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18권 - 대통합! -- >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틀리니 똥을 씹을 수밖에요.”
“뭐가 틀립니까?”
“이무기로 알고 있었는데 용이시니 놀라는 거지요.”
연후의 말에 난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뭐라고 하셨소?”
“왜 그리 놀라시오리까? 아니셨습니까?”
“들어갑시다. 귀인이신 것 같으니.”
영화공주가 기거하는 아담한 군막.영화공주는 오랫동안 다친 부상병들을 돌보다가 지쳐 쉬기 위해 기거하는 군막으로 들어섰다.
“참으로 피곤하구나!”
영화공주는 군막으로 들어서자말자 털썩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괜찮으시옵니까? 공주마마!”
“괜찮아야지. 그래야 내일 다시 병자들을 돌보지.”
“쇤네들이 하겠사옵니다. 내일은 쉬십시오.”
“아니다. 나도 도울 것이다. 모두가 저렇게 고려를 위해 일하니 나도 힘을 다해 내 몫을 할 것이다.”
“너무 힘들어 보이십니다.”
상궁 하나가 영화공주의 지친 얼굴을 보며 말했다.
“그리 보이느냐?”
“그렇사옵니다. 공주마마!”
“그만큼 내가 편히 지냈던 것이지. 겨우 부상병들의 병수발을 며칠 들고 지친 것은 내가 그동안 너무 편하게 지냈기 때문이야. 다른 아낙들은 나보다 몇 배는 더 험한 일을 하는데 나랑은 다른 것은 그들의 평소의 삶이 이보다 좋을 것이 없다는 거겠지.”
영화공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공주마마시옵니다.”
“이곳에는 공주는 없어. 그저 병자들을 돌보는 영화만이 있을 뿐이네.”
“알겠사옵니다.”
“황자저하께서 너무 하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계속 표정이 어둡던 나인이 볼멘소리를 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영화공주가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황자저하께서 부상자들의 막사에 오셨다가 그냥 가셨다고 합니다.”
“그럴 수도 있지.”
“공주마마께서 병자들을 돌보는 것을 보시고도 그냥 갔다고 합니다.”
나인의 말에 영화공주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서운하옵니다. 공주마마께서는 이리 황자저하를 돕기 위해 일하시는데 그냥 가시는 것은 참으로 너무한 처사이십니다.”
지금 말하고 있는 나인이 어리기 때문일까? 그리 볼멘소리를 계속했다.
“황자께서는 내게 미안하신 것이야. 그래서 왔다고 말도 못하고 가신 것이야.”
“왜요?”
“그런 것이 있어. 그냥 미안하셔서 그냥 가신 것이야!”
영화공주는 그리 말하며 머릿속에서는 백화를 떠올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만해라! 난 내 일만 하면 되는 것이야.”
“하오나 백화마님은 여전히 개경에서 편히 지내지 않습니까?”
“그분도 그분의 일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아무 말도 말거라. 조금만 쉬고 싶구나! 그리고 너희들도 쉬어라.”
“예. 공주마마!”
“들어가도 되겠나이까? 공주마마!”
그때 묵직한 무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출정한 무장들 중에 영화공주가 이곳에 와 있다는 것을 아는 무장은 대장군 이고가 전부였다. 그리고 이 군막을 지키는 무장들 역시 이고의 용호군 무장이었다. 이것만 봐도 영화공주와 황실은 대장군 이고와 한 배를 탄 거라고 볼 수 있었다.
“들어오시게.”
영화공주는 처음 듣는 목소리의 무장이 누굴까 생각하다가 들어오라고 말했다.
“예. 들어가겠나이다.”
무장이 조심히 말하고 들어섰다.그의 두 손에는 작은 소반이 들러 있었다.
“무엇인가?”
“황자저하께서 보내셨습니다.”
무장의 말에 상궁과 나인들이 놀라 무장을 봤다.
“참말이시오?”
“그렇사옵니다.”
그제야 표정이 밝아지는 상궁들과 나인들이었다.
“두고 가시게.”
“알겠사옵니다. 무어라 전해 올리면 되겠습니까?”
“제게는 마음을 쓰지 말라 하세요.”
영화공주의 말에 상궁들과 나인들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그리 전하겠나이다.”
무장이 군례를 올리고 군막을 나갔고 영화공주는 탁자위에 올려 있는 소반을 봤다. 아담한 수반이다. 그 소반을 덮고 있는 천이 화려한 비단이라는 것이 조금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였다.
