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21권 -- >8. 북진을 알리는 파발!난 이의방과 약속한 것처럼 이연을 소녀에서 여자로 만들어줬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고 드디어 이 고려가 학수고대하던 나의 책봉식이 열리는 날이 왔다.공식적으로 고려의 태자가 되는 오늘이지만 난 오늘보다 더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북변 갑산에서 당도할 파발이었다.
대전 앞 단상 위에는 황제폐하께서 근엄히 옥좌에 앉아 계시고 단상 아래 좌우측으로는 문무백관들이 내 태자 책봉식을 축하하기 위해 대례복을 차려입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아악이 대전 광장에 울려 퍼지고 나는 지금 감격한 백화와 나란히 황제폐하에게 걸어가고 있다.
백화는 지금 내 옆에 태자비로 서 있다는 것이 놀라운지 격양된 표정으로 내 보폭을 맞추고 있고 그녀와 내가 한 걸음 나갈 때마다 문무백관들은 더욱 머리를 조아렸다.그저 이 순간 내 옆에 백화가 있다는 것을 못 마땅하게 여기시는 분은 태후마마 일 것이다.
백화를 노려보는 눈빛이 북풍의 칼바람 같고 자신의 딸인 영화공주가 오늘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는 것에 서운해 하는 것 같았다.그도 그럴 것이다.
내 할마마마이신 태후마마는 단 한 번도 영화공주가 후궁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물론 내가 황제가 된 후에는 당당히 황후가 되겠지만 제1황후가 아닌 제2황후가 될 영화공주일 것이니 그 자체로 내가 괘씸하신 걸 거다.
난 그런 할마마마의 시선을 느끼고 또 못내 서운한 개경공 이의방의 눈빛을 감지하며 대전 단상 위에 근엄히 앉아계신 황제폐하 앞에 섰다.내가 멈춰서는 순간 아악도 멈췄다.
그 멈춘 아악과 함께 황제폐하께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시며 나와 백화를 봤다.
“오늘 짐은 이 고려의 국본을 새운다.”
최대한 근엄하게 말씀하시는 황제폐하이시나 왠지 힘이 없는 어투였다.‘표정도 어두우시다.’내가 태자가 되는 것을 또 백화가 태자비가 되는 것을 싫어하시어 저런 표정이신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내가 미원도 내가 태자가 되는 것을 바라시는 황제이시다. 그러니 더욱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짐은 오늘 태자 회생을 고려의 국본으로 정하고 열성조에게 고하고 만조백관에게 명하니 그대들은 태자인 회생을 도와 이 고려를 더욱 부강하게 하라.”
많은 격식과 예법이 사라진 태자 책봉식일 것이다. 그리하겠노라 간청한 나였고 그리 하라 명해주신 황제폐하셨다.
“황제폐하 만세!”
황제폐하의 황명이 끝이 나는 순간 문하시중이 투팔을 걷어붙여 만세를 불렀다. 그와 동시에 만조백관들이 황제폐하 만세를 외쳤다.
“태자마마 천세!”
이번에는 문하시중이 나를 위해 천세를 외쳤고 이 자리에 모인 만조백관들이 따라 합창을 했다.
“태자마마 천세! 천세!”
“태자마마 천세! 천세!”
서경 황궁에는 나와 황제폐하를 칭송하는 만세와 천세 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려 퍼졌다. 그 만세와 천세소리가 터지는 순간 잔뜩 긴장했던 백화가 그제야 살포시 미소를 머금었다.
내가 처음 그녀를 마음에 품었을 때의 그 미소다.권력을 향해 내달리지 않았던 그때의 그 미소가 지금 다시 보인다.
‘가까이 가려면 더 멀어지는 거야!’난 마음속으로 백화에게 더는 집착하지 말아달라고 청하며 고개를 돌려 그녀를 향해 살짝 웃어줬다. 그 웃음이 죄스럽지만 그 죄스러움이 그녀를 지켜주는 힘이 될 것이다.
