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18권 - 대통합! -- >
“난 누구도 토사구팽을 시키지 않을 것이다. 흐린 날에 비를 피했던 우산이 초라하다고 날이 개여 이제 더 이상 필요 없다고 해도 난 그 우산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내말에 정도전은 날 봤다.
“소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이시옵니까?”
“되도록이면.”
내 말에 정도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닐 수도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되도록이면!”
“그 크신 마음 알겠사옵니다. 허나 황자저하께서도 이미 예상하고 계시겠지만 이미 황후쟁탈전은 펼쳐지고 있습니다.”
“으음,,,,,,,.”
애써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부분을 정도전은 이 전쟁터에서 꺼내고 있었다.
“백화형수께서 지금까지는 조강지처로 군림하고 계시지만 황후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김보당 때문에 크게 타격을 입으셨으니 말입니다. 그 일이 누가 꾸민 일일 것 같사옵니까?”
정도전의 말에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
“암투이지요. 이미 암투를 벌어지고 있사옵니다.”
“듣기 싫다.”
“듣기 싫으시더라도 들으셔야 하옵니다. 황자저하! 아시지 않사옵니까?”
“알고 싶지 않다.”
난 정도전을 노려봤다.김보당의 이용한 것은 분명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공예태후 할마마마!그리고 위위경인 이의방!허나 의심이 가는 것은 둘이지만 확신이 가는 것은 궁중 암투에 일가견이 있는 공예태후 할마마마였다. 그것을 지금 정도전이 내게 말하고 있는 거였다.
‘이런 면에서는 더도 없는 내 충신이겠지.’정도전을 보며 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자신의 어머니가 한 일을 지금 내게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태후마마이십니다. 백화형수의 단단한 입지를 깨버리신 것은 분명 태후마마이십니다. 그러니 제 충언을 들으셔야 하옵니다.”
“그래서 어쩌자는 것이냐?”
“군웅할거라고 해야 할 상황입니다. 여인들의 암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는 3파전입니다. 백화형수와 영화공주 그리고 이의방의 딸인 이연이라는 아이까지.”
“나는 지금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난 정도전을 무섭게 노려봤다. 허나 정도전은 나를 보며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움직인 것입니다. 이제는 그중에 우선은 하나를 떨어뜨려 낸 것입니다. 황자저하!”
“이연을 말하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위위경도 따지고 본다면 황자저하의 장인이 됩니다. 백화형수께서 크게 타격을 입으셨으니 기회가 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을 모을 것이고 일을 꾸밀 것입니다. 암투를 시작할 것입니다. 그럼 어찌 되겠습니까?”
“작은 권력에 눈이 어두워질 내 장인이 아니다.”
“모르는 일이옵니다. 사람의 마음은 누구도 모르는 것이옵니다. 일을 꾸민 그 자신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 사람이옵니다. 황자저하!”
“그래서?”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정도전의 말에 난 한참이나 정도전을 봤다.
“그게 전부냐?”
“물론 차후에는,,,,,,,,.”
순간 정도전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저런 눈빛은 검과 같고 누군가의 죽음을 부르는 눈빛이 분명했다.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못을 박아놔야 하고 또 끊어놔야 했다.
“아니 될 것이다.”
“외척이 득세해서 오래가는 황실을 본 적이 없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직 권력은 황제 한 분에게 집중되어야 하옵니다. 어떤 어리석은 자들은 신권이 힘을 얻어 한 분의 황제를 보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틀렸사옵니다. 오직 하늘이신 황제께서 모든 것을 가지시고 이끌어 가셔야 하옵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허나 정도전 역시 자신의 출생의 벽을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진짜 삼봉 정도전은 신권정치를 이루려했다. 그런데 그에 반해 이름이 바뀐 정도전은 황권을 강화하는 정책을 내게 말하고 있는 거였다. 같은 이름이지만 그 노선이 완벽하게 다른 거였다. 또한 이것으로 내가 우려했던 것이 조금은 사그라졌다.
“허나 그런 일은 없게 만들면 된다. 황제가 바로 서서 천심을 따른다면 그 어떤 외척도 함부로 발호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모두 마음먹으신 되로 일이 되는 것은 아니옵니다. 그렇기에 훗날을 위한 포석은 필요한 법이옵니다.”
훗날을 위한 포석?그것은 내 장인 둘과 이고외숙의 숙청을 의미하는 거였다.
“정도전!”
난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함부로 준동하지 마라! 그들은 사적으로는 내 외척이고 혈족이다. 또한 공적으로는 내 충신들이다. 절대 그런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절대!”
“제가 해 드리겠습니다. 황자저하께서도 어쩔 수 없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그런 날이 온다면 소신이 해 드리겠습니다. 그래야 하옵니다.
