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19권 - 황후적화(皇后赤化)! -- >
“정도전이옵니다. 황자저하!”
지금은 늦은 새벽이다. 그런데 정도전이 나를 찾아왔다. 그것은 어떤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내가 반드시 알아야 할 중차대한 문제가.
“경대승 장군도 같이 왔나이다.”
지금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던 경대승도 같이 왔다고 정도전이 말했다. 정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들어와!”
난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충! 신 경대승 황자저하를 뵈옵니다.”
경대승이 내 앞에 서서 군례를 올렸고 난 경대승의 표정을 살폈다. 담담한 표정이었으니 눈빛에서는 걱정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참 오랜만에 보는군. 이번 변란을 진압함에 있어서 그대의 공이 컸다.”
“황공하옵니다. 황저자하!”
“그런데 이 깊은 시각에 무슨 일이지?”
“보고할 중대한 일이 있사옵니다. 황자저하!”
정도전이 나를 보며 말했다.
“우선은 앉아! 나도 책사와 상의할 것이 있었는데 잘 됐군. 내일 부르려던 참인데 이 새벽에 이야기를 하면 되겠군.”
“소신과 말씀이십니까? 저와 상의하실 것이 무엇입니까? 황자저하!”
“그건 나중에 이야기를 하고 뭔가 경장군. 무엇이기에? 그대를 이리 급하게 이 새벽에 나를 찾은 것인가?”
내 물음에 잠시 경대승이 나를 봤다.
“황자저하! 죽은 대령후의 비가 이 임시 황궁 옆 전각에 있사옵니다.”
역시 임시황궁으로 쓰이고 있는 서경 유수관은 웅장하고 넓었다. 이 임시황궁의 옆에 죽은 대령후의 비가 전각에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내가 어떻게 그걸 몰랐지?”
“소장이 함구령을 내렸습니다. 아주 중차대한 일이라서 그리 했습니다.”
“중차대한 일?”
“그렇사옵니다. 소장이 생각하기에는 서경 반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일입니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경대승은 아직 서경 반란이 완벽하게 진압되지 않았다고 내게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대령후의 비라서 그렇게 말하는 것인가? 황제폐하께서 대령후의 일은 지우라하셨다.”
“알고 있나이다.”
“그럼 뭐지? 잠깐 대령후의 비라면 송나라 공주가 아닌가?”
“그렇사옵니다. 그리고 자비 령에서 퇴각한 악비군 3천이 송나라 공주의 전각을 지키고 있사옵니다.”
“3천!”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여졌다. 황제폐하가 계신 이 임시황궁 지척에 적이 3천이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은 경대승의 함구령과 경대승이 그들을 철통같이 포위하고 있기 때문일 거다.
“안북도호부의 도독도 별초장군 박현준도 아는 일인가?”
“그렇사옵니다. 소장에게 황자저하께서 오시기 전까지 일임했습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은 것인가?”
“그렇사옵니다. 신수군 1만과 타이모 족장의 5백 말갈 전사들 그리고 별초대가 포위를 하고 있사옵니다.”
“포위한 하고 있다?”
“그렇사옵니다. 철통같이 포위를 하고 있으니 심려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문제는,,,,,,.”
난 왜 경대승이 포위만 하는 지 알 것 같았다. 어찌 되었던 송나라 공주고 대령후의 비이니 내 숙모가 될 것이다. 그러니 경대승은 악비군과 조연을 처단할 수 없는 거였다. 그렇게 그들을 내가 오기 전에 처단했다면 송과 고려가 철천지원수가 되는 사태를 만들 수도 있으니 말이다.
물론 썩어서 곧 쓰러질 고목이나 다름없는 송과 척을 진다고 해서 두려울 것은 없었다.괜히 송이 금과 손을 잡고 양방에 고려를 칠지도 모른다는 것이 두려운 거였다.
“잘 참았군.”
“황공하옵니다. 황자저하!”
경대승이 다시 내게 머리를 조아렸다.‘그런데 왜 피하지 않았을까? 충분히 대동강 포구를 이용하면 송으로 피신할 수 있을 것인데.’난 조연이 이 서경 성에 남아 있다는 것이 궁금해졌다.
“숙모님이라 불러야겠지?”
이미 황제폐하는 대령 후를 이 서경 반란에서 지워버리셨다. 그러니 그녀는 여전히 고려 황실의 일원인 거였다.
“그렇사옵니다.”
“그런데 왜 남아 있을까? 대령후가 이번 변란에서 지워진 것을 아직 모를 것인데.”
