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458화 (458/620)

< -- 간웅 21권 -- >제주 관아.군사들을 점검하고 있는 조동희 목사의 모습이 보이고 그의 옆에는 건장한 무장 다섯이 조동희 목사를 호위하고 있었다. 물론 그 건장한 다섯의 무장들은 고려태자 회생이 조동희를 지키고 감시하고 보좌하기 위한 별초들이었다.

“준비는 다 되었는가?”

“그렇사옵니다.”

“우선은 조선소로 가세.”

조동희 목사는 지금 군선건조를 시찰하기위해 조선소로 향하기 위해 제주 관아를 나서고 있는 거였다. 하지만 오늘 진정 중요한 것은 다른 곳에서 진행되고 있었다.조동희 목사는 이번까지 해서 제주도로 부임한 것은 두 번째였다. 그리고 이번에도 폭동을 일으킨 제주출신 장정들을 다 섬멸하고 또 그를 처벌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그들을 품에 않았다.

그렇기에 민심은 빠르게 수습이 됐고 회생이 요구한 과업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게 됐다. - 쿠폰5장청솔사랑 - 쿠폰3장퍼플케이브 - 쿠폰10장캐서린즈 - 쿠폰1장John_Doe - 쿠폰4장고독천마 - 쿠폰10장

“판옥선의 건조는 어찌되고 있나?”

조동희가 조선소로 향하면 부관에게 물었다. 물론 그 부관은 회생에게 제주의 민란을 보고한 그 제주출신 무장이었다.

“이상 없이 준비되고 있사옵니다. 도합 34척이 건조되고 있습니다.”

“나쁘지 않군.”

“중앙 조정의 지원이 확실하기에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사옵니다.”

“판옥선 건조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네.”

“예. 목사영감!”

판옥선을 건조하라고 지시한 것은 회생이었다. 사실 회생은 판옥선 말고도 서양의 범선을 건조하라고 지시해 둔 상태였다.

한마디로 판옥선은 근해전투용이고 서양의 범선의 제작은 신대륙을 향해 질주해야갈 원거리 항해용이었다.물론 그 거대한 서양 범선에 홍이포가 장착되는 순간 이 동북아의 바다는 회생의 것이 되겠지만 말이다.

“판옥선의 수가 도합 100척은 되어야 할 것이네.”

“예. 영감!”

100척의 판옥선!사실 판옥선은 고려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은 선박이었다. 지금 이 순간 조동희는 서양의 범선과 함께 판옥선도 최초로 은밀하게 제작하고 있는 거였다.

사실 고려시대의 주력 선박은 누선이라고 불리는 배였다. 고려시대의 누선의 기록을 보면 태조께서 보유한 배를 확인하니 총 100척이 되고 그 중 10여 척의 대선이 각각 길이가 거의 16보이고 1보는 6척이라고 했다.

6척이라는 것은 미래의 기준으로 한다면 180센티미터에 해당되는 것이고 대선이라는 것은 30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선박이라는 거였다. 또한 그 대선은 갑판 위에 누노가 있고 가히 말을 달릴 수 있다고 했다. 또한 그 누선들을 이용해서 군량을 운반해서 나주를 원정했다고 했다.그만큼 태조 때부터 수군의 역할을 중요시 한 고려였다.

하지만 역사의 기록이라는 것이 과장된 것이 있기에 그 누선 중 대선에 속하는 배들도 말이 달릴 수 있을 정도는 아닐 것이다. 아마도 말을 실어 나를 수 있다는 표현을 그리 과하게 한 것이 분명했다.

여기서 누선은 누각이 있는 배를 말한다.그리고 그 누선의 형태는 중국의 사서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무경총요라는 책자 중 누선조를 보면 누선은 선상에 3중으로 누(樓)를 세웠는데, 그 중 큰 것에서는 차(車)를 몰고 말을 달릴 수 있었다. 라는 기록이 있다.

그건 다시 말해 그만큼 배가 크다는 뜻이다.그 중원의 누선을 바탕으로 고려 태조는 누선을 모방하여 재창조를 했다.

비교를 한다면 중원의 누선은 3층 누각을 두고 한쪽 현에 노를 7개씩 달았으며 범장이라고 불리는 돛대가 없다.그에 반해 고려태조가 만든 누선은 노도 있지만 범장이라고 불리는 돛대를 설치했기에 근해 이동도 가능하고 원거리 대양까지 이동도 가능한 배였다.

