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339화 (339/620)

< -- 간웅 16권 - 북벌의 시작. -- >

“태자를 데리러 진도로 갔으니 곧 올 것이요. 그때 물으시면 됩니다. 허나 회생은 분명 황상의 아들이 분명합니다. 어릴 적 황상의 모습과 많이 닮았습니다. 또 담대한 것이 황상입니다.”

“하지만 저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믿으세요. 아니라고 해도 이제는 믿어야 합니다. 이 고려에서 누구도 회생에게 맞설 수 없어요. 범 같은 이의방이 머리를 조아리는 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또 문신들의 거두인 강일천 공이 회생의 장인입니다.

김보당의 입으로 자신에게 반기를 들 자들을 숙청한 회생입니다. 누구도 이제는 회생에게 대항하지 못합니다.

이제는 회생이 아들이 아니라도 아들이어야 합니다. 이제는 그래야 합니다.

“어, 어마마마!”

“이 고려는 왕 씨의 고려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아니라고 해도 내색하시면 아니 됩니다. 아셨지요. 황상.”

“하오나 어찌,,,,,,,,.”

“그래야 합니다. 그래야 고려가 버틸 수 있습니다. 태조께서 세우신 이 나라를 황상이 망하게 할 참입니까?”

공예태후의 말에 의종황제는 황성 앞에서 문극겸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단지 벚꽃이 화려하여 세상을 다 뒤덮은 것처럼 보이나 그저 벚꽃은 봄날이 한철이옵니다.’의종황제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봄이 가면 벚꽃도 진다.’왜 공예태후가 회생의 말을 의심 없이 받아드렸는지 그 이유가 이제야 나오는 거였다.

어찌 되었던 고려라는 국호로 황실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 쉽게 받아드린 거였다. 또한 영화공주를 그렇게 제1황후로 만들려는 거였다.만약 회생이 자신의 장자인 의종의 아들이 아니라면 왕 씨의 피가 반쯤은 섞인 영화공주의 아들로 다음 대를 이어가기 위해서 그리 믿어주는 거였다.

참으로 무서운 공예태후였다.

“저는 회생을 믿습니다. 피는 당기는 법입니다. 겨우 하급 무장일 때 회생은 황상을 살리고 태자를 살렸습니다. 모르고 있었으나 피가 당긴 겁니다.”

“진정 회생의 말을 믿으시는 것입니까?”

“저는 믿습니다. 용손이 아니고서는 그리 담대할 수가 없습니다. 회생은 반드시 용손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고려와 사직 그리고 황실이 무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으음,,,,,,,.”

“그리고 회생에게는 춘심이라는 상궁을 기억한다고 하세요. 한번 그냥 품었던 계집이라고 하지 말고 아꼈다고 하세요. 정을 줬다고 하시고요. 참으로 가여운 여인이었다고 하세요. 그럼 되는 것입니다.”

“하오나,,,,,,,.”

“황상 이 어미의 말을 따라 주세요. 그리고 부자의 정을 쌓아보세요. 없던 정이라도 그리 마음을 먹으면 생기는 법입니다. 황상은 사직만 생각하시면 됩니다.”

“허나 회생이 저의 아들이면 태자가 위험해 집니다. 형보다 뛰어난 아우는 형을 죽이게 됩니다. 그게 아니면,,,,,,”

“조카를 죽이겠지요. 하지만 회생은 그리 기다려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 그렇습니다. 어마마마! 소자는 태자가 참으로 걱정되옵니다.”

“이 어미는 황상이 걱정됩니다.”

공예태후의 말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 너무나 잘 아는 의종황제였다.

“만약 정말 회생이 소자의 아들이라면 분명 회생이 아니라고 해도 회생의 가신들이 어떤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태자를 죽게 할 것입니다. 저는 그리 둘 수 없습니다.”

의종황제는 이미 죽은 효령 태자를 걱정했다.

“옥좌는 하나입니다. 범은 절벽에서 새끼들을 떨어트린 후에 기어서 오르는 새끼만 키운 다고 들었습니다. 그리 할 수는 없겠지만 이미 회생은 천 길 낭떠러지에서 당당히 기어 올라온 황상의 훌륭한 황자입니다.”

공예태후의 말에 의종황제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그리고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어마마마!”

“예. 황상!”

“어마마마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소자는 어찌 해야 하옵니까?”

“회생을 선택하셔야 합니다. 회생에게 옥좌를 주지 않는다면 회생의 가신들이 황상의 옥좌를 빼앗아 회생에게 받칠 것입니다. 아들에게 몹쓸 짓을 하게 만들지 마세요.”

“하오나 그리 되면,,,,,,,,.”

