며 조장에게 다가왔다. 자신의 욕정과 주머니를 다 채웠기에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뭐가?”
“반항이 너무 없습니다.”
“반항이 없다고? 겨우 오랑캐 주제에 고려 갑산군에 대항할 수 있는 족속들이 있을 것 같으냐?”
“그래도 오랑캐입니다. 다른 지역을 정벌할 때는 목책에서 대대적으로 반항을 하고 휘두르고 활을 쐈습니다. 이렇게 쉽게 목책을 뚫고 돌파한 적은 없었습니다.”
부하의 말을 듣고 보니 그도 그랬다.수렵과 목축을 주업으로 하는 오랑캐다.
거친 자연에서 살아가는 자들이기에 그들은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터득했다. 또한 그들은 거친 거란의 후예이거나 발해의 유민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들과 같은 말갈족들이었다. 흑수말갈족부터 백수말갈족들 말이다.
그런 자들은 검을 쓰고 마상무예를 알고 있었다.그러니 반항도 거칠었다. 그런데 지금 그런 방항이 없었다.
그저 농기구를 들고 대항하는 늙은 자들이 전부였다.
“젊은 놈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부하는 그제야 자신들이 참살한 자들 중에 힘을 쓰는 젊은 자들은 없다는 것을 조장에게 말했다.
“없다고?”
“그렇습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젊은 사내놈들은 없습니다.”
그제야 조장도 인상을 찡그렸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쉬우웅!
“커어억!”
그때 한 발의 화살이 계집을 겁탈하기 위해 엉덩이를 들어 올렸던 놈의 항문에 깊게 박혀 등을 뚫고 나왔다.
“웬 비명이냐?”
커억이라는 비명에 속말말갈족 정찰 조장은 기겁해 주변을 살폈다.
“화살 공격입니다.”
“병신 같은 놈! 누가 당한 것이냐?”
“어느 방향에서 날아온 화살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성을 찾고 있던 놈이 몸을 움츠리며 소리쳤다. 그제야 계집을 겁탈하던 전사들이 기겁해 바지춤을 올리며 일어서려고 했고 그 순간 수십 기에 달하는 기마들이 일제히 목책을 뛰어넘어 왔다.
“저주 받을 놈들! 모두 죽여라! 부락민들의 복수를 해라!”
수십 기에 달하는 오랑캐 기병들은 갑산 제 19제대의 정찰기병대들보다 그 수가 3배나 많았다.그랬다.
그들은 수렵을 나갔던 이 마을의 전사들이었다.족히 70여명은 되는 것 같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은 한 손에는 길고 거친 창을 들고 있었다. 차창!그들은 무너진 목책을 지나자마자, 엉덩이를 까고 계집을 덮치던 놈의 몸통을 장창으로 꿰어 죽이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젊은 놈들입니다.”
조장의 부하가 기겁해 소리쳤다.
“나도 보고 있어! 전군 전투준비!”
절규하듯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오랑캐라고 치부되던 젊은 전사들은 그들의 코앞까지 질주해 온 후였고 바지춤을 올리던 속말말갈족 전사들은 힘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창에 꿰어 죽고 검에 베어 죽었다.
“막아라! 막아!”
약탈자가 도리어 이제 죽임을 당하는 자들이 되고 있었다.잿빛 연기가 여전히 피어오르고 여기저기 활활 불타던 움막에서 터져 나오던 절규의 외침을 이제는 속말말갈족 전사들이 토해내고 있었다.
“베라! 한 놈도 살려 보내서는 안 된다.”
사냥을 나갔던 자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중년의 사내의 명령에 의해 그들은 그렇게 복수를 이어갔다. 후웅!
“크에엑!”
파가각! 퍼억 피이잉!
“썅아앙!”
소리치며 방패를 들어 올린 속말말갈족 전사 중 하나는 거대한 도끼를 휘두르는 오랑캐 청년에 의해 방패와 함께 쪼개져 땅에 박히듯 쓰러졌다.
“카아악!”
“모두 죽여라!”
“예. 족장님!”
