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337화 (337/620)

< -- 간웅 16권 - 북벌의 시작. -- >

“그러시겠는가?”

“예. 그리하겠사옵니다.”

“그러시게.”

그 순간 내가 의종황제의 뒤에 섰고 그와 동시에 일제히 신하들로 가득 찬 길이 쫙 갈라졌다. 그리고 천천히 의종황제가 황궁으로 들어서기 위해 걸었다.

“황제폐하 만세!”

어디선가 만세소리가 외쳐졌고 그와 동시에 일제히 6처의 병사들이 우렁차게 의종황제의 복위를 경하하며 만세를 불렀다.

“황제폐하! 만만세!”

“만세!”

이것이 바로 의종황제가 아비인 줄 아는 나와 내가 아들인줄 모르는 의종황제의 첫 신경전이었다.

공예태후의 전각 앞마당.나는 내 부친인 의종황제를 호위하며 공예태후의 전각으로 향했다. 의종황제는 전각 앞에 다다르자 잠시 걸음을 멈췄다.

“짐이 저 전각 안에서 그대에게 부탁을 했었지.”

“그렇사옵니다. 폐하!”

“그 부탁 여기서 다시 하지.”

“예. 하명하시옵소서.”

“집은 상국의 허수아비는 아니 될 것이네.”

의종황제의 말에 난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호락호락 하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직설적으로 내게 말할 줄은 몰랐다.

“허나 그 예전처럼 고려를 부탁하네.”

“예. 황제폐하!”

“그대의 군대가 서경 반란군을 괴멸시킬 것이라 믿네.”

“성심을 다하겠나이다. 황제폐하!”

“물러가 보시게. 출정을 하려면 준비할 것이 많을 것이야!”

“예. 알겠사옵니다.”

난 의종황제에게 예를 올리고 뒤로 조심히 몇 발자국 물러났다가 돌아섰다. 그리고 내 눈 앞에는 왕준명이 서 있었다.

“시작이다. 경대승을 부르라!”

“예. 상국 합하!”

내 호칭이 섭정에서 상국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허나 이것은 내 부친이 의종이 내 존재를 모르고 나를 조롱하기 위해 만든 호칭이라는 것을 난 잘 알고 있었다.

공예태후의 처소.의종황제가 공예태후의 처소로 들어섰지만 공예태후는 한참이나 아무 말도 못하고 떨리는 눈동자로 자신의 장자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힘을 잃은 황실의 모습이 이럴 것이다.

공예태후도 자신의 장자인 황제 의종이 진정한 고려의 황제일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만감이 교차하는 눈빛이었다.

그리도 그 떨리는 눈동자에서 두 줄기 통한의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황. 황상!”

“어마마마! 소자 미력하여 사직과 황실을 이리 위태롭게 했사옵니다.”

“몸, 몸은 괜찮으시오?”

“마음만 아프옵니다.”

“이리 가까이 오시오. 황상! 내 가까이 보고 싶소.”

공예태후의 말에 의종황제가 천천히 다가섰다.

“미력한 소자가 어마마마께 문후 여쭈옵니다.”

“되었습니다. 이제 되었습니다. 황상이 돌아왔으니 이제 이 늙은이는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옵니까? 소자가 위태로운 이 고려를 다시 반석 위에 올릴 것이옵니다. 또한 황실을 기망하는 모든 것들을 응징할 것이옵니다.”

그 모든 것에 분명 회생도 들어가 있을 것이다.

“황, 황상!”

“지켜보시옵소서. 소자가 이제는 바로잡을 것이옵니다.”

“황상! 아니 됩니다. 절대로 그리해서는 아니 됩니다. 부마도위와 맞서지 마세요. 이 고려를 쥐고 있는 것은 부마도위 회생입니다.”

“알고 있사옵니다. 허나 이 고려는 소자의 고려이옵니다. 소자는 이 순간 이후 소리장도의 마음으로 살 것이옵니다. 항상 회생에게 웃어 보이며 검을 품을 것이옵니다. 아우처럼 어리석지 않을 것이옵니다.”

의종황제는 힘이 커지는 회생을 제거하려다가 명종황제가 폐위되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니 됩니다. 절대 그리 해서는 아니 됩니다.”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 그래서는 아니 됩니다. 천륜을 벨 수는 없소. 황상!”

“천륜이라니요? 겨우 부마이옵니다.”

“천륜이오! 천륜!”

공예태후가 단호하게 말했고 의종황제는 영문을 몰라 자신의 모후를 뚫어지게 봤다.

“무슨 말이옵니까?”

“회생은, 회생은 말이요.”

