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357화 (357/620)

< -- 간웅 17권 서경 대전투 -- >그 순간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쭉 횡으로 섰다. 마치 아마도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포위하려는 듯 보였다.

“징벌? 중이라 그냥 봐주려고 했는데 안 되겠군.”

무장이 위협하듯 검을 사선으로 한번 휘둘렀다. 민초들에게 그리 검을 휘둘렀다면 벌벌 떨었겠지만 40대 후반의 남자는 살짝 입가에 미소까지 머금었다. 그리고 그 미소는 북변의 삭풍보다 더 차가웠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중놈들이다. 중이니 죽으면 극락왕생할 것이니 도와주자.”

무장의 말에 야차 같았던 병사들이 장창과 검을 잡고 검은 옷을 입은 자들에게 겨눴다. 그리고 자신만만한 눈빛을 보였다.

“예. 나리!”

“중놈 대가리는 베어지는지 안 베어지는 지 한 번 보죠. 킥킥킥!”

말하는 것까지 더러운 것들이다.사실 반란군 상부의 지시를 받아 군량미를 징집하는 무장과 병사들이 다 이런 놈들은 아닐 것이다.

백성들의 것을 징집한다는 것 자체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서경 반란군들도 이런 죄 많은 것들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허나 이제는 서경 반란군하면 모두다 약탈을 일삼은 자들로 백성들은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이것은 회생에게 또 고려 중앙군에게 천군만마보다 더 큰 힘이 되고 명분이 되는 일이었다. 정말 서경 반란군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발등을 자신이 알면서 찍고 있는 거였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회생은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또한 이런 추악한 일을 더욱 증폭시킬 생각까지 하고 있으니 회생이야 말로 정말 사악한 간웅이 분명할 것이다.

“중놈들을 모두 베라!”

무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고 그와 동시에 검은 옷을 입은 승려로 보이는 사내들도 지팡이로 위장된 검 집에서 검을 뽑아 겨눴다.

“죽음으로 죄를 씻어라! 이 야차 같은 놈들아!”

검은 옷을 입은 승려로 보이는 사내 하나가 그리 소리치며 무장에게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쉬우웅!바람을 가르는 검!악인을 응징하고자 용맹하게 뿜어지는 불꽃처럼 강렬하게 휘둘러졌다.

서어억!마치 허수아비의 목이 진검에 베어지듯 무장의 목이 삭둑 잘렸다. 툭!그렇게 무장은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하고 목을 잃고 그 목이 바닥에 떨어져 그때에도 죽지 못하고 떨어진 머리는 아직 신경이 살아있는지 눈만 껌뻑였고 목을 잃은 몸은 마치 목을 찾는 것처럼 두 팔을 허우적거리다가 끝내 쿵하고 바닥에 고목처럼 쓰러졌다.

“저 야차들을 모두 징벌하시오. 조의선인들이여!”

그와 동시에 일제히 검은 옷을 입은 사내 몇이 무장이 죽은 것에 기겁한 반란군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이 휘두르는 검은 절도가 있고 예리했으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조금 전까지 킥킥거리던 반란군 병사들은 그래서 검 한 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창 한 번 힘껏 질러보지 못하고 목이 베여 죽었다. 아무리 검을 다루는 자들이라고 해도 단칼에 사람의 목을 완벽하게 조금의 비틀림 없이 베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허나 이들은 단 한 번의 멈춤도 없이 야차와 같은 반란군 놈들의 목을 베어냈다.조의선인!조의는 고구려의 10관등 가운데서 제 9위에 해당되는 관등이었다.

그 옛날 고구려에서는 왕 뿐만 아니라 모든 대가들도 조의, 사자, 선인을 곁에 두었다.곁에 두었다?그것은 달리 생각해 보면 회생에게 용호군 별초였다가 회생의 가신집단이 된 별초들이 있듯 고구려의 왕과 대가들에게도 조의나 사자 그리고 선인이라는 가신들이 속해 있었다는 거였다. 그리고 그들의 주요 임무는 주군을 호위하고 특명을 받아 움직이는 걸 거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조의나 사자 그리고 선인이라는 존재들은 뛰어난 무위를 가지고 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고구려가 중앙집권적 귀족 국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조의는 태왕을 중심으로 하는 일원화된 관등체계 속에 편입됐다. 태왕을 호위하는 존재들이 조의인 것이다.

허나 이것은 단편적인 임무였다. 평시 그들은 스스로 몸을 낮추고 민초들과 같이 생활했으며 민초들이 힘겨워하는 곳에 항상 있었다.

