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19권 - 황후적화(皇后赤化)! -- >
“은밀히 그리하라.”
왕평달은 나직이 말했다.
“방비를 더욱 철저하게 하라. 이곳에는 송제국의 공주마마가 계신다. 아무리 무도한 고려군이라고 해도 송제국의 공주마마를 그리고 고려의 혈맹인 송제국의 병사들인 너희들을 어찌 하지는 못한다. 알겠느냐?”
“예. 장군!”
악비군 병사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그때 저 멀리서 10여명의 무장들을 이끌고 경대승이 다가왔고 왕평달의 눈에 경대승이 보였다.
“고려 무장이군!”
인상을 찡그리는 왕평달이었다.
“멈춰라!”
경대승의 앞에 악비군 군사들이 창검을 겨눴지만 경대승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왕평달을 보며 피식 웃었다.
“저자가 왕평달입니다. 경장군!”
이북 40개 성 출신 무장이 경대승에게 나직이 말했다.
“범처럼 생겼으나 눈이 뱀처럼 영악해 보이는군.”
“들은 이야기 오나 실질적으로 악비군을 이끄는 무장이라 하옵니다.”
“그렇군. 가세! 인사는 해야지.”
경대승이 그렇게 말하고 자신에게 창검을 겨눈 병사를 노려봤다.
“나는 황자저하의 친위군인 신수군 장군 경대승이다. 누가 감히 내 앞길을 막는 것이냐? 내 앞길을 막는 것은 황자저하를 막아서는 것이고 그것은 고려에 반하겠다는 것이다.”
경대승의 말에 악비군 군사는 머뭇거렸다.
“창검을 물리라.”
왕평달이 경대승에게 다가오면 명령했다.
“예. 장군!”
그 모습에 경대승이 피식 웃었고 그 웃음이 불길한 왕평달이었다.
“누구시오?”
왕평달이 경대승에게 물었다.
“그 질문은 내가 하고 싶소이다. 이곳은 고려의 서경인데 어찌 송나라의 군대가 그것도 중앙군이 아닌 반기를 들고 있는 악비군이 이곳에 주둔하고 있는 겁니까?”
경대승의 말은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곳에 주둔하고 있는 군대가 끝내는 송나라의 정규군이 아니라는 명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곳에 송나라의 공주이신 조연마마께서 계시오.”
“조연마마이시라면 대령후 저하의 비이시지 않습니까?”
“그, 그렇소이다.”
경대승의 입에서 대령후의 이름이 거론되자 조금은 놀라는 왕평달이었다.
“대령후께서는 어디에 계십니까?”
경대승의 말에 왕평달은 경대승이 무슨 의도로 이리 말하는지 몰라 당황했다. 이미 대령 후는 자비 령 전투에서 대패하여 죽임을 당했는데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고려 무장도 알 것인데 말이다.
“무슨 말이시오?”
“내가 한 말 그대로이오. 이곳에 고려 황실의 일원이신 대령후비께서 계신다니 더는 뭐라고 하지 않겠소.”
“뭐라고 하셨소?”
“고려황실의 일원이신 분을 호위하시는 것이니 문제를 삼지 않겠다고 했소.”
정말 어떤 의도에서 경대승이 자신에게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왕평달이었다.
“문제를 삼다니?”
“송제국의 군대가 서경 성에서 무장을 하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요.”
“우리는 분명 공주마마를 호위하는 것이라 말했소.”
“3천이나 호위를 한단 말인가? 누가 보면 마치 반역에 동조하기 위해 송에서 급파된 것 같소이다.”
“뭐라고 했소?”
“누가 보면 그렇다는 것이요.”
경대승이 살짝 웃었다.
“그런 일 없소.”
“그렇지. 허나 우리도 방비를 해야 하니 이곳 주변을 경계할 것이오.”
이미 이 주변을 1만 신수군과 1천의 말갈전사로 포위한 경대승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괜한 불상사가 없었으면 합니다.”
“우리도 원하는 것이요.”
“그럼!”
경대승이 짧게 말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 그러면서 옆에 있는 무장을 봤다.
“철통 같이 경호를 해 드려라! 대령후비마마께서 저 전각에 계신다고 하신다.”
