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21권 -- >4. 번뇌는 여기까지!내 마음에 천둥이 또 내 마음에 폭우처럼 내리던 번뇌는 내가 마신 독주가 깨는 순간 끝이 났다. 내가 잠에서 깨지 전에 이미 비련은 잠에서 깨어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차분히 탁자 앞에 앉아 내가 깨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스르륵 눈을 뜨는 순간 차향이 나를 자극했고 지난밤 독주를 들이킨 나를 위해 비련이 준비한 것 같았다.
“으윽!”
독주를 그리도 들이켰으니 깨자말자 머리가 터질 것 같고 속이 쓰렸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많은 술을 마신 것도 처음이었다.
“깨셨사옵니까? 나리!”
“그래. 깼구나! 너도 잘 쉬었느냐?”
“예. 나리! 나리의 품에서 편이 쉬었나이다.”
“다행이구나! 내 품에서 편이 쉴 수 있는 여인이 있으니.”
내 말에 비련이 물끄러미 나를 봤다.
“차를 준비했나이다. 조반 전에 쓰린 속을 달래소서.”
“그러자꾸나!”
난 천천히 일어나 벗어놓은 옷을 입었고 비련은 내 옆에서 내 수발을 들었다. 누가 본다면 초야의 묻혀 사는 젊은 부부로 보일 것이다. 이곳이 유곽이 아니라면 말이다.두두두~ 두두두~
“아직도 비가 오는 것이냐?”
“예. 나리!”
난 비련의 대답에 이 쏟아지는 비 때문에 여전히 대마도에 갇혀 있을 고려의 충신인 참지정사 강일천을 떠올렸다.‘번뇌는 이제 끝이다.’꼭 깨문 입술이 내 사악한 의지를 담았다.
“차를 드시옵소서! 찬모에게 조반을 준비하라고 했나이다.”
“그러자꾸나!”
난 비련이 준비한 차를 마셨다. 속을 달래주는 차인지 마시는 순간 내 속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괴로우라고 마신 술이었다.모든 것을 잊으라고 마신 술이었다.허나 깨고 나니 그 괴로움은 여전했다. 비련이 말한 것처럼 싫든 좋든 해야 하는 일이라면 해야 한다.난 그런 생각을 하며 날 보며 있는 비련을 봤다.
“내가 몇 날 후에 해야 하는 일을 다 끝이 나면 너를 데려갈 것이다.”
내 말에 비련이 다시 나를 물끄러미 봤다.
“그렇게 말씀하신 공자들이 많았지요.”
“내가 너를 희롱한다고 보느냐?”
“저는 희롱하라고 있는 존재이옵니다. 나리!”
자신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비련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다.
작은 말갈부족이라고 해도 그 부족의 족장의 딸이었다.따지고 본다면 혈통을 더 중시하는 말갈족이기에 그녀는 공주 정도로 대우를 받았을 것이다.
허나 팽창하려는 고려 군사들에 의해 처참하게 그 부족이 사라졌고 그리고 바로 노예라는 신분으로 또 창부라는 신분으로 떨어졌다. 그러니 자결을 하지 못했다면 현실적이어야 했다.‘그러고 보니 자존감이 있을 것인데 자결을 하지 않았어.’족장의 딸이다.
아무리 자결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해도 이리 창부로 살 수는 없는 여인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모질게 살아가고 있었다.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족장의 딸이라 했느냐?”
내 물음에 비련이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괜한 것을 기억하고 계시옵니다.”
“그러냐?”
“송구하옵니다. 나리!”
“어찌 되었던 기억을 하였으니 네 부족의 이야기나 들어보자.”
내 말에 비련이 다시 날 봤다.
“사라진 부족의 이야기를 들어 무엇을 하겠사옵니까?”
“부족이 사라졌는데 어찌 너는 살아 있는 것이냐?”
난 사실 비련이 이렇게 창부로 지내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 정도의 미색이라면 또 저 정도의 기품을 가진 여인이라면 창부로 시작을 했어도 지방 토호들이 그냥 둘 이유가 없었다.
아니 누구라도 첩을 삼았을 것이 분명했다.그런데 여전히 그녀는 뭇 사내를 상대하는 창부였다. 그러니 그런 사연이 있을 것 같았다.
“부족은 살아졌어도 부족민은 남아 있기 때문이옵니다.”
역시다.
“부족민이 남아 있다?”
“그렇사옵니다. 말갈이라고 해서 또 오랑캐라고 해서 모두 사나운 것은 아니옵니다. 저희 부족은 경작을 하고 또 가끔은 사냥을 해서 지내는 부족이었습니다.”
“그러니 전사의 수도 적었을 것이고.”
“그렇사옵니다.”
“그러다가 오랑캐 토벌을 나온 고려 군사들에게 부족이 풍지박살이 났을 것이고.”
“그렇사옵니다. 고려 군사들에게야 모두가 다 사나운 말갈족이니 말이옵니다.”
“그래서?”
“죽지 못하고 노예로 팔려온 부족민이 꽤나 되옵니다.”
순간 비련의 눈빛이 서글펐다. 하지만 그 서글픔에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눈빛이었다.
“그래서 창부가 된 것이냐?”
“그렇사옵니다. 창부로 팔려왔으니 고려에서 창부로 살아가면 많은 재물을 모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나이다.”
“그래서?”
“몸을 팔고 그 판 몸으로 제 부족민들을 다시 샀습죠.”
결국 비련이 창부로 지내는 것은 노예로 거친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의 부족민들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것이냐?”