“태자가 죽겠지요. 이 어미가 말씀드렸습니다. 옥좌는 하나라고.”

순간 모질어지는 공예태후였다. 그 모진 마음이 있기에 이 고려를 이 정도라도 버티게 하고 있는 걸 거다.

“알겠사옵니다. 어마마마!”

"황상은 오직 위태로운 사직만 생각해 주세요."

"예. 그리 하겠사옵니다."

“태후마마! 김돈중 대부가 태후마마를 뵙기를 청하옵니다.”

갑작스러운 김돈중의 등장에 공예태후와 의종이 문 쪽을 봤다.

“들라 하라!”

스르륵 문이 열리고 김돈중이 무거운 얼굴로 들어섰다.

“신! 김돈중 황제폐하를 뵈옵니다.”

김돈중의 말에 의종황제가 김돈중을 봤다.

“짐은 그대의 변신이 참으로 놀랍군. 어찌 된 것인가?”

“신은 대의를 따랐사옵니다. 폐하!”

“그대의 대의가 회생인가?”

“그렇사옵니다.”

김돈중의 말에 의종황제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여전히 의종황제는 회생을 자신의 아들로 받아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다. 한 순간에 회생이 내 아들이다. 라고 받아드릴 수 있는 아비는 없을 것이니 말이다.

“진도를 다녀왔다고?”

공예태후가 김돈중에게 물었다. 그 순간 김돈중이 바닥에 엎드렸다.

“태후마마! 소신을 죽여주시옵소서.”

“왜 그러는가?”

“태후마마! 소신이 섭정인 회생공의 명을 받고 진도로 내려가 태자마마를 모시고 오려고 했으나,,,,,,,,.”

굳어진 표정의 김돈중을 보고 공예태후는 일이 잘못 됐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무슨 일인가?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러는 건가?”

의종이 다급하게 물었다.

“태자마마께서는 남변에 일어난 폭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진도로 숨어든 폭도들에게 참변을 당하셨사옵니다.”

“뭐라?”

놀라 크게 소리치는 공예태후였고 의종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태자께서 폐서인이셨을 때 머물던 초가가 불탔나이다. 모시던 무장도 모두 죽었나이다. 그리고,,,,,,,,.”

“태자가 죽었다는 건가?”

나직이 의종이 김돈중에게 물었다.

“망극하옵니다. 황제폐하!”

“망, 망극이라,,,,,,,,,.”

“그 폭도는 어찌 되었나?”

“진도로 들어 닥친 관군에 의해 목이 잘렸다고 하옵니다. 신이 갔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난 상황이었사옵니다. 폐하!”

“으음,,,,,,,,.”

의종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증거 따위는 없을 것이고 찾지도 않을 것이 분명하다. 고얀 놈!’그리고 지그시 입술을 깨물고 김돈중을 봤다.

“황자는 어디에 있는가?”

“예?”

이제 의종황제는 회생을 황자라 불렀다. 그렇게 불리고 싶어 하니 그리 불러주는 거였다.

“회생 말이다.”

그제야 김돈중은 공예태후가 의종황제에게 회생의 진짜 신분을 알려줬다는 것을 알았다.

“황자마마는 중방에 계시옵니다.”

“그대가 보장을 하는가?”

“무엇을 말이옵니까?”

“회생이 짐의 황자라는 것을 보장 하냐고 묻는 것이네.”

“예. 황제폐하! 소신의 아비의 이름을 걸고 확실하옵니다.”

김돈중의 아비는 김부식이다. 고려 최고의 문신이며 신라계로 고려를 좌지우지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의 힘에 의해 묘청의 원대한 꿈이 깨어졌다.

“그대의 아비가 이름까지 걸 정도로 대단한가?”

의종황제의 말에 김돈중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송구하옵니다. 황제폐하!”

“황자를 부르라! 짐이 대전에서 기다릴 것이다.”

의종은 왜 자신의 장자인 효령 태자가 어찌 그리 죽었는지 알 것 같았다.

“예. 황제폐하!”

고요한 대전.고려의 황제인 의종이 무겁게 옥좌에 앉아 있었고 사납게 변한 눈빛은 대전을 들어서는 문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또한 그의 손에는 보검이 들려 있었다.

“모질고 독한 놈이로다.”

의종황제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모질고 독하기에 이 자리까지 올라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르륵!문이 열리고 내가 들어서는 순간 살기보다 더한 광기가 담긴 눈동자가 나를 봤고 난 그 눈동자에 섬뜩해졌다.‘저것이 광인이라고 불린 아바마마의 광기시다.

’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뛰어난 능력이 없었다면 폭군이 되지 않았을 거고 광인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꿈꿨던 개혁이 모두 물거품이 되니 광인이 되었을 것이다.

