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 20권(서경은 천도다!) -- >고려의 대신들은 내 파격적인 조치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저들이 놀랄 일은 많이 남아 있었다. ‘이런 것으로 놀라면 안 되지. 이제부터가 진짜 놀랄 일일 것인데.’난 대신들을 쭉 둘러봤다.
그저 이 순간 개경공인 이의방과 내 외숙인 이고 대장군만이 담담히 나를 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놀라시는 거요?”
난 그 이유를 알면서도 물었다.
“아니옵니다. 태자마마!”
대신들이 일제히 내게 대답을 했다.‘최창평에게도 한 자리를 줘야겠지.’최창평은 안북도호부 도독이지만 지금은 40개 이북의 성을 대표하고 있었다. 그러니 최창평에게도 뭔가를 내려야 이북의 고려민들이 불만을 품지 않을 것 같았다.
“최도독!”
“예. 태자마마!”
“그대의 공도 크오.”
“황공하옵니다. 태자마마!”
“그대에게 이 황도의 총 수비 대장군의 직을 수행해 줄 것을 부탁할까 하는데 어떻소?”
황도의 수비를 담당하는 것은 요직 중에 요직일 거다. 내 외숙도 이번 조치에 조금은 놀란 듯 날 봤다.
“소신이 말이옵니까?”
“그렇소.”
“황공하옵니다.”
안북도호부 도독 최창평은 감격한 듯 날 봤다.‘감격에 감격을 더해야겠지.’난 최창평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최도독!”
“예. 태자마마!”
최창평이 우렁차게 대답을 했다.
“그대에게 내가 포상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대동강 포구 운영권을 내릴까 하오.”
“대, 대동강 포구 운영권이라고 하, 하셨습니까?”
개경에 벽란도가 있다면 서경에는 대동강 포구가 있다.
“그렇소. 이건 내가 이북의 고려민들을 아끼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요.”
내놓고 난 이북 백성들을 챙기고 있다고 말했다.
“황, 황공하옵니다. 태자마마!”
대동강포구는 이제 곧 벽란도 포구보다 더 커질 것이 분명할 거다. 그런 포구의 운영권을 줬으니 저렇게 감격하는 거였다.
“그대가 성실히 포구를 운영해서 황실에 보탬이 되도록 하라.”
“예. 태자마마!”
난 그리고 다시 대신들을 봤다. 거의 대부분 중요한 인물들에 대한 포상은 끝이 났다고 봐야 할 거다.
그저 외숙에게만 아무 것도 주지 않은 나였다. 하지만 외숙은 불만이 없을 것이다. 내가 곧 따로 부를 것이고 그에 대한 합당한 것을 내릴 것이니 말이다.
‘그럼 이제부터 엄청난 일을 저질러 볼까.’김돈중의 사택.회생에게 사택을 본의 아니게 내어준 김돈중은 개경에 다른 사택을 마련하고 개경에 머물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회생의 아내인 백화가 찾아왔다는 연통을 받고 인상을 찡그렸다.
“좋은 일은 아닐 것인데.”
김돈중은 백화를 볼 때마다 사라진 무비가 떠올랐다.
“표정이 어둡습니다. 대부!”
김돈중은 다시 대부의 위치를 찾았다. 그리고 조금씩 자신의 세력을 모으고 있었다.
물론 그들은 몰락한 개경의 귀족들이었고 김부식의 은혜 아닌 은혜를 입은 존재였다.
“밖에 태자마마의 비께서 행차해 계시다고 하옵니다.”
귀족 하나가 김돈중에게 말했다.
“좋은 일은 아닐 것이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옵니까? 김대부!”
“태자마마께서 이미 서경천도를 명하셨소. 그런데 이렇게 나를 찾아왔다는 것은 나를 아직 개경출신의 귀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요.”
“그것이 어찌 문제라는 말이옵니까?”
귀족 하나의 말에 김돈중이 그 귀족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내 어찌 이런 것들을 믿고 세를 불릴 생각을 했단 말인가? 어리석은 것들.’한숨 밖에 안 나오는 김돈중이었다.
“정말 모른다는 말인가?”
“무엇을 알아야 하옵니까?”
“서경천도가 칙령으로 내려졌으니 개경출신 귀족들의 반발을 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곧,,,,,,,,.”
김돈중은 인상을 찡그렸다.
“곧?”
“곧 태자마마의 진노를 사게 되는 일이라는 것을 모르나?”
그제야 모인 귀족들이 기겁해 인상을 찡그렸다. 그만큼 회생은 이들에게 무서운 존재다.