다다닥! 다다닥!그때 급히 태자책봉식이 열리는 황궁 대전 앞 공터로 차려 입은 갑주에 흙먼지를 가득 뒤집어 쓴 무장이 거침없이 달려왔다.그의 모습에 이 자리에 모인 만조백관들은 놀라고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고 또한 얼마나 다급한 일이면 태자 책봉식이 열리는 이 순간에 달려올까 하는 두려움도 느끼는 것 같았다.
“무엇이냐?”
그때 장군의 반열에 오르고 견룡대를 책임지고 있는 이의민이 앞으로 나서 무장을 막아섰고 무장은 바로 그의 앞에 또 그의 뒤에 있는 나와 내 뒤에 있는 황제폐하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급보이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가득했다.
“이 불충한 놈! 지금 태자마마께서 태자책봉식에 임하고 계시는 것이 보이지 않느냐!”
이의민이 무장에게 꾸짖었다.
“송구하옵니다. 허나 급히 전하라는 파발이기에 목을 내놓을 각오로 행하였나이다.”
“아무리 급하다고 하나 어찌 이런 무례한 짓을 할 수 있단 말이냐!”
“그만 하라!”
난 이의민에게 말했고 그 순간 이의민은 몸을 돌려 머리를 조아리고 옆으로 물러났다.
“이 대전까지 삼엄하게 견룡대가 경비를 서고 있을 것인데 그 모든 견룡대들이 통과 시켰다는 것은 그만큼 중대한 일이 분명할 것이다. 무슨 일인가?”
난 무장에게 물었다.그 순간 만조백관들이 모두 한없이 궁금한 눈빛으로 무장을 봤다.
“갑산부사 조충의 파발이옵니다.”
“무엇인가?”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다. 한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미소를 머금고 있는 백화의 가슴에 비수를 꽂고 피눈물을 흐르게 할 그 파발이 온 것이다.그런 생각이 드니 나도 모르게 입술이 지그시 깨물어졌다.
“금으로 사신단을 이끌고 가셨던 참지정사 강일천 대감께서 귀국 중에 북변 인근 대마도에서 오랑캐들의 급습을 받아 피살되었다고 하옵니다.”
쿵!내가 저지른 일이지만 내 가슴도 철렁 내려앉았다. 나도 이럴 것인데 내 옆에 있는 백화의 마음은 오직할까!
“뭐라고 하였느냐?”
나는 격양된 어투로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과 함께 되물었다.
“참지정사께서 오랑캐들에게 참살되셨다고 하옵니다.”
“으음!”
난 명배우처럼 현기증이 나는 듯 살짝 휘청거렸고 그와 동시에 백화는 내 옆으로 쓰러졌다.
“태자비! 태자비! 정신을 차리시오.”
난 내게 쓰러진 백화를 부축하며 흔들었고 그와 동시에 상선 최준이 상궁들과 함께 급히 다가와 정신을 잃은 백화를 부축했다.그리고 난 돌아서서 황제폐하를 봤다.
“황제폐하!”
“태자!”
황제폐하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그 목소리가 떨렸다.
“소자의 태자책봉식은 이것으로 끝을 내어야 할 것 같사옵니다.”
“그, 그리하라!”
“소자는 대신들을 소집하여 대책을 마련하겠나이다.”
“그리하라!”
황제폐하는 짧게 내게 명하고 떨리는 몸을 일으키며 대전으로 들어갔고 놀랍게도 공예태후마마께서는 당당한 몸짓으로 쓰러져서 부축을 받고 걸어가는 백화를 한 번 보며 살짝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자리를 떠났다. 무섭다. 이것이 궁중 여인의 본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책봉식은 여기서 끝을 내겠소. 문무백관들은 모두 태자궁으로 모이시오.”
난 당당히 말하고 대전 중앙을 걸었고 내 뒤를 이의민이 거대한 부월을 들고 호종했다.‘드디어 시작인 것이야! 드디어!’갑산 성의 북문 앞 공터.
“성문을 열라!”