“꿇으라.”

내 부친이신 의종황제는 내가 들어서는 순간 무릎을 꿇으라고 근엄히 말했다. 그 무게감은 태산 같고 또 차가운 삭풍이 내 뺨을 때리는 느낌이라 난 처음으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난 바로 무릎을 꿇었다. 쿵!내가 무릎을 꿇는 소리가 대전에 울렸다.

그 만큼 이 대전은 무겁고 차가우며 고요했다.의종황제가 내게 무릎을 꿇으라고 한 것은 이제 내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아시는 거였다. 그러니 이제 아들이 되어 아비를 대해야 했다.

허나 이 순간마져도 나는 아비와 자식의 관계를 넘어서는 것은 그 어떤 것도 내어줄 수가 없다는 거였다.

“네가 짐의 아들이더냐?”

근엄히 말하고 있는 의종황제였으나 그 목소리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또한 그 떨림에서는 분노가 담겨 있는 듯 했다.‘태자가 내게 죽임을 당했다고 짐작하시고 계시구나.’난 조심히 옥좌에 앉아 있는 의종황제를 우러러 봤다.

“상국 그대가 짐의 아들이시오.”

의종황제가 다시 물었다.

“,,,,,,,,.”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는 나였다. 아들이라고 내가 말해도 의종황제께서 인정해주시지 않는다면 아들이 아닌 것이니 말이다.

“왜 말이 없느냐? 네가 짐의 아들이 분명한 것이냐?”

무겁게 말하던 의종황제가 순간 절규하듯 소리쳤다.

“신은 드릴 말씀이 없사옵니다.”

“할 말이 없다? 그럼 황자가 아니라는 것이냐? 짐이 앉은 이 자리가 탐이 나 사특한 계략을 꾸몄다는 것이냐!”

“그 역시 드릴 말씀이 없사옵니다.”

“없다? 태후마마께는 그리 쫑알거리며 말해놓고는 짐에게는 없다.”

“그렇사옵니다. 저는 황자로 태어나 관노로 살았사옵니다. 어찌 태어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찌 인정받는 것이 중요한 줄 아옵니다. 소신은 황자이옵니까? 아니면 역신이 될 난신적자이옵니까?”

무릎을 꿇고 있기는 하나 나는 내 부친인 의종황제를 압박했다.

“지금은 역신이 될 난신적자겠지. 회생 너는 이 고려를 위태롭게 하는 난신이다.”

의종황제가 무섭게 날 노려봤다.

“그리 생각하시면 그리 하겠나이다. 저는 난신적자이옵니다.”

난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 미묘한 감정이 흐르는 순간이다. 내가 의종황제에게 아비라는 깊은 정이 없듯 의종황제께서도 내게 아들에 대한 정이 없을 것이다. 지금 의종황제는 자신이 사랑하고 아낀 태자가 죽임을 당했다는 것에 분노하고 있을 것이다.

“너는 참으로 사람을 압박하는 재주가 있구나. 너의 세치의 혀는 참으로 모진고 독한 검과 같다.”

“송구하옵니다. 황제폐하!”

내 대답에 의종황제가 나를 물끄러미 봤다.

“회생아!”

“예. 황제폐하!”

“벚꽃이 화려하여 세상을 다 뒤덮은 것처럼 보이나 그저 벚꽃은 봄날이 한철이다. 불타듯 아름다운 꽃도 지면 추한 법이다.”

“예. 알고 있사옵니다.”

“너의 권력이 언제까지 갈 것 같으냐? 너의 화려함이 벚꽃과 다를 것이 무엇에 있더냐?”

“소신이 사욕을 부리지 않는다면 이 고려 황실보다는 오래 갈 것이옵니다.”

“으음,,,,,,,.”

의종황제가 나를 보며 크게 신음했다. 이것은 내 말을 인정한다는 의미일 거다.

“그렇겠지. 지금은 모두가 그렇게 볼 것이야.”

의종황제는 다시 나를 물끄러미 봤다.

“네 어미가 상궁 춘심이더냐?”

나도 이고 외숙에게 어머니의 이름을 들었을 뿐이다. 내가 아비에게 정이 없는 것처럼 사실 어머니에게도 그리 큰 정은 없었다. 하지만 의종황제가 내 생모의 이름을 기억해주니 마음이 참으로 복잡 미묘해졌다.

“그리 들었사옵니다.”

“그럼 진정 짐의 아들이더냐?”

“이고 외숙이 그렇다고 했사옵니다. 황제폐하!”

“이고?”

“그렇사옵니다.”

“짐이 춘심의 동생이라 견룡군에 보내준 이고 말이냐?”

“그렇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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