“오랑캐를 모두 죽여라!”
오랑캐를 토벌하기 위해 말을 달려 온 갑주군 제 19제대 정찰기마병들은 저들에 의해 오랑캐라 불렸다.
어쩌면 이 순간만큼은 참으로 이들이 오랑캐일 것이다.
“흐리야아! 아악!”
“히야! 하야 이얏!”
두두두! 두두두두!
“이얏!”
수우웅!퍼어억 서어억!검에 베어지고 찍히는 순간 비명이 터질 것이다.
“피,, 피해 아악!”
쿠카카칵 콰차앙! 카카캉!
“으악!”
퍼어억!
“크악!”
수우웅!마상에서 화살이 날아와 속말말갈족 전사의 눈에 박혔다.
“카악!”
마상궁술이 뛰어난 자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다. 수렵과 목축으로 살아가는 부족이니 말이다.
“카아악!”
“으악!”
죽어가는 속말말갈족들이 힘없는 늙은이들과 계집을 죽이던 것처럼 그들도 갑자기 나타난 이 부락의 청년들에 의해 날아드는 창검과 화살을 피하지도 반항하지도 못한 채 방패와 함께 쪼개어 지고, 창에 배가 통째로 날아갔고 화살이 박혀 죽었다.
“어디서 나, 나타난 거야!”
이것은 절규의 외침이다.이제 살아남은 자들은 거의 없었다.정찰기병대의 조장과 부하 몇 만이 살아남아 떨리는 손으로 겨우 검을 쥐고 있을 뿐이었다.
“피하셔야 합니다.”
부하가 피해야 한다고 소리쳤다.허나 이미 수십 기의 부락 청년들에게 그들은 포위가 된 상태였다.
“젠장!”
“피, 피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나도 보고 있어.”
“검을 버려라!”
마상에서 이 부락의 족장이 정찰대의 조장에게 검을 버리라고 소리쳤다.
“어서 검을 버려라!”
“,,,, 망할!”
팅!정찰대 조장 힘없이 검을 버렸다.
“투항합니다.”
투항?그것은 전투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단어일 것이다. 지금은 약탈의 자행했던 순간이었다. 그러니 저들에게는 투항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또한 부락의 족장은 투항한 자들을 살려둘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살려 달라?”
“그, 그렇소. 이미 투항했소.”
참으로 입이 부끄럽다. 허나 살기 위해 정찰기병의 조장은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살려 달라? 네놈들은 저기 죽어 울부짖는 사람들이 살려달라고 애원했을 때 휘둘렀던 검을 멈췄느냐?”
“,,,,,,,.”
“쉬이 죽게 두지는 않을 것이다.”
부락의 족장의 말에 정찰기병 조장은 기겁했다.
“으윽!”
“저놈들을 나무 기둥에 매달아라!”
“예. 족장님!”
그렇게 약탈을 일삼던 갑산군 제 19제대의 정찰기마병의 조장은 긴 말뚝에 매달렸다. 마치 마녀를 화형을 시키는 것처럼 그렇게 묶였다.
“으윽!”
고통에 겨워하며 신음소리를 토해내는 조장이었다.
“고통스럽나?”
“으윽!”
서걱!부락의 족장은 묶여 있는 조장의 발목을 잘랐다.
“아악!”
“비명을 질러라! 너희들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또 오겠지. 우린 도망치지 않는다.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없다.”
“으으윽! 본, 본대가 네놈들을 결코, 결코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둥둥~ 둥둥~그때 요란한 북소리가 울렸다.
“봐라! 우리의 본진이 오고 있다. 네놈들은 모두 죽게 될 것이다.”
조장의 절규어린 외침에 부족의 족장이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겠지. 허나 네놈들이 저지른 것처럼 우린 이제 다 잃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지. 우리가 죽은 만큼 죽이고 죽는다.”
부락 족장의 말에 정찰기병대의 조장은 기겁했다.순간 두려움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보통 이런 작은 부락민들은 누군가가 공격해 온다면 도망부터 치려고 하는 족속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