성을 축조하는 일이나 대단위 교량을 만드는 일!그런 곳에 태왕의 핵심인 조의들이 있었다는 것은 그들이 권력에 가장 가까이 있으나 그 권력을 탐하지 않았다는 증거일 것이다.그리고 그들을 조의라 부르는 것은 흑색의 비단 옷을 입었기에 조의라 불렸다.

검은 옷을 입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노동을 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흰옷을 입고 부역이나 노역을 한다면 옷은 금방 더러워지니 검은 옷을 입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렇기에 고구려 백성들은 조의들을 존경했고 따랐다.

무인의 본분을 지키고 민초들과 같이 생활하는 존재를 존경하지 않는다면 누굴 존경할 수 있겠는가?또한 조의선인들의 기본이 되는 낭가사상은 예맥족의 수두제라는 것에서 유래됐다. 단군은 단군조선의 성립과 더불어 민족적 구심점인 단군제전을 거행했다.

이것은 부여의 영고로 이어졌다가 다시 고구려의 동맹제 그리고 동예의 무천 그리고 삼한의 소도라는 이름으로 계승됐다. 또한 낭가사상은 고구려 태조왕에 이르러 선배 제도로 발전했고 그 선배 제도라는 것은 선인(仙人)의 우리말로 이때가 바로 낭가사상이 예맥의 주체적인 정통사상이 된 거였다.그건 다시 말해 조의선인들이 따르는 사상은 바로 외세의 유, 불, 선교가 아닌 예맥의 정통사상이라는 거였다. 그렇게 조의선인들에 의해 이어지던 선배 제도는 고려 중기까지 이어졌으나 묘청의 난 때 김부식이 이끄는 유학파에 패해 몰락한 것처럼 보였다.

허나 수천 년을 이어온 예맥의 정통사상이 단번에 끊어질 수 없는 일이고 이렇게 다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계기가 되는 이 참혹한 순간에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거였다.조의선인들의 재등장!이것은 서경 반란 전쟁의 새로운 국면이라 할 수 있었다.

또한 조의는 대단한 무위를 가진 존재들이었다. 별초들이 무예만을 집중적으로 수련한 존재라면 조의선인들은 주체적인 선배사상을 닦아 문무를 겸비한 존재였다. 그리고 그리 문무를 겸비했기에 수양제의 침입 때 조의가 구국의 선봉에 섰고 을지문덕 장군이 이뤄낸 살수대첩에서 크게 활약할 수 있었던 거였다. 또한 조의들 중에 대부분이 머리를 깎은 이들이 많았기에 승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조의라는 관등이 사라진 이후 조의의 관등을 가진 자들 중 승려가 된 자도 많았다. 그리고 도천밀교처럼 비밀결사조직이 되어 그 명맥을 고구려 때와 다름 없이 유지하고 있었다.

“장군 윤관이 여진 정벌군의 원수로 9성을 쌓아 침범하는 여진을 평정한 이후 큰 고려의 웅지를 이 고려가 보여준 적이 없어.”

40대 후반의 남자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조의대두형.”

작은 고려는 고려를 의미하는 거고 큰 고려는 고구려를 말하는 거였다.

“참으로 혼란스러운 세상이다.”

“그렇사옵니다.”

“아무리 작은 고려가 근본을 망각했다고 하나 그런데 저들이 백주대낮에 어찌 저런 만행을 스스럼없이 행할 수 있단 말인가?”

“근본을 망각했기에 그럴 것이옵니다. 조의대두형!”

지금 이들이 말하는 근본은 낭가사상이고 그 사상을 계승한 선배사상이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나는 이런 만행이 일어난다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 북천!”

조의대두형이 다른 조의에게 물었다.

“허나 변란 때마다 있어왔던 일이옵니다. 조의대두령!”

“변란 때마다,,,,,,.”

조의대두형이 인상을 찡그렸다. 변란이 일어날 때마다 힘없는 민초들이 고통 받는다는 것을 조의대두령도 잘 아는 것 같았다. 사실 이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모두 서경에서 거병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조의대두형께서도 아시다시피 서경에서 거병을 했사옵니다.”

“그럼 저것들은 어느 쪽이라는 것이냐?”

조의대루령이 인상을 찡그려 하나 같이 목이 없는 시체들을 보며 북천에게 다시 물었다.

“죽은 자들의 복색을 보니 서경에서 거병한 자들이 분명합니다.”

북천 조의도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 그들이 향하는 곳은 묘향산이었으나 진정 그들이 살피고자 한 곳은 서경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참담한 광경을 저지른 자들이 서경의 반란군이라는 것에 놀라면서도 분노하고 있는 거였다.이것은 대반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서경이라,,, 묘청의 웅지가 서경에 깃들어 있을 것인데 어찌 저런 망종들이 나왔단 말인가! 내가 길을 잘못 잡은 것인가?”

