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16권 - 북벌의 시작. -- >서경 성 앞 광장.6만 5천의 서경 반란군들이 황금 갑주를 차려 입은 대령후의 앞에 도열해 있었다. 드디어 대령후와 조위총에게 호응한 이북의 40개 성 모든 반란군들이 이 서경으로 당도한 것이다. 이제 그들이 향할 곳은 개경 황도다.
“천종황제 폐하! 폐하의 충성스러운 군대가 모두 당도했나이다.”
마지막 개경 황도 진격 회의에 참여했던 안북도호부의 도독 최창평이 대령후에게 보고했다. 스스로 대령후는 천종황제라 칭하고 이리 출정을 준비하는 거였다.
“개경에 있는 무부들도 이미 출정준비를 끝냈을 것이옵니다. 지금 당장 개경으로 출정을 하심이 옳은 줄 아옵니다.”
최창평이 대령후에게 보고했다.
“출정?”
“그렇사옵니다. 6만 5천의 군대가 지금 출정을 해 자비 령을 넘을 수만 있다면 황제폐하의 대의는 이뤄지시는 것이옵니다.”
최창평의 말에 대령후가 광장에 모여 있는 6만 5천의 병사들을 봤다. 대부분 의기에 차 있고 사기가 높았으나 급히 달려온 1만의 이북에서 온 군사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지금 출정을 하잔 말인가?”
“그렇사옵니다. 황제폐하!”
최창평의 말에 대령후가 조위총을 봤다.
“어찌 생각을 하시는가?”
“지금 당장 출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사옵니다. 이북 40개성에서 온 군사들이 이곳으로 황명을 받잡고 달려오느라 지쳐 있사옵니다. 당장 출정하는 것은 어렵사옵니다.”
이 순간 서경 반란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조위총과 최창평에게 서로 묘한 기운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대령후는 느꼈다.
“지친 병사들을 쉬게 하신 후에 출정을 하는 것이 옳을 것 같사옵니다.”
“아니옵니다. 그리 하였다가 개경의 무부들이 자비 령에 진을 치고 충성스러운 폐하의 군대를 기다린다면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옵니다.”
여기서 이상한 것은 개경진격을 급히 서둘러야 할 서경유수 조위총이 이북의 병사들을 쉬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그에 반해 안북도호부 도독인 최창평은 자신의 부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북의 증원군들이 지친 것도 상관하지 않고 바로 출정하자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거였다.최창평의 말에 대령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충신들의 말이 모두 옳다. 이북의 충성스러운 장졸들이 지친 상태이니 잠시간의 휴식을 주는 것도 옳고 시간이 촉박하니 지금 당장 출정하자는 최창평의 말도 옳다. 지금 그래서 이북의 병사들이 기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루를 쉬고 진격할 것이다.”
“예. 알겠사옵니다. 폐하!”
먼저 조위총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또한 최창평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령후의 반란군에서도 이렇게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다. 서경의 군대와 이북의 군대가 사뭇 그 성질이 다르니 말이다.
“왕평달!”
대령후가 아무 말도 없는 기골이 장대한 무장 하나를 불렀다. 그에게서 품기는 기운이 고려무장은 분명 아닌 것 같았다.
“예. 대령후!”
그 혼자 대령후를 대령후라 불렀다.
“아직도 그대에게 짐은 대령후인가?”
“송구하옵니다. 그러시면 부마도위라 부르오리까?”
부마도위?송나라 황실의 부마인 대령후이니 그리 불리는 것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대의 고집이야 어쩔 수 없지. 좋아! 어찌 불리든 상관이 없지. 자네는 악비군 1만을 거느리고 선발대로 자비 령으로 진격하게. 개경의 무부들 보다 먼저 자비 령을 점령해야 할 것이네.”
대령후가 악비군이 1만이라고 했으나 사실 3천에 불과했다. 아직 7천의 악비군 주력은 남송의 포구에 대기하며 대령후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대령후의 밀명을 받은 악비군들이 대동강 포구에서 남송으로 떠났으나 그들이 남송 포구로 도착한다는 보장은 없었다.회생이 남송으로 향하는 뱃길을 모두 막아놓고 있으니 말이다.
대령후는 진군을 하루 늦춘 대신에 3천 명의 악비군을 이용해 자비 령을 먼저 차지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서경군과 이북 증원군의 반목을 막고자했다.
“예. 대령후!”
황제라 부르지 않지만 왕평달은 대령후를 황제로 대하고 있는 듯 했다.
“이제 짐이 고려의 황제가 될 것이다. 진군하라!”
“예. 알겠사옵니다.”
