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351화 (351/620)

< -- 간웅 17권 서경 대전투 -- >묘향산 깊은 산기슭.별초낭장 박현준이 전서구를 든 병사에게서 전서구로 보내온 편지를 읽고 있었다.

“남진을 했군.”

순간 별초낭장 박현준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드디어 때가 되었구나.”

“그렇습니다. 낭장! 당장 출정준비를 하겠사옵니다.”

“아직은 아니다.”

“예?”

“반란군이 완벽하게 자비 령에 도착한 후에 공격할 것이다. 이곳에서 서경까지는 급히 움직이면 5일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성을 공격하는데 하루면 충분할 것이다. 그러니 조금 더 기다릴 것이다. 반란군들이 서경이 공격당하는 것을 알더라도 돌아오는데 최소 10일은 걸리도록 멀어진 후에 우리도 이동할 것이다.”

“예. 알겠사옵니다. 합하!”

“그건 그렇고 연주성으로 가신 타이모 족장님에 대한 소식은 없느냐?”

“아직 이옵니다.”

“이제 곧 연주성에 도착할 것인데.”

“연주성 성주 김경희 장군은 맹장이시옵니다. 호락호락하게 성을 내어주지는 않으실 것이고 성 밖에서 타이모 족장께서 도우신다면 충분히 이북 잔당들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래주면 참으로 다행이지.”

그때 다시 전서구 하나를 들고 온 별초가 급히 들어와 별초낭장 박현준에게 무릎을 꿇었다.

“무엇이냐?”

“북변에서 보낸 전서구입니다.”

“북변?”

순간 별초낭장 박현준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리 다오!”

별초낭장 박현준이 급히 전서구의 발목에 묶어 있는 통에서 작은 편지를 꺼내 읽었고 처음 표정은 굳어졌으나 편지를 읽은 후 표정이 밝아졌다.

“요동으로 가는 매국노들 잡았구나!”

“천만다행이옵니다. 하늘이 고려와 주군을 돕는 것이옵니다.”

“그래. 주군의 선견지명이 대단하시다는 것을 또 한 번 알게 되는구나!”

별초낭장 박현준은 이 순간 회생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제 숨어 있을 필요가 없다. 사냥을 해서 병사들을 배 불리 먹이고 출정 준비를 해라. 3일 후에 이동할 것이다. 그동안 충분한 휴식을 취해라.”

“예. 낭장!”

두 별초들이 머리를 조아렸다.

“대령후께서 패퇴하셔서 서경 성으로 돌아오시면 깜짝 놀라게 되실 것이야!”

바드득!별초낭장 박현준은 대령후를 떠올리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렇게 회생의 계획대로 일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오직 이 순간 위태로운 것은 이북 40개성중에서 유일하게 반란군에게 동조하지 않은 연주성과 그 성의 성주 김경희 장군이었다.연주성 성벽 위.연주성은 몇 번의 공격으로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여기저기 성벽이 무너졌고 성루는 성한 곳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모질게 버티고 있었다. 이렇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 연주성 성주가 김경희 장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김경손 장군의 조부가 되는 인물이었다.뿌우우우! 뿌우우! 둥둥! 둥둥!다시 이북40개성에서 서경으로 향하다가 남은 5천의 병력들이 연주성을 공격하기 위한 뿔 나팔이 울렸다.

“뿔 나팔 소리 옵니다. 성주님!”

연주성 부장이 성주인 김경희 장군에게 다급하게 소리쳤다.

“모진 놈들!”

“이제 어찌 하옵니까? 성벽이 성한 곳이 없사옵니다. 부상병들도 차고 넘칩니다.”

“그래도 막아 내야한다. 폐하께서 내게 이 성을 지키라고 하셨다. 그러니 나는 지킬 것이다.”

결의에 찬 말에 부장도 알았다는 듯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용장 밑에 약졸 없다는 말이 이런 걸 거다.

“예. 알겠사옵니다.”

그리고 부장은 고개를 돌려 병사를 봤다.

“종을 쳐라! 징을 쳐라! 역도들이 다시 공격해 오고 있다. 성벽으로 올라라! 막을 것이다. 이 연주성에 단 한 놈의 역도들도 들어서지 못하게 하라는 성주님의 명이시다.”

쨍쨍! 쨍쨍! 쨍쨍!요란한 종소리와 징소리가 성벽 아래에 있는 병사들의 귀를 찢었다.

“어서 움직여! 어서!”

연주성 성벽 아래 큰 공터에는 서경의 반란에 동참한 이북40개성에서 남은 5천의 병사를 이끄는 오완용 장군이 연주성을 노려보고 있었다.

