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18권 - 대통합! -- >6. 회생! 영화공주를 품다.서경 성 성루는 얼어붙듯 긴장감이 감돌았다.
북풍이 불어 삭풍이 되고 그 삭풍이 서경의 깃발을 휘날리고 있지만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휘어지는 것이 서경 성의 운명처럼 위태롭기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다.
수천의 대군이 서경 성 앞 평지에 진을 치고 노려보고 있으니 성루에 올라와 있는 서경 성 병사들은 놀라 이미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
“어찌 하옵니까? 적이옵니다. 도독! 적이 서경 성 앞에 있사옵니다.”
서경 성 북문을 지키던 수문장이 성루에 도착한 안북도호부 도독 최창평에게 물었다. 그의 눈빛은 다급했고 그의 표정은 굳어지고 있었다.
허를 찔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 개경으로 진격한 서경의 군대는 개경 중앙군을 막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쪽이 아닌 북쪽에서 수천의 군사가 저리 자신들의 성을 노려보고 있으니 말이다.
“으음,,,,,,,.”
최창평은 길게 신음소리를 냈다. 허나 긴 신음소리에는 위태로움도 다급함도 없는 듯 했다. 단지 올 것이 왔다는 그런 신음소리 같았다.
“어찌 해야 할까?”
최창평은 북문 수문장에게 되물었다.
“소장의 생각을 물으시는 것이옵니까?”
“그렇지. 어찌 하면 될까?”
안북도호부 도독 최창평이 이리 묻는 것은 지금 이 서경 성을 지키는 병사 4천 중 2천이 이북40성에서 증원된 병사고 나머지 2천이 서경 병사이기 때문이다.
“소장의 생각으로는 적의 수가 수천이기는 하나 변변한 공성무기가 없는 것 같사옵니다.”
“그렇군! 공성무기가 없군.”
안북도호부 도독 최창평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사옵니다. 그러니 지켜내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황제폐하께서 승전하시어 돌아오실 때까지 지켜낼 수 있을 것 같사옵니다. 이 서경 성은 옛 고구려의 수도 성으로 비록 그간 증축이 된 것은 없사오나 철옹성이옵니다. 막고자 한다면 막을 수 있사옵니다.”
북문 수문장은 막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한 마디로 농성을 하며 지켜내자고 말하고 있는 거였다.
“저리 막고 있으니 농성을 하자는 건가?”
“그렇사옵니다. 변변한 공성무기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급조되어 이곳으로 급파된 것들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막을 수 있습니다. 적이 간계를 써서 개경에서 우회한 것 같으나 막을 수 있습니다. 또 먼 길을 돌아왔으니 지쳤을 것이옵니다. 그러니 막으며 황제폐하께서 승전하신 후에 회군을 기다리는 것이옵니다.”
“틀렸네.”
“예?”
“자네의 말이 틀린 것도 있어.”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저들은 개경 군사가 아니네. 저 깃발을 보시게.”
안북도호부 도독 최창평이 손가락을 가리키며 힘차게 펄럭이고 있는 북변 갑산군 깃발을 보며 말했다.
“저, 저것은,,,,,,,.”
“북변 갑산군이지.”
“어찌 북변 갑산군이 천리장성을 넘어서,,,,,,,,.”
“그러니 이해가 완 되는 것이지.”
안북도호부 도독 최창평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허나 그 찡그림에도 불안함은 없는 듯 했다.
“허를 찔리기는 했으나 저들은 지금 공성무기가 없습니다. 석포나 쇠뇌와 충차가 없이 철옹성이라 불리는 서경 성을 함락시킬 수 없습니다. 도독!”
북문 수문장은 지킬 수 있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정말 수천의 군사이기는 하나 공성무기 하나 없기에 초라하게 보일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그렇지.”
“그렇사옵니다.”
북문 수문장의 말에 최창평이 고개를 끄덕였다.
“식량은 얼마나 남았나?”
최창평의 물음에 북문 수문장이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까지 보였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었다.
“그것이,,,,,,,.”
“개경으로 남진을 하시는 황제폐하께서 다 가지고 가셨지.”
“그렇사옵니다.”
“그럼 우린 무엇을 먹고 농성을 하지?”
“풀뿌리를 캐서 먹고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더라도 버텨야 하옵니다. 늙은 말을 잡아먹더라도 버텨야 하옵니다.”