“어서 열어 보셔요.”
“촐랑 되지 마라.”
“쇤네들은 물러가겠나이다.”
상궁이 공손히 절하며 말했다. 그리고 나인들을 쫓아내듯 데리고 나갔다.
“아담한 소반에 비단을 덮었구나!”
영화공주는 이 자체가 무슨 뜻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비단은 자신을 의미하는 것 같았고 아담한 소반은 황자인 회생을 의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영화공주가 비단을 걷어내고 소반을 봤다.소반 안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밥 한 그릇과 소금 한 종지가 놓여 있었다.
“황자저하!”
영화공주는 순간 감격한 눈빛을 보였다. 총명한 것으로 따진다면 백화와 쌍벽을 이루는 것이 영화일 거다. 그리고 회생의 마음을 정확하게 알아차린 영화공주였다.
“황자저하의 마음을 잘 알겠습니다.”
밥은 누구든 다 먹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소금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분명했다.
“예. 알겠습니다. 이 고려를 위해 밥이 되고 소금이 될 것입니다.”
이건 다시 말해 황후로 인정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회생 그에게 자신이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는 거라는 것을 알게 된 영화공주였다.회생의 군막.나는 상석에 앉았고 내 좌측에는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겠다는 듯 위위경 이의방과 이고외숙 그리고 대장군 한 섬이 자리하고 있었다. 또 내 뒤에는 금강야차라 불리는 이의민이 거대한 부월을 들고 연후와 북제 그리고 남제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우측에는 연후와 남제 그리고 북천이 잘 차려진 술상 앞에 앉아 있었다. 또 군막 문 쪽에는 몇 명의 무장이 연후와 남제 그리고 북천을 주시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런 조치는 이고외숙이 한 것이 분명했다.
“이리 살벌해서 어디 마음 편히 곡주한잔 마시겠습니까? 황자저하!”
“살벌할 것이 없는데 어찌 그러십니까?”
난 연후에게 되물었다.
“밖에 검을 찬 무장들이 100인이 넘게 이 안으로 노려보고 있는데 아무리 부드러운 술이라도 목에 넘어갈 것 같지 않습니다. 황자저하!”
연후의 말에 난 이고외숙을 봤다. 이고외숙이 살짝 인상을 찡그리는 것을 봐서 연후의 말이 사실인 것 같았다.
“물리세요. 무장들도 쉬어야지요.”
“하오나 검의 날을 손으로 부러트리는 자라고 들었나이다. 황자저하!”
“대단한 무위지 위험한 것은 아니지요.”
“하오나 위험해질 수도 있사옵니다. 위험한 것과 대단한 것은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제게는 지금 고려의 3대 용장이 있습니다. 제가 두려울 것이 뭐가 있습니까?”
내 말에 남자가 피식 웃었다. 한 마디로 가소롭다는 그런 미소였다. 순간 날 살짝 짜증이 났다.
“이곳에 오기 싫으면 아니 오면 그만인 것을 마지못해 온 것처럼 그러면 아무리 입에 단 술이라도 쓴 법이지요.”
내 말에 연후가 미소를 머금었다.
“원래 속이 좁은 위인이니 너무 마음에 담지 마십시오. 허나 속이 좁아도 아주 깊으니 남제의 마음을 얻는다면 꽤 이익이 되실 겁니다.”
“그렇습니까?”
“그렇지요.”
난 연후의 말을 듣고 이고외숙을 봤다.
“물리세요.”
“알겠나이다.”
이고외숙은 그리 말하고 금강야차 이의민에게 눈짓을 보냈다. 한 마디로 여차하면 연후의 대갈통을 들고 있는 부월로 깨버리라는 그런 신호였다. 그리고 이고외숙이 앞에 선 무장들을 봤다.
“물러가라!”
“예. 대장군!”
“하하하! 이제야 술 맛이 좀 나겠습니다.”
“한잔 받으시겠소?”
“당연하지요. 자작은 3대가 고자라고 했습니다.”
연후가 당당히 내게 술잔을 내밀었다. 그것도 참으로 무엄하게 한 손으로 내밀었다.
“무엄하다.”
이고외숙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찌 감히 황자저하께서 따라주시는 술을 한 손으로 받으려 하는가?”
