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338화 (338/620)

< -- 간웅 16권 - 북벌의 시작. -- >아나스타샤는 정도전이 섬섬옥수라고 말한 손으로 정도전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그 순간 정도전은 뭔가에 홀린 듯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한발자국 걸어 나갔다.‘뭐하는 거야!’정도전은 자신의 변화에 스스로도 놀라워했다.

“왜? 너도 심심해서 여기 온 거 아니니?”

“난 심심하지 않아!”

“오! 그래? 그럼 여기 왜 왔는데?”

“폭죽을 좀 보려고.”

“폭죽? 아! 폭죽을 가지고 놀고 싶구나! 그런데 어쩌지 아이가 가지고 놀기에는 좀 위험한 거라서.”

“아이가 아니라고 했어.”

“호호호! 꼬마 도련님이신가? 그럼.”

아나스타샤의 말에 정도전은 인상을 찡그렸다.

“몸이 작다고 품까지 작은 것은 아니야. 그리고 난 아이가 아니야!”

“오 그래? 그럼 뭐지?”

“난 정도전이다.”

“난 아나스타샤!”

아나스타샤는 정도전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건 서양의 인사법이다. 그걸 알지 못하는 정도전이기에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뭐하는 거야?”

“인사! 내 어머니 나라에서는 이렇게 손을 내밀어서 인사를 해!”

“인사?”

“그래. 인사! 팔 아프다. 어서!”

아나스타샤의 말에 정도전은 손을 내밀어 아나스타샤의 손을 잡았고 그와 동시에 아나스타샤는 정도전의 손을 잡아 흔들다가 앞으로 살짝 당겼다.

“왜 이래?”

정도전의 몸이 앞으로 쏠렸고 그 순간 아나스타샤는 정도전이 귀엽다는 듯 오른쪽 볼에 뽀뽀를 했다.

“뭐 하는 거야?”

정도전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것도 인사! 호호호!”

“젠장! 뭔 인사가 이렇게 흉측해?”

“내 어머니의 나라에서는 그렇게 인사를 해!”

“그 나라가 어딘데?”

“우린 루시안의 나라라 부르는데 다른 나라사람들은 어머니의 나라를 키예프 공국이라고 불러.”

“키예프 공국?”

“그래. 내 어머니의 나라!”

조금 전까지 웃던 아나스타샤가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는지 살짝 표정이 어두워졌다.지금 아나스타샤가 말한 키예프공국은 러시아의 중세 국가의 이름이었다.

9세기 초 바이킹 출신의 전사 루릭이 설원과 같은 땅에 나라를 세웠고 루릭이라 불렀다. 회생이 살던 시대의 러시아는 루시인의 나라라는 뜻으로 수도를 키예프로 옮긴 후에는 키예프 공국이라 불렸다.

다시 말해 아나스타샤의 어머니가 어떤 사정에 의해 중원으로 오게 된 것이거나 신라방 총방주인 김승주가 키예프공국까지 가게 되었다는 거였다. 그리고 어떤 사정에 의해 아나스타샤를 낳았다는 거였다.

“그만 손 좀 놓지. 땀 차는데.”

정도전은 미묘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이죽거렸다.

“너 손이 따뜻하다.”

사실 정도전도 아나스타샤의 손이 무척이나 따뜻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손이 따뜻한 사람은 마음도 따뜻하다는데 사실일까?”

“내가 어떻게 알아!”

정도전이 투덜거렸다.

“폭죽 줄까?”

“주면 좋고.”

“왜 그렇게 퉁퉁 거리지?”

“왜 퉁퉁거리면 안 되나?”

“호호호! 쫑알거리는 것이 귀엽네.”

아나스타샤의 말에 정도전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아나스타샤를 노려봤다.

“사내대장부에게 아녀자가 귀엽다고 말하는 거 아니다. 이 고려에서는 안 되는 거다. 그리고 우린,,,,,,,.”

순간 정도전이 아나스타샤의 입에 입을 맞췄다.

“우린 이렇게 인사한다.”

정도전은 그렇게 말하고 급히 몸을 돌려 정말 아이처럼 뛰어 아나스타샤가 기거하는 전각 앞마당에서 사라졌다.

“뭐지?”

조금은 놀란 아나스타샤였다. 하지만 지금 뛰고 있는 정도전의 심장보다는 덜 놀랬을 거다.

“내가 미쳤다.”