철컥! 철커억! 철컥!조충과 박현준이 무거운 갑주를 차려 입고 마상에 올라 있고 그 뒤로 고려 최정예라고 할 수 있는 6만 갑산군이 출정을 기다리며 강성한 위용을 자랑하며 육중한 철갑으로 무장하고 정렬해 있었다.6만의 갑산군은 총 20개부대로 나눠 출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그 누구의 지시도 없는 출정이었다. 만약 이들의 출정에 놀란 요동의 대타발이 군사를 몰아 남진한다면 밀명을 내린 회생은 충신인 조충을 반역자라고 몰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고려의 충신인 참지정사 강일천의 고귀한 목숨을 회생은 거둬드린 것이다.명분!죄스러운 명분이나 갑산부사 조충이 오랑캐를 토벌하고 정벌할 수 있는 명분을 그렇게 만든 거였다.
제일 선두에 선 무장은 갑산부사 조충과 박현준이었다. 끼이이익!피바람을 일으킬 출정을 위한 성문이 거침없이 열렸다.
선두에 서 있던 조충이 말머리를 돌려 하명을 기다리고 있는 6만의 갑산군을 봤다.
“오랑캐들에 의해 충신이신 참지정사께서 억울히 참살당하셨다. 대마도까지 진격하여 오랑캐를 응징하라!”
드디어 명이 떨어졌다.이제는 20여개의 부대가 일제히 진경을 할 것이다.
“거란의 잔당들은 모두 척살하고 투항하는 말갈족은 생포하라!”
이 순간 북변에 터를 잡고 있는 거란족에 대한 인종청소가 감행되는 것이다. 삶과 죽음이 결정되는 순간이고 그 선택의 기준은 고려의 충성할 수 있는지 아닌지 이었다.그런 면에서 이 순간 말갈족은 구원 받은 것이고 거란족은 멸족되는 거였다.
“출정하라!”
“출우울저어엉!”
“앞으로 진격!”
6만의 갑산군이 진격을 시작했다.성문을 나설 때는 거대한 하나였으나 6만의 갑산군이 성문을 모두 벗어났을 때는 거대한 물줄기가 갈라져서 지천이 되듯 20여개로 나눠졌다.이것은 속도전이며 전격전일 것이다. 요동에 있는 대타발의 15만 기마군단이 움직이지 못하게 속도전을 감행하는 조충이었다.
다가닥 다가닥!
“앞으로!”
두두두두두두두두!
“으와아아아!”
조충이 마을 달려 나가자 기마대는 마지막 명령을 제창하며 달려 나갔다.천지를 진동하는 말굽소리가 지진이라도 난 듯이 울려 퍼졌다. 그 진동소리는 피바람을 일으킬 것이 분명했다.
“커어억!”
“커어억! 크윽! 고려군의 급습이다.”
화살을 맞은 거란의 후예들이 허수아비가 바람에 쓰러지듯 쓰러졌다.
“고려군의 급습이다. 커억!”
“막아라! 막아!”
여기저기 고려군을 막으라는 외침이 울렸으나 이미 수백의 기마대는 거란족의 후예들이 거주하는 부락주변의 목책을 넘어선 상태였다. 이제 남은 것은 참담하지만 반드시 이뤄야하는 살육이었다.
“막아라!”
고려군의 병력은 3천의 대병력이었고 또한 야습이었다.그렇기에 거란의 후예들은 변변한 방어도 하지 못하고 쓰러졌고 이 부락의 족장처럼 보이는 거란족은 놀라움과 두려움에 가득 찼다.
“왜 갑자기 고려군이 공격하는 것이야?”
이 살육의 순간에도 거란 족장은 그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이들은 고려에는 크게 해가 되는 존재는 아니었다.
요가 금에게 정벌된 후 서쪽으로 퇴각하던 동족을 따라가지 않고 이곳에서 터전을 잡고 산 것이 그들의 죄라면 죄일 것이고 식량이 부족한 혹독한 겨울에 남으로 내려와 고려 백성을 약탈한 것이 죄라면 또 죄일 것이다.그것이 아니라면 강력한 지도자를 가지지 못한 것이 죄라면 죄고 또한 고려에 스스로 귀부하지 못한 것이 죄라면 죄일 것이다.
