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335화 (335/620)

< -- 간웅 16권 - 북벌의 시작. -- >

“결국 그들로 하여금 거짓 동조를 하게 한 후에 안에서 내응하게 하고자 하심이옵니까?”

“그렇지. 그게 내 비책이네.”

“예. 알겠사옵니다. 그리 움직여 보겠사옵니다.”

“훗날 크게 도움이 될 것이네.”

“예. 주군.”

물론 그때의 회생은 북벌 같은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또한 금을 정벌하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을 때였다. 오직 자신의 식읍인 갑산을 경영하며 번국으로 발전시킬 생각을 했고 그런 번국으로 향할 때 위험이 되는 서경 조위총의 난을 어떻게 하든 진압하고자 그리 박현준에게 비책을 일러준 거였다.

그것이 지금 회생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거였다.

“안에서 일어나는 적은 성 밖에 있는 100만 대군보다 더 무서운 법이네.”

회생의 다부진 말과 함께 박현준은 회상에서 깨어났다.

“무슨 준비인지는 모르겠으나 자네가 그리 장담을 하니 내 든든하군.”

“예. 족장님! 크게 걱정하실 것이 없사옵니다. 서경 반란군이 기세등등하게 서경 남문을 통과하고 황도로 진격을 하면 서경 성은 북변 갑산군의 차지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회생의 대의가 크듯 회생의 움직임은 참으로 긴밀하고 치밀했다. 이제 점점 자비 령 전투의 서막이 열리고 있었다.공예태후의 전각.

“뭐라 했는가?”

앙칼지다 못해 분노한 공예태후가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면 내게 소리쳤다.

“폐주가 유폐된 보현원이 불탔다고 하옵니다. 태후마마!”

내 말에 공예태후가 날 노려봤다.

“회생 네가 한 짓이냐?”

이리 묻는 것은 당연할 거다.

“네 아비를 위해 네가 한 짓이냐?”

“아니옵니다. 할마마마!”

난 조심히 그것도 나직이 말했다.

“아니다? 세상이 너라고 할 것인데 너는 아니다? 확실히 아닌 것이냐?”

“예. 할마마마!”

난 공예태후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그럼 누구냐? 누가 감히 폐주이나 황제였던 내 아들에게 그런 짓을 했단 말이냐?”

눈에 불똥이 튀고 그 불똥은 살기를 담고 있었다.

“놀라지 마시옵소서. 할마마마!”

“안다는 것이냐?”

“우선은 좌정하시옵소서.”

“내 지금 좌정을 할 수 있겠느냐?”

“우선은 좌정을 하셔야 하옵니다.”

내가 거듭 말하자 공예태후는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네가 이리 말하는 것은 내가 또 놀랄 일이 남았다는 거겠지.”

“송구하옵니다.”

“그래. 누구냐? 너를 보위에 올리려는 위위경 이의방이냐? 아니면 너의 외숙인 이고냐?”

내가 아니라고 하니 내 주변 핵심인물을 말하는 공예태후였다.

“태후마마!”

난 다시 공예태후를 태후마마라 불렀다.

“누구냐? 누구란 말이냐? 아무리 이 고려황실이 이리 무너졌다고 해도 누가 감히 용손을 그리 참살한단 말이냐? 누구냐 내 절대 용서치 않을 것이고 또 하늘이 천벌을 내릴 것이다.”

공예태후는 분노하다못해 절규했다.자식을 잃은 어미의 분노가 이럴 것이다. 허나 그 분노의 대상자가 또 다른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분명 망연자실할 것이 분명했다.‘철의 여인이고 고려를 지켜내고 있는 여인이지만 할마마마의 삶은 참으로 기구하다.’가엽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천벌을 내리기 참으로 어렵습니다.”

“뭐라? 네 뭐라 했느냐? 비록 폐주라고는 하나 황제였다. 황제를 시해하고 광명 천지에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내가 힘이 없어 어찌하지 못하고 하늘이 멀어 벌하지 못한다고 해도 이 고려의 백성이 절대 용서치 않을 것이다.”

이제 충격 이상을 줘야 하는 순간이 왔다.

“흥선 숙부이시옵니다.”

“뭐, 뭐라? 흥, 흥선이?”

“그렇사옵니다. 흥선 숙부께서 그리 하셨습니다.”

“어, 어찌 알았느냐?”

“환관 이숭겸에게 들었사옵니다.”

