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390화 (390/620)

< -- 간웅 18권 - 대통합! -- >

“그렇사옵니다.”

“말해 줄 수 있는가?”

“성문을 열고자 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성문을 열릴 것입니다.”

박현준의 말에 김경희 장군이 놀라 박현준을 봤다.

“무슨 말인가? 열고자 한다면 당장이라도 열 수 있다니?”

“10여 일 동안 황자저하께서 그냥 서경 성을 보고만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냥 보고만 있어?”

“그렇사옵니다.”

“그러다가 퇴각하는 서경 군이 서경 성으로 몰려오면 어찌할 건가?”

김경희 장군의 말에 박현준의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었다.

“황자저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서경 반란군들은 절대 자비 령을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박현준의 말에 이해가 되지 않는 김경희 장군이었다.

“어찌?”

“소장도 자세히는 모르옵니다. 허나 자비 령을 다시 넘어 이 서경으로 오기까지는 12일이 걸릴 것이라 황자저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10일 동안은 거짓 공격만 하고 기다리라 하셨습니다.”

“황자저하께서 그리 말씀하셨다는 건가?”

“예. 장군! 그리 명하셨습니다.”

“나는 왜 그리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군.”

“소장은 명을 따르기만 하면 되옵니다.”

“다 뜻이 있을 것이요. 김경희 장군!”

타이모 족장이 김경희 장군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다른 명은 없으셨나?”

타이모 족장이 박현준에게 물었다.

“서경 성을 함락하면 가지고 온 군량을 모두 백성들에게 나눠주라 하셨습니다. 그게 황자저하의 명령이십니다.”

회생이 계획하고 있는 고려 대통합의 또 하나의 포석이 바로 이것이었다.

“으음,,, 10일이라,,,, 혹여?”

김경희 장군이 신음을 하다가 번뜩 뭔가가 떠올랐는지 박현준을 봤고 박현준은 그저 아무 말 없이 살짝 미소만 보일뿐이었다.

“내 생각이 맞는가?”

“대답해 드릴 수 없사옵니다.”

“없다? 맞군.”

“송구합니다. 장군! 황자저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질고 독한 계략은 황자저하께서 꾸미시고 소장이 움직인다하셨습니다. 그러니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분이시군. 허나 대단한 분이시네.”

“불충이십니다. 어찌 하찮은 무장이 황자저하를 판단할 수 있겠사옵니까?”

박현준의 말에 김경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내 늙어 불충을 저질렀어.”

김경희 장군은 그리 말하며 서경 성을 물끄러미 봤다.

“참으로 모질게 천심이 또 울부짖겠군.”

“대통합을 위한 일이옵니다.”

“황자저하의 대통합이 천심이 우는 것이면 나는 마음이 아플 것이네.”

“송구합니다. 김경희 장군!”

“어쩔 수 없는 일인가? 아니시면 황자저하께서 너무나 모질고 독하고 철두철미하신 것인가?”

“소장은 그런 것을 생각하는 것이 불충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불충이지. 무장은 따르는 것이지.”

김경희 장군은 그리 말하며 멀리 횃불이 밝혀진 서경 성을 바라봤다.

“이 모든 것이 북진을 위함이지. 그런 것이지.”

회생의 군막.군막으로 들어서는 순간 난 영화공주의 아름다운 뒤태를 봤다. 타들어가는 촛불이 아른거리고 그 촛불에 비친 영화공주의 모습도 아른거렸다.

그 아른거림에서 풍기는 향기가 내게 손을 내밀듯 다가올 때 내가 들어섬의 인기척에 그녀는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 해바라기처럼 살포시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군막의 두꺼운 천막 문일 열리며 밀려드는 삭풍이 한기가 되고 또 바람이 되니 살포시 앉은 영화공주와 그 옆에 놓인 촛불이 흔들렸고 그 흔들림이 내게는 신선한 떨림으로 다가왔다.

나를 본 그녀의 눈동자는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마치 나를 기다렸지만 자신이 이곳에 와 있다는 것이 해를 본 해바라기처럼 부끄러운 듯 내가 왔음에도 일어나지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잠시의 정적과 멈춤!그 시간이 찰나이었으나 영화공주에게는 한 없이 긴 시간이 분명할 거다.‘영화공주,,,,,,,.’여인으로 또 일국의 공주로 이 깊은 밤에 스스로 나를 찾아왔다는 것은 내게 모든 것을 주고자 함이 분명할 거다.