“예. 경장군!”
“아직은 서경이 완벽하게 장악되지 못했다. 역도들이 언제 급습할지 모른다.”
“예. 알고 있습니다.”
경대승의 말에 고려군이 공격을 하는 것은 역도들의 짓으로 몰아갈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왕평달이었다.
“악비군도 경계를 강화하라! 누구도 들어서려고 한다면 서경의 역도라 여기고 참하라. 이 전각에 송 제국의 공주마마께서 계신다.”
“예. 알겠습니다. 장군!”
서로서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은 경대승과 왕평달이었다.
“뭐가 좀 이상하다니요?”
송나라 공주 조연이 자신을 마주보고 있는 왕평달에게 되물었다.
“분명 이상하옵니다.”
“뭐가 이상하다는 건가요?”
“죽은 대령후를 반역의 수괴로 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반역의 수괴로 보지 않는다고요?”
“그렇습니다. 공주마마! 현재 이 전각을 완벽하게 포위하고는 있지만 이곳을 포위한 고려 장군의 말투는 그저 대령후는 고려 황실의 일원이며 황자로 불리고 있습니다.”
“뭔가 우리가 모르는 것이 있나 보군요.”
“그런 것 같습니다. 공주마마! 불길하옵니다. 소장을 생각으로는 피하시는 것이 어떨까 하옵니다.”
“이미 완벽하게 포위를 당했다면서요?”
“그렇습니다.”
왕평달이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이 상태로 만약 고려 군사가 공격을 해 온다면 옥쇄를 각오하고 전투를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이미 도망칠 곳도 물러날 곳도 없는 조연과 악비군인 거다.
“배수의 진이지요. 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요. 지금 구사일생으로 송으로 귀환을 한다고 해도 저는 그저 많고 많은 황실의 공주 중 하나입니다. 또한 아버님께서는 고려라는 든든한 지원세력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든 작금의 사태를 몰고 온 회생이라는 그 황자와 결탁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해요. 그래야 제가 살고 아버님이 살고 고려가 삽니다.
제 아버지께서 고려의 황실이 필요하듯 송도 금의 후방을 위협해줄 고려가 필요해요.”
“하오나 방법이,,,,,,,.”
“제 방법은 오직,,,,,,,,.”
조연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고 다시 한 번 왕평달이 인상을 찡그렸다. 송황실의 공주가 미인계를 써서 고려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참으로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만큼 송은 약해져 있었다. 또한 노쇠하고 병든 황제의 승하 뒤의 권력쟁투가 크게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송황실의 황자들은 고려황실의 지지를 받아야 했다.그렇기에 조연이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더러운 미인계로 회생을 유혹하려는 거였다.
든든한 지원군을 위해!
“하오나 참으로 망극한 일이옵니다.”
왕평달의 말에 송나라 공주 조연이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계집의 운명은 사내에 의해 결정이 되지요. 황제의 계집이 된다면 황후가 되고 역적의 계집이 된다면 관노가 되지요. 그게 여자의 운명입니다. 또 저는 회생이라는 그 황자가 마음에 듭니다.”
“회생이 마음에 드신다고요?”
“대령후도 사랑할 수 있는 저입니다. 저는 영웅을 사랑할 겁니다. 영웅만이 저를 사랑할 수 있고요.”
“알겠사옵니다.”
“만약을 대비해 옥쇄를 각오하세요. 그리고.”
순간 송나라 공주 조연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예. 공주마마!”
“만약 내 영웅이 되지 않는다면 저의 목숨과 또 3천의 악비군의 목숨을 걸고 회생이라는 그 황자만은 처단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송이 당분간은 무탈할 수 있습니다. 고려의 영웅은 송에게는 두려운 존재가 될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공주마마!”
“이제 곧 이 서경성에 도착할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저를 찾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때를 노릴 것입니다. 제 미모가 어디에서도 빠지는 미모는 아니지요. 호호호! 그리고 이 미혼향이면 부처도 적삼을 벗게 하지요.”
“미혼향이라 하셨습니까?”
“그래요. 이거면 조카인 그가 숙모를 안는 것을 망설이지 않을 거예요.”