내 말에 공예태후는 충격을 받았는지 현기증을 느끼는 듯 앉은 그 자세로 휘청했다.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믿을 수도 없을 것이다.

“다, 다시 말해 보거라! 내가 잘못 들은 것이지 않느냐?”

“흥선 숙부이시옵니다. 이숭겸이 제가 고하지 않았다면 제가 숙부의 목을 베는 참담한 일이 일어날 뻔 했사옵니다. 할마마마!”

“진, 진정 그, 그런 것이냐? 진정! 흥선이 형을 그리 참살했단 말이더냐?”

“그렇사옵니다. 망극한 일이오나 그렇사옵니다.”

“어, 어찌,,,,,,.”

“모진 말씀이오나 고려의 안정을 위해 폐주이신 숙부께서 책임을 지셔야 할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복위되시는 황제께서 하지 않으신 것을 다행이라 여기시는 것이 좋을 것이옵니다.”

“책, 책임을 진다?”

“그렇사옵니다.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는 없지 않사옵니까? 곧 폐하께서 도착하실 것이옵니다. 흥선 숙부가 아니 했다면 제가 폐하께서 주청을 드려 그리 했을 수도 있사옵니다. 어찌 되었던 이 고려에서 사라지셔야 할뿐이었습니다.”

“상, 상황처럼 그리 조용히 여생을 보내게 할 수도 있지 않았더냐?”

“복위되시는 황제폐하께는 제가 있었사옵니다. 허나 폐주이신 숙부께서는 아무도 없었사옵니다. 그러니 그리 되신 것이옵니다. 신료들에게 또 무장들에게 신임을 잃으셨사옵니다.”

“회, 회생아!”

“황권을 바로 잡는 일이옵니다. 그리 여겨주십시오. 할마마마!”

난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허, 허나,,,,,,,,.”

“흥왕사에 불탑을 세우고 극락왕생을 빌 것이옵니다. 부질없는 짓이기는 하나 소손이 그리 할 것이옵니다. 또한 폐주로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고려의 당당한 황제로 승하한 것으로 만들어놓겠나이다. 할마마마!”

“그래도, 그래도,,,,,,,.”

“소손이 할 수 있는 전부이옵니다. 명종황제라 시호를 올리고 황릉의 봉분을 그 누구보다 높게 올릴 것이옵니다.”

역사는 의종황제 다음으로 명종황제가 황제가 됐다. 그리고 천수를 누리며 살았다. 하지만 이렇게 변해버린 역사는 자신의 형보다 먼저 이승을 떠나는 황제가 됐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명종황제의 뒤를 상황이신 내 부친인 의종황제가 다시 복위된 것으로 기록하게 돌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명분은 당연히 조위총의 난과 금나라 순문사 야율강이 참살에 의해 국난이 겹쳤기에 태자가 아닌 상황으로 다시 황제가 되었다는 거였다.

“내 너무 오래 산 것이냐?”

공예태후의 눈이 촉촉이 졌었다. 아들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 어미는 없을 것이다. 또한 아들의 죄에 힘겨워 하며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지 않는 어미는 없을 것이다. 이 두 가지 모두가 해당되는 공예태후였다.

“망, 망극하옵니다. 할마마마!”

“어찌 황실이 이리 되었단 말이냐? 진정 너라도 없었다면 이 고려황실이 어찌 될지 나는 참으로 무섭구나!”

“제가 있사옵니다. 그러니 그런 참담한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겠사옵니다.”

“회생아!”

“예. 태후마마!”

“나는 더, 더 이상 내 아들을 잃고 싶지 않다.”

만감이 교차하고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부탁과 같은 말이었다.

“예. 할마마마!”

“네 숙부 흥선에게는 한이 많다. 너도 다른 이들이 모를 한이 많겠지만 흥선은 더 그런 한이 많다. 황자로 태어나 황자이지 못하고 황궁에서 몇 십 년을 숨어 있는 듯 없는 듯 살았다. 도깨비처럼 그렇게 살았다. 그래서 그리 모질고 한이 많은 것이다.”

“알고 있사옵니다. 할마마마!”

“네 숙부를 부탁하마. 그리고,,,,,,,.”

“예. 할마마마!”

“네 아비 역시 부탁하마. 이제는 네 아비가 쓰러지면 이 고려황실은 진정 무너지는 거다. 나는 그게 두렵다.”

공예태후의 말에 나도 모르게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더는 망극한 일이 없도록 하겠사옵니다.”

“내가 너무 오래 살았다.”

