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16권 - 북벌의 시작. -- >
“그렇사옵니다.”
“탐라의 사람이 무장이 되기 싶지 않다고 들었는데?”
“전 안문사 조동희 영감께서 저는 천거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병졸인 제가 무장이 될 수 있었사옵니다.”
“그렇군. 탐라와 육지와는 그 말이 사뭇 다르다고 들었는데 사실이냐?”
“예. 합하! 육지에서 온 이들이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이옵니다.”
“그럼 소통에 문제가 있겠군.”
“그렇사옵니다.”
“그렇다면 탐라 사람들의 항해 솜씨는 어떠냐?”
내 말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한다면 참으로 능력이 있는 자가 분명할 거다.
“탐라 사람들은 상시 바다를 끼고 사니 항해 실력이 출중하며 군선 지휘와 전투 능력도 탁월할 수 있사옵니다. 단지,,,,,,,.”
“단지?”
“단지 탐라 사람들은 육지에서 온 분들을 참으로 경계하고 의심하옵니다.”
“이유는?”
“탐라에서 탐라목사나 안문사를 하고 개경에 고래 등 같은 사택 몇 채를 가지지 못하면 병신이라는 말도 있사옵니다.”
이 말은 그만큼 착취가 심하다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다.
한 번 부임하고 두 번 탐라로 가는 관리는 없었다. 그러니 끌어 모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끌어 모으자는 것이 탐관오리들의 생각인 거다. 그런 짓들이 몇 백 년 이어지니 당연히 탐라사람들은 육지인들을 싫어하고 또 육지에서 파견된 관리를 풍랑보다 더 무서워했다.
“그럼 하나 묻자.”
“예. 합하! 하문하십시오.”
“조동희 전 안문사는 어찌 하였느냐?”
내 말에 탐라출신 무장이 나를 잠시 봤다.
“탐라에서는 그를 검을 든 부처라 했사옵니다.”
“검을 든 부처?”
“그렇사옵니다. 훈련을 시킬 때에는 참으로 악귀처럼 무섭지만 탐라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비단결처럼 고왔습니다.”
난 탐라출신 무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사적인 감정이 개입된 대답이 분명할 거다. 허나 분명한 것은 최소한 탐관오리는 아니라는 거였다.
“또 하나 묻자.”
“하문하소서.”
“아직도 조정의 눈을 속이고 안남국과 왜와 밀무역을 하느냐? 또 남송 연안과 거래를 하고 있느냐?”
내 말에 탐라출신 무장이 놀라 눈이 커지며 날 봤다.
“어, 어찌 그것을 아시옵니까?”
이 사실이 내게는 중요했다. 안남국과 왜 그리고 남송의 연안과 밀거래를 하고 있다는 것은 탐라의 관리들과 선원들이 그곳으로 향하는 바닷길을 잘 알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고 향후 내가 할 일에 아주 중요한 부분이 되는 거였다.'그럼 하나는 해결을 본 거군.'난 탐라출신 무장을 뚫어지게 보며 입을 열었다.
“탐라의 땅이 비옥한 것도 아닌데 다시 개경으로 돌아오는 관리들이 그 전과 그 씀씀이가 다르니 추측해 본 것이다. 사실이더냐?”
“예. 합하! 그렇사옵니다. 왜의 은과 유황 그리고 철을 안남국으로 팔고 안남국의 쌀을 다시 왜에 팔아 이익을 챙겼사옵니다.”
그의 말에 경대승도 놀라 날 보고 있었다.
“조정에게는 아무런 보고도 없이.”
“탐관들의 뒷배를 채울 수 있는 일인데 누가 그것을 마다하며 보고를 하겠사옵니까?”
“그렇지. 알았다. 그렇다면 너는 왜 탐라사람이 육지인들을 싫어한다고 생각을 하느냐?”
“소장의 짧은 생각으로는 저 같은 존재들이 몇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출세의 길이 없다?”
“그렇사옵니다. 합하!”
“알았다. 되었으니 나가봐라.”
“예. 합하!”
탐라 출신 무장이 내게 군례를 올리고 조심히 뒷걸음질을 쳐서 중방을 나갔다. 이제 남은 것은 경대승과 나뿐이다.
4. 정도전의 마음에 바람이 불다.정도전의 전각 처소.책을 보고 있는 정도전은 인생을 찡그렸다.
