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18권 - 대통합! -- >난 그렇게 영화공주에게 내 뜻을 전하고 잔치가 준비된 곳으로 왔다.어쩌면 이런 것은 전장에서 미친 짓이 분명할 거다.적이 나를 내려 보고 있는데 잔치를 벌인다는 것은 전술에 맞지 않는 행동이 분명했다.
“황자저하가 납시었다.”
무장의 외침에 일제히 자리에 앉아 있던 개경 중앙군과 그 앞에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주눅이 들어 앉아 있는 서경 병사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자저하! 만세! 황자저하 만만세!”
“미륵 만세! 황자저하 만세!”
누군가 나를 미륵이라 칭하며 만세를 불렀다. 물론 이것은 정도전이 미리 배치해놓은 선동꾼들이 분위기를 잡고자 외치고 있다는 것을 나 역시 잘 알았다.
“오르시지요. 황자저하!”
서경 정벌군 총사령인 위위경인 이의방이 내게 자리를 권했다. 저들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제단보다 더 놓은 상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저들과 같이 하겠습니다.”
“예?”
“저들은 나와 같이 같은 목숨을 내놨으니 이 자리만큼은 같이 하고 싶습니다.”
“하오나,,,,,,,.”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자리를 준비하겠습니다.”
“이 평지가 다 자리인데 더 자리가 필요하겠습니까?”
난 그렇게 말하고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나를 보고 있는 수만의 병사들을 봤다. 물론 이곳 말고도 여러 곳에서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북을 쳐라! 죽은 자들의 위한 잔치를 시작하자.”
내 말에 무장이 고개를 돌려 큰 쇠북 앞에 선 병사를 봤다.둥둥~ 둥둥둥~ 둥둥~드디어 잔치를 알리는 북소리가 울렸다.
이 순간은 참으로 경계가 허술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허나 두경승과 1천의 궁병들이 사방으로 흩어져서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었다.
또한 내 친위대인 천병장들이 병사들을 이끌고 경계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그러니 당장 조위총이 오판을 하고 밀려내려 온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왜 이러는 거지비?”
서경 병사들이 주눅이 들어 눈치를 보며 옆에 있는 동료에게 물었다. 자신들은 분명 포로가 분명했다. 그런데 이렇게 잔치 상을 받고 있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됐다.
물론 개경 중앙군도 마찬가지였다. 크게 대승을 거뒀으니 전장이지만 잔치를 벌이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허나 자신들의 앞에 낮에 싸운 서경 반란군들이 앉아 있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는 개경 중앙군이다.
“조용히 해라! 듣갔다.”
서경출신 병사가 앞에 있는 개경병사들의 눈치를 보며 옆에 있는 동료에게 말했다.
“도깨비장난도 아니고 왜 이러는 거지비?”
“지금은 가만히 닥치고 있는 것이 상책임둥.”
조심히 북변사투리가 튀어나왔다.
“이러다가 술에 취해 우리들 모가지를 따는 거 아님둥?”
“간나새끼가 재수 없게.”
서경 병사들은 눈치를 보며 한 마디씩 했다.또 개경 병사들도 저기들끼리 한 마디씩을 했다.
“아무리 황자저하께서 재림하신 미륵이시기는 해도 이건 아니지 않나?”
개경 병사가 앞에 앉아 있는 서경 병사를 보며 투박하게 말했다.
“그렇기는 하지. 동료들의 시체가 아직 식지도 않았는데 같이 대작을 한다는 건.”
개경 병사가 앞에 있는 서경 병사를 노려봤고 그 순간 서경 병사들은 본능적으로 머리를 숙였다.
“그러게 말이야. 우리를 못 죽여서 안달한 놈들하고 술을 마시고 고기를 나눠야 하다니.”
“맞아! 우리가 저놈들에게 잡혔으면 벌써 목이 잘려 장대에 걸렸을 거야.”
다시 살기 어린 눈빛이 뿜어졌다.
“닥치고 있어. 황자저하의 명이시다. 우리 같은 것들이 무슨 불만을 가져.”
그중에서도 회생의 명령이기에 가만히 있으라는 병사도 있기는 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 추운 날에 이리 전장에 나온 것은 다 저놈들 때문입니다. 형님!”
“누가 그걸 몰라? 허나 황자저하의 명이시다. 술이 있고 고기가 있다. 나눠 먹으면 어떠냐? 넘치는 것이 술이고 고기다.”
“그래도.”
“닥치래도.”
“알겠소.”
형님이라고 불린 병사가 주눅이 잔뜩 들어 있는 서경 병사를 봤다.
