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17권 서경 대전투 --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석포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큰 힘이 되고 큰 피해를 입게 만들지만 5천 기병이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지금은 절대 돌아설 수가 없다.’대령후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며 다시 석포를 봤다.
“이것이었나? 석포를 숨기기 위해 이리 한 것이냐?”
대령후는 마치 옆에 회생이 있는 듯 중얼거렸다. 물론 이 소리는 조위총이 들으라고 한 거였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저 석포가 있는 상태에서도 서경 기마대가 거침없이 달려 나가는 거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약이 되는 자만심을 심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대령후였다. 그가 지금 정신을 다시 차렸으나 지금 돌이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면승부를 할 수밖에.’바드득!대령후는 다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 모습에 조위총이 놀라 대령후를 봤지만 아무 말도 없이 석포를 보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석포이옵니다. 황제폐하!”
지천수 장군도 전과 다르게 조금은 인상을 찡그렸다. 허나 대령후는 여전히 그 표정이 여유로웠다.
아니 여유롭게 보이려 노력했다. 만약 자신이 아닐 개경 중앙군들이 석포를 이용해 선제공격을 한다면 그 피해는 엄청날 거라는 생각이 드는 대령후였다.
‘내가 순간에 미쳐 있었다. 이 용포가 나를 눈뜬 장님으로 만들었구나.’대령후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여유를 부리려했다.
“어림잡아 적의 방어진까지는 이곳에서 1000보다. 그 거리면 놈들이 용맹스러운 그대의 기마대에게 석포를 한두 번은 쏠 수가 있으나 세 번은 어려울 것이다. 그럼 바로 사병집단이 있는 중앙이다.”
“거리로는 그렇사옵니다.”
지천수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석포가 파괴력이 있기는 하나 자신의 머리 위에 떨어질 확률은 절대 높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지천수였다.
“회생! 참으로 잔인한 놈이다. 4만의 사병을 희생시켜서 짐의 기마대의 수를 줄이려 하는구나! 아마도 지장군이 사병의 수급에 욕심을 낸다면 적의 본진 뒤에 있는 석포가 사병들과 혼전을 펼치고 있는 기마대에 떨어질 것이네. 그러니 본진까지 달려가 석포를 우선 파괴해라.”
이 순간 대령후는 차후 작전을 위해서는 수십 대의 석포를 파괴하는 것이 급선무였다.대령후의 말에 지천수는 기겁했고 조위총도 놀라 멀리 웅장하게 보이는 석포를 한 번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그, 그리되면,,,,,,,.”
“피아를 구분하지 못하고 다 죽는 것이지. 그래서 용호군과 응양군을 좌우측으로 배치한 것이다. 기마대가 전멸하면 각각 6만이고 좌우측에 있을 개경의 기마대가 이곳으로 진격할 것이 분명하다. 참으로 회생 저놈은 잔인한 놈이다. 저런 무모하면서도 참혹한 계략을 쓰다니 놀랍지만 나를 속일 수는 없다.”
마치 대령후는 회생의 계략을 간파한 것처럼 말했다. 그리고 조위총과 지천수도 대령후의 연극에 속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럼 어찌 하옵니까?”
“달라질 것은 없다. 석포가 있다고 해서 공격을 하지 않는다면 저 석포를 전진 배치시켜 짐의 본진을 노릴 것이다.”
“그렇사옵니다. 싸워보지도 않고 당할 수 있습니다.”
지천수가 대령후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지장군의 말이 옳다. 그러니 저 석포를 우선적으로 파괴시켜야 한다. 그리고 또 짐의 형님의 수급과 회생의 수급을 취해야 한다. 그럼 이 고려는 짐의 것이고 문하시중의 것이면 그대의 것이다.”
대령후는 다짐하듯 말했다. 물론 지천수의 탐욕을 부추기고 자만심을 높여 고려 중앙군의 방어전단 중앙을 돌파하고 또 본진을 타격하며 석포를 모두 부수기를 속으로는 희망했다.
“예 황제폐하! 바람처럼 달리겠나이다.”
“화살을 조심하시게. 200보 거리에서는 화살 공격이 이어질 것이니 그것만 피한다면 중앙을 뚫는 것은 참으로 쉬울 것이네. 적의 계략을 역으로 이용하면 승리하는 것이지. 하하하!”
“그렇사옵니다. 황제폐하!”
그제야 조위총도 표정이 밝아졌다.석포가 서 있는 본진 뒤편.정도전이 석포를 적에게 보이며 멀리 개미처럼 작게 보이는 서경 반란군들을 보며 차가운 미소를 머금었다.
“이제 봤을 거다. 놀라고 나서 병사들의 재배치의 이유를 석포 때문이라고 생각할 거다. 그게 한계지.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니까.”
정도전이 중얼거렸고 만적은 그저 정도전을 보고 있었다.
“황자저하께서 지시한 것은 다 했나?”
“예. 책사님! 장창은 다 보냈습니다. 또 특별하게 만든 화살도 두 장군에게 보냈습니다.”
“이제부터 순간순간이 위기다. 딱딱 맞아 떨어지지 않으면 사병출신들이 큰 피해를 본다.”