“조의대두형! 이곳 말고도 이런 약탈과 만행이 끝도 없이 펼쳐지고 있다하옵니다. 금나라 오랑캐들보다 더 모질고 독하게 백성들을 약탈한다고 합니다. 서경에는 이제 묘청의 웅지는 없사옵니다.”

북천의 말에 조의대두형의 표정이 굳어졌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인가? 묘청이 서경에 큰 웅지를 심어놨다고 생각해서 다시 세상에 나온 것인데,,, 내가 이리 길을 잘못 잡은 것인가?”

“더 살펴보심이 좋을 듯 합니다.”

“말세다. 말세. 더 살펴 볼 것도 없다. 큰 웅지를 가진 자들일수록 민심이 천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런 일은 저것들의 상전이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서경은 이미 썩어 문드러졌다.”

“그런 것 같사옵니다.”

“으음,,,,,,,.”

북천의 말에 조의대두형이 크게 신음했다.

“어찌 해야 할까?”

“예? 무엇을 말이옵니까?”

“이 국난을 조의로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 내가 길을 잘못 잡았도다.”

참혹한 악행이 새로운 반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하오시면?”

“200년 만의 출사다. 심사숙고를 해서 나선 길이다. 허나 그 길을 내가 과거에 매여 길을 잘못 잡은 것 같다.”

그가 과거에 매였다는 것은 묘청이 서경에서 고려의 자존을 위해 거병한 했다가 실패한 것을 말하는 것 같았다.조의대두형의 말에 북천 스님이 놀랐고 또한 그 옆에 있던 조의들도 놀랬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검은 옷을 입은 조의들이 모두 머리를 깎은 스님만이 아니라는 거였다. 길게 머리를 기른 자도 있었다.

“그럼 서경이 아니라는 것이옵니까?”

“이제는 서경에 웅지가 없다. 나는 작은 고려라고 해도 큰 웅지를 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묘향산으로 모든 조의들을 모이게 했고 서경으로 향했던 거다. 그런데 서경에는 이제 그런 것이 없다.”

“200년 만에 심사숙고하신 출사이시옵니다. 묘청이 일어설 때도 나서지 않으셨습니다."

"그랬었지. 참으로 후회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리 나선 것이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서경의 웅지가 세월이 지나 미약해졌다고는 해도 개경이 썩어 있는 것보다는 덜할 것이옵니다. 서경이 어디옵니까? 옛 큰 고려의 황성이었사옵니다. 웅지가 펼쳐질 곳은 개경이 아니라 서경입니다.”

"땅이 중요하지 않다. 그 땅에 사는 사람이 중요하지.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이라 생각했으나 아니다.

내가 틀렸다. 사람이 근본이고 중심이다. 이제야 저 참혹한 모습을 보고 깨달았구나. 내 200년의 수행이 이리 보잘 것이 없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200년 만의 출사?그건 다시 말해 조의대두형이 최소한 200년 이상을 살았다는 의미였다.

놀랍고 신기하고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허나 조의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조의대두형의 나이는 분명 200살 이상일 것이다.

또한 조의대두형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든 두 인물의 이름이 북천과 남제다.북쪽의 하늘이라는 뜻을 가진 조의와 남쪽의 제왕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조의가 조의대두형과 같이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었다."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모든 조의들은 조의대두형을 신선으로 여기고 따르옵니다."

"너무 오래 살아 이치가 흐려진 미물이다."

"듣기 민망하옵니다."

“개경이 여전히 썩어 있을지는 모르나 서경은 분명 조의들이 몸담을 곳은 분명 아니다. 저런 만행은 절대 죽은 것들의 상전들의 지시가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 딱 보니 서경 것들이 군량이 부족한 모양이다. 군량이 부족했다고 해서 저리 민초들의 것을 빼앗으면 아니 되는 것이다.

민심이 천심이고 또한 국가의 근본이다. 국가는 한낱 왕의 것이 아니라 저리 힘없이 당하기만 하지만 그래도 백성들의 것이다.

그런 근본을 핍박하고 무시하는 것들은 절대 큰 고려를 만들어낼 수 없다.”

이 순간 조의대두령은 분명한 의지를 밝히며 다른 조의들을 봤다.

“나 조의대두령은 서경을 등질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조의대두형!”

일제히 조희들이 무겁게 대답했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가야 하옵니까?”

북천스님이 조의대두령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야 할까?”

“개경이십니까?”

북천은 이제 조의대두령의 마음속에 개경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물었다.

“저들을 응징할 수 있는 사람에게로 가야겠지.”

역시 조의대두령은 묘청의 웅지가 있었던 서경을 버린 거였다. 이것은 서경 반란군에게는 참으로 큰 화가 될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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