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19권 - 황후적화(皇后赤化)! -- >연후는 자신의 마음을 다독였다. 그리고 자신을 찬찬히 보고 있는 의종황제를 봤다.
“참으로 좋은 차이옵니다. 황궁에서 가지고 오신 것이옵니까?”
“그렇소이다. 짐이 가지고 왔소이다. 차를 좋아하신다니 짐이 가지고 온 두 통 중에 한 통을 내어드리리다.”
“황공하나이다.”
“받아주시니 짐이 고맙소.”
잠시 의종황제가 연후를 봤다.
“그대는 황자를 어찌 보시오?”
“예?”
“황자가 고려를 이끌 수 있다고 보시오?”
“진심을 말씀 드리오리까?”
“그래주면 고맙겠소?”
“대안이 없사옵니다. 황자저하 말고는 이 고려에 대안이 없사옵니다.”
“대안이 없다?”
의종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사옵니다. 천문을 보니 곧 고려에 큰 위기가 닥칠 것이옵니다.”
“정말이시오?”
고려에 큰 위기가 닥친다는 말에 의종황제는 놀라 되물었다.
“그렇사옵니다. 초원에 뜬 별이 강성하여 초원을 비추고 또 요동을 비추고 중원을 비출 것이옵니다. 그리고 또 그 별이 고려에 뜰 것입니다. 그것은 고려의 위기가 될 것이옵니다.”
연후가 200년을 살았기에 천기를 보는 것 같았다. 회생이 걱정하는 것을 연후도 걱정하고 있는 거였다.
“초원의 별이라,,,,,,,.”
“다행이라면 다행으로 황자저하의 탄생성과는 상극이옵니다.”
“상극? 황자에게 좋지 않다는 것인가?”
“초원의 별의 주인에게 좋지 않다고 볼 수 있사옵니다. 그러니 대안이 없사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차를 마시는 것이옵니다.”
연후의 말에 의종황제는 놀라 연후를 뚫어지게 봤다.
“어, 어찌 아, 아신,,,,,,,,.”
“왜 그리 놀라시옵니까? 200년을 산 저입니다. 왔으니 가야지요. 또 갈 때가 되기는 했사옵니다. 이것이 천명인가 봅니다. 황공하게 황제폐하와 길동무가 될 것 같사옵니다.”
“연, 연후 대 스승!”
“제가 이 차를 마시는 것은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황자저하께서는 5천의 조의가 필요하신 모양입니다. 저를 내치시고 조의들만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
“그럼 연후 대 스승은 황자가 어찌 된다고 보시오?”
“혜성의 운명을 타고 나신 황자이십니다. 멈추면 소멸하지요. 그러니 활활 타올라야 할 것입니다. 또한 빠르게 질주해야 할 것이옵니다. 이제와 생각을 해 보니 그것을 막으려 했으니 제가 이리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황제폐하는 어찌 이 차를 마시려는 것이옵니까?”
연후의 물음에 의종황제가 피식 웃었다.
“짐이 해준 것이 아무 것도 없어서요. 또한 죽은 태자도 보고 싶고.”
“참으로 기구하십니다.”
“짐이 업이 많아 그렇겠지요. 한 잔 더 드시겠습니까?”
“예. 황제폐하!”
다시 의종황제가 찻물을 연후에게 따랐다. 그리고 자신의 잔에도 따르고 아무렇지 않게 들이켰다. 독차를 마시는 두 거인이었다.
“참! 짐의 말년에 좋은 동무를 얻은 것 같습니다. 이리 좋은 동무이신데 밋밋한 차로되시겠습니까? 곡주는 어떻습니까?”
“하하하! 좋지요. 좋습니다. 이제 곧 다시 못 마실 것이니 마셔야지요.”
연후도 술을 마시겠다고 말했다.
“밖에 누구 없느냐?”
의종황제의 부름에 무장이 달려왔다.
“예. 황제폐하 부르셨나이까?”
“주안상을 내와라! 대 스승과 짐이 대취할 것이다.”
“예. 황제폐하!”
무장이 급히 밖으로 나갔다.
“연후 대 스승!”
의종황제가 물끄러미 연후를 보다가 연후를 불렀다.
“예. 황제폐하!”
“황자가 밉지 않습니까?”
“미우십니까? 황제폐하께서는?”
“짐은 참으로 밉습니다. 황자가!”
“저도 그렇습니다. 허나 이 고려에 대안이 없습니다. 오직 황자뿐이시니 어찌하겠습니까? 이 늙은 퇴물은 가진 것을 다 내놓고 물러가라고 하시니 그럴 수밖에요. 하하하!”
“그러고 보니 참 마음이 짐과 잘 통하십니다.”
“황제께서도 저도 황자를 미워하니 통하지요.”
“예. 그런 가 봅니다. 하하하! 참 황자는 밉습니다. 그려!”
이래서 연후가 200년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죽어야 하는 순간을 알고 거부하지 않는 그이기에 하늘이 그에게 그 긴 시간을 허락한 걸 거다.