고 표현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이 표현 또한 실제로 차를 몰고 달렸다기보다는 배가 컸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고려 태조께서 직접 타고 지휘하신 누선의 길이가 96척이나 되는 장대한 누선이었고 이것은 고려의 누선이 신라 말에 무역을 장악했던 장보고의 대형 무역선 건조 경험을 그대로 계승하여 제작하였다는 것이고 그만큼 조선기술이 발달했다는 증거일 거다. 또 나주 원정을 나선 병사들의 수로 봐서 배에 탑승시킬 수 있는 인원의 수가 30명 안팎으로 추정된다.그러니 아주 큰 대선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튼 고려 태조가 당시에 갑판 위에 상장을 꾸미고 길이가 무려 96척이나 되는 장대한 누선을 운영하였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사실이라 할 수 있다. 고려 누선은 신라 말에 장보고가 사용한 대형 무역선 건조 경험 등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을 것이며 조선기술이 그만큼 발달하였다는 증거가 된다.

30명 정도가 탑승할 수 있는 군선이 가장 전투하기에 적합했던 것으로 보인다.그리고 누선을 전투용으로 개조한 것이 바로 누전선이라는 명칭으로 불린 배다.

누전선은 고려 시대 왜구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전함이다.저판은 굵은 통나무 여러 개를 그대로 사용하여 다용골 저판을 이루었다.

또한 삼판과 비우 쪽을 5치 이상 두꺼운 널로 쌓아 올렸다. 삼판에는 참나무 배 못인 피새를 S자 모양으로 때려서 넣고 끝을 쐐기로 박아 마감하였으며, 배의 횡강력을 위해 장쇠를 좌우의 양 삼판마다 네모 구멍을 뚫어 꿰어 걸고 쐐기로 마무리를 했다.

특기할 것은 이물비우를 통나무 바깥쪽의 둥근 모양을 그대로 살려 삼판보다 더 두꺼운 널을 대어 박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강한 파도를 만나거나 바위에 부딪혀도 깨지거나 부서지지 않았다.

이것은 대함선 격파용으로 쓰였고 훗날 조선의 판옥선의 주공격 전술로 이어졌다.사실 역사의 기록에 보면 고려 전함의 견고함은 여몽연합군의 1,2차 일본 원정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범해소록이라는 기록을 보면 크고 작은 함선들이 다 파도에 깨어지고 부서졌으나 유독 고려의 배만이 견고하여 온전했고 기록되어 있다.그러니 전투선으로 쓰기에는 적합한 거였다.

물론 그 누전선이 활용될 수 있었던 것은 화포가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평전선은 기본 구조와 모양이 누전선과 동일하다. 다만, 누전선은 누각을 설치하고 평전선은 누각이 없다는 점이 다르다. 사실 누각이라는 것이 전투 시에는 거추장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 평저선이 더 전투에는 용이한 배인 것이다.

지금 조동희가 회생이 보낸 설계도를 보고 제작하고 있는 판옥선은 누선과 평저선의 장점만을 포함해서 개량하는 신형 전투함인 것이다.

“누선과 평저선의 장점을 그대로 살려야 할 것이네.”

“예. 목사영감!”

조동희는 조선소로 도착해 판옥선 건조 책임자에게 다시 한 번 당부를 했다.이미 34척의 판옥선이 제작된 상태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이곳으로 오는 조동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조동희는 회생의 지시를 받아 차후 사략 함선을 운영해야 했고 그 사략 함선은 전시체제로 돌변한 고려에게 막대한 전투 물자를 제공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조동희의 말투에서 더욱 무게감이 실렸다.

“예. 목사영감!”

“귀선은 어찌 되었나?”

귀선!고려 말 조선 초에 왜적을 격퇴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임진왜란 때 크게 활약한 거북선의 시초가 되는 전선이다.

“돌격선 말이옵니까?”

“그래. 귀선!”

그렇게 조동희는 제주목사로 부임한 후에 회생에게 3장의 전선 설계도를 받았다.그 첫 번째가 판옥선이었고 그 두 번째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추상적인 서양의 범선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이 귀선이었다.

물론 그 귀선은 회생의 기억에 나온 거북선을 본떠서 그린 그림이었다.사실 성웅 이순신 장군이 창제귀선을 건조하였고 그 귀선으로 왜군에게 큰 타격을 줬다. 그리고 그 귀선은 훗날 거북선이라고 불렸고 세계 최초의 돌격용 철갑전선이라고 평가를 받았다.

그것을 지금 400년 넘게 앞당기려고 하는 회생이었다.이제는 미래의 기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회생이었다. 또한 회생 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쉽게 발각이 되지 않는 제주에서 그렇게 엄청난 것을 시작하고 있는 거였다.

“거의 다 건조를 완료했사옵니다. 그런데,,,,,,,.”

“왜 그런 표정이지?”

“철갑을 두른 배가 물에 뜨겠사옵니까?”

“뜰 것이다. 그러니 선박 건조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예. 목사영감!”

선박제조 총책임자는 짧게 대답을 했다.

“또한 귀선을 선두에 용머리를 달아 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어라.”

