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344화 (344/620)

< -- 간웅 16권 - 북벌의 시작. -- >

“예. 왜구나 해적들이 육지로 들어온 후에 막는 것보다 해상에서 다 불태워 수장시키면 백성들의 피해가 줄어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이건 회생이 한 거짓말이었다.

“은밀히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알겠습니다.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러세요. 위위경께서 크게 기뻐하실 겁니다.”

회생의 말에 다시 회상에서 깨어나는 황해수군 도독이었다.

“참으로 대단한 분이시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이리 대단하게 바꿔놓으셨어.”

공성전에 쓰이는 석포는 예전에도 있었다. 투석기 형대로 꽤나 공성전에 자주 쓰이는 거였다. 하지만 이렇게 해전에서 쓰일 줄은 그도 몰랐기에 놀라워하는 거였다.

“그렇사옵니다. 도독!”

“참으로 대단해! 참으로 그 위력이 대단해! 순식간에 적선을 불태웠어.”

하지만 황해수군 도독이 대단하다고 말하는 것은 지금 회생이 구상하고 있는 것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금 회생은 스스로 최무선이 되고자 준비하고 있었다.

화약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화포가 만들어진다는 것이고 화포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전쟁의 판도를 한순간에 바꿔놓는다는 의미였다.다시 말해 이것은 금을 대표하고 기마민족들을 대표하는 기마궁병들의 몰락이 멀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묘향산 깊은 산기슭에 자연동굴.동굴 안으로 급히 별초 하나가 달려왔다. 그리고 그는 별초낭장 박현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서경에서 전서구가 도착했사옵니다.”

별초의 말에 박현준이 인상을 찡그렸고 별초가 조심히 전서구를 별초낭장 박현준에게 내밀었고 박현준은 전서구의 말에 달려 있는 쪽지를 꺼내 읽었다.

“무언가?”

“대령후가 금에 원병을 청했다는 연락이옵니다. 타이모 족장!”

“역시 주군의 예상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구나!”

속말말갈 족장 타이모는 다시 한 번 회생의 선견지명에 감탄했다.

“그렇사옵니다.”

“그렇다면 지체할 시간이 없군.”

“예. 서경에서도 북변 이북으로 봉쇄선을 구축한 곳으로 수많은 전서구를 날렸을 것이옵니다. 저희도 다시 한 번 전서구를 날려야 할 것 같사옵니다.”

“요동으로 가는 놈들을 놓치면 큰일이네.”

“절대 놓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수천의 대병력이 길목마다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도 모르는 일이네.”

“예. 별초들을 요동 인근까지 이동시켜서 대비하겠습니다.”

“그러시게. 놈들이 봉쇄선을 뚫고 요동으로 향한다면 큰 전란이 고려에서 일어날 것이네.”

“그렇습니다.”

“요동으로 원병을 요청하는 놈들이 갔다면 곧 서경에 있는 적도들이 황도로 진격한다는 말이 되겠군.”

“그럴 것이옵니다. 타이모 족장님!”

“곧 우리가 공을 새울 순간이 오겠군.”

“예.”

“안에서 내응을 잘 해야 할 것이네.”

“아마 서경을 지키는 놈들은 생각하지도 못하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는 인물이 합하의 명을 받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누가 감히 내 주군의 뛰어나신 전략을 상상이라고 할 수 있겠나? 하하하! 이번 서경 정벌만 잘 되면 우리 말갈전사들도 요동을 호령하겠군. 벌써부터 내 가슴은 뛰고 있네.”

“저 역시 그렇사옵니다.”

별초낭장 박현준이 고개를 돌려 별초를 봤다.

“바로 전서구를 날려라. 서경에서 떠난 놈들을 절대 놓여서는 안 된다.”

“예. 알겠습니다.”

무릎을 꿇고 있던 별초가 급히 밖으로 나갔고 그때 다른 별초 하나가 급하게 안으로 들어와 무릎을 꿇었다.

“무슨 일이냐?”

“급보이옵니다.”

“급보?”

“그렇사옵니다. 연주성이 이북에서 진격하던 반란군의 일부에게 공격을 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뭐라?”

“김경희 성주가 사력을 다해 막고 있으나 함락되기 일보직전이라 하옵니다.”

별초의 보고에 박현준이 인상을 찡그렸다.

“왜 그러시는가?”

“연주성 성주는 유일하게 반란도동에게 동조하지 않은 성입니다. 그 성이 지금 공격받고 있다고 합니다.”

“구해야 하는가?”

“구하는 것이 옳은 일이나 병력을 뺄 여유가 없사옵니다.”

“그 성주가 내 주군께 충심을 다하는 성주인가?”

“고려에 충성하는 성주입니다.”

“그럼 내 주군께 충성하는 성주군. 그렇다면 구해야지.”

타이모 족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찌 하시려 그러십니까?”

“내가 가지.”

타이모 족장이 움직인다는 것은 일천의 속말말갈 기마궁수들이 움직인다는 말이었다.

“허나 서경성을 곧 공격해야 하옵니다.”