“그런데 그물로 서경 기병이 잡힐까요?”
만적은 정도전을 보며 물었다.
“만적아!”
“예. 책사님!”
“넌 어려서 모르겠지만 서방 죽은 화냥년은 화냥년도 아니라는 말이 있다. 기병이 말에서 떨어지면 뒤집어진 자라 꼴이 되지. 그래도 중갑을 한 놈들이 거의 없으니 자라는 아닌가? 하하하! 그래도 그 화살을 맞고 떨어지면 바로 그물 안에 든 물고기가 되는 것이다.
황자마마께서 4만의 고려병사를 죽이고자 저리 병력을 배치하신 것 같으냐?”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도망치는 놈은 도망치지만 싸울 놈은 싸우지. 옥석도 골라내시고 그물에 걸린 놈들도 잡아드려야 하니 저렇게 배치하신 거다. 물론 꽤나 죽겠지만 말이다.”
정도전이 꽤나 죽는다는 말에 만적이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꽤나요?”
“왜 겁이 나느냐?”
“그, 그게 아니라,,,,,,,.”
“전쟁은 죽고 죽이는 거지. 보통은 누가 많이 죽였느냐에 따라 승패가 정해지지 허나 이번 전투는 누가 많이 주웠느냐에 따라 승패가 정해진다.”
정도전은 만적이 모를 소리만 했다. 그때 이곳 상황도 모르고 구휼미를 얻기 위해 때가 되어 몰려드는 백성들이 정도전의 눈에 보였다.
“만적아!”
“예. 책사님!”
“저기 황자저하의 예비 병사들이 왔구나! 챙겨 보내라.”
“저래서 무지한 백성인 모양입니다. 전쟁이 날판인데 쌀을 얻으려고 오다니요.”
“그만큼 굶주린 거겠지. 굶어죽으나 쌀을 얻으려다가 화살에 맞아죽으나 죽는 건 같으니 저들도 목숨을 걸고 온 걸 거다. 그러니 잘 챙겨 보내라.”
“예. 책사님!”
만적이 목례를 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성큼 수백은 되어 보이는 백성들을 향해 뛰었고 만적이 뛰자 만적을 호위하는 별초 3과 20여명의 병사들이 같이 뛰었다.
“그러고 보니 참 황자께서도 모진 면이 있으시군. 쌀 몇 톨로 회유해 군사로 쓸 생각을 하고 계시니 말이야! 하나를 움직여 너무 많은 것을 바라시네. 욕심도 많으신 분이군.”
정도전은 뛰어가는 만적을 보며 피식 웃었다.높은 망루 아래. 의종황제가 나를 물끄러미 봤다.
“짐이 미끼가 되면 되는 것이냐?”
역시 단번에 내 생각을 알아내신 내 부친이셨다.
“소자도 같이 있을 것이옵니다.”
그 말에 의종황제가 인상을 찡그렸다.
“회생아!”
“예. 아바마마!”
“예전부터 모든 나라들이 외적의 침입이나 국가의 기반이 흔들려서 황제나 왕이 황성을 버릴 때 태자와 같이 움직이지 않았다. 왜 그런 줄 아느냐?”
“알고는 있사옵니다.”
“아는 네가 짐과 같이 있겠다는 것이냐? 짐이 봐도 너의 전략은 이번 첫 전투를 승리로 이끌 것 같구나! 허나 세상은 모르는 일이다. 저 망루에 같이 앉아 혹여 하늘이 고려를 버리게 되면 누가 후일을 기약하겠느냐. 짐이 혼자 올라갈 것이다.”
의종황제의 말에 역시 내 부친이신 의종황제는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그가 폭군이 될 것도 자신의 웅지를 펼치지 못했기에 폭군이 되고 광인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오나 제가 어찌 혼자 몸을 피하겠사옵니까?”
“짐의 목숨보다 더 중한 것이 고려다. 그거만 기억해라.”
의종황제의 말에 난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알겠사옵니다. 아바마마! 그럼 소자는 이 망루 아래에 있겠사옵니다.”
내 말에 의종황제가 날 물끄러미 봤다.
“그럼 하나만 짐과 약속해라.”
“예. 아바마마! 하명 하시옵소서.”
“도망쳐야 하는 순간이면 도망쳐라! 짐이 이 위에 있다고 버티지 말고.”
“그런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없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났다. 그래서 네게 말하는 거다.”
난 잠시 의종황제를 봤다.
“알겠사옵니다. 아바마마!”
그리고 내 부친이신 의종황제가 내 옆에 있는 이의민과 전존걸 장군을 봤다.
“두 장군 들으시게.”
“예. 황제폐하!”
이미 저들은 내 부친이신 의종황제를 우러러 보고 있었다.
“만약에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다면 그리고 황자가 짐과의 약속을 어긴다면 패서라도 피하시게. 이건 황명이네.”
“예. 황제폐하! 명을 받잡겠나이다.”
이의민이 무릎을 꿇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의종황제를 우러러 봤다.
“절대 그런 일은 없게 하겠나이다. 소장의 부월이 본진을 지켜낼 것이옵니다.”
“암! 그래야지.”