“6개월이면 충분합니다.”
“무엇을 더 주실 것이 있습니까? 대 스승!”
“제가 가진 것을 다 드리고자 합니다.”
“가진 것을 말입니까?”
“예. 황제폐하!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이 고려와 예맥에 유일한 대안이 황자이시니 그리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참으로 부처이십니다.”
“제가 말이옵니까?”
“그렇소.”
“아닌 것 같습니다. 여전히 황자저하가 미운 것을 보니 말입니다. 하하하!”
“그래요. 그렇습니다. 미워요. 참으로 밉습니다.”
영화공주의 군막 처소.내가 앉은 탁자 위에는 독한 독주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는 영화공주가 측은히 나를 보고 있었다. 아주 예전에 나를 보던 백화의 그 눈빛처럼 그리 나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는 영화공주였다.
이래서 나는 영화공주를 찾은 걸 거다.나는 백화에게 한 장의 편지를 받았다.
나를 위하고 나를 걱정하는 편지였고 어떻게 하면 정도전을 내 휘하에서 절대 배신하지 못하게 할지 묘책이 담겨 있는 편지였다.그 편지가 나를 서글프게 한다.
백화가 변한 것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변한 것이다. 그래서 서글프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영화공주를 찾았다.
그리고 영화공주에게 독한 술을 내어오라고 말하고 더는 아무 말도 없이 영화공주가 따라주는 술만 마셨다.또한 영화공주도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나를 위해 술만 따라줬다.
그저 측은히 백화가 예전에 나를 보던 그 눈빛으로 나를 보면서 그렇게 아무 말도 없이 나를 걱정했다.‘저 눈빛도 거짓일까?’의심이 드는 순간이다.
백화가 변한 것처럼 영화공주도 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나는 영화공주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왜 묻지 않으시오?”
“물어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마음이 답답하신 것이 있어서 저를 찾으셨는데 걱정스럽게 묻으면 더 마음만 답답하지 않겠습니까?”
“영화는 참 답답한 사람이야!”
난 피식 웃었다.
“그리 만드셨지요.”
“내가?”
“예. 저도 예전에는 꽤나 다부지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영화공주의 말에 난 영화공주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백화가 상처를 입은 것을 치유하기 위해 태의원에 갔다고 태의의 홀대를 당하고 화가 치밀었을 때 영화가 당당히 태의를 질책하고 나를 백화를 도와줬을 때를 떠올랐다.
“그랬지. 그랬어. 그대도 변했네. 그대도 변한 것이네.”
영화공주의 눈에는 한 없이 서글픈 눈빛을 하고 있는 나를 봤다. 허나 묻지 않았다.
“사람은 다들 변하나 봅니다.”
내 말에 영화공주는 내가 탁자 위에 올려놓은 편지를 잠시 물끄러미 봤다.
“태우시면 됩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 서찰 말이요?”
“아닙니까?”
“맞소.”
“상공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드는 서찰이면 태우시면 되옵니다. 그러시면 됩니다.”
“묘책이 담겨 있는 서찰이요?”
“무엇에 대한 묘책인지 물어도 되겠나이까?”
처음으로 영화가 내게 물었다.
“백화가 보낸 서찰입니다.”
“기다리시던 글귀가 아니신 모양이십니다.”
난 대답 대신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그리 상공의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묘책이기에 마음에 드오.”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모르겠소.”
잠시 다시 영화가 날 봐다가 입을 열었다.
“무엇이든 상공의 마음이 향하시는 곳으로 하시옵소서! 그러시면 되옵니다.”
“마음 가는대로?”
“그렇습니다.”
사실 백화가 보낸 서찰은 핑계에 불과했다. 나는 이 순간 거인을 품지 못한 내 좁은 마음에 대해 원망하고 질책하고 있었다. 또한 그의 것만을 탐하는 나를 저주하고 있었다. 단지 그것을 모두 숨기고 그저 백화가 보낸 서찰만을 탓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 마음까지 숨겼구려.”
“저는 무슨 말씀이신지,,,,,,,.”
“나는 지칩니다. 참으로 지칩니다.”
“쉬시겠습니까?”
영화공주가 다정이 내게 물었다.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난 그렇게 말하고 독주를 삼켰다.‘그래 마음이 가는대로 할 것이다. 마음은 이미 연후를 버렸다.’난 그렇게 생각을 하며 고개를 들어 군막 문을 봤다.
“밖에 누구 없느냐?”
내 외침에 무장 둘이 조심히 들어섰다.
“예. 황자저하! 부르셨나이까?”
“내 사택에서 시비 하나가 왔다.”
“예. 황자저하!”
“그 시비를 책사의 군막에 배치하라!”
내가 말한 시비는 아나스타샤다. 백화는 내게 아나스타샤를 정도전이 흠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 명을 따르겠나이다.”
“그리고 정도전! 아니 흥선에게 이 형이 주는 첫 선물이라고 해라!”
