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 20권(서경은 천도다!) --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경대승이 다시 날 봤다.
“태자마마!”
“말하시오. 경대승 장군.”
“곧 채비를 해서 떠나겠나이다.”
“그래주시오.”
“소장 물러가도 되겠사옵니까?”
“그대의 어깨에 고려의 사활이 걸려 있소.”
“예. 태자마마!”
“물러가도 좋소.”
내 말에 경대승이 조심히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리고 나를 향해 군례를 올렸다.
“소장 물러가겠나이다.”
경대승은 뒤로 조심히 세발 물러나서 돌아섰다.
“가자! 초원으로 가려면 준비할 것이 많다.”
그렇게 경대승은 내 내실에서 나갔다.임시 태자궁에서 나온 경대승은 전각 댓돌 앞에 서서 먼 산을 물끄러미 봤다.
그리고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행동처럼 보였다.
‘태자께서는 나를 이리도 염려하신단 말인가,,,,,,,,.’역시 경대승은 특출한 인물이 분명했다. 그런 경대승을 찬찬히 전각 앞마당에서 기다리고 있던 대신들이 보고 있었다.
어떤 이는 부러워하는 눈빛으로 또 어떤이는 시기의 눈빛으로 그리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경대승은 그저 태자인 회생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슨 결심이라도 선 듯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이렇게 가서는 안 되지.’경대승은 그렇게 생각을 하고 다시 전각을 향해 몸을 돌렸다.
‘주인이 나를 저어하게 생각하게 하는 것도 불충이라면 불충이다.’경대승은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성큼 전각안으로 들어섰다.
“경대승 장군이 왜 다시 들어가는 거지?”
안북도호부 도독 최창평이 경대승의 모습을 보고 이상하듯 중얼거렸다.
“태자께 보고를 드리지 못한 것이 있나 봅니다. 도독!”
김경희 장군이 안북도호부 도독에게 말했다.
“보고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소?”
“뭐 예를 들면 아마도 악비군 지휘무장 118명을 참한 것을 보고 드리지 않을 것 일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경대승은 태자인 회생의 명을 받아 악비군의 무장 118명을 전원 참수했다. 이제는 악비군을 이끌 존재는 없다고 봐야 할 거다.그렇게 영화공주가 살생을 금해 달라고 회생에게 당부를 했지만 그 당부가 있기 전에 이미 회생은 처단할 자는 모두 처단한 상태였다.
“그런가?”
“그렇습니다.”
“하여튼 태자마마께서 경대승 장군을 참으로 아주 많이 신뢰하시는 모양이군. 저렇게 독대를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말이네.”
“그렇습니다. 도독! 그리고 거의 비슷한 춘추이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마음이 통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역시 경대승 말고는 회생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인물이 없었다. 그렇기에 회생은 더욱 더 경대승을 경계하는 지도 몰랐다. 자신의 속내를 너무나 잘 아는 부하.
그런 존재는 계륵이라고 치부해서라도 베어야 하는 존재이니 말이다. 그게 바로 권력자의 속성일 거다.그렇게 회생은 권력자의 속성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그가 만약 그런 속성을 깰 수만 있다면 더 큰 권력자가 되고 지배자가 될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회생의 한계인지도 몰랐다.
“무슨 말인가?”
난 다시 들어온 경대승을 보며 그가 말한 것을 듣고 놀라 되물었다.
“송구하옵니다. 태자마마! 말씀을 올린 그대로입니다.”
“그러니까 그대가 초원으로 가는 것에 대한 보답을 해 달라?”
난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사옵니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초원이옵니다. 소장이 초원으로 간다면 누가 있어 가문을 이끌겠나이까. 부디 태자마마! 어리석은 저의 아비가 풍족하게 여유롭게 살 수 있도록 식읍을 내려주시옵소서.”
“식읍이라?”
“그렇사옵니다. 그리만 해주신다면 충성을 다해 내리신 임무를 완수하겠나이다.”
“으음,,,,,,,.”
난 잠시 경대승을 봤다. 지금 경대승은 간절한 눈빛으로 날 보고 있다.
“식읍이라,,, 그래 무엇이든 내려줘야지. 그래야겠지.”
“황공하옵니다.”