정도전이 한 번 책을 파고 들 때면 누구든지 불러도 대답하는 경우가 없고 온통 책 안에 정신이 팔려 있는 것이 보통이나 지금의 정도전은 집중 그 자체를 하지 못했다.
“내가 어려? 내가 아이로 보여!”
정도전은 그리 중얼거렸다. 이 순간 정도전은 귀녀인 아나스타샤가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정도전의 변화일 거다. 여자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것은 그가 이제야말로 멈췄던 성장을 다시 시작한다는 증거였다.
“왜 그러십니까? 도련님!”
“내가 어려보이나?”
뜬금없는 정도전의 질문에 이숭겸은 당황했다. 그렇다고 대답을 하면 실망을 할 거고 아니라고 하면 정도전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을 이 숭겸은 잘 알고 있었다.
“예?”
“내가 어려보이지.”
“송구하옵니다.”
이숭겸은 사실대로 말하면 정도전이 상처를 입을 것이 분명하기에 대답을 피했다.
“어려! 나도 그걸 아는데 왜 이리 마음이 쓰이는지,,,,,,,.”
정도전은 그렇게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리며 자신을 아이라고 부른 아나스타샤의 얼굴을 떠올렸다.‘귀녀가 정말 귀녀인 모양이군. 귀녀야! 귀녀!’정도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읽던 책을 덮었다가 다시 펴며 집중을 하겠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책을 다시 봤다."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아주 중요한 것을 발견했는데 귀녀에게 홀려 이러면 안 되지."정도전의 중얼거림에 이숭겸이 놀라 정도전을 다시 봤다."못 들은 걸로 해."
"예. 알겠습니다."
"지금은 중요한 시기야! 내가 홀려도 지금은 아니지."지금 정도전이 읽고 있는 책은 태평광기다. 이 책은 송나라 사람 이 방등이 편집한 고대 중국의 설화집이다. 화약에 대한 내용을 담은 책을 찾아볼 수 없기에 정도전은 고대의 중국 설화집을 뒤지고 있었다.
“단약을 만들다 발견했다는 이야기군.”
“뭐가 말이옵니까?”
“폭죽의 재료.”
“화약 말이옵니까?”
이숭겸도 환관이니 폭죽의 재료 정도는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는가?”
“예. 궁중 연회에 흥을 더하기 위해 터트리는 것 아니옵니까?”
“그래. 맞아. 왜 우린 그걸 무기로 만들 생각을 못했을까?”
“소리만 요란한 것을 어떻게 무기로 씁니까? 도련님!”
“양이 적으니 그렇게 소리만 요란하게 터지는 거겠지. 이 내용을 보게. 단약을 만드는 어느 약재상의 집에 두자춘이 방문했고 그 마침 단약을 끌이던 약재상이 볼일이 있어 잠시 외출했는데 그래서 그를 기다리기 위해 두자춘이 단약로의 옆에서 졸다가 로에 큰 불이 일어나 화염이 지붕까지 올라 집을 모두 태웠다고 적혀 있어.”
“그래서요?”
“아무리 로가 크다가 해도 지붕까지 불길이 쏟아 오르는 경우는 없지. 뭔가 들어 있기에 그리 된 것이야.”
“그럼 무엇을 끓이고 있었는지가 중요하겠군요. 도련님!”
“그렇지. 여기 적혀 있군. 단약의 재료중 하나가 초석이라는 건데 그것이 발화하여 큰 불을 만들어 폭발했다고 적혀 있군.”
“그렇습니까?”
“그리고 이 책을 보면 초석과 세 가지 혼합물을 가열하는 실험을 했는데 초석과 황을 은그릇에 담고 쥐엄나무 열매를 넣고 가열하면 저어주니 자연히 불이 났다고 했어.”
정도전이 이숭겸에게 내민 책은 당 초기인 618년에 손사막이라는 사람이 저술한 복화유황법이라는 잡기에 가까운 서적이었다. 이만큼 정도전은 많은 분량의 책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래서는 안 되겠어.”
정도전이 인상을 찡그렸다.
“예?”
“단편적인 지식으로는 안 되겠어. 폭죽을 만드는 장인들을 데리고 와야겠어.”
정도전은 가장 빠른 방법을 택하려 했다. 자신이 직접 화약을 만드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판단을 한 정도전이었다.
“고려에는 그런 자들이 없을 것입니다.”
“그럼 송에서 데리고 와야지.”
“중요한 일입니까?”