그때 공예태후의 전각 복도로 빠르게 종종 걸음으로 달려오는 여인의 발자국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아바마마께서 도착을 하신 거군.’상궁의 발걸음이 저리 빠른 이유는 그것 밖에 없을 것이다.

“태후마마! 상궁 최 씨 들었나이다.”

문밖에 있던 상궁이 종종 걸음으로 달려온 상궁 최 씨가 문 앞에 있다고 아뢨다.

“무, 무엇이냐?”

“상황폐하께서 벽란포구에 당도했다하옵니다.”

“문을 열라!”

공예태후의 명에 스르륵 문이 열렸다.조금 전 절망한 눈빛은 사라지고 꼿꼿한 태후의 기품을 보이는 공예태후였다.‘내 할마마마는 분명 철의 여인이시다.’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상황폐하께서 벽란포구에 도착했다고?”

“그렇사옵니다. 태후마마! 만백성이 거리로 나와 상황폐하의 향하시는 길에 만세가 이어지고 있사옵니다.”

“봐라! 회생아! 아직 백성들은 이 고려황실을 버리지 않았다. 민심은 천심이다. 아직은 이 고려 황실에 희망이 있다.”

“그렇사옵니다. 할마마마! 기쁜 일이 분명하옵니다.”

“그래. 그래! 정말 다행이다. 아직은 천심이라는 백성들이 상황을 잊지 않고 있었어.”

사실 백성들을 동원한 것은 나다.민심이 천심이라고 다들 말한다. 그리고 그 민심이 의종황제에게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내가 이리 한 것은 모두 서경에 있는 대령후 때문이다. 또한 이 황도에 있는 서경의 간자들 때문이다. 그들에게 이런 황도의 분위기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렇사옵니다. 하늘의 뜻이 황제폐하께 있사옵니다.”

“그래! 만조백관에게 알려라. 이 고려를 다시 일으켜 세울 황제가 오셨다. 내 장자가 왔다. 이제 고려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예. 태후마마!”

“섭정!”

공예태후가 날 봤다.

“그 어떤 무신도 문신도 다시는 황실의 위엄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네. 섭정의 검이 이 황실을 보위해야 할 것이네.”

“예. 태후마마! 그리 할 것이옵니다.”

“그대가 직접 입궁하는 황제를 맞이하라.”

“예. 태후마마! 그리하겠나이다. 태후마마께서도 친히 납시어 황제폐하를 맞이하는 것이,,,,,,,,.”

“나는 이제 황제와 내 아들의 일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충격이 상당한 모양이다.권력지향적인 내 할마마마께서 이리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말이다. 하지만 또 놀랄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을 할마마마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진도로 갔던 김돈중 대부도 도착할 때가 되었을 것인데,,,,,,,.’한 고비를 넘기고 이제 또 한 고비가 남은 것이다. 하지만 이제 닥쳐올 고비는 내 부친이신 의종폐하와 내가 담판을 지어야 할 부분이 분명했다. 물론 난 최대한 그 사실을 숨길 것이다.

“신! 회생 물러가 준비를 하겠나이다.”

“그, 그래! 그렇게 해.”

난 공예태후에게 머리를 조아린 후에 돌아섰다. 그리고 당당히 공예태후의 전각을 나왔다.내가 전각에서 나오자 왕준명이 내게 급히 다가왔다.

“황제폐하께서 벽란도에 도착하셨사옵니다.”

“응양군과 용호군 각각 3천씩을 황성 앞에 집결시켜라.”

“예?”

내 말에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왕준명이 나를 봤다.

“황제폐하의 군대가 강성하다는 것을 보일 것이다. 또한 그 자리에서 서경정벌을 윤허 받을 것이다.”

“예. 합하!”

“장군 이상 모든 무신들은 갑주를 차고 나서라 해라.”

“예. 합하!”

“문신들 역시 황성 밖으로 나와 황제폐하를 맞이하라고 전하라.”

“예. 합하!”

왕준명이 짧게 대답하고 중방으로 뛰었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부자지간이나 누가 이 고려를 쥐고 있는지 보여드려야 해!’이래서 부자지간이라도 권력은 나눌 수 없다는 말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내 부친인 의종폐하를 군사로 위협하고자 했다. 어쩌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불효자일 거다.

‘차후에 할마마마께서 모든 것을 밝혀주신 후에 내 진정한 아들이 되지.’난 벽란도가 있는 쪽 하늘을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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