의종황제는 그렇게 말하고 높은 망루를 올려봤다.
“독주 한 병 정도는 필요하겠군.”
의종황제의 말에 새롭게 대전환관이 된 환관이 의종황제를 봤다.
“준비하겠사옵니다.”
“흥을 더할 것으로는 비파가 좋을 것 같다.”
“예. 황제폐하!”
“바로 대령하겠사옵니다.”
이 순간에 술과 비파를 찾는 의종황제셨고 그것은 만용이 아니라 담대함으로 내게 보였다. 그리고 그때 서쪽 높은 산에 미리 준비한 봉화가 드디어 피어올랐다. 저 봉화를 본다면 4만의 신수군을 이끄는 경대승이 드디어 자비령 후방을 틀어막기 위해 이동할 것이다.
‘봉화가 올랐다. 이제 전부 단숨에 시작하는 거다.’난 지그시 입술을 깨물며 봉화를 봤다.
내가 봉화를 이용하고 있는 것은 고려가 완벽한 봉수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송나라 사신들이 배를 타고 고려로 향할 때 흑산도 정도만 들어서도 야간이 되면 산정 봉수에 순차로 불을 밝혀 왕성까지 인도할 정도로 체계가 잡혀 있었다. 그리고 또한 전국 각지에 거리와 높이를 판단해 봉수대를 설치했다.
고려 어디든 빠르게 약정된 신호로 알리고자하는 것을 알릴 수 있는 거였다. 특히 내 부친이신 의종황제 3년에는 더욱 봉수제도를 구체적으로 체계화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서북병마사인 조진약의 상소 때문이었고 그때부터 봉수의 규정이 정확하게 정해졌다. 그래서 평시에는 주수와 야화 1회를 위급할 때에는 그 위급에 따라 2,3,4씩을 올리도록 정했다.
또한 봉수대마다 방정 2인과 백정20인을 배치했고 그들에게 각각 농지 1결을 내려서 인사와 급여체계도 확립했다. 그 만큼 봉수대를 중요시 한 고려였다.
이것은 남변에서는 왜의 침입이 많아졌고 또 북변에서는 오랑캐의 침입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걸 지금 내가 활용하고 있는 거였다.
‘이제 신수군이 진격한다. 경대승이 자비 령을 틀어막는다면 서경은 점령한 것이나 다름없다.
’자비 령을 틀어막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타이모 족장과 별초의 수장인 박현준이 서경 성을 함락시키는 것을 수월하게 해 주기 위함이기도 했다.적과 적의 성의 허리를 끊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자비 령 전투의 또 다른 목적이었다.
‘12월이 가기 전에 서경 성을 함락하고 반역도당들을 북변까지 밀어 붙어야 한다.’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까지 이뤄진다면 봄이 되면 바로 북진이 시작되는 거였다. 그러다 금으로 간 장인인 참지정사 강일천이 떠올랐다.
‘장인이 잘 해주셔야 할 것인데,,,,,,,.’아마 지금쯤이면 요동성을 지나 중도 근방까지 도착했을 것이다.
“젠장! 이건 우리보고 죽으라는 거잖아.”
사병 출신 병사 하나가 원래 있던 좌측에서 이동해 중앙에 서자 무장이 듣던 말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왜 그러는데요?”
아직 전투다운 전투 한 번을 해 보지 않은 듯 한 젊은 사병 출신 병사가 영문을 몰라 물었다.
“몰라서 물어? 이거 완전 멍청이군.”
“모르니 묻지요.”
자신을 멍청이라고 말하자 젊은 사병 출신이 인상을 찡그렸다.
“저기 봐! 내가 왜 이러는지.”
버럭 소리를 질렀던 사병출신 병사가 손가락으로 전병 반란군 진영 제일 선두에 당장이라도 돌진해 올 것 같은 기마대를 가리켰다.
“족히 5천은 넘는다. 마상에서 검을 휘두르면 어찌 되는 줄 아나?”
병사가 겁을 주듯 젊은 굳어진 표정으로 말했고 그 표정과 어투에 젊은 병사의 표정은 굳어졌다.
“어, 어찌 됩니까?”
“목이 댕강 잘리지.”
“정, 정말입니까?”
“그리 나불거리면 적 기마대에 목이 잘리기 전보다 내 검에 잘릴 것이다.”
중앙군 하급 무장이 겁을 주고 있는 병사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 순간 사태를 파악하고 있던 병사는 기겁해 하급 무장의 눈을 피했다.
“죄송합니다. 교위나리! 그저 저는,,,,,,,.”
“우린 막으라면 막고 싸우라면 싸우는 군인이다.”
“하지만,,,,,,.”
“목이 베이고 나서도 하지만이란 말을 할 건가?”
“아닙니다. 아닙니다.”
병사는 손사래까지 치며 아니라고 말했다.
“도망치는 놈은 내 검에 목이 잘릴 것이다.”
하급 무장이 무섭게 경고했다. 하지만 이 병사들을 지휘하는 하급 무장의 표정도 그리 밝지는 않았다.
“우리 쪽으로 안 오기를 바라는 수밖에.”
하급 무장이 나직이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