나는 아나스탸샤를 정도전에게 주기로 결심했다.
“예. 알겠나이다. 황자저하!”
“나는 이곳에서 잘 것이다.”
“예. 황자저하!”
“물러가라!”
“예. 알겠나이다.”
무장이 대답을 하고 뒷걸음질을 치며 밖으로 나갔고 난 영화공주를 봤다. 그녀의 얼굴은 이미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이리 오시겠소?”
“예. 상공!”
영화공주가 조심히 내게 왔고 난 바로 영화공주를 내 무릎에 앉혔다.
“그대는 참으로 따뜻합니다.”
“그렇사옵니까?”
“변하지 말아주세요. 항상 이리 그냥 따뜻하기만 해 주세요.”
“노력하겠습니다.”
“할마마마께서 하시는 말씀 다 잊으세요. 그 말씀을 다 잊으셔야 온전히 내게로 올 수 있습니다.”
내 말에 영화공주가 잠시 날 봤다.
“그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상공.”
영화공주는 내가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확답이 아닌 노력하겠다고 했기에 더욱 믿음이 갔다.
나는 이런 영화공주가 좋다. 그리고 변하는 백화가 측은했다.버릴 수 없기에 측은하고 가여웠다. 그리고 점점 더 수수하게 변하는 영화공주가 마음에 들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너무나 잘 아는 영화공주가 이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잊어버린 백화였다.‘백화! 너는 황후가 되겠지만 내 여자는 다시는 못 되겠구나!’결심이 서는 순간이었다.
한 장의 서찰!도착한 시기가 너무나 나쁜 서찰!그 서찰이 백화를 황후로 만들어주겠지만 끝내 내 여자로는 벌어지게 만드는 거였다. ‘속이 참으로 좁다! 대 스승을 버리고 이제는 내 여자를 마음에서 밀어내는구나!’난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도 너를 황후로는 만들어 줄 것이다. 그리 원하니 말이다.
’난 그런 생각을 하며 영화공주를 봤다. 영화공주의 눈빛이 처음으로 서글픈 것 같았다.
“왜 그러시오?”
“저는 이 순간에도 참아야하겠지요?”
“무슨 말이요?”
“황자저하의 마음에는 오늘은 백화 그분만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공주의 말에 난 영화공주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오. 내가 실책을 했소.”
“아닙니다. 솔직한 분이시지요. 그래서 아는 것입니다.”
“미안하오.”
“괜찮습니다. 허나 오늘은 모시지 못할 것 같습니다. 상공.”
“내가 부끄럽소.”
난 조심히 영화공주를 내려놨다. 그리고 영화공주는 그런 나를 잠시 봤다.
“내일이면 상공에게 향하는 제 마음이 풀릴 것입니다.”
내보다 이 순간 영화공주가 더욱 서글플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난 영화공주가 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순간마저도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영화공주가 좋았다.
“내 물러가겠소.”
“죄송하옵니다. 상공!”
“아닙니다. 내가 미안하오. 다시는 이 군막이나 그대의 처소에 올 때는 누구도 마음에 담지 않고 오겠소.”
“서찰은 어찌 하오리까?”
“태워주시겠소?”
“스스로 못 태우시는 것입니까?”
“하하하! 내가 그리 못난 사람이구려!”
“알겠사옵니다. 상공!”
“미안하오.”
난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내 군막으로 향했고 그때 개경에서 온 무장이 군막으로 향하는 나를 향해 달려왔다.
“황자저하를 뵈옵니다.”
“무슨 일이지?”
“황자저하께 보고를 드리고자 왔나이다.”
“뭔가?”
“위위경께서 사비를 털어 군량미 1만 석을 확보하여 진영으로 가지고 왔나이다.”
무장의 말에 난 위위경 이의방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이연이라는 여자가 제법 총명하구나!’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일을 내게 보고할 것이 있나?”
내 말에 무장이 당황해 할 말을 잃은 듯 머리를 조아렸다.
“내 답을 듣고자 한다면 신선했다고 전하라!”
“위위경에게 전하겠나이다.”
“아니!”
난 다시 무장을 봤다.
“이연에게 전하라! 오지 않은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라고 전하라! 또한 고맙다고 전하라!”
“예?”
“그리 전하면 알 것이다. 허나 난 머리를 쓰는 계집은 참으로 싫어한다고 전하라!”
“위위경께서는 어찌,,,,,,,,.”
“그대의 목이 두 개나 세 개쯤이 되는가?”
난 그렇게 말하고 무장을 노려봤다.
“송, 송구하옵니다.”
“위위경께는 앞에 말만 전하라 고맙고 갸륵하고 신선했다고 전하면 될 것이다.”
내 말에 무장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예. 알겠나이다. 황자저하!”
따지고 보면 이연도 때를 잘못 맞춘 거였다. 이 밤은 참으로 뭐든 마음에 들지 않는 밤이다. ‘속이 좁아 영웅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