“그것도 한계가 있겠지?”
“그, 그렇사옵니다. 진정 어쩔 수 없다면 서경 성민들에게 식량을 징집해서라도 버티어야 하옵니다. 또한 저들의 수는 크게 봐도 6천이 넘지 않아 보입니다. 서경 성민들을 동원해서 싸우게 한다면 버틸 수 있사옵니다.”
“징발?”
“그렇사옵니다.”
“저들은 공성무기가 없고 우리는 식량이 없으니 누구에게도 시간이 편이 되어 주지 못하겠군.”
“허나 유리한 것은 저희이옵니다. 혹한이옵니다. 곧 동상이 걸려 귀가 떨어지고 코를 베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불을 피우면 그만이네. 나무야 지천에 깔리지 않았나?”
“어찌 하실 참이십니까?”
“우선은 막아야지. 황제폐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막아야 할 것이다.”
최창평은 그렇게 말했다. 허나 그의 마음은 처음부터 이 서경 성을 지킬 마음이 없었다.
산비둘기를 즐길 때부터 이미 그는 서경 반란군이 아니라 회생이 심어놓은 굳건히 닫칠 서경 성문을 열 열쇠인 거였다. 허나 그가 그냥 성문만을 연다면 회생이 그를 포섭한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미리 침투시켜놓은 별초군들이 충분히 안에서 급습해서 성문을 열수 있으니 말이다. 또한 회생은 사악한 포석을 이 서경 성에 깔아 놨다. 그것이 바로 안북도호부 도독 최창평인 것이다.
회생의 고려 대통합의 일환으로 또 백성들의 가볍게 움직이는 마음을 이용해 서경 성 함락을 준비해놓은 회생이었다.
“그렇사옵니다. 전투 준비를 하겠사옵니다.”
“그러시게. 그리고 부족한 식량은 백성들에게 징집하시게 서경 성이 함락되면 서경 성민은 모두 죽는 것이네. 서경 성 백성은 그것을 몰라 그저 자신의 것만 빼앗기면 서럽다고 하고 죽겠다고 울부짖지 하지만 우리는 모질어야 하네. 그래야 저 적도들로부터 서경을 지키고 서경 성민들의 목숨을 구명할 수 있네. 군대의 사기는 군사들을 배불리 먹이는 것부터 시작이네. 당장 백성들이 굶주리겠지만 군사들부터 잘 먹어서 성을 지켜야 하네.”
최창평은 그리 말하고 수천이나 되는 북변 갑산군들을 봤다.
“예. 도독!”
“다행이야! 저들이 이 성을 포위하고 공성무기를 준비할 동안은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야!”
“그렇사옵니다. 참으로 급조된 군사들이 분명할 것이옵니다. 그러니 변변한 공성무기 하나를 챙겨오지 않은 것입니다. 충분히 지켜낼 수 있습니다. 그러시지 마시고 이참에 성문을 열고 공격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북문 수문장은 농성을 넘어 선제공격을 하자는 투로 말했다.
“먼저공격하자고?”
“그렇사옵니다. 기병의 수가 얼마 되지 않사옵니다.”
그렇게 보일 것이다. 아직 타이모 족장이 이끄는 속말말갈족 전사들이 합류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우리는 기병이 얼마나 있나?”
“300기는 되옵니다.”
“기마대 3백기와 4천의 군사?”
“그렇사옵니다. 죽기로 각오한다면 승리를 할 수 있겠군.”
“그렇사옵니다. 도독!”
“패전을 한다면?”
안북도호부 도독 최창평의 말에 북문 수문장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그리 된다면,,,,,,,.”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 되네. 이 높은 철옹성이 있는데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
“그렇사옵니다. 소장의 생각이 짧았사옵니다.”
“아니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 공성무기도 준비하지 않고 온 놈들이니 말이야! 잠, 잠깐!”
순간 안북도호부 도독 최창평의 표정이 굳어졌다.
“왜 그러시옵니까?”
“공성무기를 가지고도 저리 당당히 와 노려보고 있네.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이 분명해.”
“다른 꿍꿍이라니요?”
“공성무기도 없는데 어찌 저리 자신만만하게 있을 수 있겠나? 공성무기가 없는데 성문을 열고자 한다면 그 답은 하나지.”
순간 수문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설, 설마 도독께서는,,,,,,,.”