내 물음에 경대승이 나를 잠시 봤다. 그 순간 난 경대승의 눈빛을 보고 놀라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설, 설마,,,,,,,,.”
“현재 송나라 공주 조연의 입장과 그의 부친의 입장으로 본다면 고려황실의 지원이 무엇보다 필요한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황자저하!”
송나라 황제는 병마가 길어 오늘내일 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기에 옥좌를 노린 쟁투가 끊이지 않고 있는 송이었다. 그러니 송이 약해지는 걸 거다.황자가 옥좌를 놓고 쟁투를 벌리는 나라는 결국 망하게 되어 있으니 말이다. 또한 송은 그 자체로도 썩고 있었다.
무인들을 괄시하고 문신들을 대접하며 전쟁을 준비하는 것보다 금에게 재물을 바쳐서 전쟁을 막으려는 썩은 발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소신의 입으로는 차마,,,,,,,,.”
“패덕의 미인계?”
“송구하옵니다.”
“그리 미모에 자신이 있다는 건가? 조연이라는 숙모가!”
난 피식 웃었고 내 웃음에 경대승과 정도전은 불안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절세가인이라 들었사옵니다. 황자저하!”
가만히 있던 정도전이 내게 말했다.
“절세가인?”
“그렇사옵니다.”
“책사!”
“예. 황자저하!”
“영웅은 호색이라 했지!”
“,,,,,,,.”
내 말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하하하! 놀라는군. 계집 싫어하는 사내는 없지.”
“하, 하오나 황자저하! 그리하시면,,, 소탐대실을 하시게 되옵니다.”
경대승이 말까지 더듬으며 나를 말리려 했다.
“하하하! 놀라는군. 농이네. 동경 부근에 옥련사라는 절이 있지.”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황자저하!”
“황실의 일원으로 지아비가 죽었으면 머리를 밀고 비구니가 되어 지아비의 극락왕생을 평생 밀어야지.”
내 말에 기겁한 경대승과 정도전이었다.
“황자, 황자마마! 그 말씀은?”
“책사! 조연이지. 그 숙모의 이름.”
“그렇사옵니다. 황자저하!”
“스스로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된다는데 송황실도 어찌하지는 못하겠지.”
“하오나 그리 되려면 악비군 3천을 모두 처단해야 하옵니다.”
“노비 3천을 죽여 뭘 하게.”
“예?”
난 이 순간 예전에 죽은 정중부가 태자를 감금했을 때를 떠올렸다.
“지금처럼만 철통 같이 포위만 해! 그럼 굶어죽든 투항을 하던 할 것이야!”
“그리 되면 성내 전투가 되옵니다.”
“그 전에 조연이 내게 담판을 하기위해 오겠지. 조바심을 내는 쪽이 지는 거지.”
난 차갑게 웃었다.
“진정 악비군 3천을 노비로 쓰실 생각이십니까?”
“악비군 3천이 모이면 골치가 아프지만 각각 한 두 놈씩이면 노비에 불과하지. 무산 광산으로 보내야겠군. 각지에 흩어진 광산으로 보내 철광석을 캐내면 되겠군. 어디 감히 내 성에 아직도 진을 치고 있단 말이냐!”
바드득!난 분기를 감추지 않았다.
“두더지처럼 평생 흙만 파다가 죽게 만들 것이야!”
그 순간 내가 뿜어내는 살기에 정도전이 놀란 듯 날 봤다.
“그리 일을 진행하겠나이다. 황자저하!”
“별초대를 단단히 배치시켜야 할 거야! 나도 악비군 놈들이 독하다는 소리는 들었으니 말이야!”
“예. 황저자하!”
“하여튼 참 대단한 생각을 한 숙모시군! 겨우 계집 하나와 내가 고려를 바꿀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야! 어리석어! 정말 어리석은 숙모시군.”
내 말에 그제야 정도전과 경대승이 안심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절세가인이면 한 번은 보고 싶군. 머리를 깎기 전에 말이야!”
저 대륙 끝 초원에 위치한 온기라트 부족의 야영지.거대한 겔의 앞.이제 막 길을 떠나려는 초원의 전사가 근엄한 표정으로 자신을 배웅하는 온기라트 부족의 족장을 봤다. 그의 옆에는 눈매가 빛나는 초원의 푸른 늑대 같은 아이가 당당히 서 있었고 온기라트 부족의 족장 옆에는 족장 옆에도 총명해 보이는 계집아이가 차분히 서 있었다.