“막아 보라지. 내 오늘 저 기고만장한 연주성을 깨부수고 거만한 김경희 장군의 자존심까지 깨부순다.”

오완용 장군은 다짐을 하듯 말했다.

“석포를 전진배치 시켜라!”

“예. 알겠사옵니다. 장군!”

오완용 장군의 부장들이 일제히 대답을 하고 석포를 전진 배치시키기 위해 뒤로 달려갔다.끼이익! 끼이익!굉음과 같은 소리를 내며 웅장한 석포들이 성벽에 서서 잔뜩 긴장하고 있는 궁수들을 위협하듯 앞으로 전진 배치됐다.

그 모습을 보고 바로 연주성은 방어준비에 돌입했다.김경희 장군은 성벽 지휘 망루에 서 있었고 나머지 병사들 역시 방어를 위해 성벽에 올라와 있었다. 또 궁수들은 자리를 잡고 긴장된 눈으로 성벽 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궁수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패 수들은 저마다 한 명씩 자리를 잡았다.

“긴장들 하지 마라! 이 연주성은 견고한 성이다. 오늘을 위해 너희들이 나와 같이 착실히 성벽 보수를 해 오지 않았느냐?”

김경희 장군은 그렇게 병사들을 독려했으나 이미 몇 차례의 공격에 의해 연주성 성벽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예. 장군! 알겠습니다.”

성주에 대한 믿은 때문일까?이 위급한 순간에도 병사들의 대답소리는 우렁찼다. 허나 절체절명의 위기인 것은 확실했다.‘더는 버틸 수 없음이야!’김경희 장군은 앞으로 전진 배치되는 석포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투석을 준비해라!”

“예. 장군!”

반란군 장군 오완용이 연주성 성루 위에 올라서 있는 김경희 장군을 보며 씩 웃었다.

“내 마지막 자비를 베풀지.”

허나 그 자비라는 것은 조롱에 가까울 것 같았다. 사실 연주성 성주 김경희와 오완용 장군은 앙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연주성을 응징하라는 대령후의 명에 오완용장군이 이 연주성 공격에 자청했다.

다닥! 다닥! 다닥!오완용 장군이 말을 몰아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그의 부장들과 방패 수들이 오완용 장군을 보호하기 위해 그를 따랐다.

“이보시오. 김경희 장군!”

오완용 장군이 크게 소리쳤다.

“역도야! 무슨 할 말이 있느냐?”

김경희 장군이 자신을 역도라고 하자 오완용 장군은 인상을 찡그렸다가 다시 차갑게 미소를 머금었다.

“그대의 연주성이 나의 석포에 더는 못 버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요. 항복하시오. 무슨 미련이 있어서 개경 무부들의 허수아비가 된 개경황제를 따르는 것이요.”

“황제폐하 말고 또 다른 황제가 이 고려에 있더냐?”

“천종황제폐하가 계시지 않소. 서경으로 천도하시고 이북 민들을 모두 품어주시겠다고 약조를 하신 천종폐하를 따르시오.”

“대령후가 언제부터 황제이더냐? 나는 그런 거 모른다. 나는 황제폐하께서 이 성을 지키라하셨기에 지키는 것이다. 허나 내 오늘에서야 알았다. 나는 오랑캐만 적인 줄 알았는데 네놈들 같은 버러지도 적이 될 수 있구나!”

“뭐라?”

순간 오완용 장군이 연주성 성주 김경희를 노려봤다.

“내 그동안 알고 지낸 정리 때문에 이리 항복을 권했는데 뭐라 했느냐?”

“나는 이곳에서 고려의 무장으로 연주성 성주로 죽을 것이다. 절대 역도 대령후의 발아래 머리를 조아리지 않을 것이다.”

“네 이놈! 어디 성이 함락된 후에도 그런 소리를 하는지 보자. 내 연주성을 함락하고 풀 한 포기 남지 않는 폐성으로 만들 것이다.”

오완용 장군이 김경희 장군을 노려봤다. 그 순간 김경희 장군은 들고 있던 활의 시위를 당겼다.

“네 이놈! 역도야! 우선 이 화살부터 막아봐라.”

우렁찬 외침과 함께 화살이 시위를 떠났다. 쉬웅!퍽!허나 방패병들을 대동하고 왔기에 오완용 장군을 화살로 죽일 수는 없었다.

“네 이놈! 내 너를 용서치 않을 것이다. 대세를 볼 수 없는 어리석은 성주 놈 때문에 연주성 양민이 오늘 모두 죽는구나!”