“모실지 아니 모실지도 정하지 않았는데 어찌 두 손으로 받을까? 모신다면 앞으로 주시는 술은 어찌 받는가?”
처음으로 연후가 장난기를 뺀 목소리로 말했다.
“받으시게.”
난 아무렇지 않다는 듯 술을 따랐다.
“황자저하! 무엄한 자입니다.”
“무엄한지 아닌지는 내가 살피겠습니다.”
“알겠나이다.”
이고외숙이 짧게 말하고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난 연후에게 술을 따라주고 연후를 찬찬히 살폈다.기품이 있는 듯 보이다가도 장난기 많은 어린 아이 같고 또 어린아이처럼 보이다가도 그 무거움이 내 가슴을 누르는 것 같았다.
‘조의선인일까?’난 연후를 처음 봤을 때 들었던 의문이 떠올랐다.궁금한 것이 있고 입이 있다면 물어야 한다.
“조의선인이시오?”
내 물음에 연후가 잠시 나를 봤다.
“그렇사옵니다.”
난 연후의 말에 놀랐다.
“정말입니까?”
“그렇소이다. 황자저하! 우리는 조의들이요.”
단도직입적으로 물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답하는 연후였다. 저런 자는 뭐든 마음속에 숨기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오셨소?”
“어떤 분이신지 보기 위해 왔었지요.”
난 연후의 말에 나를 며칠간 지켜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지켜보신 것이요?”
“꽤나 신기한 구석이 많으신 분이더이다. 군량미를 내어 굶주린 백성을 먹이는 것이 미륵 같으나 그 마음이 사특하기도 하시고 포로인 서경 군들을 대할 때는 구분이 없으신 면이 또 미륵 같더이다.”
“나 따위가 어찌 미륵이 되겠습니까?”
“그럼 왜 미륵처럼 보이시려고 하십니까?”
연후가 나를 보며 뼈있게 물었다.
“세상이 미륵을 원하니 그리 보이고자 하는 겁니다.”
“이제 어떻게 하실 참이십니까?”
연후가 내게 물었다.
“어찌 할 것 같소이까?”
“서경 군이 퇴각을 하면 뒤를 쫓겠지요.”
“그렇소이다.”
내 말에 연후가 날 잠시 다시 봤다.
“어디까지 쫓을 생각이십니까?”
난 어찌 대답을 할까 고민이 됐다. 저들이 조의라고 밝혔으니 완벽하게 조의로 믿을 수는 없었다.‘내게 무엇을 원하는 걸까?’이것이 중요했다.
“말씀 못하시는 것이면 아니 하셔도 되옵니다.”
“아니요. 나는 저들을 압수까지 쫓을 것이요.”
내 말에 가장 놀란 것은 남제였다.
“압수라 하셨습니까? 황자저하!”
“그렇소이다. 압수요.”
“북진을 생각하고 계신 겁니까? 황자저하!”
연후가 내게 물었다.
“그렇소이다.”
“그렇다면 서경 군이 서경 성으로 가도 성은 이미 함락이 되어 있겠군요.”
북천이 내게 말했다. 이 정도까지 유추할 수 있다는 것은 뛰어난 머리를 가진 인물이 분명할 거다. 그리고 내가 이 셋을 동시에 상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 누구 없느냐?”
내 부름에 무장 하나가 급히 들어서서 내게 군례를 올렸다.
“찾으셨사옵니까? 황자저하!”
“가서 책사를 부르라.”
이 순간 난 정도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 알겠나이다.”
잠시 시간이 지났고 정도전이 자리에 앉아 찬찬히 연후와 남제 그리고 북천을 봤다.
“조의시군요.”
정도전은 단번에 저들이 조의라는 것을 간파했다.
“보는 눈이 있는 아이가 있군.”
아이처럼 보이니 아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어찌 200여년을 사신 분에게 제가 어른일 수 있겠습니까?”
난 정도전의 말에 놀라 연후를 봤다.
“무슨 말인가? 책사!”
“저도 믿을 수는 없지만 황자저하께서 부르신 이름 연후 공이 맞으시면 200년을 넘게 사신 신선이신 분입니다.”
“허허허! 술 좋아하는 신선을 봤나?”
“신선이 아니시면 뭡니까?”
“오래 살았으니 괴수지. 그대와 같은 괴수!”
연후는 단번에 정도전이 모습만 아이라는 것을 아는 듯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