“예. 그리하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마지막으로 말한 대선은 어찌 되어가고 있는가?”

대선이라고 말한 것은 서양의 범선을 말하는 거였다.사실 판옥선과 귀선은 그 기본이 누선과 평저선을 바탕으로 하기에 선박건조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물자와 인원이 있으면 가능한 일인 것이다.허나 대선이라고 말한 범선은 그 자체가 처음 제작되는 것이기 실패를 반복하고 있는 건조 책임자였다.

“표정을 보니 또 실패를 한 모양이군!”

조동희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그 역시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계속되는 실패가 이어지고 있었다.

“송구하옵니다. 허나 많은 진척이 있었사옵니다.”

“그래? 그럼 더욱 건조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예. 목사영감!”

“쓰이는 물자는 신경을 쓸 것이 없다. 또한 배를 만드는 자들의 노임을 넉넉하게 지급하라.”

“그리 하고 있사옵니다.”

“또한 먹을 것도 풍요하기 준비를 하고 최상의 목재를 이용해서 전선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예. 목사영감!”

“어디든 가고자 하는 곳은 갈 수 있게 단단하고 견고하게 건조를 해야 한다.”

몇 번이고 조동희는 이 조선소에 올 때마다 신신당부를 했다.

“예. 그리하고 있사옵니다.”

그렇게 조동희에 의해 회생의 대 해양 개척 선단은 차곡차곡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랴! 이랴!”

조동희와 무장 몇이 관복을 벗고 급히 오름을 달리고 있었다.그들이 달리는 곳은 제주에서도 오지라고 할 수 있는 곳으로 그곳에서는 제주 민들이 출입이 통제된 곳이 있었고 그곳에서는 해적들이 양성되고 있었다. 또한 남벌이 준비되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워워워!”

급히 말을 멈춘 조동희가 말에서 뛰어내렸고 기다리고 있던 건장한 사내들이 조동희를 보며 머리를 조아렸다.

“단주를 뵈옵니다.”

이곳에서는 조동희를 제주목사라 부르지 않고 단주라 불렀다.

“그래!”

조동희의 표정은 사뭇 긴장감이 감돌았다.

“오늘이 첫 출정이지?”

“그렇사옵니다. 단주!”

그리고 보니 작은 포구에 50여척의 전선들이 출항 준비를 끝내고 대기하고 있었다.

“너희들은 누구이냐?”

조동희의 물음에 검을 차고 출항 준비를 끝낸 사내들이 조동희를 봤다.

“아무 것도 아니옵니다.”

“그렇다. 너희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허나 너희들을 위대하신 분은 기억해 주실 것이다.”

그 위대하신 분은 회생을 말하는 거였다.물론 지금 출항을 하는 사내들은 모르고 있지만 말이다.찬찬히 지켜보니 출항 준비를 끝낸 사내들의 수가 3000여명 이었다.각 전선에 60명씩 탑승을 하고 출항을 하는 거였다.

“알고 있사옵니다.”

“너희들이 지금 출항할 곳은 왜에 남쪽 아래에 있는 대섬이다.”

조동희가 말하는 것은 현대인들이 알고 있는 오키나와를 말하는 거였고 고려시대에는 아직 왕국도 건국되지 않고 부족형태로 생활하고 있는 섬이었다.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오키나와인 큐슈는 일본과는 다른 역사를 가진 다른 존재였다.

류큐국은 우구국이라고 불리기도 했고 동중국해의 남동쪽, 현재 일본 오키나와 현 일대에 위치하였던 독립 왕국이다. 100여 년간 삼국으로 분할되어 있던 것을 1429년에 중산국(中山國)이 통일하여 건국하였다.

류큐국은 중국이나 일본, 동남아시아 등과의 중계 무역으로 번성하였다.그들이 번영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위협하는 존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지금 고려이 회생의 명을 받은 조동희를 단주로 여기는 3000의 군사들이 자신의 신분을 버리고 류큐국을 정복하기 위해 출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섬을 우리의 제 2의 거점으로 삼을 것이다.”

“예. 단주!”

드디어 해양에서도 회생의 거대한 계획이 실행에 옮겨지고 있는 거였다.

“출항하라!”

“예. 단주!”

“그대들을 고려가 잊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라.”

“예. 알고 있나이다.”

3천의 군사들이 우렁차게 외쳤다.이것은 최초의 남벌일 것이다. 그렇게 회생은 대항해의 시대를 열기 전에 왜를 점령할 생각을 했고 그 시작을 왜와 다른 류큐국으로 정했다.

물론 그 시대에는 류큐국이라는 국명도 없었지만 말이다. 물론 그 시대에는 류큐국이라는 국명도 없었지만 말이다.

물론 그 시대에는 류큐국이라는 국명도 없었지만 말이다. 물론 그 시대에는 류큐국이라는 국명도 없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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