“그대의 아비인 대장군 경진을 충주백으로 임명할 것이네.”
충주백!고려의 작위는 8등작이고 백의 작위는 고위 작위였다.이건 다시 말해 충주에 대한 조세권을 대장군 경진에게 내린다는 거였다. 그리고 드넓은 충주 땅을 통째로 내린다는 거였다.뭔가를 줘야 한다면 화끈하게 주는 것이 좋다.
“황공하옵니다.”
경대승이 바로 바닥에 엎드렸다. ‘변했다.’난 문뜩 경대승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장이 이제야 안심을 하고 사지나 다름없는 초원으로 갈 수 있겠나이다.”
“그대는 그대의 아비와 가문을 걱정하지 말라. 내가 이 고려의 태자이고 또 황제가 되는 한 그대의 가문은 나와 함께 영광과 영화를 누릴 것이다.”
“예. 태자마마! 황공하옵니다.”
“이제 다 되었는가?”
“황공하옵니다. 태자마마!”
“하하하! 난 자네가 영웅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나와 다를 것이 없군. 암 그렇지. 그래야 사람이지. 그대의 부친을 내 바로 충주백으로 명할 것이네. 그 정도의 식읍이면 그곳에서 왕 노릇을 해도 될 것이야.”
내 말에 경대승의 표정이 굳어졌다.
“태자마마! 소장은 그런 뜻으로 올린 말씀이 아니옵니다.”
“암 알고말고. 말이 그렇다는 거네. 그러니 이제 안심이 되었다면 이 고려를 위해 채비를 해 주시게.”
“예. 태자마마! 소장 이제야 마음을 놓고 물러가겠나이다.”
“하하하! 걱정 마래도. 내가 그대의 가문은 반드시 책임질 것이니까.”
“황공하옵니다. 소장 물러가겠나이다.”
경대승은 다시 한 번 크게 군례를 올렸다.
“충!”
그리고 뒤로 다시 세 발자국을 물러나 돌아서서 씩 웃는 것 같았다.그 순간 난 차가운 눈빛으로 경대승을 노려봤다.
‘경대승! 그대가 그러기에 내가 이리도 그대를 염려하는 것이다.’경대승이 다시 들어온 것은 나를 안심시키기 위함일 거다. 그래서 구차하게 내게 땅을 내려달라고 말한 걸 거다.
이런 것 때문에 난 더 경대승을 경계한다.주인의 마음을 바로 읽는 가신은 경계할 자가 분명하고 때로는 그 재주가 아깝다고 해도 버려야 할 자가 분명할 거다. 하지만 이런 마음과 다르게 마음 한 구석에는 어쩌면 경대승과 정말 어쩌면 나의 고려를 위해 함께 갈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 무장 있나?”
“예. 태자마마!”
무장이 다시 들어섰다.
“무제를 들라하라.”
“예. 태자마마!”
무장이 급히 내실을 빠져나갔다.
“경대승의 문제는 이 정도로 일단락 됐다.”
사실 내가 경대승을 초원으로 보내는 것은 경대승을 경계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가 장악해야 할 신수군 때문이기도 했다. 4만의 신수군!경대승이라면 짧은 시간이라도 그 신수군을 장악했을 것이다.
“이제 다음 행보다.”
난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고려의 근간을 흔들지 않고서는 내 개혁은 물거품이 된다.”
바드득!
“활활 태울 것이야! 나와 고려를 위해.”
임시 태자궁 전각에서 경대승이 나왔고 약간은 편안한 모습으로 계단을 내려왔다. 그가 그렇게 내려서자 앞마당에 모인 대신들이 하나 둘 경대승에게 모여들었다.
“태자마마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던가?”
궁금한 대신들이 경대승에게 물었다.
“태자마마께서는 황공하게 저의 부친에게 충부백을 재수해주셨습니다.”
“충주백?”
위위경 이의방이 놀라 경대승을 봤다.
“그렇사옵니다. 위위경! 하하하!”
경대승이 호탕하게 웃었고 이의방은 찰나의 순간이지만 인상을 찡그렸다. 그도 그럴 것이다. 아직 위위경인 이의방에게는 작위는 내려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저 이제는 허울뿐인 벽상공신 중 하나가 바로 위위경 이의방인 거다.