자존심 따위는 모두 버리고 오직 황실의 안녕을 위해 저리 온 것이 분명했다. 그런 면에서 영화공주는 참으로 가여운 여인이 분명할 거다. 또 그 가여움 속에서 나를 생각하는 그 마음이 사랑이라는 것을 내가 알고 있기에 더욱 측은했다.

내가 조금만 더 백화에게 하듯 영화공주에게 다정다감했다면 그녀는 이곳까지 오지 않을 것이다.그리고 일국의 공주의 자존심을 지키며 끝내 내 아내가 됐을 것이다.

자존심이 모든 것인 그녀에게 그 자존심을 나를 위해 내려왔으니 그녀는 내게 이미 모든 것을 준 거나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기다리고만 있지 않겠다는 건가?’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 순간에 어찌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 됐다.

그녀의 옆에 앉아 그녀를 다독여줘야 할까? 아니면 못 본 척 돌아나가야 할까?수많은 생각들이 내 머릿속에서 엉킨 실타래와 같았다. 그리고 정도전이 내게 군막으로 가서 쉬라고 했는지 이제야 이유를 알았다.‘어찌 할까?’난 그런 생각을 하며 물끄러미 영화공주를 봤다.

그녀는 새색시처럼 부끄러울 것이다. 용기를 내어왔지만 그럴 것이다. 그러니 저리 힘없이 조심히 파르르 떨며 앉아 있는 거였다.

그때 살포시 영화공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목례를 했다.

“오셨습니까?”

영화공주의 한 마디가 다신 내 머리를 멍하게 만들었다.

“예.”

짧은 한 마디씩을 나누고 다시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내게도 이 침묵의 시간은 길게 느껴질 것이고 영화공주에게는 더욱 길게 느껴질 것이 분명했다.‘어떤 말이든 해야 한다.’난 영화공주가 부끄럽지 않게 무슨 말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그, 그것이,,,,,,,.”

이 순간 무슨 말이 필요할까?또 내가 영화공주라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멍청한 놈!’난 스스로에게 멍청하다고 질책했다.

그녀는 지금 이 깊은 삭풍이 부는 밤에 온몸에 한기가 서리는 밤에 많은 이들의 눈을 피해 나를 향해 모든 것을 주기 위해 왔는데 그것을 알면서도 왜 왔는지 묻고 있는 내가 한심스러웠다.‘어찌 해야 할까?’이 순간 난 고민할 필요도 없는 것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영화공주를 봤다. 그리고 영화공주가 서 있는 옆 탁자에 작은 술병과 잘 익은 고기 몇 점이 놓여 있다는 것을 봤다.

“황자저하께서 출출하실 것 같아서,,,,,,,.”

밤새도록 활처럼 휘어진 달이 떴다가 기울듯 지고 있는 이 시간까지 소를 잡고 돼지를 잡아 치른 잔치가 여전히 흥이 다하지 않았는데 영화공주는 부끄러운 이유를 내게 말하고 있었다.

“하하하! 그렇습니까? 출출하던 참입니다. 잘 되었습니다. 술도 있군요.”

어색함을 떨치기 위해 그리 말하고 영화공주에게 다가섰다. ‘영화공주 스스로 이리 왔을 리는 없다.

’난 문뜩 영화공주를 보며 정도전의 얼굴이 떠올렸다.‘괘씸하시군. 뭘 바라는 거지.’난 그런 생각을 하다가 번뜩 떠오르는 것이 있어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설마,,,,,,,,.’내가 만약 나와 같이 외척들이 강성한 주군을 모시고 있는 책사라면 이이제이의 간계를 통해 그 외척들이 서로 반목하게 만들기 위해 계략을 꾸몄을 것이다. ‘힘이 강한 외척은 적만큼 골치 아픈 법이지.’난 정도전이 어떤 것을 꾸미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아직 토사구팽을 할 때가 아닌데,,,,,,,.’정도전이 너무 빨리 앞서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것은 분명 참지정사 강일천공을 의식해서 꾸민 일이 분명할 거다.내게는 절대적인 존재인 백화와 내 사이의 틈을 발견하고 그 틈을 영화공주를 통해 더욱 크게 벌리고자 하는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정도전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행동일 것이다.내 사람 백화는 지금 제1황후라는 권력에 눈이 멀어 많은 적을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그 틈을 영악한 정도전이 노리고 있는 거였다. 또한 그의 여동생인 영화공주를 제1황후로 만들고자 하는 거였다.

“제가 온 것이 싫으신 것이옵니까? 황자저하!”

“아닙니다. 공주마마!”

“그런데 어찌 의자에 앉지도 않으십니까?”