“그 설마는 항상 사람을 잡지. 안에서 내응을 하는 자들이 분명 있을 것이네. 한 둘이 아닐 확률이 높아! 그러니 저리 여유가 있는 것이지.”
“안에서 성문을 열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까?”
“그래. 그럴 것이야! 젠장! 진퇴양란이군.”
“하오시면,,,,,,,.”
“자네가 내게 한 말을 생각해 봐야겠군.”
“선제공격을 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기를 바라지만 분명 안에서 내응하는 놈들이 있을 것이야! 그러니 그들이 성문을 열기 전에 우리가 먼저 공격하는 것도 방법이지.”
안북도호부 도독 최창평은 그리 말하며 진을 치고 있는 북변 갑산군을 노려봤다.그때 서경 성 수비 무장들이 달려왔다. 또 그 뒤를 안북도호부 무장들이 달려왔다.
“도독을 뵈옵니다.”
대여섯 명의 서경 성 무장들이 안북도호부 도독에게 군례를 올렸다.영화공주의 군막.영화공주의 군막 앞에 조금 전까지 죽은 자들을 기억하는 잔치에 동참하고 있던 정도전이 모습을 보였다.
“책사님을 뵈옵니다.”
“쉬!”
정도전은 주변을 살피며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했다.
“예. 책사님!”
“안에 공주마마 계시느냐?”
“예. 쉬시고 계시옵니다.”
“내 들어갈 것이니 이 주변에는 누구도 얼씬 못하게 해라.”
“예. 책사님!”
무장이 조용히 대답했다. 그리고 정도전이 군막 안으로 들어서며 살짝 고개를 돌려 어두운 곳을 응시하며 피식 웃었다. ‘나를 감시해?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지.’정도전은 그리 뇌까리며 영화공주가 쉬고 있는 군막 안으로 들어섰다.
“누구냐?”
“책사 정도전이라 하옵니다.”
정도전의 대답에 영화공주는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곳으로 오기 전 모후인 공예태후와 은밀히 이야기를 나눴던 그때로 빠져들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어마마마!”
“어리게 보이나 네 오라비다.”
공예태후의 말에 영화공주는 다시 한 번 놀라 다시 한 번 공예태후를 봤다.
“영화 너를 잡아줄 유일한 동아줄이고 너를 도와줄 오라비라는 것만 알아라.”
“어, 어떻게?”
“아픈 오라비다. 그리만 알면 된다. 그리 아프기에 황자대접도 못 받은 것이다.”
“어, 어마마마!”
“이야기를 다 하자면 기니 그리 알고 믿고 따라라. 허나 네가 오라비라는 것을 알릴 필요는 없다. 알겠느냐? 영화야!”
“예. 어마마마!”
“너는 꼭 제1황후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어미처럼 태후가 되어야 한다.”
“예. 어마마마!”
영화공주는 대답을 하며 회상에서 깨어났다.
“책사?”
영화공주는 표정을 고치고 정도전에게 되물었다.
“그렇사옵니다. 황자저하의 책사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시오?”
“이 밤을 그냥 보내시면 후회하실 것입니다.”
정도전의 말에 살짝 인상을 찡그리는 영화공주였다.
“나비가 꽃에게 오지 않는다고 마냥 기다리지만 마시고 오지 않으면 꽃이 벌을 찾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도전의 말에 영화공주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체통 때문이십니까?”
“내가 이곳으로 올 결심을 한 후에는 체통 따위는 없어요.”
“그럼 분단장을 하시고 일어나 찾아가셔야지요. 벌을 홀리기 참 좋은 밤입니다. 주향이 온몸에 베이고 죽은 자들의 혼령이 벌을 꽤나 감성적으로 만들 것입니다. 크게 이긴 영웅은 크게 외로운 법입니다. 달이 참 좋으니 이 밤에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으음,,,,,,,.”
“지금 머뭇거리면 뒤따라가기 참 힘듭니다.”
정도전의 말에 영화공주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 성격에 절대 기다리면 안 옵니다.”
“알았어요. 그런데 왜 저한테?”
“이유는 차후에 태후마마께 여쭤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정도전은 그리 말하고 공손히 목례를 하고 영화공주의 막사를 나서기 위해 돌아섰고 그의 얼굴에는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이 오라비는 너를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끝내는 황자저하를 위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