왕평달이 짧게 답하고 돌아서서 대기하고 있던 말에 올랐다.
“가자! 명이 떨어졌다.”
이것으로 1차 서경 반란군들이 진격을 시작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3천의 악비군들은 송나라 무장 출신인 왕평달의 명을 받아 서경 성 광장을 급히 빠져나갔고 그런 모습을 대령후인 천종황제가 차분히 보다가 조위총을 봤다.
“지금 당장 요동으로 증원군을 청하라!”
대령후의 말에 조위총이 대령후를 봤고 그 순간 최창평이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결정을 하신 것이옵니까?”
“그래. 짐은 결정했도다. 절대 요동에 있는 대타발 대한무극은 내 뜻을 뿌리치지 못할 것이다. 그도 짐처럼 야망이 있을 것이다.”
“알겠사옵니다.”
“이것이 짐의 친필서한이다. 이것을 가지고 간다면 대타발은 분명 병력을 내어줄 것이다.”
“알겠사옵니다. 폐하!”
“내일이면 이 고려가 다시 서는 첫날이 될 것이다.”
대령후가 무겁게 말했다. 서경 성 북문 앞.조위총이 10여명의 무장들의 앞에 서 있었다.
“너희들은 이 서찰을 요동성 대타발 대한무극에게 전하라.”
조위총의 말에 10여명의 무장들이 놀라 조위총을 봤다.
“요동성이라시면 금나라 오랑캐이지 않사옵니까?”
“그렇다. 무슨 문제가 있느냐?”
조위총이 자신에게 물은 무장을 노려봤다.
“아, 아니옵니다.”
“이번 출정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나를 비롯한 너희들 역시 멸족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이용할 수 있는 존재는 모두 이용해야 한다.”
조위총은 그렇게 말하고 인상을 찡그렸다. 스스로도 군사의 열세를 느끼고 있는 거였다. 숫자적으로 10만 이상의 중앙군과 최대 7만의 서경군이니 말이다. 허나 요동성에 있는 금나라 군대가 그것도 기마궁병들을 이끌고 남하해 준다면 그 군사적 열세는 바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조위총의 생각이었다.
“알겠사옵니다.”
“시간이 없다. 급히 요동성으로 가라.”
“예. 알겠사옵니다.”
“가라!”
조위총의 말에 10명의 무장들이 급히 기마에 올라서 다시 한 번 마상에서 목례를 하고 말머리를 돌렸다.
“떠나겠나이다.”
무장 하나가 말하고 말머리를 돌렸고 나머지 무장들도 그를 따랐다. 그리고 멀어지는 무장들을 보며 조위총이 인상을 찡그렸다.
“이번 거병에서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것이 두 가지라면 그 첫째가 자비 령을 점령하는 것이고 두 번째가 저들이 무사히 요동성으로 향하는 거다. 무사히 가야 한다.”
조위총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푸두둑! 푸두둑!그때 조금 떨어진 산등성에서 달리는 전마의 말발굽 소리에 놀라 급히 하늘로 날아 사방으로 산비둘기들이 흩어졌다.그 모습을 조위총이 힐끗 보다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생각하고 대령후가 있는 서경 유수관으로 향했다.최창평의 집무실.
“내일이면 출정을 하옵니다. 어찌 움직이면 되겠사옵니까?”
“무슨 말인가?”
“비록 도독께서 이끌고 오신 군대가 2만에 못 마친다고 해도 황제폐하께는 큰 힘이 되는 병력이옵니다. 훗날 공훈으로 따진다 해도 서경 것들에게 밀릴 이유가 없사옵니다.”
“그리 보는가?”
“그렇사옵니다. 조위총 서경유수가 마치 문하시중이라도 되는 듯 행동하는 모습이 눈에 거슬리옵니다.”
“문하시중이 되었으니 문하시중처럼 구는 거지.”
최창평은 인상을 찡그렸다.
“하오나 도독께서는 아직 아무런,,,,,,,,.”
“지금 뭐라 불리는 것이 중요한가. 대의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지. 과정은 다 필요 없어. 고려를 위한 대의가 중요하지.”
“하오나 폐하께서 도독의 충심을 몰라주고 있사옵니다.”
“나중에 아시겠지.”
최창평이 피식 웃었다.
“나중에 아시게 될 것이야!”
“예. 알겠사옵니다. 도독!”
무장이 그리 답하며 힐끗 최창평의 임시 집무실 구석에 걸려 있는 몇 개의 새장을 봤다.
“여전히 산비둘기 고기를 즐기시옵니까?”