“그렇사옵니다. 나리처럼 젊은 공자들이 저를 위한 분이 꽤나 있었사옵니다. 허나 첩으로 산다면 일신의 안위와 영화는 누릴 수 있으나 여전히 노예로 지내고 있는 제 부족민들을 구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리 사는 것이옵니다.”
“속 깊은 이야기를 내가 하는구나!”
“비가 오지 않사옵니까?”
“그렇지 비가 오지.”
“그리고 또,,,,,,,.”
아마 비련이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은 내가 좀 더 많은 화대를 내놓으라는 거였다. 내 동정심을 자극하고 있는 거였다.자존심이 상해도 어찌 되었던 그 재물로 다시 자신의 부족민을 되살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많이 구제를 했느냐?”
“흔한 창부가 어찌 많이 구제를 했겠사옵니까? 단지 이 유곽에 있는 창부 몇과 어린 아이 몇이 다 이옵니다.”
“부족의 여인을 창부로 다시 만든 것은?”
“재물을 모을 수 있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부족민을 구할 수 있지 않겠사옵니까.”
“그렇지. 그럼 살아남은 너의 부족민이 몇이더냐?”
“왜 물으시옵니까?”
“내 번뇌를 잊게 한 값은 해야지.”
내 물음에 다시 비련이 날 뚫어지게 봤다.
“100여명은 되옵니다.”
“적지 않은 수이구나!”
“그렇사옵니다. 작은 부족이었으나 저희 흰 뿔 사슴부족은 풍요한 부족이었사옵니다. 비록 전사의 수가 적어 작은 부족으로 취급되었으나 그 인원수는 작지 않았사옵니다.”
평화로운 말갈부족을 내 팽창정책 때문에 저리 멸족이 된 것이다. 아마 내가 갑주를 식읍으로 받은 후부터 그곳으로 군사를 보내고 또 양성을 하는 과정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내 대망에 희생자라고 할 수 있었다.
“흰 뿔 사슴부족?”
“그렇사옵니다. 나리! 하찮은 부족에게는 더는 관심을 두지 마시고 저는 조반을 준비하겠나이다.”
비련이 조심이 일어나려고 했다.
“앉아 있어라!”
“예. 나리!”
“오늘 차의 맛이 참 좋구나!”
난 비련을 잠시 봤다가 문 쪽을 봤다.
“밖에 있는가?”
아마 이의민이 밖에서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예. 갑동나리! 소인 의민이옵니다.”
“들어오라!”
“예. 나리!”
이의민이 조심히 안으로 들어섰다. 아마 밖에서 나와 비련의 이야기를 다 들었을 것이다.
“부르셨나이까?”
“곧 떠날 것이다.”
내 말에 이의민이 잠시 나를 봤다. 드디어 결심이 섰구나 하는 눈빛이었다.
“예. 나리! 채비를 하겠나이다.”
“그 전에 이곳에 내 가솔 하나를 남겨야겠다.”
“예?”
“내가 품은 계집이다. 그러니 지켜야할 것이다.”
이의민은 이미 예상을 했다는 눈빛을 보였다.
“알겠나이다. 준비를 시키겠사옵니다.”
“내 여인이 된 이 비련에게는 딸린 식솔들이 많다고 하는구나!”
“예. 나리!”
“다 찾아라! 흰 뿔 사슴 부족을 기억하고 있는 자는 다 찾아서 이곳으로 데리고 오게 하라.”
“명을 따르겠나이다.”
이의민이 짧게 대답을 했고 내 지시에 비련이 놀라 나를 봤다.
“이곳의 일을 다 끝을 낸 후에 서경으로 데리고 갈 것이다.”
“명을 받잡사옵니다.”
“채비를 하라!”
“예. 나리!”
바로 이의민이 조심히 물러났고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보고 있는 비련이었다.
“도대체 누구이오리까?”
비련이 내게 물었다.
“내가 누구냐고 물었느냐?”
“그렇사옵니다. 누구이오리까?”
“앞으로 네가 모실 남자지. 오늘 차 맛이 참 좋구나!”
“제가 모실 분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그렇다. 이 차로 내 허기진 배를 달랠 수가 없을 것 같구나.”
“조, 조반을 준비하겠나이다.”
“그래. 든든히 먹어야겠다. 험한 날에 험한 길을 달려 험한 일을 하려면 든든히 먹어야지.”
"어디 가시옵니까?"
"그래. 갈 곳이 있다."진정 난 가야 할 곳이 있다. 고민을 해도 비뀔 것은 없다.
가야하는 길 이제는 갈 것이다.내 지시를 받은 조동희는 제주 바다에서 아무런 고민도 번뇌도 없이 내 지시를 따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난 지금 나 홀로 고민과 번뇌를 거듭하고 있었다.
아니 되는 것이다.'이래서는 아니 되는 것이지.'난 조동희의 얼굴을 떠올렸다.'지금쯤이면 내려보낸 남벌을 시작했을 것이야!'난 조동희의 얼굴을 떠올렸다.'지금쯤이면 내려보낸 남벌을 시작했을 것이야!'난 조동희의 얼굴을 떠올렸다.'지금쯤이면 내려보낸 남벌을 시작했을 것이야!'난 조동희의 얼굴을 떠올렸다.'지금쯤이면 내려보낸 남벌을 시작했을 것이야!'난 조동희의 얼굴을 떠올렸다.'지금쯤이면 내려보낸 남벌을 시작했을 것이야!'난 조동희의 얼굴을 떠올렸다.'지금쯤이면 내려보낸 남벌을 시작했을 것이야!'난 조동희의 얼굴을 떠올렸다.'지금쯤이면 내려보낸 남벌을 시작했을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