허나 분명한 것은 이곳에서 터를 잡고 있는 거란족의 후예들은 오늘 밤이 지나기 전에 모두 숨을 거둘 거라는 거였다.그만큼 모질게 회생은 조충에게 지시를 했다.
처절한 복수처럼 보여야 했다. 그래야 명분이 서는 거였다.
쉬웅!검에 베이고 창에 찔리고 말발굽에 밟히고 거란족 전사도 죽고 여자도 죽고 아이도 죽었다.
“대항을 해라! 대항을 해!”
“활을 쏴라! 기마병을 막아!”
거란족 전사들은 한참이 지난 후에서야 대항이라는 것을 해 보려 했다. 하지만 그 역시 속절없는 거였다.허나 간간히 반항은 이어졌다.고려 기마대를 향해 거란족 전사들은 활을 쏘고 창을 던지고 도끼를 뿌렸다.
“도륙하라! 참지정사 대감의 복수를 하라!”
이곳의 위치는 보천일대다.참지정사가 죽은 압수인근 대마도와는 한없이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이것처럼 20여 곳의 북변지역에서 이런 처절한 살육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이야! 모두 척살하라!”
사실 속말말갈족과 거란족은 철천지원수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니 조충과 속말말갈족 전사들의 손속은 더욱 잔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크게는 대업을 위한 살육일 것이고 작게는 대대로 내려오는 원한의 정리일 것이다.조충의 살기등등한 목소리에 화답하듯 300여기의 기마대는 속도를 더욱 높이며 창검을 들고 돌진했다.
후두두둑!거란족 전사들이 던진 도끼는 방패에 맞고 거의가 튕겨져 나왔고 말에게로 날아가 부딪힌 것들도 마갑에 모두 튕겨 나갔다. 회생이 추구한 개마무사의 중갑기마대가 조충에 의해 이뤄진 거였다.
“히이잉!”
“죽여라!”
말의 흉성은 거칠었다. 또한 죽음 앞에 울부짖는 비명도 거칠었다. “커어억” 퍼석 “크악! 아악” 두두두! 두두두!퍼퍼퍼퍽 퍼퍽!내지르는 창에 뀌어져 나간 것들은 절명하지 못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비명을 질렀고 육중한 철갑을 두른 말에 짓밟혀지는 놈들은 그 머리통의 형체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망할!” 거란족 족장이 피를 토하듯 소리쳤다.
“투항해야 합니다.” 거란족 족장의 옆에 있던 전사 하나가 족장에게 투항을 건유했다.
“으윽!”
“투항하지 않으면 모두 죽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리 살육을 저지르는 것이냐!”
“이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살아야 하옵니다. 족장!”
투항을 건유하는 전사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모, 모두 칼을 버려라!”
끝내 족장도 투항을 결심하고 칼을 버렸다. 그와 동시에 간간히 반항을 하던 거란족들도 들고 있던 칼과 창을 버렸다.
“투항하오! 투항이요!”
족장이 달려 나와 두 손을 번쩍 들었다.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잔인한 화살이었다.
“커억! 투, 투항을,,,,,,,.”
“투항은 없다. 모두 척살하라!”
처절한 복수의 옷을 입은 급습이기에 그 어떤 투항도 받아드릴 수가 없었다. 거란의 후예로 태어났기에 망해버린 요의 후예이기에 그렇게 그들은 죽어야 했다.
“계집과 어린아이들은 생포하라!”
모두 척살하라는 명령에서 계집과 어린 아이들은 살려 생포하라는 명령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명령을 내린 것은 조충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부사!”
옆에 있던 조충의 부관이 물었다.
“끌고 가서 쓸 때가 있다.”
자신이 말하고 나서 자신도 모르게 조충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알겠사옵니다.”
그렇게 오늘 갑산군에 의해 거란족 한 무리가 사라졌다. 또한 같은 시간 20개의 부족들이 참살을 당하던지 아니면 투항을 하던지 해야 했다.이것이 바로 북진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