오완용의 외침에 뒤에 있던 부장들은 오완용 장군의 눈을 피해 인상을 찡그렸다. 마치 어쩔 수 없이 이 자리에 있다는 그런 표정이었다.

“가자! 내 오늘 저 성을 아예 없애버릴 것이다.”

앙숙관계가 이제는 원수관계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자비령 남쪽 평야에 설치된 고려 중앙군 진영 의종황제의 군막.의종황제는 한참동안이나 정도전을 불러놓고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짐이 너를 처음 본지가 20년 전이구나.”

“소인을 아시옵니까?”

정도전이 조심히 물었다. 이미 정도전은 의종황제가 자신의 내력을 알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아무것도 모른 척 하고 있었다.

“속일 것 없다.”

“제가 무엇을 속이겠습니까?”

“짐이 너를 인정하지 않은 것을 원망하느냐?”

찰나의 순간 정도전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아니옵니다.”

“짐이 너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너를 위함이었다. 네가 세상에 알려진다면 너는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그 말에 정도전이 눈썹을 씰룩거렸다.

“저는 이미 죽었사옵니다.”

“아직도 짐과 황실을 원망하고 있구나.”

“그렇지 않사옵니다.”

“짐을 용서해라.”

“소인이 감히 어찌 황제폐하를 용서할 수 있겠사옵니까? 어찌 감히,,,,,,,.”

“내 강화 바닷가에서 찬찬히 바다를 보며 마음을 다스릴 때 느낀 것이 하나 있다.”

의종황제의 말에 정도전이 의종황제를 올려봤다.

“용서라는 말이다. 용서할 수 있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을 마음 한 구석에 내놓지 않게 밀어두는 거였다. 짐은 그래서 회생을 용서하고자 한다.”

“그렇사옵니까?”

“그래. 그럴 수밖에 없구나.”

“그렇다면 소인도 오늘 황제폐하께 용서라는 것을 배웠나이다.”

정도전이 말에 의종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형이라 불러 보거라.”

의종황제의 말에 다시 정도전의 눈빛이 떨렸다. 그렇게 부르고 싶었던 말이었다. 허나 이제는 그리 부르지 않아야 할 말이기도 했다.

“저는 이미 예전의 저였던 흥선은 죽었사옵니다. 저는 창씨 개명하여 이름이 도전이고 성이 정이옵니다.”

“정도전?”

“그렇사옵니다. 그러니 용서할 것도 없고 용서해줄 것도 없사옵니다.”

“으음,,, 네가 짐보다 더 덕이 높구나! 알았다.”

“황망하옵니다. 황제폐하!”

“도전아!”

“예. 황제폐하!”

“회생을 잘 도와주거라.”

“소인이 무슨 능력이 있어 황자마마를 돕겠습니까?”

“짐은 네가 황궁에 숨어 세상의 이치를 깨쳤다는 것을 알고 있다. 회생은 폭풍과도 같다. 몰아칠 때는 거침이 없으나 폭풍이 멈추면 그 주변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러니 네가 회생을 도와주거라.”

의종황제의 말에 정도전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회생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했던 의종황제지만 이리 회생을 걱정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는 의종황제였다. 이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는 걸 거다.

“예. 황제폐하!”

“내 훗날 기회가 된다면,,,,,,,.”

“아니 하셔도 되옵니다. 저는 그저 이제 정도전으로 살겠사옵니다.”

“그래. 알았다. 그래 다 잊고 정도전으로 살아 보거라.”

“예. 황제폐하!”

“이 형이 참으로 과거에는 못난 형이었다.”

“듣기 황망하옵니다.”

“나가 보거라.”

“예. 황제폐하!”

“도전아!”

“예. 황제폐하!”

“만약 회생이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면 네가 네 이마의 악인의 불도장을 찍고 나서야 할 것이다.”

의미심장한 말을 하는 의종황제였다. 그리고 그 말에 놀라는 정도전이었다.

“황, 황제폐하!”

“그리 하여야 한다.”

잠시 정도전이 의종황제를 봤다.

“예. 알겠사옵니다. 황제폐하! 소인의 이마에 난신적자의 불도장을 찍겠나이다.”

“그래. 고맙다.”

“소인 정도전 물러가겠나이다.”

정도전이 조심히 예를 올리고 의종황제의 군막에서 나섰다. 그리고 천천히 노을이 지고 있는 자비 령을 봤다.‘나 정도전의 형으로 부끄럽지 않은 폐하시다.’정도전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 짧은 순간이지만 많은 의미와 뜻이 오고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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