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18권 - 대통합! -- >
“뭐라 대령후가 죽어?”
자비 령으로 퇴각한 조위총은 이제 대령후를 황제라 부르지도 않고 그저 그가 죽었다는 것에 놀라 보고를 하는 무장을 보며 되물었다.처음부터 대령후에게 진정한 충심 따위는 없는 조위총이니 당연한 행동일 거다.
“그렇사옵니다. 문하시중!”
조위총이 대령후를 황제라 부르지 않고 대령후라 부르는 상태에서도 서경 무장은 조위총을 문하시중이라 불렀다.
“처음부터 뭔가 잘못 된 것이야! 잘못이 됐어.”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사옵니다.”
“이상한 것?”
“그렇사옵니다. 밤이 되어 공격을 멈췄다고는 하나 이상하게 활활 타오르는 평지 뒤편에서 잔치를 벌이는 것 같사옵니다.”
“잔치?”
“그렇사옵니다. 소를 수십 마리나 잡고 돼지는 수백 돈을 잡고 있사옵니다. 여기저기서 중앙군과 이북 도성의 군사들을 구분하지 않고 먹고 마시고 있사옵니다.”
무장의 말에 어이가 없는 조위총이었다.
“그 말이 사실이더냐?”
“그렇사옵니다. 경계 따위는 없고 마치 사냥을 나온 자들처럼 먹고 마시고 떠들고 있사옵니다. 군기 따위는 없는 것 같사옵니다. 소장의 생각으로는 지금 내려가셔서 공격한다면 반전의 기회는 있을 듯 하옵니다.”
무장의 말에 조위총은 잠시 고민했다.
“회생 그놈이 실성을 하지 않고서는 그럴 일이 없다. 함정이다.”
“함정 말입니까?”
“그래. 우리 서경 군을 자비 령에서 끌어내기 위한 함정이다. 날이 저문 것도 있지만 자비 령은 수천의 군사로 수만 아니 수십만을 막을 수 있다. 그러니 이 밤에 공격하기는 부담스러울 것이고 그러니 우리를 자비 령에서 끌어내기 위한 함정이다.”
조위총의 말에 무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사옵니다. 옳습니다. 그런 것 같사옵니다. 함정이 분명할 것이옵니다.”
“그래. 내 어리석게 함정에는 빠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곳을 지키고 서경으로 퇴각할 것이다. 벌써 겨울이다. 강성한 적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살을 베어내는 바람과 혹한이다. 서경 성에서 농성을 해서 겨울을 나고 반전을 준비할 것이다.”
역사는 혹한 때문에 서경으로 진격했던 이의방이 대동강에서 병력을 돌려 회군했다고 기록하고 있었다. 그것처럼 조위총은 대패를 하고 대령후까지 잃은 상태에서 서경으로 퇴각할 결심을 했다.
“옳으신 말씀이시옵니다.”
“준비가 너무 부족했다. 다시 준비할 것이다. 이 혹한에는 개경 잡놈들은 너는 진격하지 못한다. 막기 위해 우리의 진격을 멈추게 하기 위해 자비 령 아래에 진을 친 놈들이 그러니 더는 진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이제 어찌 하옵니까?”
“일부의 병사로 자비 령을 틀어막고 회군할 것이다.”
“이 밤에 말이옵니까?”
무장이 놀라 조위총을 봤다.
“이 밤에는 어렵겠지. 그건 그렇고 병사들의 사기는 어떤가?”
조위총의 물음에 모여 있던 무장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사기가,,,,,,,,.”
“땅에 떨어진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것보다 항복하면 살 수 있다는 소문이 퍼져서 하급 무장들의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도망치겠다는 건가?”
“그렇사옵니다. 이번 대패로 병사들의 사기가 말이 아니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황제폐하께서 이북 40개성의 증원 군을 데리고 출정해 대패했기에 서경 군의 피해는 오직,,,,,,,.”
대령후에게 보고하던 무장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5천의 기마대!그중 4천이 개경 중앙군에게 투항한 것이 떠오른 것 같았다.
“나는 기마대 오천을 잃었지.”
“그렇습니다.”
“기마대를 잃었사옵니다. 이제는 기동력 면에서 개경 잡놈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사옵니다.”
“방법이 있을 것이다.”
“방법이라 하시면?”
“대령후가 금으로 파병 군을 요청하는 무장들을 보내라고 했을 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게 우리에게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서경 성으로 퇴각한 후에 기다려 보자. 그게 안 된다면,,,,,,,.”
조위총이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다른 방법이 있사옵니까?”