담담한 말투지만 부끄러움을 감수하며 내게 유혹이라는 것을 애써 하고 있는 영화공주가 안쓰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앉아야지요. 좋은 술과 좋은 고기가 있는데 앉아야지요.”

내 말에 영화공주는 찰나의 순간 살짝 인상이 굳어졌다가 나를 의식했는지 담담하게 변했다. 나를 향해 웃어 보이기에는 여전히 부끄러운 영화공주인 거였다.‘젠장 실수다! 영화공주가 내게 술과 고기보다 못한 존재가 되었어. 이 멍청이!’난 속으로 다시 나를 질책했다.

“하하하! 공주께서 와주셔서 정말 반갑고 기쁩니다.”

수습을 하려고 주절거린 말이지만 그래도 영화공주는 날 보며 살짝 웃었다.

“제가 황자저하의 갑주를 벗겨드리겠습니다.”

전장에서 돌아온 무장의 갑주를 벗겨주는 일은 오직 그 아내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스스로 지금 영화공주는 자신이 내 아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거였다.

“괜찮습니다. 혼자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싫으십니까?”

영화공주가 조심히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이것은 그녀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용기를 내서 내게 하는 도발이 분명했다.

“아닙니다. 싫다니요. 저는 부마도위입니다.”

“제가 그럼 제가 갑주를 벗겨드리겠습니다.”

“예. 그러세요.”

내 말에 영화공주가 내 뒤로 와 떨리는 손으로 갑주의 끈을 풀었다. 그리고 무거운 갑주를 조심히 벗겨 옆에 걸고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정강이에 차고 있는 각반까지 풀어줬다.

“제가 할 수 있습니다. 공주마마!”

“제가 하겠습니다.”

영화공주는 그렇게 조심히 내가 입고 있는 갑주를 모두 풀어줬다.

“앉으시지요.”

영화공주는 내게 자리를 권했다.

“예. 공주님!”

“영화라 불러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영화공주의 말에 난 아주 예전에 공예태후의 전각에서 나올 때 영화공주와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그랬었지요.”

“그분과 황자저하 사이의 작은 틈이라도 제가 주실 수는 없으십니까?”

“예?”

“저는 그리 느껴집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파고들 수 없을 만큼의 틈이 없는 것입니까?”

사실 틈은 생기고 있었다.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권력을 향해 달려가는 백화가 안타까웠고 그 안타까움이 틈이 되고 있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항상 황자저하는 말뿐이십니다.”

“송구합니다.”

난 그리 말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영화공주는 나를 따라 자리에 앉았다. 떨리는 손으로 조심히 술병을 들어 날 봤다.

“제가 한잔 올리겠습니다.”

“고맙소.”

나는 마지 못하는 척 술잔을 내밀었다.술이 따라지고 그 술에서 나는 향이 국화주라는 것을 알게 됐고 참으로 용기를 냈지만 아무런 준비도 못하고 온 영화공주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화주는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것을,,,,,,,.’나를 유혹하기 위해 온 그녀지만 진정의 지친 나를 위해 국화주를 준비하니 내가 어찌 해야 할지 몰랐다.‘이 향이었구나!’처음 내 군막으로 들어섰을 때 아른거리는 영화공주의 모습과 함께 은은하게 풍기는 향기가 국화주 향기라는 것을 이제야 난 알았다.

‘내게 따라준 술의 의미는 그것이겠지.’난 술을 받아들고 잠시 영화공주를 봤다. 내가 그녀를 보자 그녀는 부끄러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천상 여인이다.’백화와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영화공주가 분명했다.

‘원하시는 대로 해 드려야겠지.’용기를 내어 온 영화공주일 거다. 그렇다면 그녀를 그냥 물리친다면 그녀는 참으로 부끄러워지고 또 스스로 작게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는 분명 안 되는 거였다. 아직은 내게 완벽하게 내 마음에 다가온 그녀는 분명 아니지만 그녀를 그냥 초라하게 보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주마마!”

내가 여전히 자신을 공주마마라 부르자 영화공주는 자신도 모르게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가 날 봤다.

“예. 황자저하!”

난 다시 영화공주를 봤다. 지금 한 없이 부끄러울 영화공주일 거다.

“이술 제가 마시면 내 사람이 되시는 것입니다.”

내 말에 영화공주가 놀라 파르르 떨리는 입술과 눈동자로 날 봤다.

“예?”

“그러시는 겁니다. 그리 해 주시는 겁니다.”

내 말에 다시 영화공주는 나와 내가 든 술잔을 봤다.

“드시지 않으시면,,,,,,,.”

영화공주의 표정이 부끄러운 듯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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