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19권 - 황후적화(皇后赤化)! -- >
“속말말갈족 족장으로 황자저하께 귀부를 한 타이모라 하옵니다.”
“귀부를 하셨다고요?”
속말말갈족이라고 해도 여진이다. 그리고 여진이라 하면 금의 한 계열인데 금이 아닌 고려에 귀부를 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한 안북도호부 도독 최창평이었다.그도 그럴 것이 최창평에게 말갈족은 그저 골치 아프고 처리하게 힘든 존재였다.
금의 비호를 받으며 때로는 금의 입장에서서 고려를 압박하고 또 고려를 약탈하는 존재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최창평이 그렇게 여기던 말갈족은 흑수말갈들이었다. 그에 반해 타이모는 고구려와 끝까지 운명을 같이한 정통 예맥족의 하나인 속말말갈족이었다.
이해와 타산보다는 뿌리를 중요시 하는 전통을 가진 속말말갈족의 한 부족의 족장이 바로 타이모였다. 만약 모든 속말말갈족이 타이모를 중심으로 모여 황자가 된 회생에게 충성을 다한다면 흑수말갈의 금도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될 수 있었다.
비록 지금은 타이모를 중심으로 한 씨족부족이나 다름없는 3천의 속말말갈족이지만 요동과 요북 그리고 그 위 한설이 쌓인 땅까지 퍼져 있는 속말말갈족들이 하나의 대부족이 된다면 그것은 회생의 복이고 고려의 복이었다. 말갈이면서 흑수말갈과는 원수처럼 여기는 존재!그게 바로 속말말갈족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말갈의 운명이고 여진의 운명일 거다. 너무나 강하기에 하나로 뭉쳐질 수 없고 또 하나로 뭉쳐진다고 해도 외세의 적보다는 내부의 적들인 다른 부족을 염려해야 하는 그들이기에 그들의 강함은 영원히 지속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을 하나로 뭉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고려에 등장한 것이다.
사악하기까지 하며 자신의 행동에 거침이 없는 존재!거대한 꿈을 키우면서 질풍처럼 앞으로 달려 나가는 존재!회생이 그들을 하나로 뭉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도독!”
박현준이 최창평을 보며 말했다.
“앉으시지요. 도독각하! 이 서경 성을 함락시킨 일등 공신은 누가 뭐라고 해도 도독이시옵니다.”
“내가 1등 공신이라? 부끄럽소. 나는 그저,,,,,,,,.”
최창평은 내심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겸손함을 보였다. 어찌 되었던 회생의 밀명에 의한 것이지만 서경 반란에 동조한 그였고 그것에 대한 오명은 회생이 돌아온 후에서야 벗겨질 테니 말이다.
“아니옵니다. 고려 무장들의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입성을 했지 않사옵니까. 이 모든 공이 다 도독 각하의 공이옵니다. 황자저하께서는 도독의 공을 높이 치하하실 것이옵니다.”
별초장군 박현준이 더욱더 최창평을 치켜세웠다. 마치 의도한 것처럼 말이다.
“이 모든 것이 자네도 알듯 황자저하의 포석이시지.”
“그렇사옵니다.”
최창평은 그리 말하고 유수관 상석에 앉았고 그를 중심으로 좌우측으로 타이모를 비롯한 별초장군 박현준 그리고 별초군의 중심 무장이 착석을 했고 반대에 안북도호부의 무장과 이북 40여개성의 무장 일부가 자리에 앉았다.
“이제부터 빠르게 진행해야 할 것은 이 서경 성을 안정시키는 것이옵니다. 도독!”
박현준이 최창평을 보며 말했다.그 순간 최창평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 말은 참으로 옳은 말이네! 그리고 황자저하께서 이 서경 성에 입성하시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소이다.”
최창평의 표정이 굳어져서 말했기에 타이모와 박현준의 표정도 굳어져 최창평을 봤다. 최창평의 표정은 아주 심각한 무엇인가가 남아서 회생을 위협하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무엇입니까? 도독!”
“놀랍게도 이 서경 성에 송나라 공주가 있소.”
최창평의 말에 모두 다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대령후의 비이신,,,,,,,.”
별초장군 박현준이 최창평을 보며 말을 하려다가 말꼬리를 흐렸다.
“그렇소. 내가 수집한 정보로는 그 송나라 공주의 사악함이 하늘을 덮는다고 들었소.”
“그 말씀은,,,,,,,.”