“하하하! 그렇다네. 내 어릴 적부터 먹던 것이라 이곳까지 챙겨왔네. 닭은 달고 꿩은 너무 질겨 하지만 산비둘기의 고기는 달지도 질기지도 않고 담백하지. 한 번 그 맛에 빠진 사람은 꿩과 닭 따위는 먹지 못하지.”
“그렇사옵니까?”
“그래. 그렇다네. 내 곧 살이 오른 놈 몇을 잡아놓고 그대를 초대하지.”
“하하하! 감사하옵니다.”
“아주 먹을 만하지.”
“예. 도독!”
구구구! 구구구!그때 산비둘기가 울었고 그 울음소리와 함께 최창평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다들 물러가서 내일 출정을 위해 병력들을 독려 하시게.”
“예. 알겠사옵니다. 도독!”
그렇게 다섯의 무장들이 모두 물러갔다.대령후인 천종황제가 기거하고 있는 서경 유수관의 집무실.이곳은 반란군의 조정의 대전이 되어 있었다.조위총은 은밀히 요동으로 파발을 띄우고 대령후가 홀로 있는 대전으로 들어섰다.
“요동성으로 파발을 보냈는가?”
“예. 폐하!”
“내일이면 진격이네.”
“그렇사옵니다. 폐하! 그래서 신이 하나 주청드릴 것이 있사옵니다.”
조위총의 말에 대령후가 조위총을 빤히 봤다.
“주청?”
“그렇사옵니다.”
“뭔가?”
“폐하의 충성스러운 군대가 지금 내분을 겪고 있사옵니다.”
“내분?”
대령후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사옵니다. 내분이옵니다. 서경의 충심이 가득한 군대와 이북 40개의성에서 온 병사들이 서로 반목하고 있사옵니다.”
“아주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군.”
“그렇사옵니다. 그래서 말씀드리는 것이옵니다. 안북도호부 도독인 최창평을 이 서경성에 남겨 서경성을 지키라는 명을 내리심이 옳을 것 같사옵니다.”
“최창평을?”
“그렇사옵니다. 2만에 육박하는 이북40개성의 군사들이옵니다. 그들이 모이는 곳은 최창평이옵니다. 황제폐하의 발 아래로 모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조위총의 말에 대령후도 고개를 끄덕였다.
“일 리가 있군.”
“그렇사옵니다. 개경 정벌군도 중요하나 서경을 든든히 지켜내는 것도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여겨지옵니다.”
“옳다. 그리 할 것이다. 병사들이 개경 출정 전에 내분을 일으키며 아니 되는 것이지.”
이것이 바로 대령후의 첫 번째 패착이었다.
“신의 뜻을 윤허해주셔서 황공하옵니다. 폐하!”
“문하시중.”
“예. 황제폐하!”
“짐은 자네의 주청이 자네의 사적인 감정이 개입되어 있지 않다고 믿을 것이네.”
그 순간 조위총이 조금은 놀라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 그렇사옵니다.”
“짐이 이번 거병을 성공하고 황도를 손아귀에 넣고 고려의 진정한 황제가 되면 내 그대를 절대 잊지 않을 것이네. 그러니 작은 것에 너무 마음을 쓰지 말게.”
“예. 황제폐하! 그리 하겠사옵니다.”
10. 출정식 그리고 자비 령으로 진격하다.중방.오늘이 바로 서경정벌을 시작하는 출정식이 있는 날이다. 황성 앞 대광장에는 응양군 3만과 용호군 3만 그리고 사병 혁파로 구성된 병사 4만까지 해 도합 10만의 병사들이 출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중방에서는 마지막 출정 전 회의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황제폐하께서 서경정벌을 친정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위위경 이의방이 나를 보며 말했다.
“당연한 일지요.”
난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내 부친의 성정이라면 내가 서경을 정벌하고 북진을 하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성격은 분명 아니었다.
“그렇기는 하오나 명령체계가 혼란스러워질 수 있사옵니다. 황자저하!”
대전에서 의종황제께서 나를 양자로 삼으신다고 공포했기에 이제는 나를 누구나 황자저하라 불렀다.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바마마께서는 저에게 모든 것을 일임할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황제폐하의 친정이니 좋은 일이지요.”
“그렇사옵니다.”
“출정준비는 끝났습니까?”
“예. 모든 준비가 끝나 황성 앞에 공터에 모여 있사옵니다. 그런데,,,,,,,.”
이의방이 나를 조심히 봤다.
“왜 그러십니까?”
“신수군이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신수군은 이미 출정했습니다. 자비 령을 넘은 반란군의 퇴로를 차단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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