이루신 것을 내분으로 다 잃게 되실 수도 있사옵니다. 고구려가 왜 망했나이까? 고구려가 망한 것은 강한 적 때문이 아니옵니다.
내분이옵니다. 그 내분의 시작은 권력을 가지려는 자들의 어리석은 암투 때문이옵니다.
제가 할 것이옵니다. 황자저하의 제국을 소신이 지킬 것이옵니다.
그리 할 것이옵니다.”
단호하게 말하는 정도전이었다.
“으음,,,,,,,,.”
“이제 물러가도 되겠나이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그리된다.”
“예. 소신도 그리 바라옵니다.”
“그대는 왜 그리 독하고 모진가?”
“황자저하께서 후일 평온을 시대가 올 때 독하신 군주가 아니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때는 자애로운 황제가 돼서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정도전이 나를 빤히 봤다.
“그대의 충심은 나도 안다.”
“알아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옵니다.”
정도전이 살짝 내게 목례를 했다.
“그대의 충심이 무엇을 주면 변치 않을까?”
내 말에 정도전이 살짝 눈빛이 떨렸다.
“소신을 의심하시는 것이옵니까?”
“그대도 변할 수 있는 사람이지.”
처음으로 난 정도전에게 경계심을 보였다.
“그렇사옵니다. 소신도 변할 수 있는 사람이옵니다. 그렇게 군주가 되실 분은 가장 가깝고 믿을 수 있는 존재부터 의심하시는 것이옵니다. 소신을 의심하시고 또 의심하셔야 하옵니다. 그래서 군주는 외로운 법이옵니다.”
“그대에게 무엇을 줄까?”
“달라면 주시겠습니까?”
정도전이 날 빤히 봤다.
“줄 수 있다면.”
다시 한 번 정도전의 눈빛이 떨렸다.‘뭔가 원하는 것이 있다.’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원하는 것이 생긴다는 것부터 무엇인가를 가지기 위해 힘을 키우는 거였다. 그게 시작인 거다.
“황자저하!”
“말해!”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소신의 마음이 정해지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원하는 것이 있기는 하군.”
“저도 사람입니다.”
“그렇지. 사람이지. 정도전!”
“예. 황자저하!”
“내 하나만 말하지. 계륵의 일화를 잘 생각하시게.”
이건 경고였다. 비상한 두뇌를 가진 정도전이라면 충분히 내가 하고 싶은 말의 뜻을 알 것이라고 생각이 됐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나가 보게.”
“예. 황자저하!”
정도전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내게 군례를 올렸다.
“키가 조금 큰 것 같군.”
“예?”
“그대의 키가 조금 큰 것 같아서.”
“그렇사옵니까?”
“조금 큰 것 같아!”
“물러가겠나이다.”
정도전이 다시 군례를 올리고 밖으로 나갔다.
“들어 가보시게.”
정도전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우태에게 말했다.
“예. 책사님!”
우태는 짧게 말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황자저하의 마음을 읽지 말라는 말씀은 명심하지요.”
정도전은 혼자 중얼거리며 군막 옆에 서 있는 병사를 봤다.
“내 키가 좀 큰 것 같아?”
정도전의 뜬금없는 질문에 병사가 정도전을 봤다.
“소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하지만 한창 크실 나이시니 금방 쑥쑥 자리실 것입니다.”
“그런가? 내가 한창 클 나이인가? 하하하!”
정도전은 씁쓸하게 웃고 자신의 군막으로 걸었다.‘주군의 여인을 달라고 말할 수도 없고,,,,,,,,.’정도전은 그리 생각하며 머릿속으로 귀녀 아나스타샤의 얼굴을 떠올렸다.
“키가 정말 큰 건가?”
정도전은 피식 웃었다.자비 령 중앙 서경 반란군 진영 조위총의 군막.군막 안은 침울하다 못해 불안감이 가득한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으음,,,,,,,.”
오직 스스로 황제라 칭한 조위총의 신음소리만이 군막 안을 맴도는 메아리가 되어 작게 들릴 뿐이다.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조위총!그만 보고 있는 서경 무장들의 눈빛은 그저 이 위기를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그런 눈빛이었다. 그러니 누구하나 입을 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군막 밖에서 급히 자비 령 남단을 지키기 위해 방어진을 구성해서 자비 령에 남기로 했던 조원정이 들어섰다.
“황제폐하! 큰일 났사옵니다.”
조원정은 바로 무릎을 꿇고 조위총에게 외쳤다.
“무슨 일인가?”
“개경 잡놈들이 진격을 시작했사옵니다.”
“진격을?”