“말갈이든 거란이든 다 끌어드려야겠지.”
지그시 입술을 깨무는 조위총이었다.
“거, 거란까지 말이옵니까?”
“북변 이북에 거란의 잔당들이 부족을 이루고 살고 있지. 그놈들이야 재물만 주면 어떤 전쟁이든 뛰어드는 놈이니 그놈들을 모아 기마대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혹한이 우리에게 시간을 줄 것이다. 또한 서경 성에서 농성을 한 후에 요동의 대타발의 기마대가 오기를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요동의 기마대가 파병을 해 준다면 다시 봄이 오면 남진을 할 것이다.
그때까지만 오랑캐를 이용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빠른 퇴각을 해야 하옵니다.”
무장 중 하나가 조위총을 보며 말했다.
“그래야겠지. 허나 이 자비 령은 누군가 지켜야 한다.”
그 순간 조위총의 싸늘한 눈빛이 개경에서 몸을 피해 서경으로 달려온 조원정을 봤다.
“제, 제가 말이옵니까?”
“누군가는 이 자비 령을 틀어막고 개경 잡것들이 공격할지도 모르는 것을 대비해야 하지 않겠나?”
“하오나 제가는 병력이 없습니다. 문하시중!”
“내 병력 5천을 주지. 그 병력으로 이곳을 틀어막게. 내 생각으로는 절대 개경 잡놈들은 자비 령을 넘어 북진하지 않을 것이네. 바람이 검처럼 차지. 곧 발이 얼어붙고 귀를 베어내야 할 정도로 추위가 몰려오지. 저놈들도 싸우기는 싫을 것이야. 그래서 자비 령 아래에 진을 키고 방어진을 편성한 것이야! 그런 것을 어리석은 대령후가 과욕을 부린 것이야! 과욕을.”
하루 전까지만 해도 황제폐하로 떠받들던 대령후를 조위총은 이제 어리석은 대령후라 말했다.
“정말 그럴까요?”
“그래. 그럴 것이야! 북진을 하겠다면 닷새나 먼저 이곳에 도착하고 자비 령을 넘지 않았겠나? 내 말이 틀리나?”
조위총이 차갑게 말하며 조원정을 노려봤다. 그의 눈빛은 자신의 명령을 거부한다면 그냥 두지 않겠다는 그런 눈빛이었다.
“그리고 또 자네는 여기까지 올 동안 맡은 임무도 없고 그러니 이번에 큰일을 해 줘야겠어.”
조원정의 입장에서는 거부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거부를 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개경 중앙군의 간자라 죽임을 당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고 보니 자기 말고는 이 자리에 모인 모든 무장들은 서경 출신이었다.
“알겠습니다. 막겠사옵니다. 제가 이 자, 자비 령을 지키겠습니다.”
“그래. 그래 그래주면 우린 바로 퇴각을 할 것이네. 그리고 서경 성에서 방어준비를 하겠네. 그때까지 그대가 이 자비 령을 지켜만 준다면 후일을 도모할 수 있네. 이런 말은 그렇지만 이미 우린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네. 서경 성이 함락이 되면 자네나 나나 반격도당으로 목이 베일 것이야!”
조위총의 말에 이 자리에 모인 무장들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알겠사옵니다.”
“이미 밤이지만 이 자비 령에 방어진을 구축해! 혹시 모르니 말이야!”
“예. 문하시중!”
서경 무장들이 조위총을 문하시중이라 부르며 대답했다.
“허수아비 황제도 죽은 이 마당에 문하시중은 무슨!”
조위총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 순간 어떻게든 조위총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는 조원정이 조위총의 눈치를 봤다.
“황제가 되시는 것이 어떻사옵니까?”
그 순간 모인 이 자리에가 싸늘하게 식었다.
“뭐라?”
“개경과 서경은 이제 하나가 될 수가 없습니다. 이 씨 어린놈이 왕 씨가 되는 세상입니다. 남송의 황제가 조 씨입니다. 중원이 조 씨의 것이니 고려도 이제는 조 씨가 황제가 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조원정의 말에 조위총이 살짝 인상을 찡그렸지만 그의 눈빛은 내심 그것을 바라는 것 같았다.
“괜한 소리 말게.”
조위총은 서경 무장들의 눈치를 보며 조원정에게 말했다.
“말씀을 하신 것처럼 이번 거병이 실패를 하면 이 자리에 모인 무장들은 모두 목이 잘려서 저잣거리에 효수될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하는 거병이었습니다. 성공을 한다면 그 모든 것을 다시 어리석은 왕 씨의 떨거지에게 줄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 그렇소이까? 제장들!”