“나 바르탄의 넷째 아들 예수가이는 그대의 딸을 내 아들의 아내로 맞이하게 해 준 것을 감사히 생각을 하오.”
“진정한 몽골부의 장의 아들을 사위로 얻게 되어서 나 또한 기쁘오.”
“우리의 맹약을 지키며 서로의 부족을 위해 혈맹의 관계를 유지합시다.”
“그렇소이다. 예수가이!”
예수가이!그는 바르탄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부족장이 된 인물로 훗날 칭기즈칸이 되는 테무친의 부친이었다.예수가이가 고개를 돌려 어린 아이를 봤다.
“테무친! 장인께 인사를 올려라!”
“예. 아버지!”
“장인어른! 말과 적의 전리품을 빼앗아 장인께 훗날 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제 아내 보르테를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내 보르테의 지참금으로 담비로 된 가죽옷을 준비하지. 하하하! 보르테 너도 네 남편에게 작별인사를 해야지.”
하지만 보르테는 부끄러운 듯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테무친만을 보고 있었다.
“기다려! 보르테! 내가 곧 너를 데리러 올게.”
테무친이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보르테였다.
“그럼 이만 떠나겠소.”
그렇게 서로에게 작별을 고할 때 저 멀리 거대한 겔의 사이에서 몸을 숨기고 그들을 지켜보는 자가 있었다. 그는 타타르족의 첩자였다. 그 첩자 옆으로 조심히 또 한 명의 첩자가 다가왔다.
“음식에 독은 잘 탔겠지?”
“예. 그렇습니다.”
“드디어 타타르의 원수를 죽일 수 있겠구나! 전사들은 어디에 있나? 혹시 모르니 준비를 해야 한다.”
“초원의 길목에 잘 배치했습니다.”
“오늘 예수가이를 척살할 것이다. 타타르족의 이름으로!”
“예. 부족장!”
밤이 찾아들고 있는 초원.
“크윽!”
자신의 부족으로 돌아가던 예수가이는 온기라트 부족의 족장이 준 마유주를 마시고 중독이 되었다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타타르족의 피해 이곳까지 숨어들어왔다. 하지만 그의 몸에는 이미 독이 퍼졌고 초원의 늑대가 울부짖는 이 새벽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았다.
“아버지! 아버지!”
테무친은 피를 토하고 있는 예수가이를 부르며 울었다.
“울지 마라! 테무친!”
“아, 아버지!”
“너는 잘 기억해야 할 것이다. 누가 너의 아비를 죽였는지. 너는 반드시 기억해야, 크윽! 기억,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예. 아버지!”
“눈물을 닦아라! 으으윽! 이제부터 너는 울 수가 없다. 너는 몽골부의 족장 예수가이의 아들이다.”
“예. 아버지! 저는 맹세합니다. 타타르와 같은 하늘을 보며 살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 이 아비를 죽인 자는 타타르다. 그것을 명심해라!”
“예. 아버지!”
눈에는 눈물이 여전히 흐르고 있지만 어금니를 꽉 깨물며 울지 않으려 애쓰는 테무친이었다.
“네 어머니를,,, 크윽! 크윽!”
다시 한 번 예수가이가 피를 토해냈다. 만약 타타르족이 독에 중독된 예수가이와 테무친을 쫓지 않았다면 테무친은 온기라트 부족이 자신의 아버지 예수가이를 독살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리되었다면 초원의 역사는 어쩌면 달라졌을 것이다.
“아, 아버지!”
“네, 어머니를 부탁한다. 테무친!”
“예. 아버지!”
“울지 마라! 울어서는 안 된다.”
“예. 아버지!”
“너, 너는 초원의 늑대가 될 것이다. 푸른 초원의 늑대가,,,,,,,,.”
이것이 테무친의 부친 예수가이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아버지!”
테무친이 끝내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며 절규했다.
“이, 이 새벽만 울 겁니다. 그리고 반드시 타타르를 멸망시킬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초원의 푸른 늑대 칭기즈칸의 첫 시련이었다. 그렇게 고려에서 회생이 모든 권력을 지고 웅지를 펼치려 할 때 초원의 어린 늑대 테무친은 거친 초원에서 홀로 울부짖어야 했다.
“천신께 맹세합니다. 타타르족을 멸망시킬 것입니다. 나 테무친이 맹세합니다. 또한 누구도 나를 바로 보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천신이여! 지켜보소서!”
20권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