“그렇사옵니다. 진격을 시작했사옵니다. 속히 회군하셔야 하옵니다. 소장이 막아낼 것이오나 세상의 일은 모르는 일이옵니다. 어서 서경으로 회군하셔야 하옵니다.”
마치 조원정은 아직 조위총과 서경 반란군이 회군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급히 회군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으음,,,,,,,,.”
조위총은 대답대신에 크게 그리고 깊게 신음소리를 토해냈다.
“어찌,,,,,,,.”
조원정이 조위총의 눈치를 봤다.
“자비령 북단도 막혔소. 조장군!”
가만히 보고 있던 서경 무장 하나가 조원정에게 말했다.
“무슨 소리요?”
“개경 잡놈들이 자비령을 우회해 협로 입구를 틀어막고 있소.”
서경 무장의 말에 조원정이 놀란 눈빛을 보였다.
“그, 그러면 저희는 독 안에 든 쥐 꼴이 된 것이 아니옵니까?”
“어허! 무슨 망발을 그리 하시는 거요.”
서경 무장이 인상을 찡그리며 조원정에게 역정을 냈다.
“틀린 말은 아니지.”
드디어 조위총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조원정을 봤다.
“서경 적도들이 진격을 시작했다고?”
“그렇사옵니다. 황제폐하!”
“우리가 나가기도 힘이 들지만 적도들이 이 자비 령으로 진격하기도 힘이 들지. 우선은 진격하는 놈들을 막으시게 그리고 방법을 찾아 봐야겠지. 군량은 얼마나 남았나?”
조위총은 조원정에게 말하고 고개를 돌려 군량을 담당하는 무장을 봤다.
“나흘 정도 먹을 수 있는 군량이옵니다.”
군량 담당 무장이 눈치를 보며 말했다.
“겨우 나흘?”
“송구하옵니다.”
“네놈이 어찌 군량을 관리했기에 그 정도 밖에 남지 않은 것이냐?”
“송, 송구하옵니다. 황제폐하!”
“병사들은 먹어야 충심이 생기는 것들이다.”
조위총이 그리 말하며 무섭게 군량담당 무장을 노려봤다.
“소, 소장의 죄가 크옵니다.”
“좌장군!”
조위총이 좌측에 앉아 있는 기골이 장대한 무장을 봤다.
“예. 황제폐하!”
“이곳에 올 때에 남은 군량이 13일치라고 짐은 들었다. 그런데 지금 남은 군량이 나흘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은 저놈이 착복을 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목을 베라!”
“예?”
“군량을 관리하지 못한 자 죽어 마땅하다.”
조위총이 단호하게 소리를 질렀다.
“하, 하오나,,,,,,,.”
서경 반란군 좌장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하려다가 노해 출혈된 조위총의 눈빛을 보고 입을 꾹 다물었다.
“그대가 짐의 말을 어기겠다는 것이냐?”
“아니옵니다. 좌장군 임충! 명을 따르겠나이다.”
좌장군인 임충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고 군량 담당 무장은 기겁해 사색이 됐다.
“황, 황제폐하! 살, 살려주시옵소서! 소장은 죄, 죄가 없사옵니다.”
“끌어내서 참수하라!”
조위총은 애원하는 군량담당 무장의 말을 무시했다.
“예. 황제폐하!”
그렇게 군량담당 무장은 좌장군 임충에게 끌려 나갔다.
“놀라셨소?”
굳어진 표정을 하고 있는 서경 반란군 무장들을 보며 조위총이 담담하게 말했다.
“아, 아니옵니다. 황제폐하!”
“짐이 어쩔 수 없이 읍참마속의 마음으로 대의를 위해 큰 것을 위해 참수한 것이요. 지금 이 순간 누군가를 참수하지 않는다면 병사들의 원망이 하늘을 찌를 것이고 그것을 미연에 막기 위함이요.”
“그렇사옵니까? 황제폐하!”
“그렇소. 병사들은 이제 곧 굶게 될 것이고 그 원망을 고스란히 죽은 가여운 무장에게 돌리게 될 것이니 원망과 원성을 잠시는 더 미룰 수 있을 것이요.”
“그럼 이제 어찌 하옵니까?”
서경 우장군 우필도가 조위총에게 물었다.
“조원정 장군이 말한 것처럼 독 안에 든 쥐 꼴이 되었으니 장기적으로 이곳에 머물 수가 없겠지.”
“허나 퇴로까지 막힌 상태이옵니다.”
“으음,,,,,,,,.”
뾰족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조위총이었다.그 10일 동안 서경 성 안에서는 엄청난 일들이 일어날 포석을 깔아놓은 회생이었고 회생의 꿈이 커질수록 회생의 제일 충신이라고 할 수 있는 정도전은 사악하고 독해져야 했다. 또한 회생 역시 참으로 모질고 독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