송나라 공주 조연의 말에 왕평달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연의 말처럼 이미 조연은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역적으로 죽은 대령후의 비로 송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이곳에서 죽는 것이 더 자신의 부친에게는 더 이로울 것이고 천운이 자신에게 있다면 영웅을 품을 수도 있기에 목숨을 걸고 건곤일척의 패를 던진 거였다.사악하고 패악하며 패륜적인 마지막 패를 그렇게 던지고 있는 거였다.
서경 성문이 활짝 열렸다. 성루에는 황제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고 무장들과 병사들이 창검을 들고 도열을 하듯 서 섰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비장함과 감격이 담겨 있는 듯 했다. 자신들은 고려 중앙군으로 또 서경성을 무혈로 함락한 무장들이기에 그 당당함은 창끝처럼 날카롭게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다다닥! 다다닥!그때 몇 기의 전마가 급히 말을 달려 열린 서경 성 문 앞에 섰다.
“황제폐하가 드디어 도착을 했사옵니다. 황자저하께서 친히 지휘를 하시며 진군하고 계십니다. 도독!”
지금 성루에 당당히 서 있는 안북도호부 도독 최창평과 별초장군 박현준 그리고 성주 김경희를 향해 외치는 무장들은 회생의 고려 중앙군이 어디까지 당도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나갔던 전마들이었다.
“드디어 당도하셨다.”
안북도호부 도독 최창평은 감개가 무량한 듯 나직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도독! 황자저하께서 드디어 도착을 하셨습니다.”
“이럴 때가 아니네! 어서 내려가 황제폐하와 황자저하를 모셔야겠어.”
“그렇습니다. 도독!”
별초장군 박현준도 회생이 온다는 말에 다소 감격한 것 같았다.
“가세!”
“예.”
그렇게 안북도호부 도독 최창평은 박현준과 타이모 그리고 김경희와 함께 강건한 무장들과 함께 급히 성벽에서 내려왔다.
“저기 백성들은 무엇인가?”
안북도호부 도독 최창평이 옆에 있던 무장에게 물었다."황제폐하의 행차를 칭송할 서경 백성들입니다. 도독!
“”
그대가 동원한 것이가?
“안북도호부 도독 최창평이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아니옵니다. 스스로 자청해서 저렇게 나온 병사들입니다.”
“서경 백성들이 스스로?”
“그렇사옵니다. 서경군들의 폭정이 대단한 듯 하옵니다.”
“그렇겠지. 이래서 백성들은 어리석고 신의가 없다고 하는 것이지.”
사실 회생의 사악한 계략에 의해 안북도호부 도독의 밀명에 서경 백성들을 핍박한 것은 이북 40개 성의 병사들과 남아 있던 서경 무장과 병사들이었다. 그렇기에 얼마 전의 폭정 때문에 서경 백성들은 전쟁을 종식시킨 고려 중앙군을 이렇게 반기고 있다고 안북도호부 도독은 생각했다.
“그렇사옵니다. 도독!”
“어찌 되었던 나쁘지 않다. 가세!”
“예. 도독!”
그렇게 서경 성을 무혈로 함락시킨 무장들이 구름처럼 성문을 넘어 곧 도착할 의종황제와 황자인 회생을 기다렸다.
“이제 이곳에서 황자저하에 의해 새로운 고려가 만들어질 것이옵니다.”
별초장군 박현준이 안북도호부 도독을 보며 말했다.
“그럴 것이네. 암 그래야 말고. 서경 성이야 말로 고토를 다시 회복할 발판이며 상징이네.”
고토!그것은 짧게는 고구려의 영토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고 아주 먼 과거로 봤을 때는 조선의 땅을 되찾는 거였다.조선!우리가 알고 있는 고조선이 바로 조선이다. 지금 우리가 조선을 고조선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성계가 새운 조선과 구분하기 위함이었다.
“그렇사옵니다. 이곳에서 아마도 거대한 웅지가 다시 피어날 것입니다.”
별초장군 박현준도 안북도호부 도독의 말을 듣고 감격한 듯 말했다.
“우리의 주군이 오신다. 고려의 영웅이며 훗날 조선의 땅을 회복하시고 만천하에 예맥의 긍지를 떨치실 황자저하께서 오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