“그런가,,,,,,,.”
“그렇사옵니다. 아마도 이곳에 모인 모든 분들에게 작위가 내려질 것이옵니다.”
“모두에게?”
“그렇지 않겠사옵니까? 아무 한 것이 없는 저와 저의 부친에게도 백의 작위가 내려졌습니다. 그러니 아마 위위경께서는 공의 작위가 내려지실 것입니다.”
“옳소이다. 그럴 것입니다. 위위경!”
안북도호부 도독 최창평도 맞장구를 쳤다.
“허허허! 내가 무슨 공을 바라고 태자마마를 모셨나? 난 태자마마의 장인이면 족하네.”
“참으로 겸손도 하십니다. 위위경!”
안북도호부 최창평은 그래도 위위경 이의방이 태자의 최측근이라는 생각에 아부 아닌 아부를 했다.그때 다시 무장이 전각을 나왔다. 그 순간 모두가 무장을 봤다.
“태자마마께서 무장 무제를 부르시옵니다.”
우렁찬 외침에 무제가 태자의 명을 전한 무장을 봤다.
“나를 태자께서?”
“그렇소이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그 순간 다시 웅성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고도 위위경 이의방도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다시 태자궁의 내실.무장 무제가 공손히 내 앞에 자리하며 내가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제에게 내릴 내 명까지 비밀에 붙여져야 할 일이다.
“무제!”
“예. 태자마마! 하명하시옵소서.”
무제도 내가 자신에게 따로 임무를 주기 위해 부른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대는 노비안검법을 아는가?”
“예?”
후삼국을 통일한 뒤 고려는 태조 왕건 폐하 이래로 여전히 강성한 호족세력을 억압하기 위해 많은 정책과 개혁을 펼쳤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특히 광종 폐하 때에 이르러 과거제 시행하였고 사색공복제(四色公服制) 제정, 칭제건원(稱帝建元) 등과 함께 왕권강화책의 일환으로 노비안검법을 실시하였다.
“노비 안건법이라고 하셨사옵니까? 태자마마!”
“그렇네.”
“알고는 있기는 하옵니다. 광종황제폐하께서 실시한 법이지 않사옵니까?”
“그렇지. 그때 당시 호족들은 전쟁포로가 되거나 빚을 갚지 못한 양민이나 아니면 불법적으로 양인을 노비로 삼고 소유를 했지 그리고 그런 노비를 이용해 사병을 조직해서 황권에 도전했지.”
“그렇게 알고 있사옵니다. 그런데 어찌 저에게 노비안검법을 묻는 것이옵니까? 태자마마!”
“지금은 어떻다고 생각을 하나?”
“예?”
다시 되묻는 무제다.내가 무제를 택한 것은 무제는 아직 아무런 기득권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조의이기에 청렴한 생활을 한 자가 분명할 거다. 하지만 그런 청렴한 자라고 해도 곧 권력을 알게되면 기득권이 생길 것이다.그 전에 그가 내 첫 개혁을 위해 첫 행보를 내달려줘야 한다.
“예전의 호족이나 지금의 귀족들과 대신들이 다를 것이 없어.”
난 그래서 개경에 있을 때 이미 사병을 혁파했다. 하지만 귀족들은 은밀히 자기 목을 걸고 사병을 양성하고 있었다. 그저 노비라고 치부하면서 말이다. 무장을 하지 않고 검을 들지 않았으니 노비일 거다. 눈을 가리고 야옹해도 이렇게 통할 때가 있는 거다.
“이러한 노비는 귀족들과 조정대신들이 소유한 토지와 함께 그들의 경제적·군사적 기반이 되다.”
“그렇사옵니다.”
자신이 가진 것이 아니기에 무제는 시원스럽게 내게 대답했다.
“이는 고려와 황실의 입장에서 볼 때 황권을 위협하는 것이 분명할 거다.”
“그렇사옵니다. 태자마마! 혁파해야 하옵니다.”
“그래. 그것을 그대가 해 줘야 할 것이네.”
“소장이 말이옵니까?”
“그래. 그대만이 할 수가 있어.”
내 말에 무제가 날 뚫어지게 봤다.
“예. 태자마마! 무엇을 하면 되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