정도전은 급히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아무 책이나 펼친 후에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검은 것은 글이고 흰 것은 종이가 되어버린 순간이었다. 또 검은 글이 스스로 환상처럼 움직여 아나스타샤의 얼굴로 변했다.

“미쳤다.”

정도전이 인상을 찡그렸다. 틀린 말도 아닐 것이다. 사랑은 다 미친 것이니 말이다.

벽란도 포구.벽란도는 국제무역항이기에 그 포구가 참으로 크다. 큰 상선들의 모습이 웅장하게 보였고 그 중에서도 그 크기가 다른 상선들을 압도하는 대형 상선하나가 보였다.

노비선!고려의 노비들을 다른 나라로 팔기 위해 실어 나르는 상선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상선 앞에 신라방 총방주 김승우가 서 있고 밧줄에 묶인 남자 노비들이 담담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족히 그 노비의 수가 300명은 되어 보였다.

원래 노비라는 것이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보통이나 지금 신라방 총방주 김승우의 앞에 서 있는 노비들은 그저 담담히 상선만 보고 있었다.

“300명 이옵니다.”

신라방 행수 하나가 신라방 총방주 김승우에게 보고했다.

“물러가 있게.”

“예. 총방주!”

신라방 행수가 다른 일을 보기 위해 물러갔고 김승주가 노비들에게 다가갔다.

“행선지는 금나라다.”

김승주의 말에 놀라야 할 것인데 300여명의 노비들은 알았다는 듯 고개만 끄덕였다.

“대부분 금나라 귀족들과 신료들에게 뇌물로 받쳐질 것이다.”

“알겠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는 잘 알 것이고.”

“예.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대들의 결의가 놀랍기만 하오. 이역만리로 당당히 갈 수 있다니 그것도 노비로.”

“모든 것은 미륵 강림을 위함입니다.”

도천밀교 출신 도천밀군이 이렇게 노비의 신분으로 금으로 가고 있는 거였다. 드디어 회생의 또 다른 포석이 깔리는 순간이다.

“순풍에 돛을 달면 일주일이면 도착할 것이네.”

“예. 알겠습니다.”

“무훈을 비네.”

“이미 죽기로 각오했습니다.”

노비로 위장한 조천밀군의 말에 신라방 총방주 김승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찬찬히 그들을 봤다.‘이렇게 5만이 중원으로 가고 한 번에 봉기한다면 아무리 강성한 금나라라도 버티지 못할 것이야!’신라방 총방주 김승주는 다시 한 번 회생의 대전략에 놀라워했다. 또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회생뿐이라 생각했다."참으로 대단하신 분이시야!"공예태후의 처소.

“뭐, 뭐라 하셨사옵니까? 어마마마!”

의종황제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너무나 놀라 다시 공예태후에게 물었다. 의종황제는 마치 환청을 들은 것 같았다. 아니 공예태후가 하는 말은 모두 거짓이고 환청이라 생각했다.

“춘심이라는 상궁을 아시오? 황상!”

“모르옵니다. 그 상궁이 어떻다는 것이옵니까? 어마마마!”

그도 그럴 것이다. 의종황제의 품을 거쳐서 간 상궁이 하나 둘은 아니니 말이다.

기억도 나지 않을 것이고 얼굴은 생각도 나지 않을 것이다. 한 번 품었다고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면 의종황제는 이미 미쳐버렸을지도 몰랐다.

그저 의종황제에게는 회생의 생모는 하룻밤 노리개에 불과할 것이다. 그것도 한 번 만졌다가 흥이 다해 버리는 노리개 말이다.

“회생의 어미가 춘심이라는 상궁이요. 황상은 모르지만 이 어미는 얼굴이 희미하게 기억이 납니다. 해월을 꽤나 예뻐했던 상궁이었소. 착하기는 하나 황상이 기억할 정도의 미색은 분명 아닌 상궁이었소.”

“기억이 나시옵니까?”

“기억이 날 것 같소. 웃는 상이 꽤나 복스럽던 것 같았소.”

“허나 소자는 모르는 상궁이옵니다. 아니 저는 믿을 수가 없사옵니다.

회생이 제 아들이라니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옵니까? 어마마마! 있을 수 없는 일이옵니다. 예. 아닐 것입니다.

회생이 그런 말을 했다면 회생이 이 고려의 옥좌가 탐이 나서 그런 거짓을 꾸민 것이 분명합니다. 분명 회생의 사특한 계략이옵니다.