조원정이 모인 무장들을 보며 말했다.몇 몇은 이미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 그렇기도 하긴 한데,,,,,,,.”
“사실 왕 씨가 언제부터 이 땅의 주인이었습니까? 왕 씨가 주인이기 전에 궁예가 미륵이라며 주인행세를 하려고 했고 남변에는 견훤이 황제라 스스로 칭했습니다. 또한 그 이전에는 경주 김 씨가 황제였습니다. 또 그 이전에는 고 씨가 태왕이었습니다.”
조원정의 말에 모인 무장들이 이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조 씨이신 주군께서 이 땅의 주인이 되시는 것도 그러니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수세에 몰렸으나 음지가 양지가 되고 양지가 음지가 됩니다. 기회를 보는 것이옵니다. 이 겨울에 많은 것을 준비해 다시 봄이 오면 거병하는 것이옵니다.”
“그렇소이다.”
젊은 서경 무장이 조원정을 보며 말했다.
“그렇고말고요. 황제폐하께서는 절대 이 어려운 순간에 폐하를 모시는 여러 제장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조원정의 말은 조위총 너를 황제로 올리니 나를 잊지 말고 팽시키지 말아달라는 거였다.
“으음,,, 역천이라,,,,,,,.”
조위총도 신음을 잠시하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역천이 아니옵니다. 순천이지요. 순리대로 하늘을 따르는 것입니다. 고려의 기운이 다했습니다. 서경 대위국을 세우는 것입니다.”
대위국은 묘청이 묘청의 난을 일으키고 서경에서 농성할 때 스스로 칭한 나라였다. 그렇기에 서경 무장들은 대위국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이 있었다.
“대위국?”
“그렇사옵니다. 비록 지금은 위기에 빠져 있고 이런 것을 논하기에는 시기상조처럼 보이나 뭔가를 바꾸지 않으면 반전의 기회는 없습니다.”
여기서 잠깐!조원정은 그리 달변가도 책략이 뛰어난 인물도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뛰어난 책략가처럼 말하고 있었다.
“옳은 말이네.”
“감사하옵니다. 황제폐하!”
이제는 조원정은 조위총을 황제라 스스럼없이 불렀다.
“황제,,, 황제!”
“그렇사옵니다. 못할 것도 없사옵니다. 실패를 한다면 역도기는 마찬가지이옵니다.”
“그렇지. 이 위기를 극복한 후에 죽을 써서 개를 줄 필요는 없지.”
“그렇사옵니다. 황제폐하!”
“짐이 황제의 재목이 되겠나?”
조위총은 자신을 스스로 짐이라고 칭하면서도 서경 제장들에게 물었다. 지금 이 순간 아니라고 말하면 목이 베어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또한 서경 출신 무장들은 어떤 변화든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사옵니다. 황제폐하!”
일제히 서경 제장들이 조위총을 황제라 불렀다. 이것이 바로 역사와 다른 점이었다.
조위총은 난을 일으킨 후에 황족 하나를 황제로 세우고 권력을 쥐려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스스로 황제가 되어 역천을 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거였다.모두가 조위총을 마지못해 황제를 부를 그때 찰나의 순간이지만 조원정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마치 자신이 의도한 일이 성공을 했다는 그런 눈빛이었다. 그리고 그 눈빛이 워낙 강렬했고 그와 동시에 조원정은 회상에 빠져 들었다.조원정의 회상 속의 조원정의 사택.
“뭐라 부마도위가 왔다고?”
집사의 말에 조원정이 놀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다급한 눈빛으로 옆에 놔둔 검을 봤다.
“그렇사옵니다. 대감마님!”
“으음,,, 눈치를 챈 건가? 병사들은 얼마나 대동하고 왔나?”
조원정이 집사에게 물었다.
“부마도위를 호위하는 무장 셋만 데리고 왔습니다. 대감마님!”
“셋?”
조원정은 이해가 안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습니다. 대감마님!”
“뭐지?”
조원정은 다시 한 번 인상을 찡그렸다.
“어찌 하옵니까?”
“사병들을 은밀히 전각 주변에 매복시켜 놔! 만일을 대비해야지.”
“예. 알겠사옵니다.”
“내 이럴 때가 아니지. 나는 새도 손을 뻗으면 부마도위의 손등에 앉는다고 할 정도로 권력을 가진 부마도위니 나가서 맞이해야지.”
조위총은 바로 처소 밖으로 뛰어나가서 버선발로 전각 밖으로 뛰어나왔다.
“부마도위께서 이 누추한 제 사택에 이 밤에 어인 일이시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