“서경성 안에서 내응을 해 주고 그대의 부대가 있으니 충분할 것이네. 공성에 기마궁수는 그리 유용하게 쓰이지 않네.”

틀린 말도 아니었다.

“내 그들을 구하고 그들까지 이끌고 오겠네.”

타이모 족장의 말에 별초낭장 박현준은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결심이 섰는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십시오. 서경은 제가 수중에 넣겠습니다.”

“그러시게.”

분명 서경 성을 함락시키는 것은 아주 큰 공에 해당되는 일일 것이다. 허나 타이모 족장은 공을 세우는 것보다 회생을 따르고 고려를 따르는 무장을 잃지 않으려 했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회생의 가신이 가져야 할 마음일 거다.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내 그곳에서 죽을 운명이면 죽겠지. 속말말갈족으로 태어나 전장에서 그것도 어버이의 나라를 위해 죽을 수 있다면 영광이지. 나! 가네.”

타이모 족장의 말에 다시 한 번 별초낭장 박현준이 타이모를 우러러 봤다.출정식을 위한 재단이 준비된 황성 안 대 광장.황성 밖에는 응양군과 용호군 그리고 사병들로 구성된 병사들까지 해서 도합 10만에 육박하는 병사들이 출정을 기다리고 있었고 황성 안 출정식 장에는 1천에 달하는 고려 무장들이 나와 내 부친인 의종황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의종황제의 모습이 보이자 1천의 무장들이 모두 한발을 위엄 있게 크게 구르며 충이라 소리쳤다.충!충!충!척척척!의종황제께서 출정을 알리는 제단 앞에 섰고 그와 동시에 1천의 장수들의 발걸음 소리도 멈췄다.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한 출정식이라고 하기에는 그 웅장함과 비장함이 다른 때와 사뭇 달랐다. 고려의 열성조에게 출정을 알리기 위한 제단 옆에는 형형색색의 군기들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고 그 아래 1천의 고려 장수들이 숨을 죽이며 의종황제와 나를 보고 있었다.

“오르시지요. 황제폐하!”

난 조심히 말했다.

“알았다.”

저벅! 저벅!제단을 오르는 의종황제의 발걸음이 모든 이들의 귓가로 뚜렷이 박혀 들어가고 있었다. 나 역시 차분히 내 부친인 의종황제를 우러러 보고 있었다.척!

“황자도 오르라.”

제단에 선 의종황제가 황제만이 오르는 제단에 나까지 오르라 명했다.

“아니옵니다. 아바마마!”

“아직 국본이 없으니 대신하라.”

미워도 내가 아들은 아들인 모양이다.

“알겠사옵니다.”

그 순간 단상에 우뚝 선 내 주위로 바람이 몰려와 깃대에 걸린 삼족오 깃발이 허공에 창대하게 펼쳐졌다.

“저 깃발은 처음 보는군.”

각 군영마다 그 군영을 대표하는 군기가 있다. 그런데 지금 의종황제가 보고 있는 삼족오 깃발은 군기라기보다 나를 대표하는 깃발이 될 것이다.

“영광된 고려를 위한 깃발이옵니다.”

“문헌에서 봤던 그 깃발인가?”

내 부친도 삼족오 깃발을 아는 듯 했다.

“그렇사옵니다. 아바마마!”

“옛 고려의 깃발이지.”

사실 고구려는 후대사람들이 고려와 구분하기 편하기 위해 고구려라 했다.

“그러하옵니다. 아바마마!”

“황자의 대망에 딱 어울리는 깃발이군.”

“감사하옵니다. 아바마마!”

“출정을 위해 열성조에게 고할 것이다. 마음을 경건하게 해라.”

“예. 아바마마!”

그와 동시에 의종황제가 돌아섰다. 둥둥둥~ 둥둥둥~ 그 순간 거대한 북소리가 울렸다.뿌우우웅!고려 열성조에게 출정을 알리는 거대한 뿔 나팔이 울렸다. 둥둥둥~ 둥둥둥~

“개처어어어어언!개천!열성조에게 고하는 제단이 마련되면 하늘을 열고 열성조에게 고한다는 의미에서 개천이라고 신관이 크게 소리를 지른다.그렇게 출정의 제를 주관하는 신관이 우렁차게 소리를 질렀고 그와 동시에 의종황제가 제단을 향해 부복했고 나도 따라 부복했다. 그리고 단상 아래에 도열에 있는 이고 외숙과 이의방도 부복했다.

“이 미력한 철이 열성조께 고하나이다.”

철이라는 것은 의종황제의 초명을 말하는 거였다.

“황제인 제가 미력하여 서경에 적도들이 들끓고 역천을 꿈꾸나이다. 부디 열성조께서는 이번출정을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저와 저의 장자 회생이 열성조께서 오늘 서경정벌을 고하나이다.”

난 의종황제의 말에 놀라 내 귀를 의심했다.‘장자라 하셨다.’난 놀라 의종황제를 봤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근엄하게 제를 올리고 있었다.