“태자마마께서는 모진 분이시네. 만약 개경출신 귀족들이 서경천도에 불만을 가진다는 것을 아시게 된다면 개경출신 귀족들을 버리실 수도 있어.”
“하오나 저희는 아무런 불만도 없사옵니다.”
겁에 질린 귀족이 김돈중에게 말했다.
“밖에 계신 분이 누구이신가?”
“태자마마의 비이시지 않습니까?”
“그 전에.”
“그 전이라고 하시면?”
“그 전에 강일천 대감의 여식이시네. 그럼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도 모른다는 말인가?”
김돈중의 짜증스러움에 영문을 몰라 하던 귀족들이지만 그 중에서 젊은 귀족 하나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개경 대 귀족이신 두 분이 회동을 하시는 모습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옳네. 내 마음을 아는 사람은 그대 진 민수뿐이군.”
“송구하옵니다.”
“송구할 일은 아니지.”
김돈중은 그렇게 말하고 인상을 찡그렸다.‘태자마마께서는 두루두루 살피는 성격이신데,,,,,,.’김돈중은 자신의 사택 근처에도 회생이 보낸 별초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아니 그 어느 대신들의 사택에도 은밀히 매복하고 정탐을 하고 있는 별초들은 존재했다.
“이미 태자마마께서 전서구는 날았을 것이옵니다.”
진민수가 김돈중에게 말했다.
“그렇겠지.”
그 말에 나머지 대신들이 놀라 표정이 굳어졌다.
“대부!”
“말하게.”
“하지만 비빈 마마를 그냥 밖에 세워두시는 것도 불충일 것이옵니다.”
김돈중의 입장에서는 진퇴양난이라고 할 수 있었지.
“그렇지.”
“분명 비빈께서는 강일천 공을 대신해서 오셨을 것입니다.”
“태자마마의 뜻을 꺾기 위해?”
“그럴 것입니다.”
“그건 화가 되는 일이네.”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니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셔야 할 것입니다.”
“극단적인 방법?”
“그렇사옵니다. 저는 내일 날이 밝으면 바로 가솔들을 이끌고 태자마마의 식읍인 북변 갑산으로 이주를 할 것이옵니다.”
“북변 갑산까지?”
“그렇사옵니다. 이미 개경은 태자마마께 버려졌사옵니다. 이곳에 오래 있다는 것은 태자마마께 의심을 살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제 짧은 소견으로는 곧 서경도 개경의 꼴이 될 것입니다.”
놀라운 생각이었다.
그저 김돈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그런 엄청난 생각을 하는가? 개경에서 천도를 공표 된지 얼마가 다시 태자께서 천도를 하신단 말인가?”
중년의 귀족 하나가 젊은 귀족 진민수를 꾸짖듯 말했다.
“송구하오나 답은 이미 정해졌사옵니다.”
“답이 정해졌다니? 어린 식견으로 자네가 뭘 안다고 그런 소리를 하나가?”
중년의 귀족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태자마마께서는 북진을 생각하고 계십니다. 어르신!”
“북, 북진!”
“이 고려 땅 어이에도 태자마마께서 원하시는 황도는 없사옵니다.”
김돈중은 중년의 귀족에게 가르치듯 말하고 있는 진 민수를 봤다.
“그만들 하시게.”
“송구하옵니다.”
“나는 태자마마의 뜻을 따를 것이네. 그러니 개경에 대한 미련은 버리시게.”
“하오나 개경은 태조폐하께서 창건하신 고려의 수도이옵니다.”
“그걸 누가 모르나.”
김돈중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러실 때가 아니옵니다. 우선은 비빈마마를 뵈올 때입니다.”
진 민수가 김돈중에게 말했다.
“그렇지. 알았어. 모두들 물러가 있게.”
“정말 저희들을 버리실 참이십니까?”
진 민수를 꾸짖던 중년의 귀족이 김돈중에게 하소연을 하듯 물었다.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살길을 찾자는 거네. 살 길을.”
“우리가 서경으로 간다면 다시 일어설 발판이 없사옵니다.”
“서경으로 간다면 그렇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대들도 진 민수의 말을 듣지 않았나?”
“예?”
“지금의 모든 권력은 태자마마께서 내리시는 것이고 태자마마에게서 나오는 것이네. 그러니 갑산으로 가야겠지.”
김돈중의 말에 개경출신 귀족들은 모두 인상을 찡그렸다.
“그건 아닌 것 같소이다.”
혈기가 왕성해 보이는 귀족 하나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럼 알아서 각자도생하시게.”
“지하에 계신 대감께서 통곡을 하실 일이십니다.”