“눈치 보지 말게. 나중에야 어찌 될지 모르지만 지금은 같이 대작을 할 것 같으니. 나는 우태이요. 성이 우고 이름이 외자인 태요.”
“내리 갑둥이요.”
서경 병사가 북계사투로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그리고 사실 우리가 이 전장에 나오고 싶어 나온 것은 아니요. 그저 나가라고 하니 나온 것임둥.”
갑둥의 말에 우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다들 같은 신세지.”
여전히 불타는 평지 외각.
“승냥이처럼 사특하게 시체를 뒤지는 걸 봐서는 역시 사특한 놈이 분명합니다.”
앞장을 선 연후의 옆에서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한 남제가 말했다.
“아직도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 건가?”
“모십시오. 조위대두형! 하는 꼴이 저렇지 않습니까?”
남제는 정도전의 지시를 받아 시체에서 갑주와 창검 그리고 화살을 회수하고 있는 병사들을 보며 말했다.
“그냥 두고 가기에는 아까운 군수품이지.”
“하오나 저런 짓은 죽은 자들을 욕보이는 것입니다.”
남제는 여전히 회생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말했다.
“죽은 자들을 욕보인다?”
“그렇습니다.”
“그럼 저건 어찌 설명을 할 것인가?”
“예?”
연후가 멀리 모여 있는 수만의 병사들을 봤다.
“뭐가 말입니까?”
“늙으면 죽어야 하는 거지. 눈도 어두워지고 귀도 막히니.”
연후의 말에 남제가 똥을 씹은 듯 인상을 찡그렸다.
“서경 군과 개경 군들이 한데 어울려 술판을 벌이고 있습니다.”
북천이 조심히 말했다.
“나도 그런 것은 보이네.”
남제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보이면 뭐하나? 느끼지 못하는 것을.”
“송구합니다. 조위대두형!”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렵지. 허나 그것을 인정하면 새로운 것이 보이네.”
“새겨듣겠습니다.”
“말로만 말고.”
연후의 말에 다시 한 번 남제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 똥을 씹은 표정을 할 것이면 똥을 씹게. 똥이 없다면 흙이라도 씹던가.”
“송구합니다.”
“하여튼 가 보세. 보기로 했으니 봐야지.”
“이리 간다고 볼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고려의 황자의 신분입니다.”
“눈이 있으면 볼 것이고 없으면 못 볼 것이고 우리를 귀인이라 생각하면 모실 것이고 아니면 내칠 것인데 뭐가 걱정인가?”
연후의 말에 북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참 놀랍습니다. 곳곳에 궁수들을 배치하고 또 병사들을 매복시켜 놓았습니다.”
“분명한 것은 대범하면서도 철두철미하다는 거지.”
이 순간 연후와 그의 일행들은 수천이나 되는 천병장들이 이끄는 병사들을 피해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 더 놀라운 거였다.
“참으로 묘한 사람인 것은 확실해!”
“그렇습니다. 조의대두령.”
“가세. 곡주가 우릴 기다리고 있네. 하하하!”
둥둥둥! 둥둥둥~개경 중앙군들이 잔치를 알리는 북소리가 자비 령에 진을 치고 숨죽이고 있는 서경 반란군들의 진영까지 들렸다.
“북소리네.”
병사 하나가 혹여 진격소리인지 놀라 기겁해서 옆에 있는 병사에게 말했다.
“무장나리! 북소리입니다. 개경 잡놈들이 공격하는 것이 아닐까요?”
병사가 다급한 표정으로 무장을 봤다.
“공격은 없을 것이다. 이미 밤이고 이 밤에 자비 령을 공격한다는 것은 자살행위이다.”
“정말입니까?”
“그래. 그럴 것이야!”
무장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런데 왜 저리 이 밤에 북을 치는 겁니까?”
“승전을 축하하는 잔치를 벌일 모양이군!”
“잔치요?”
“그래. 잡힌 이북 증원군들의 목을 치면서 잔치를 하는 걸 거다.”
무장의 말에 병사들이 기겁했다.
“목을 벤다고요?”
“아마도 그럴 것이다. 포로로 잡혔으니 그럴 것이다.”
“하오나 잡힌 수가,,,,,,,,.”
“몇 천이 되던 몇 만이 되던 개경 잡놈들과 우리는 섞일 수가 없다. 네놈들이 들었을지 모르겠는데 묘청대사의 거병 때 포로로 잡힌 서경 병사들은 거의 대부분 목이 잘려 장대에 걸렸다.”
정도전이 선동꾼을 이용하고 있듯 무장들도 이렇게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면서 군영의 질서를 잡으려 했다.