“또한 이번 출정으로 모든 것을 바로잡게 이끌어 주십시오. 미력한 철이 열성조께 고하나이다.”

그렇게 의종황제께 고하고 천천히 돌아서서 1천의 고려 장수를 봤다.

“열성조께 고한 것은 황제의 몫! 저들을 이끄는 것은 황자의 몫이다.”

“아, 아바마마!”

“목소리가 왜 떨리는 것이냐?”

“아, 아니옵니다.”

“네 독하고 모진 마음 흔들리지 마라. 네 마음이 흔들린다고 해도 짐은 너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알겠사옵니다."난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단지 열성조께 네가 있다는 것을 고했을 뿐이다.”

의종황제가 나만 들을 수 있게 나직이 말했다.

“알, 알겠사옵니다.”

“기다리고 있다. 나서라.”

“예. 아바마마!”

저벅! 저벅!난 천천히 단상 앞으로 몇 발자국 걸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천천히 도열해 있는 고려 1천의 장수들을 봤다.

“나는 고려의 황자로 황제폐하의 명을 받아 서경정벌을 공표할 것이다.”

“충!”

나의 외침이 하늘을 가르며 터져 나왔고 내 외침에 답하듯 1천의 고려 무장들의 목소리가하나 되어 터져 나왔다.

“충!”

“나 왕회생은 고려의 웅지를 받들어 널리 알릴 것이고 고려의 기틀을 바로 세울 것이다. 이를 어기고 있는 서경의 반역도당들을 이번 출정으로 절대 용서치 않을 것이며 그들에게 황실의 지엄함을 알리고 다른 그 누구도 역심을 품지 않게 모두 멸할 것이다.”

“충!”

“지금 너희들이 보고 있는 그리고 내 앞에 있는 이 깃발은 옛 고려의 깃발이다.”

내 말에 1천의 장수들이 찬란하게 펄럭이고 있는 삼족오 깃발을 봤다. 내가 삼족오 깃발을 이 제단에 세운 것은 저 깃발 아래 모두가 모여들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사실 난 나를 대표하고 고려 황실을 상징할 깃발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떠오르는 것이 이 삼족오 깃발 밖에는 없었다. 처음에는 용으로 그 상징적 깃발을 삼으려고 했으나 용은 이미 중원읭 오랑캐들이 즐겨 쓰고 있기에 차별화 되지 않았다.

청룡, 백호, 주작, 현무 이런 것들은 모두 중원 오랑캐의 것이니 그래서 내게 익숙한 삼족오 깃발을 내 깃발로 삼은 거였다. 또한 내가 지금 중원을 정벌하기 위해 북벌을 감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원 오랑캐의 것으로 깃발을 삼을 수가 없었다. 벌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 별것이 아닌 것들이 하나 둘씩 모여 큰 일이 되는 것이다.

난 잠시 내 손에 들린 삼족오 깃발을 봤다. 그리고 다시 나를 보고 있는 1천의 고려 장수들을 봤다.

“저 깃발은 고려황실을 대표하는 깃발이 될 것이고 나는 저 삼족오 깃발을 들고 열성조에게 고할 것이다.”

내가 우렁차게 소리친 후 옆에 있던 신관을 봤다.

“깃발을 다오.”

“예. 황자저하!”

신관이 조심히 삼족오 깃발을 내게 가지고 와 건넸다.

“여기 있사옵니다.”

난 삼족오 깃발을 받고 1천의 장수들이 볼 수 있게 크게 몇 번을 휘둘렀다.

“고려 황실은 이 깃발과 함께 하늘이신 열성조의 뜻을 받들 것이고 이 깃발이 서는 곳이 전장이라면 고려 황자로써 같이 할 것이며 이 깃발에 대항하는 자들에게 죽음의 철퇴를 내릴 것이다. 또한 이 목숨 다하는 날까지 고려 황자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고려 백성들의 근본이 될 것을 맹세한다.”

근본!이 순간 차마 나는 국본이라고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내 숨겨진 뜻을 아는 내 부친 의종황제께서 찰나의 순간이지만 살짝 인상을 찡그리는 것을 내 눈에 보였다.‘아직은 아닌 것이야! 국본이 되기에는,,,,,,.’난 그렇게 날 다독였다.

“충!”

순간 목이 터져라 1천의 장수들이 소리를 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따를 것이옵니다.”

“충!”

“나는 이 순간 황제폐하의 명을 받아 그대들에게 서경정벌을 명한다. 모두 출정하라!”

드디어 출정의 명이 떨어졌다.

“충!”

다시 일제히 1천의 장수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난 그 외침을 들으며 조심히 의종황제를 봤다.

“저들이 아바마마의 군대이옵니다.”

“그래. 내 너에게 잠시 그 군대를 빌리지.”

“황망하옵니다.”

“황자!”

“예. 아바마마!”

“그 깃발과 함께 열성조에게 맹세한 것을 잊지 마라.”

“예. 아바마마!”

“가자! 짐은 네가 서경을 발아래에 두고 북진하는 것을 볼 것이다.”

의종황제가 당당히 제단에서 내려섰다.============================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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