지하에 계신 대감이라는 존재는 김부식을 말하는 걸 거다.
“쯔쯔쯔. 우리가 언제부터 개경출신 귀족이라고. 가보시게. 나랑 뜻이 다른 분들은 가보시게.”
“알겠소이다. 저도 그리는 못하겠습니다. 조정에 출사를 안 하면 그만이지 않습니까.”
개경출신 귀족들이 거의 대부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한 번의 시련에 너무 크게 겪이셨습니다.”
한 번의 시련이라는 것은 무신정변에서 김돈중의 가문이 풍지박살이 난 것을 말할 것이다.
“쯔쯔쯔! 여기서 더 말할 것이 무엇에 있나? 가보시게.”
“50줄에 얻으신 아드님한테 부끄럽지 않습니까?”
귀족 하나가 김돈중을 조롱하듯 말했다.
“허허! 이 사람들이!”
그랬다.김돈중은 무신정변 이후에 가문이 멸족에 가깝게 몰락했다가 다시 회생의 신임을 받게 되어 겨우 가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아내를 얻었고 그 어린 아내에게서 아이 하나를 뒀다. 물론 이제 겨우 젖먹이지만.
“가 보래도. 나랑 뜻이 다르면서 무슨 소리가 그리 많나.”
세를 불리려고 했던 김돈중은 스스로 개경 귀족들을 버렸다.
“좋소이다. 내 대감마님의 은혜를 입어 여기에 왔지만 따를 분이 아니었소이다.”
그렇게 개경 귀족들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리고 이 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은 진민수뿐이었다.
“다 떠나는군요.”
“내가 화를 자초한 것이지.”
김돈중이 인상을 찡그렸다.
“백화 비빈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내 급채를 해서 혼절했다고 알리시게.”
“그 말을 믿겠습니까?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꼴이옵니다.”
“가끔은 손바닥으로 해를 가려서 목숨을 구할 때도 있는 것이야. 여전히 태자마마의 별초들이 나를 보고 있을 것이네.”
“예. 대부!”
“그리고 자네는 지금 서경으로 가시게.”
“제가 말이옵니까?”
“태자마마께 자네는 필요한 존재일 것이네. 내 추천장을 써주지.”
“태자마마께서 추천장 하나로 사람을 쓰실 분이셨습니까?”
“자네를 보며 흡족해 하실 것이네.”
“감사하옵니다. 허나 저 혼자 서경으로 가면 의심을 받을 것이옵니다.”
“결국 그리 할 것인가?”
“예. 곧 이 고려의 중심은 갑산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요동이 될 것입니다. 더 나가서 증도가 되고 중원의 낙양이 될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안목이 분명했다.
“그럴 수도 있지.”
“저는 가솔들을 이끌고 갑산으로 가서 정착을 한 후에 서경으로 가겠습니다.”
“그리 하시게.”
“그럼 저는 손바닥으로 해를 가려 보겠습니다.”
“그러시게. 난 그럼 혼절을 하겠네.”
백화는 지금 김보당의 사택 별관에 모셔져 있었고 의자에 앉아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환란을 한 번 겪으니 대호의 자식이 개가 되었군.”
대호는 김부식을 말하는 걸 거고 개는 김돈중 일 거다. 백화는 이곳으로 오면서 개경귀족들의 대단결을 바라고 있었다.
자신의 부친인 강일천과 김돈중의 부친인 김부식을 따라는 개경귀족들과 문신들이라면 충분한 힘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여긴 백화였다. 하지만 이렇게 홀대를 받고 있는 백화였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회생이 두려운 존재이기 떄문이지만 말이다.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주군!”
호종을 하고 있던 홍련이 물었다.
“나를 두려워하고 있어. 내가 이곳에 온 것을 두려워하는 거겠지.”
“예?”
홍련은 영문을 몰라 되물었다.
“가자! 더 기다릴 것이 없다. 괘씸한 늙은이군. 내 오늘을 기억하지.”
순간 백화의 눈빛이 차가워졌다.그때 진 민수가 별관으로 들어서서 백화를 보고 머리를 조아렸다.
“비빈 마마를 뵈옵니다.”
“비빈? 내가 비빈으로 보이시오?”
백화는 태자비로 불리기를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태자비로 공포된 것은 아니고 진 민수는 그래서 백화를 비빈으로 말했고 그것이 백화의 노여움을 사고 있었다.
“송구하옵니다.”
“오늘 이 사택에서는 내가 송구할 일을 많이 당하는군요.”
“그 역시 송구하옵니다.”
“그런데 어찌 김돈중 대부께서 오시지 않고.”
눈에 살기까지 감도는 백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