“그녀가 곧 함락될 이곳에 남아 있소.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서 또 어리석기에 남아 있는 것은 절대 아닐 것이요. 서경성은 송으로 빠져 나갈 수 있는 포구가 있소. 대동강 포구를 이용한다면 충분히 이곳이 함락되지 전에 빠져나갔을 것이요. 다시 말해 공주는 공주 나름대로 노림수가 있다는 것이요. 자신의 신분을 이용해서 뭔가를 꾸미려 하는 것이 분명하오.”
다시 최창평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계집이 노리는 것이 뭐라고 생각을 하시오?”
그 순간 유수관에 모인 모든 무장들은 기겁한 표정이 됐다.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없지만 머릿속으로 송나라 공주 조연이 노리는 것은 자신의 주군인 회생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떠올린 그들이었다.
“만약 송나라 공주가 노리는 것이,,,,,,,.”
타이모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을 하려다가 차마 하늘이 부끄러워 말을 하지 못했다.
“어찌하실 참이십니까?”
타이모가 조심히 최창평에게 물었다.
“황자저하께서 도착하시기 전에 어떤 형태라도 정리를 해야 합니다.”
“그 정리라고 하면!”
지금까지 아무 말도 없던 박현준의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이 고려와 황자저하께 화근이 될 계집은 베어야지. 황자저하께서는 곧 금을 적대시 할 것이요. 그렇기에 어떻게든 송과 연계를 하시려 하실 것이요. 그러므로 만약 황자저하께서 천륜을 저버리시는 선택을 하실 수도 있소. 그리된다면 황자저하께서 가지고 계시던 대의와 명분은 사라지는 것이요. 천륜을 어기고 패덕을 저지른 황자가 황제가 되는 경우는 없소. 또한 황제가 된다고 해도 오래갈 수가 없소.”
“옳은 말씀이십니다.”
“또한 다른 마음을 품은 자들이 거병을 할 때 그 문제를 재기할 것이요. 천륜을 저버리고 패덕을 일삼은 황제를 폐위한다. 그런 명분을 주게 될 것이요. 그러니 어떤 수를 써서라도 배거나 이곳에서 떠나게 해야 하오.”
최창평의 말에 모두 다 놀라 최창평을 봤다. 비록 반역의 수장인 대령후의 비라고는 하나 어찌 되었던 고려황실의 일원인 송나라 공주였다.
“그런데 문제가 있사옵니다. 도독!”
박현준이 조심히 최창평을 봤다.
“무엇인가?”
“황자저하께서 대령 후께서는 처음부터 이 서경성에 없었던 것이라 하셨습니다.”
박현준의 말에 최창평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 말은,,,,,,,.”
“뜻이 어찌 되었던 우리가 송나라 년을 척살한다면 고려황실의 일원을 척살하는 것이 됩니다.”
“으음,,,,,,,.”
“그런 일에는 오랑캐가 제격이지요.”
지금까지 아무 말도 없던 타이모가 나섰다.
“무슨 말씀이시오?”
“황자저하께 화근이 될 계집이라면 베어야지요. 내가 하겠소.”
“허나 이 서경성에는 악비군이라는 자들이 3천이나 무장을 하고 있소이다.”
점점 더 놀랄 소리만 하는 최창평이었다.
“그럼 전투는 이제부터 시작인 것이군요.”
별초장군 박현준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악비군 3천이라 하셨습니까?”
타이모도 최창평에게 물었다.
“그렇소. 최정예요. 오합지졸과 다름이 없는 송나라 병사와는 다른 최정예요. 내 알기로는 등주에 7천이 있고 이곳에 3천이 있소. 조가가 개경으로 진격을 하기 전에 등주로 연락선을 보냈소.”
“그 연락선은 등주에 도착을 못했습니다.”
별초장군 박현준이 말했다.
“다행이군! 정말 다행이요. 등주에서 이곳까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온다면 문제가 커질 수 있었소. 또 벽란도로 향했다면 개경은 불바다가 되었을 것이요.”
“그 역시 황자저하께서 예상하신 일이옵니다.”
“하여튼 3천의 악비군이 자비 령까지 대령후와 같이 진군을 했으나 끝내 사태가 불리한 것을 보고 이곳으로 철수를 했소. 분명한 것은 배덕한 놈들이라는 것이요. 대령후에게 충성을 다하겠다고 맹세를 했을 것인데,,,,,,.”
“결국 악비군이 송나라 공주와 남아 있다는 것이군요.”
타이모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성내 전투를 각오해야 할 것이요.”
안북도호부 도독 최창평은 그렇게 말하고 인상을 찡그렸다.