“예. 어마마마! 말씀하시옵소서.”

중방.이제 이곳은 고려의 모든 것이 결정되는 곳이다. 역사에서 무신정변이 일어난 후 이곳은 정치의 중심이 된 곳이고 내가 이 고려의 역사에 개입한 후에 모든 것이 달려졌지만 중방의 역할만은 그대로였다.내 부름을 받은 경대승이 무장을 하고 내 앞에 조심히 앉아 있었다.

“부르셨사옵니까? 합하!”

“신수군의 출정준비는 어찌 되었나?”

“보급을 담당하는 부대를 최소화하였고 이미 출정 준비가 끝이 났사옵니다. 합하의 명이 떨어지면 바로 출정할 수 있사옵니다.”

“그럼 지금 당장 출정하시게.”

내 말에 경대승이 나를 빤히 봤다.

“아니 같이 가시는 것이옵니까?”

“난 이곳에 남아 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았네.”

내 부친이신 의종황제를 만나야 한다. 그리고 결판을 내던 결단을 내든 해야 했다. 하지만 신수군은 움직여야 했다. 그러니 능력 있는 경대승에게 신수군의 지휘를 임시적으로 맡기는 거였다.

“예. 알겠사옵니다. 그런데 황제폐하의 명이 떨어진 것이옵니까?”

“내가 행하는 모든 것은 황명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이네.”

“예. 합하!”

"그러니 출정하시게. 신수군을 데리고 우회를 해서 자비 령의 뒤에서 대기하시게."

"예. 합하! 그리 하겠습니다."

"봉화가 피어오르면 바로 자비 령을 트러 막을 수 있게 준비를 하시게. 서경 반란군이 알아서는 안 되네."

"알고 있사옵니다. 합하!"

“패하는 것이 목적이나 내가 물러나라고 할 때까지는 물러나서는 안 될 것이네.”

“서경 성을 점령한 후에 물러나겠사옵니다.”

“그래. 그렇게 해! 패해도 절대 많은 병력을 잃어서는 안 되네. 응양군과 용호군은 차후에 출정을 할 것이니 그대가 신수군을 이끌고 먼저 가 있어. 이제 시작이네. 시작!”

“예. 합하!”

그때 중방 복도로 급히 들어서는 인기척이 들렸다.

“아뢰어 주시게. 남변에서 큰 일이 일어났네.”

다급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김돈중이었다. 그가 이제야 진도에서 돌아온 거다.

물론 그가 말한 큰일이라는 것은 의종황제 폐하의 장자인 폐서인이 된 효령태자가 죽임을 당한 것에 대한 보고를 하기 위함일 거다.그의 입장에서 본다면 큰일이 분명할 거다.

물론 내심으로는 내가 그 일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했다는 증거는 없다. 또 내가 했다는 것을 알아도 그것을 입 밖으로는 내지 않을 것이다. 옥좌가 두 개일 수 없으니 배다른 형이기는 하나 형은 형이고 또 그의 비해 내 어머니께서는 너무나 미천한 신분이니 같이 웃으며 고려의 미래를 볼 수가 없는 것이다.

“합하! 김돈중 대부 들었사옵니다.”

“잠시 기다리라고 해.”

"예. 합하!"난 짧게 말하고 경대승을 봤다.

“그 어떤 명령도 믿지 말고 봉화만 보시게. 내 군령이 바로 봉화네.”

“예. 합하!”

“자네가 잠시 나 대신에 지휘하는 병력이 4만에 육박한다는 그것만 명심하시게.”

내 말의 뜻은 조금이라도 의심받을 짓은 하지 말라는 의미가 담긴 말이다.

“예. 결코 합하의 충병들을 헛되게 잃지 않겠사옵니다.”

경대승은 나 대신에 자비 령을 막는 임무를 수행하며 4만에 육박하는 병력을 지휘하게 됐다. 만약 그가 변심을 해서 말 머리를 돌린다며 아주 큰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허나 그가 말머리를 돌린다고 해도 절대 큰일 따위는 일어날 수가 없다. 그의 옆에 있는 100명의 호위군이 모두 별초이기 때문이다.

말머리를 돌리는 순간 그 말머리와 함께 목이 떨어질 것이다. 허나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경대승의 눈빛은 북벌에 불타고 있으니 말이다.

“물러가겠나이다.”

“그래. 가! 앞으로 그대가 나를 도와 할 일이 아주 많아.”

경대승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군례를 올리고 밖으로 나가자 말자 난 문 앞에 서 있는 김돈중을 봤다."들어오시게."

"예. 합하!"그와 동시에 김돈중이 참담한 표정으로 급히 들어와 내게 머리를 조아렸다.