이 숭겸이 정도전을 빤히 보며 물었다.
“아이들의 노리개가 술 취한 자들의 흥을 더하는 것이 세상을 진정 놀라게 할 수도 있겠어. 지금까지 내가 생각한 것을 생각하지 못한 중원 놈들은 눈뜬장님이고 머리가 없는 닭들이지. 제 놈들이 만든 것으로 피를 토하고 죽게 될 것이야. 성공만 한다면!”
정도전의 말에 이숭겸이 기겁해 다시 정도전을 봤다.
“그, 그게 사실이옵니까?”
“성공을 한다면.”
순간 정도전은 차가운 미소를 머금었다. 다시 중방.
“경대승!”
“예. 합하!”
청년 장군 경대승이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그대가 내가 없을 신수군을 이끌고 절령을 틀어막고,,,,,,,.”
내가 신수군에 위치하지 않는다는 말에 경대승이 놀라 날 봤다.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합하!”
난 이번 전투의 추의를 본 후 송으로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대령후가 황제라 스스로 칭하면 송은 대령후를 도울 생각을 할 것이다.'외세가 이 고려에 들어오는 꼴을 볼 수가 없는 나였다.
물론 난 승리를 장담 받은 후에 송으로 떠날 것이다. 이 역시 금의 중도 공격의 포석 중 하나다.
내가 송으로 가기 전에 신라방 총방주 김승주가 송의 대신들을 구워 삼아놓을 것이니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했다. ‘대령후의 비를 살려 보내준다면 내 뜻을 따라주겠지.’숙부인 대령후의 비는 송나라 공주다.
대령후의 목을 칠 수는 있어도 당장 송나라 공주를 어떻게 할 수는 없을 것이고 그러니 내게 이익이 되도록 최대한 이용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난 그런 생각을 한 후에 다시 경대승을 봤다.
“서경은 내 최종목표가 아니네. 내 최종 목표는 금나라 중도네.”
순간 경대승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번 정벌군이 서경 정벌군이 아니라 금나라 정벌군이옵니까?”
물론 경대승도 내가 북벌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이리 빨리 움직인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기에 저런 표정을 하는 거였다. 또한 내 추진력에 놀라워하는 눈빛을 보이며 나를 적으로 삼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하는 것 같았다.
“이건 나와 그대 그리고 위위경과 이고 대장군만 아는 일급비밀이네. 이 사실이 세어나가면 내 대망과 고려의 약진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네.”
내 말에 경대승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예. 합하! 소장이 무엇을 해야 하옵니까?”
“절령을 틀어막은 후에 반란군과의 전투에서 대패하는 패장이 되어줘야겠네.”
내 말에 경대승이 더욱 놀라 눈동자가 커졌다.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틀어막은 절령이 뚫리면 그들은 급히 퇴각하여 서경 성으로 들어가 농성을 할 것입니다. 그리 되면 혹독한 이북의 날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벌군은 황도로 퇴각해야 하옵니다. 합하!”
“그들이 들어갈 서경 성은 없어. 내 이미 조치를 취해 냈네.”
난 다부지게 말했다.
“그, 그 말씀은?”
“우리의 정벌군은 이북으로 퇴각하는 반란군을 쫒아 압수까지 행할 것이네. 그대도 알듯 이 고려에는 금의 간자가 너무 많네. 어쩔 수 없이 이북으로 대병이 이동하는 것처럼 보여야 하네. 그래야 우리가 시간을 버는 거지. 요동에 있는 대한무극의 군사들이 우리의 정벌군의 진격을 알고 북변으로 이동하지 않게 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라면 목표지.”
“하오시면 참지정사께서 반역에 연루되었지만 송환하지 않은 것은 건곤일척의 큰 결정에 한 방편이옵니까?”
역시 경대승은 어리석지 않다.
“그래. 모함을 받았다고 내 큰 대의를 중지할 수는 없지.”
“예. 알겠사옵니다. 합하!”
“절령을 내어줄 때도 크게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되네. 내가 신수군으로 절령을 틀어막고자 하는 것은 신수군의 주축이 사병이기 때문이네. 그걸 조위총도 알 것이야. 그러니 신수군이 절령을 막는 것이야. 거짓으로 싸우다가 썰물처럼 퇴각한다면 조위총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네.”
“결국 틀어막는 것은 뒤가 아니라 앞이 되는 것이군요. 합하!”