“그들의 군세가 총 3천이나 되오. 또한 지금은 투항하기는 했지만 서경군들이 동조를 한다면 그 수가 5천에 육박할 것이요.”
“그럴 것입니다. 우리가 이끌고 온 군사는 말갈전사까지 다해도 1만이 넘지 못합니다.”
“수적으로는 우리가 우세하나 악비군은 호락호락한 놈들이 분명 아닙니다.”
안북도호부 도독 최창평이 걱정하는 것은 악비군의 위력이었다. 그들은 정규군이면서도 이런 특이한 전투에 특화 된 존재였다. 그러니 수적으로 고려군이 우세해도 그 승패를 가늠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허나 분명 처리를 해야 하옵니다. 어찌 감히 송의 오랑캐가 서경에 있을 수 있습니까?”
김경희 장군이 분개해 말했다.
“그렇소이다. 김경희 장군!”
그때 복도를 달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울렸다.
“들어가겠사옵니다.”
무장하나가 급히 말하며 문을 열었다.
“무엇이냐?”
“신수군 경대승 장군이 1만의 신수군을 이끌고 도착했사옵니다.”
“신수군이면 이번에 황자저하께서 창설하신 3군이지 않나?”
안북도호부 도독 최창평이 별초장군 박현준에게 물었다.
“그렇사옵니다. 황자저하께서 직접 지휘하시는 친위군이옵니다. 허나 지금은 경대승이라는 젊은 장군이 황자저하의 명을 받아 지휘하고 있사옵니다. 4만의 군세인데,,,,,,,,.”
“그런데 어찌 1만이 왔단 말인가? 큰 전투도 없었을 것인데,,,,,,,.”
안북도호부 도독 최창평은 인상을 찡그렸다.
“어찌 되었던 우리 쪽의 군사가 증원된 것이나 마찬가지이옵니다.”
별초장군 박현준의 말에 최창평도 고개를 끄덕였다.
“별초들과 말갈 전사들 그리고 이곳에 남은 40여개성의 무장들과 병사들 거기에다 황자저하의 신수군까지 입성을 하였으니 그 망할 요녀를 처단해야 할 것이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도독! 내가 나서지요.”
타이모가 모인 무장들을 보며 말했다.
“그건 아니 됩니다.”
그때 경대승이 검을 차고 방으로 들어오면 말했다.
“뭐라?”
방안에 모인 모든 장수들과 무장들이 일제히 경대승을 봤다.
“소장은 신수군 장군 경대승이라 하옵니다.”
“어찌 안 된다는 것인가?”
안북도호부 도독 최창평이 물었다.
“지금 결정하신 사항은 하수 중에 더할 나위가 없는 하수이옵니다.”
“하수다?”
“말을 삼가시오. 경장군! 안북도호부 도독께서 계신 자리요.”
별초장군 박현준이 소리쳤다.
“송구하옵니다. 소장이 너무 급했습니다.”
“아니네! 모두에게 의견이 있는 것이지. 의견이 다르기는 해도 모두가 다 황자저하를 위한 생각일 것이니 들어봅시다. 서 있지 말고 앉으시오.”
“예. 도독!”
경대승이 짧게 대답을 하며 앞으로 걸었다. 그리고 박현준의 앞에 섰고 그 자리에 있던 무장이 급히 일어나 자리를 내줬다. 이건 다시 말해 경대승 자신의 서열이 박현준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보여주는 거였다.
그건 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무장들과 성주들 중에서도 김경희 성주보다 경대승 자신이 서열상으로 위에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려는 행동이기도 했다.
“앉겠습니다.”
경대승이 당당히 자리에 앉았다.
“그럼 경장군의 생각을 들어봅시다.”
“예. 도독!”
경대승은 짧게 말하며 이 자리에 모인 무장들과 성주들을 봤다. 용맹한 것으로 따진다면 모두 다 용장일 것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정치를 하고 책략을 꾸밀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있다면 안북도호부 도독 최창평 정도가 되겠지만 말이다.
“송나라 공주 조연을 척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있을 수 없다?”
“그렇사옵니다. 소장이 듣기로는 타이모 족장께서 속말말갈족 전사들로 하여금 혼란한 상황으로 위장해 약탈 중에 송나라 공주를 척살하려는 계획을 꾸미려 하시려는 것 같사오나 그리해도 결국 황자저하는 숙모를 죽인 패덕한 황자가 되는 것이옵니다.”
“으음,,,,,,,,.”
모두 다 경대승의 말에 신음소리를 토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