“신! 김돈중 합하를 뵈옵니다.”

김돈중은 내게 황제에게 올리는 예로 경의를 표했다.

“어찌 되었습니까? 모시고 오셨습니까?”

내가 생각해도 내가 한 말은 가증스럽다. 또한 김돈중도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눈을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의 극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합하! 큰일이 났사옵니다. 남변에 큰 일이 났고 진도가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남변에 큰 도적이 일어나 관군과 전투를 치르다 퇴패하여 진도로 숨어들었다고 하옵니다.”

“그래서요?”

“진도에 숨어들어 참으로 황망하게 태자마마를 해하였다 하옵니다.”

“뭐라고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납니까?”

난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참으로 이고 외숙이 일처리를 잘 해놓은 거였다. 하지만 나는 이 순간에도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 했다. 그리고 지금 고려에서는 내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고자 한다면 해가 나를 위해 숨어줄 만큼 내 권력은 거대했다.

“오두막이 불타고 호위하던 무장들이 모두 죽었사옵니다. 황망하게 태자마마의 시신까지도 찾을 수 없다하옵니다. 이제 어찌 하옵니까?”

"참으로 참담한 일이 있어났군요."

"그렇사옵니다. 합하! 이를 어찌 하옵니까?"

“황제폐하께서 황궁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알리세요. 김대부께서 하실 일은 알리시는 겁니다.”

내 말에 김돈중이 기겁해 날 봤다.

“진정 알리옵니까?”

이건 다 알고 있다는 말이다.

“알리세요. 보신 그대로 말씀을 올리면 됩니다. 보신 그대로만.”

“하, 하오나,,,,,,,.”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지요.”

난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예. 합하! 그리 알리겠나이다.”

김돈중은 그리 말하며 나를 잠시 봤다.

“황자마마!”

작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왜 그러세요? 김대부!”

“진정 괜찮겠사옵니까? 복위되신 황제폐하는 폐주와는 다르옵니다. 능력이 있기에 폭군이 될 수 있는 것이옵니다.”

“가셔서 보신 그대로 더함도 뺌도 없이 말하시면 됩니다. 그리되면 대노하셔서 나를 부를 겁니다. 그럼 제가 알아서 하지요.”

이제 태자였던 폐서인이 죽었으니 이 고려의 대안은 나 밖에 없다. 아무리 형제의 우애가 깊다고는 하나 개망나니 불효자보다 못한 법이고 아들이 있는데 권력과 옥좌를 아우에게 물려줄 군주는 없다.

미우나 고우나 피는 진한 법이고 자신을 꼭 닮은 아들은 어쩔 수 없이 품어야 하는 법이다. 내 부친 의종황제께서 아끼시는 태자가 죽었으니 이제는 이 고려의 대안은 나뿐이다.

“예. 합하! 소신 물러가겠사옵니다.”

김돈중이 중방을 나갔다."아신다고 해도 어찌 하실 수는 없을 것이야! 이제 오직 나뿐이니."순간 내 눈동자는 참으로 사악해졌다.이래서 옥좌는 모진 법이다.

난 이렇게 사악해진 후에 위대해 질 것이다. 난 예맥족 중 가장 위대한 정복군수가 될 것이다.

아나스타샤가 기거하는 아담한 전각.정도전은 자신이 고민하는 답을 찾고 잠시 잊고 있었던 귀녀인 아나스타샤에 대한 호기심에 이끌려 아나스타샤가 기거하는 아담한 전각 쪽문에 몸을 숨기고 배꼼이 앞마당을 훔쳐보고 있었다. 자신이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해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도 드는 정도전이나 이끌리는 마음이 더 컸기에 이리로 발걸음을 한 거였다.

“섬섬옥수이구나!”

정도전은 자신도 모르게 전각 앞마당에 피어 있는 꽃을 따고 있는 아나스타샤의 고운 손을 보고 말했다. 딱 홀렸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끼이익!자신도 모르게 정도전이 더 자세하게 아나스타샤를 보려다가 살짝 열린 문을 열었고 끼익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꽈당!정도전은 몸의 중심을 잃고 앞으로 쓰러졌다.

“으윽!”

정도전은 살짝 신음소리를 냈다. 아니 아픈 것보다 아나스타샤에게 이런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이구나!”

아나스타샤는 넘어진 정도전을 보며 아이라고 불렀다. 그 말에 정도전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40년 동안 그렇게 아이라고 불리며 살았다. 그런데 이제는 그 말이 이리도 듣기 싫어진 정도전이었다.

“이리와! 볕이 좋네.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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