“정, 정말이옵니까?”
“그래. 그랬다고 나도 들었다.”
무장이 인상을 찡그렸다.
“이제 어찌 합니까?”
“살고 싶다면 죽어라 싸워서 이겨야지.”
무장의 말에 서경 병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지금이 딱 좋은 적기인데,,,,,,,,.”
무장은 인상을 찡그리며 조위총이 있는 지휘부 군막 쪽을 봤다. 그의 표정은 한없이 어둡기만 했다.
“정말 잔치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서경 무장이 조위총에게 물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럼 기회이옵니다.”
“아니다. 철두철미한 것이 뱀과 같은 놈이 바로 회생 그놈이다. 분명 아무런 방비도 없이 저러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은 분명 아니었다.
“그렇기도 하지만 기회입니다.”
“기회인 것을 짐도 알고 있다. 허나 우선은 서경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은 그리 해야 한다. 압수에 5만의 기마 궁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만 이끌고 올 수 있다면 고려는 이 조위총의 나라가 될 것이다.”
“알겠사옵니다.”
“병사들을 잘 다독이고 철수준비에 박차를 가하시게.”
“예. 황제폐하!”
“조용히들 하라!”
박위가 웅성거리는 분위기를 다스리기 위해 소리쳤다. 그리고 난 쭉 주변을 둘러봤다. 역시 두 개의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영문을 몰라 불만이 가득한 개경 중앙군과 이 순간에도 주눅이 들어 겁먹고 있는 서경 병사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대조적이었다.
“불을 밝히라! 어디 한 번 거하게 놀아보자.”
내 외침에 불이 솟구쳤다.
“모두다 잔을 채워라!”
“예. 황자저하!”
그와 동시에 일제히 여기저기서 술을 따르는 소리가 들렸다. 눈앞에 술이 보이자 개경 병사들이고 서경 병사들이고 구분 없이 얼굴에는 미소가 그려졌다.
아마도 한 달 만에 마시는 술이 분명할 거다.‘저 미소들이 살아남은 자들의 특권이겠지.’난 죽은 자들을 위한 잔치를 열며 산 자들의 미소를 기억했다.
승리!그것도 대승!오직 살아남은 자들만이 가질 수 있고 보일 수 있는 미소가 분명했다.
“술은 많다. 고기도 많다. 넘치게 따라라! 그리고 잔을 들어라.”
“황자저하께서 잔을 들라신다.”
무장이 우렁차게 내 말을 병사들에게 소리쳤고 그 순간 수만이나 되는 병사들이 구분 없이 일제히 술을 들어올렸다.
“이곳에는 원해서 온 자들은 아무도 없다. 나 역시 고려의 황자이니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오직 고려를 위해 온 것이다. 서경 장병들이 우리의 적이었으나 그들도 고려의 백성이다. 이 전투가 끝이 났고 오늘만은 그냥 서경군 중앙군이 아닌 고려의 백성으로 죽은 자들의 넋을 위로할 것이다.”
난 그리 소리치며 들고 있던 잔을 들이켰다.
“잔을 비워라! 죽은 자들이 북망산으로 편히 갈 수 있게 떠들고 마시고 즐기자!”
“예. 황자저하!”
그 순간 술이 저들을 하나로 만들었고 내가 또 저들을 하나로 만드는 이 순간 하루하루를 초조함과 죽음의 경계에서 싸우던 모든 병사들은 서로의 신분과 상황을 잊고 술을 들이켰다.
“자네도 한 잔 받아! 그래 맞다! 맞아! 어디 이녁이나 우리가 오고 싶어서 왔나? 오라고 하니 왔지. 고향은 어디야?”
승자의 아량일 것이다. 개경 병사가 앞에 앉아 눈치를 보고 있는 서경 병사에게 물었다.
“길주에서 왔소.”
“길주?”
개경 병사니 길주를 알 턱이 없었다.
“그런 곳이 있소.”
사실 길주는 북변 중에서도 가장 위쪽 지역이었다. 거의 고려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었다.
“길주면 고려 땅이 아닌데?”
우태가 길주에서 온 병사에게 물었다.
“맞소이다. 오랑캐 땅입니다. 하도 오랑캐가 난리를 쳐서 고향을 버리고 내려왔다가 징집되어 여기까지 온 거요.”
“그렇군! 자네도 한 잔 받아!”
우태가 잔을 내밀었다.
“고맙소.”
“그런데 이름이 뭔가?”
우태의 물음에 찰나의 순간 길주에서 왔다는 병사가 인상을 찡그렸다. 저런 눈빛은 분명 사연이 있는 눈빛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