의종황제는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의종황제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옥좌를 찬탈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 그리고 그 자가 어리다면 충분히 생각해낼 수 있는 계략이니 말이다.또한 누구라도 이런 상황이 닥치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나 기른 정이 없기에 어쩌면 남보다 못할 수가 있었다. 또한 그 사이에 권력이라는 것과 옥좌라는 것이 있다면 더욱 더 그럴 것이다.

“황상!”

공예태후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의종황제를 불렀다.

“예. 어마마마!”

“이 고려의 옥좌는 이미 회생의 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 공이요. 꺼내고 싶을 마음대로 꺼낼 수 있소. 황성 앞에 있던 수천의 군사들을 보지 못했소이까? 그런데 무엇 때문에 회생이 거짓말을 하겠소.”

“어, 어마마마! 고려가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사옵니다. 소자가 돌아왔사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어미는 아녀자이라 아는 것이 별로 없으나 용호군이 3만 응양군이 3만입니다. 그 양군의 수장들이 모두 회생의 가신입니다. 위위경인 이의방은 회생의 장인이고 용호군 대장군인 이고는 회생의 외숙입니다.”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의종황제였다.

“수장들을 가신으로 삼았다고 해도 수장만으로 군을 지휘할 수는 없습니다. 어마마마!”

“회생은 낭장부의 대표입니다.”

“예? 그 말이 사실이옵니다.”

의종황제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고려는 낭장들의 의결기구가 있었다. 처음 상선 최준이 회생을 만났을 때 낭장부를 장악하라고 회생에게 말해줬고 그걸 바로 실행에 옮긴 회생이었다. 공예태후의 말대로라면 중앙군뿐만 아니라 지방군들까지 회생의 손아귀에 있다는 거였다.

“또한 신수군이라해서 회생이 새로운 군영을 만들었어요. 그 수가 4만입니다. 도합 10만이 회생의 한 마디면 검을 뽑아들 것이옵니다. 황실을 무너트리는 것은 일도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확실하지는 않지만 회생은 더 큰 것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고려에는 지방 군소 호족들이 있사옵니다. 그들이 소자를 돕는다면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황상께서는 처음 회생을 보셨을 때 아주 높게 평가를 하시더니 이제는 과소평가를 하고 계십니다. 놀라시겠지만 이 고려 황제 누구도 하지 못한 사병혁파를 회생이 해 냈습니다.”

“예? 정말이옵니까?”

의종황제는 놀라 눈이 커졌다.

“이 황도에 스스로 사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소. 오직 회생만이 자신의 사병을 노비라 하여 노군이라 명하고 거느리고 있습니다. 황상!”

처음 노군을 편성하고 휘하에 거느린 것은 최충헌이었다. 회생은 최충헌이 했던 것을 그대로 행하고 있는 거였다. 그러면서 황실을 옥죄고 있었다.

“진, 진정 회생이 사병을 혁파했단 말이옵니까?”

“그렇소. 문신들의 사병뿐만 아니라 황도 근처에 있는 호족들의 사병들 역시 모두 해산되었어요. 거부를 하면 바로 목이 베이니 아니 할 수 없지요.”

“참, 참으로 대단합니다.”

“맞습니다. 대단합니다. 그러니 이제는 회생이 황상의 아들이라는 것이 말이 되고 안 되고는 중요하지 않소. 회생이 황상의 아들이라는 생각하는 것이 지금 중요한 겁니다.”

“허나 아, 아니옵니다. 아닐 것이옵니다. 어찌 용정을 품고 비밀에 붙일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춘심이라는 상궁이 왜 용정을 숨기겠습니까?”

“모든 것이 다 무비 때문이요.”

“예?”

“황상이 아는 무비와 이 어미가 아는 무비는 다릅니다.”

“어, 어마마마!”

“황상의 용정에게 깨나 많이 모진 짓을 한 무비입니다. 그래서 춘심은 숨겼을 것입니다.”

“정말이옵니까?”

“그렇소. 황상! 회생이 황상의 황자라는 것을 무비가 안다고 하오. 또 김돈중 대부가 알고 있다고 합니다. 황상!”

“그럼 무비에게 물어보면 되는 것이 아니옵니까?”

“모르셨소?”

“왜 그러시옵니까?”

“무신들이 황궁을 불태울 때 무비도 같이 불타버렸소.”

“정, 정말이옵니까?”

“그렇소.”

“그럼 김돈중에게 소자가 확인해 보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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